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231)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 228화(231/319)
설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절벽을 오르고 어떻게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말인가.
눈과 귀가 열렸을 때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했는데 말이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전의 내공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지만, 그녀의 혈도에 이무기의 공력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굉천이 직접 설화의 상단전을 건드려 이무기의 힘 일부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설화가 굉천이 있던 방향으로 포권한 뒤 걸음을 옮겼다.
“설화야, 조심해!”
유강이 암자를 떠나는 설화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설화는 그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자박자박….
설화가 느린 걸음으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갔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기감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남궁설화. 주위에 기운을 퍼트려라.]돌연 머릿속을 울리는 이무기의 목소리에 설화가 걸음을 멈추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기운을 퍼트리라니?
[검에 기운을 두르듯 네 주위에 기운을 두르는 것이다. 그것으로 주위의 지형을 파악하거라.]“….”
설화는 이무기의 말대로 기운을 퍼트렸다.
검은 안개가 마치 검과 자신에게 기운을 두르듯, 제 주위에 장막을 펼치듯, 그녀의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과 발치를 어지럽히는 수풀.
빠르게 나무를 오르는 청설모와 땅을 기어가는 벌레들까지.
설화가 집중하는 대로 기운이 움직이고,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역시 잘하는구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잊지 말거라. 나는 네가 필요로 할 때 네 곁에 있을 것이다.]그것이 이무기의 마지막 전음이었다.
설화는 다시 홀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보다 훨씬 빨라진 걸음이었다.
방향을 확인해야 할 땐 검사(劍絲)의 형태로 기운을 집중시켜 흘려보냈다.
이윽고 자신이 가는 방향이 맞다는 것이 확인되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무기의 공력을 내력처럼 쓰는 건 조금 색다르네.’
본래는 남의 손을 통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 손이라는 느낌이 한층 강해졌다.
어둠 속에 잠재된 강대한 힘.
이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이무기의 공력의 성질이 혈도와 피부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러니 이무기의 공력을 쓸 때마다 다들 무서워하지.’
평범한 어둠이 아니다.
이무기의 공력은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흉포함을 가지고 있다.
마치 사나운 맹수 한 마리가 손안에 있는 것처럼.
공격하라는 한 마디의 명령이면 금방이라도 눈앞의 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만한 가공할 기운이었다.
‘이무기….’
그래. 이무기이지 않은가.
용이 되지 못하였지만, 수천 년을 살아온 지고한 존재.
제 곁에서 당과나 먹고 틈만 나면 귀여움이나 받으려 하니 잠시 잊고 있었다.
이무기는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 * *
굉천은 공중에 뜬 채로 거침없이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는 남궁설화를 지켜보았다.
‘나무아미타불….’
누군가를 가르칠 일은 제자를 제 손으로 파문시키고 산속으로 들어오며 다시는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구양도가 자신에게 남궁설화가 이무기의 힘을 깨우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였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제자를 옳은 길로 이끌지 못했던 사부가 어찌 다른 누군가를 또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하나, 이어지는 구양도의 말을 듣고 굉천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굉천, 시간이 없네. 우리의 천하가 저물 때가 되었네. 가기 전에 후학들에게 살길은 마련해 주어야지 않겠나.”
그 말에 담긴 뜻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해는 저물기 마련이니.
그가 하고 싶은 말의 의미는 굉천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바였다.
“묵언 수행은 끝났는가?”
구양도가 굉천의 곁으로 다가갔다.
굉천이 남궁설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을 때 구양도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가 산속 암자에 틀어박혀 묵언 수행을 한 지 어언 10년이 되어간다.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다물려 있던 굉천의 목소리를 이렇게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이 자네의 마음을 동하게 하였는지 궁금하군.”
“저 아이의 눈빛일세.”
“눈빛?”
“저 아이를 보고 있자니 예비 승려로 가르침을 받던 때가 떠올랐네.”
어떤 가르침이든 뼛속에 새기고야 말겠다는 결의로 가득 찬, 생생하게 살아 있는 눈빛.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함에도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투지로 가득한.
먼저 그 길을 나아간 자로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눈이지 않은가.
“자네 괜찮은 것인가?”
“나는 그저 의를 다할 뿐이네.”
구양도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부터 묵언 수행이 깨질 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배우고자 하는 투지를 가진 이에게 적당히 맞추어 준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이것이 지고한 무림의 역사에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길 발자취라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 * *
빨간 열매를 가지고 암자에 도착했다.
굉천은 눈과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제 앞으로 똑바로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깨달았느냐?”
제 앞에 선 설화에게 그가 물었다.
설화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굉천의 손이 다시금 그녀의 이마를 톡, 두드려 이무기의 공력을 채워 주었다.
“다시 다녀오거라.”
“예.”
설화는 다시금 암자를 나갔다.
그 뒤로.
“깨달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다시 다녀오거라.”
“이젠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다녀오거라.”
“어떠하더냐?”
“어렵습니다.”
설화는 다섯 번을 더 산을 오갔다.
열매를 따오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음을 알았다.
다섯 번의 산행은 사흘에 걸쳐 이루어졌다.
유강이 그녀의 손에 주먹밥을 쥐여 주었고, 젖은 수건으로 그녀의 땀과 더러운 것을 닦아주었다.
세 번째 산행부터 설화는 그가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것을 알게 되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그렇게 다섯 번째가 되고.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굉천은 설화의 눈과 귀를 막았던 공력을 거두어들였다.
설화는 그가 내민 손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가지를 올려놓았다.
그녀의 얼굴엔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고, 옷자락이 군데군데 찢어진 채였다.
유강은 그런 설화를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굉천은 설화에게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를 내밀었다.
설화는 단숨에 그 물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물을 전부 비우길 기다리던 굉천이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답신을 주려는 것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