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2)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62화(16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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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식사를 한 뒤, 설화는 령을 통해 자신이 이무기의 진법에 들어간 이후의 일을 자세히 들었다.
노문이 남궁무천에게 팔을 한쪽 잃고 도망쳤고, 남은 간자들에게 혈교에 관한 정보를 조금 얻었다는 얘기.
간자가 된 화산의 제자들은 대부분 본산을 떠났을 때 혈교의 손에 붙잡혔었고, 살기 위해 그들에게 협력하였다가 결국엔 강한 힘에 매료되어 회유되었다는 얘기.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내려 해봤지만, 금제가 워낙 강하였고 얼마 가지 않아 죽어버려 많은 것을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죽어? 간자들이?”
“예. 전부 고독이 심어져 있더군요.”
“아.”
그렇겠네.
혈교에선 강제로 입교시킨 혈교인들에게 고독을 심는다.
그들이 아무리 혈교에 충성을 맹세해도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최소한의 제약을 걸어놓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혈교라는 거대 세력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 상황이니, 더욱이 입막음에 신경을 썼을 터.
‘간자를 잡아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사실상 쓰고 버릴 패나 다름없는 간자들에겐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본가로 돌아가십니까?”
령의 물음에 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난 본가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예? 돌아가지 않으신다고요?”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의 진법에서 수련을 이어가며 생각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본가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 하지만….”
령이 당황했다.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일 공자님께서도… 소식도 전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소식은 전해야지. 걱정하실 테니까. 본가엔 조만간 다녀올 거야. 필요한 물건도 있고.”
지난번 만리신투의 비동에서 해독환과 옥패의 조각 말고도 서책 하나를 얻었다.
서책은 강기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비급이었다. 무공의 이름은 ‘벽독강기(劈毒罡氣)’.
화경에 오른 고수들은 몸에 강기를 둘러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육신을 보호하는 호신강기(護身罡氣)를 펼칠 수 있게 되는데, 그와 비슷한 무공이었다.
서책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어떠한 독의 침습도 막을 수 있다는 강기 무공.
다만,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영약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천궁귀두에서 얻었던 금룡옥혈보였다.
‘금룡옥혈보와 무공 비급.’
두 가지를 얻어야만 익힐 수 있는 벽독강기.
호신강기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쓸 수 있는 무공인 것으로 보아, 벽독강기 역시 비슷할 터다.
그러니, 벽독강기를 익히기 위해 갖춰져야 할 조건은 세 가지인 셈이다.
‘까다로운 무공이야.’
하지만, 까다로운 만큼 엄청난 무공이지.
어떠한 독의 침습도 막을 수 있다니.
‘이 무공만 익히면, 혈교와의 싸움에서 심히 유리해진다.’
혈교는 각종 독을 사용하여 상대를 약하게 한 뒤 기습 공격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니, 독의 침습을 막는 무공을 익히는 것만으로 혈교의 기습은 팔 할 이상 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본가에 있는 금룡옥혈보가 필요했다.
“하면,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저도 아가씨를 따르겠습니다.”
“당연하지. 너는 내 호위무사잖아.”
“!”
설화가 싱긋, 웃었다.
“할아버지랑 약속했어. 내 경지가 초절정이 되기까진 꼭 호위무사를 대동하겠다고.”
이무기의 힘을 포함하면 화경의 경지라 할 수 있지만, 설화 자신만의 힘은 아직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약속은, 지켜야지.
“네 의사는 묻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령은 나를 지켜줘야겠어.”
“…아가씨…”
설화가 본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령은 그녀가 자신을 두고 갈까 봐 불안했다.
자신은 그녀의 호위무사이지만 그녀는 호위무사를 필요로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무례했던 자신의 태도가 후회되었고, 그래서 더 노력했는데.
“괜찮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설화는 령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제게 내민 작은 손을 바라보던 령은 고개를 떨구며 그 손을 붙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힘주어서.
“이 남궁령. 아가씨께서 어디를 가시든, 아가씨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 넘치는 충성심에 설화가 싱긋, 웃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한 령이 그녀에게 물었다.
“본가로 돌아가지 않으신다면,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생각해 둔 곳이 있어.”
“생각해 두신 곳이요?”
“우리는 지금부터 흑도가 될 거야.”
“!”
령의 눈이 커졌다.
“흐, 흑도요?”
너무 놀란 탓에 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었다.
아가씨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다짐한 것이 바로 전이었지만, 그 마음을 순식간에 까먹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흑도? 흑도라고?
흑도가 된다고?
평생을 남궁세가의 지붕 아래에서 백도로 살아왔던 자신이, 흑도가 된다고?
“왜, 왜입니까…? 왜 굳이 흑도가 되려 하십니까? 흑도는 하나같이 파렴치하고 위험한 놈들만 가득한….”
“꼭 그렇지만도 않아.”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흑도라고 해서 전부 악하고 난폭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백도보다 겁 많고 마음 약한 놈들도 많아.”
“하지만 그런 놈들이 어째서 남의 것을 수탈하면서 산단 말입니까? 도적질은 겁 많고 마음 약한 놈들이 할 짓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느냐지.”
흑도라는 놈들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일하기 싫어서?
남의 것을 빼앗아 사는 게 즐겁고 편해서?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즐거워서?
물론 그런 이유로 악한 짓을 일삼고 사는 놈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흑도 세력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경우가 더 많았다.
작물이 자라지 않아서.
배가 고파서.
황실에 바칠 세금이 없어서.
자신의 것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겨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은 깊은 숲으로 도망쳐. 숲에는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고, 필요한 물자도 구할 수 없으니 당연한 수순처럼 숲을 지나는 이들의 것을 빼앗지.”
그러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토벌대에게 붙잡혀 관청으로 끌려가 벌을 받는 이들이 생겨난다.
힘이 없고, 제대로 된 무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그런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하고, 사람이 모이니 그들을 통솔하는 지도자가 생겨. 세력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켜야 하는 이들 또한 많아지고, 그래서 더 힘을 기르고. 그렇게 대부분의 방파가 생겨나.”
평범한 백성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이들.
평범한 방법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
“…물론 역시 령의 말대로 나쁜 놈들도 차고 넘치는 곳이긴 하지만.”
설화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흑도로 가기로 한 것, 령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좋게 말했지만, 실상은 나쁜 놈들이 더 많다.
아니, 착한 놈들도 나쁜 놈들이 되는 곳.
마음 여린 놈들도 악랄한 놈들이 되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흑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