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7)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37화(137/319)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는 남자는 몇 번이고 멈춰 섰다.
제 검을 지지대 삼아 숨을 고르며, 아주 느린 속도로 산을 올랐다.
두 사람이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지고 달빛만이 남은 어두운 밤이었다.
남자는 화산파의 허물어져 가는 대문 앞에서 한참을 현판이 달려 있었을 위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위아래로 들썩이는 어깨는 숨을 고르는 것 같기도, 숨죽여 우는 것 같기도 했다.
허름한 경첩이 끼이익- 화산의 밤을 울렸다.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갔고, 설화가 그의 뒤를 따랐다.
반쯤 부서진 문에는 아직도 화산이 자멸하던 참혹한 그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후우우웅-
밤바람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듯 불어왔다.
설화는 대문 앞에 서서 남자가 이루어 놓은 죽음 이후의 화산을 바라보았다.
장문인이 서 있었을 단상 위에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위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제자들이 도열하여 장문인의 말을 경청하고, 무공을 배웠을 넓은 대 연무장에는 봉긋한 무덤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해 있었다.
그 무덤의 앞에도 무덤 주인들의 이름이 적힌 투박한 나무 위패가 놓여 있었다.
줄지은 무덤 사이사이에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자리들이 봉분 없이 비어 있었다.
남자는 제가 짊어지고 온 사형제들의 시신을 헤매는 것 없이 각자의 자리에 가져다가 눕혀 놓았다.
그즈음 설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위에 덮을 흙은 없었다.
무엇으로 덮으려는 거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형제들의 시신을 눕혀 놓은 남자는 한쪽에 두었던 자루와 삽을 들고 다시 문을 나섰다.
설화는 따라가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화산파가 자리 잡은 곳의 주위는 전부 돌산이니 구해오기도 쉽지 않을 텐데.
담에 기대어 한참을 기다리니 남자는 흙을 가득 담은 자루를 메고 돌아왔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한층 위태로웠다.
그렇게 몇 번을 오갔을까.
하나의 무덤을 채우기 위해서 몇 번의 오감이 있었고, 그렇게 다섯의 무덤을 채우고 나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화산의 일출(日出)은 유달랐다.
마치 세상을 깨우러 나온 태양이 가장 먼저 온 힘을 다해 빛을 내리쬐는 곳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즈음 무덤을 전부 채운 남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빈 위패를 가져와 손수 회수해 온 사형제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일대제자 둘과 이대제자 셋.
이름을 새기는 남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위패 위로 후드득, 후드득, 참 많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일대제자 유청’
‘일대제자 유백’
‘이대제자 진령’
‘이대제자 진제’
‘이대제자 진예’
제 손으로 새겨넣은 사형제들의 위패를 무덤 앞에 하나씩, 하나씩 놓는 것으로 남자의 쓸쓸한 제례는 끝이 났다.
다섯의 무덤을 만든 남자는 비틀거리며 입구 쪽으로 돌아와 무덤들을 향해 섰다.
그는 그렇게 한참이나 무덤을 바라보았다.
봉긋 솟은 봉분 사이사이의 아직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무덤으로 가득한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줄지어 늘어선 제 사형제들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그 앞줄에 늘어선 장문인과 장로들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옛 추억이 잠든 화산을 바라보았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올라 따가우리만치 내리쬐고 있었다.
그늘에 서 있는 설화조차도 그 강렬한 햇살에 눈이 아릴 정도였다.
그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 남자가 느리게 움직였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치열한 전투로 너덜너덜해지고 흙을 나르느라 더러워진 화산파의 무복은 곳곳이 그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절을 올렸다.
화산의 장문인과 장로들을 향해.
제 사형제들을 향해.
미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향해.
화산을 향해.
아주 느리지만, 온 기력을 다한 정중하고 엄숙한 절이었다.
감정을 모르는 설화조차도 가슴이 욱신거릴 정도로 침통한 절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흙을 퍼 나르던 어느 순간부터, 이미 끊어져야 했을 목숨이었다.
움츠린 모습으로 숨을 거둔 남자는 한없이 작아 보였고, 또 한없이 커 보였다.
설화는 그 미련한 남자와 남자를 그토록 미련하게 만든 화산을 한동안 눈에 담다가 홀로 화산을 내려왔다.
그것이 설화가 기억하는 유강의 마지막이었다.
어린 남자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아. 네가 어떤 기분인지.’
제 기분을 알아주는 설화의 말이 결국 그의 눈물샘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무슨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상황이 진행되었고,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방해가 될까, 잠자코 참기만 하던 감정이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울어?”
설화는 갑작스레 눈물을 흘리는 유강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왜, 왜 울지…?”
“흐으….”
“…!”
설화는 난감했다.
여긴 만두가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준 적도, 달랠 일도 없었던 그녀에겐 이 상황이 난감하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흐윽… 흐….”
“….”
이리저리 둘러보며 어쩌지 못하던 설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유강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토닥이는 건 항상 기분이 나아졌으니까.
그나저나 얘는 뭐 이리 잘 울어.
잘 웃기도 하더니 잘 울기도 하네.
‘난 좀… 부끄러운 것 같던데….’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이.
그래도 전혀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람이라는 점이.
어색하게 토닥이던 설화의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투둑, 툭.
바위를 적시는 눈물 자국을 바라보던 설화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직은.”
이번엔 네가 사형제들을 찾아다니지 않도록.
“막으면 돼. 전부 막으면 돼. 그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야.”
이미 걸려버린 최면술까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서로를 죽이는 참극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것만 잘 막을 수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 * *
화산으로 올라가기 하루 전.
남궁무천과 흑룡대주, 화산의 두 제자에 초련과 설화까지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