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9)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59화(159/319)
진법을 경계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유강은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을 짚었다.
딱딱한 돌벽, 차갑고 거친, 실재하는 벽.
그러나 그는 알았다.
이 벽 너머에 설화가 있다. 어째서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도달한 이 벽 너머에 그 아이가 있다.
유강은 알 수 있었다.
“있잖아, 나. 화산을 나왔어.”
이 너머에 그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간 꾹꾹 참아 온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장문인과 장로님들은 남아 있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어. 내 사숙들과 사형제들 그리고 사질들을 죽인 그 사람….”
목소리가 떨려와서 잠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 아이는 여전히 벽 너머에 있었다.
마치 자신의 말을 들어주듯, 언제나처럼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그 사람은, 내, 사부였으니까…. 사부 그 이상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저지른 짓을, 내가, 용납할 수 없었어.”
아버지와 다름없던 자가 살생을 저지르며 문파를 배신하고 도망쳤다.
많은 이들이 괜찮다 하였지만, 유강은 도저히 화산에 남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모두를 대할 자신이 없었다.
“도망치는 그 사람한테 돌을 던졌는데… 날 죽이지 않았어. 사실 그땐 죽여줬으면 했는데.”
마지막까지 사부 노릇을 하곤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던 모습을 떠올리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패배해 놓고, 팔 하나를 버젓이 잃어놓고 사부 노릇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그래서 나, 그 사람을 찾으려고. 찾아서 물어보려고. 왜 나를 제자랍시고 데려왔는지, 왜 나를 가르쳤는지, 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제대로 물어보려고.”
무슨 수를 쓰든 그 사람을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서 답을 듣고 말 것이다.
반드시, 답을….
답을….
“나… 한심하지…?”
유강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실은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 아픔이 옅어지고 동정이 사그라들었을 때, 덩그러니 짙은 분노만이 남았을 때.
혹여 실수라도 하나 하면, 혹여 그자가 돌아와 다시 사형제들을 해치기라도 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때도 화산의 어른들과 사형제들이 자신을 지금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줄까.
아니, 저들이라면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혹여 아닐까 봐.
자신을 원망하는 시선으로 볼까 봐.
화산에게 버려지게 될까 봐.
그래서 도망쳐 버렸다. 자신이 먼저.
“나 너무, 한심하다….”
유강이 무릎을 굽혀 주저앉았다.
화산의 형제들은 자신을 걱정해 주기만 하는데, 다시 버림받게 될 걱정이나 해대는 비겁한 자신이 싫었다.
그때였다.
벽 너머로 그 아이가 마주 주저앉는 것이 느껴졌다.
벽을 짚은 손 너머로, 그 아이의 손이 맞대어왔다.
차가운 벽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지만, 유강은 이 작은 온기가 자신을 향한 위로같이 느껴졌다.
괜찮다고, 한심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분명, 그런 따뜻한 말을 하면서도 덤덤한 표정이나 짓고 있겠지?
심각한 일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듯이, 괜찮다고 말해주겠지.
그 아이라면, 분명 그러할 것이다.
어른처럼 강한 아이니까.
단단한 남궁세가의 소저니까.
“…나도 더 단단해질 거야.”
울지 말자. 어린애처럼 질질 짜는 건 그만두자. 운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강해질 거야. 그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돌아올 테니까.”
차라리 웃자.
나는 남궁 소저처럼 드러내지 않는 법은 모르니까.
웃는 얼굴 뒤에 숨기는 것이다.
“약속 지켜.”
유강의 얼굴에 배시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슬픔을 뒤덮은 맑은 미소였다.
“내가 너 이기면, 뭐든 들어주기다.”
* * *
그가 울음을 터트렸다.
화산을 나왔다고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보다 화산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이전 생에 그는, 마지막까지 화산을 지키던 마지막 매화였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었지?
어째서 너는 화산을 떠난 거야?
나는 화산을 지켰다.
하지만 너를 지키진 못한 모양이다.
화산을 지키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너는 화산을 떠났고, 이렇게 상처받은 얼굴이다.
– 나 한심하지?
“아니.”
[네 목소리는 저쪽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말해봤자 소용없다.]알고 있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를 한심하다 말하는 그를 향해 알려주고 싶었다.
이전 생의 너는 그 누구보다 용감했고, 의리 있었으며, 뜨거웠다.
제 목숨을 태워 가면서까지 사문과 형제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나는 부러웠다.
그 당시 나에겐 목숨 바쳐 지키고 싶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에 목숨을 바쳐야만 했던 네가, 그것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네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전 생의 나는 그런 너를 조금은 동경했다.
유강이 주저앉았다.
공력이 느껴지지 않는 몸으로 서럽게 울며 흐느꼈다.
– 나 너무, 한심하다.
설화 역시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
경계를 짚은 그의 손을 맞잡듯 제 손을 대었다.
“한심하지 않아. 괜찮아.”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틀리지 않을 테니까.
이전 생과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너는 분명 이번에도 옳은 길을 갈 테니까.
“괜찮아.”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유강이 고개를 들었다.
혼란스럽기도,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얼굴을 굳혔다.
– 나도 더 단단해질 거야. 그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돌아올 테니까…. 약속 지켜.
약속? 무슨 약속을 했던가?
– 내가 이기면, 뭐든 들어주기다.
그의 얼굴에 다시금 밝은 미소가 번졌다.
슬픔을 집어삼킬 듯한 환한 미소에 설화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어렴풋이 그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강해지면, 뭐든 들어달라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날도 달이 참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