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43)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43화(14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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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대주의 말을 듣고 나가본 화산의 뜰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뜰의 중심에 무언가를 덮은 거적이 보였다.
툭 불거진 모양새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이.’
아이였다.
설화 자신보다도 작은.
화산의 이대제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아이들 중 하나일까.
설화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무슨 일인가.”
남궁무천이 나타나자, 죽은 아이의 곁에서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화산의 장로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무학당주 노백이 앞서 나왔다.
“남궁 가주님.”
남궁무천이 거적을 보며 물었다.
“화산파의 아이인가.”
“예. 산 아랫마을로 심부름을 다녀오던 제자가 숲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입문하지 않은 아이이지만, 화산에서 지낸 지는 오래된 아이입니다.”
그 순간, 설화는 한 이름을 떠올렸다.
‘명.’
그 아이다.
이전 생에는 듣지 못했던, 유강이 유독 아끼던 그 아이. 혈교의 간자라 의심하였던 아이 말이다.
‘그 아이가 죽었다고?’
왜지? 누가 죽인 거지?
혈교의 소행인가? 단순한 사고사?
“사인이 무엇인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노백이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독에… 당한 것 같습니다.”
“독?”
“잠시 봐도 될까요?”
노백이 남궁무천의 뒤에서 나온 설화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놀람과 의아함이 섞여 들었다.
남궁무천의 손녀가 함께 온 것은 남궁세가가 화산에 도착한 첫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낮에 있던 비무에서 그녀가 보여준 무공의 격차를 제자들을 통해 들을 때엔 몰랐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눈앞에서 마주한 아이는 생각보다도 작고 어렸다.
“네가 직접 보겠다는 것이냐?”
“네. 그리고 괜찮다면 저희 가문의 의원께도 보이고 싶어요.”
노백이 난감한 표정으로 남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에게 시신을 보여도 괜찮겠냐는 눈빛이었다.
남궁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네. 잠시 보아도 괜찮겠는가.”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노백은 두 사람을 거적 앞으로 이끌었다.
이미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장로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산의 모두가 이 일을 아는가?”
“아직 제자들에겐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머물라는 지시를 내려둔 상태입니다. 시신을 옮긴 후에 차차 알려야겠지요.”
“그렇군.”
남궁무천과 설화의 맞은편에 앉은 노백이 거적을 걷어내자, 시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예상대로 죽은 아이는 명이었다.
시신은 입술이 새파랗고 피부가 불에 그을린 듯 온통 새까맸다.
“만져봐도 되나요?”
“그래.”
설화가 시신을 꾹, 눌러보았다.
피부는 마치 돌처럼 딱딱했다.
이상한 것은 시신의 자세였는데, 마치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듯이 명치 부근에 손을 모은 채였다.
설화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노백이 포갠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꽃 한 송이를 소중하다는 듯이 쥐고 있었습니다. 독기에 전부 시들어 옮기던 도중 떨어진 모양입니다.”
“무슨 꽃이었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모란이었다. 흰색 모란이었지.”
“….”
설화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그런 제 손녀의 반응을 본 남궁무천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봤네. 시신을 옮기도록 하게. 본가의 의원에겐 내 따로 말해 놓겠네.”
“감사합니다.”
화산의 장로들은 이내 시신을 본관으로 옮겨갔다.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화산의 아이가 화산에서 독살당했으니,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시신과 장로들이 사라진 화산의 뜰은 다시금 허전하게 텅 비었다. 황량한 공간에 서 있으니 밤의 공기가 더욱 차게 느껴졌다.
“설화야.”
남궁무천이 설화를 불렀다.
멍하니 멀어지던 장로들을 바라보던 설화가 그를 돌아보았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는 것이냐.”
“…네.”
사실 설화는 시신의 상태를 보자마자 이것이 혈교의 소행임을 알았다.
입술이 파랗게 변하고 피부가 까매지며, 돌처럼 딱딱해지는 증상.
“고혈독(固血毒)이라는 독이에요. 화오루에서 쓰는 독이죠. 증상은 보시다시피, 혈도와 온몸이 서서히 굳어가며 죽는 것이고요.”
“참으로 잔혹한 놈들이구나.”
남궁무천은 혈교의 잔혹함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지금껏 봐 온 어느 흑도 무리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간교하다.
마치 사람을 더 고통스럽고 더 괴롭게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목적인 듯한, 치가 떨리도록 잔혹한 놈들.
“그곳에서 불리던 제 이름은 일화였어요.”
고개를 숙인 채로 설화가 입을 열었다.
“하나의 꽃, 그건 하얀 모란을 뜻하는 이름이에요.”
절벽에서 피어나는 하얀 모란은 향기가 짙다. 삭막한 절벽 위에 홀로 피어나 짙은 향기를 피워내는 것을 누군가는 고고하다 말한다.
하나, 모란의 짙은 향기는 살기 위한 발악이다.
우연히 절벽 아래를 지나던 벌과 나비가 자신의 향기를 맡고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모란의 향은 곧 생의 발악인 것이다.
혈마는 그리 말하였다.
‘저 살기 위해 아등바등 향기를 내뿜는 모란을 보거라. 아름답지 않으냐.’
‘발악의 향은 이리도 짙고 질긴 것이다.’
‘네 모습이 저 모란을 닮았구나.’
돌아보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전 생의 자신은 절벽 위의 꽃이었다.
풀과 꽃이 가득한 숲에서 떨어져나와 홀로 절벽 위에서 살아내야 했던 삶이었다.
마침내 말라비틀어져 버린 일화(一花)였다.
“설화야.”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는 힘에 설화가 시선을 들었다. 남궁무천은 어느새 제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아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네가 그리 말하였지. 어디서 자랐든,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삶을 살았든. 너는 남궁의 아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천무제에서 설화가 모든 이들 앞에서 선포하였던 말이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