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26)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26화(2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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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딸랑―
안개가 자욱한 시야 사이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엉겨 붙은 피처럼, 소리는 끈적하게 그녀의 발치를 붙잡고 늘어져 끌어당겼다.
이대로라면 늪에 빠진 개구리처럼 저 소리에 빠져들어 삼켜질 것만 같은 기분.
손과 발이 꽁꽁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설화는 그것을 붙잡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하… 하아….”
열려 있는 창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은은한 노을빛이 사방에 깔려 시야를 나른하게 풀어 주었다.
축축한 감각에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작은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설화는 제 발 주변에 산산이 깨어진 꽃병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큰 소리가 나서요.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린 시비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피가 흐르는 제 손을 보던 설화는 근처에 있던 천으로 손을 대충 감은 뒤 문을 열었다.
“어머나…!”
시비는 빠르게 방 안의 상황을 파악했다.
깨진 꽃병과 그 근처에 떨어진 혈흔, 아이가 손에 쥔 붉게 물든 천을 발견하고는 숨을 헉, 들이켰다.
“실수로 꽃병을 깼어.”
“어, 어서 의약당주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시비가 황급히 돌아 나가려 할 때였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
걱정할 것이 뻔하니 되도록 어질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연거푸 상처를 입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일 공자님께서는 가주님의 부름을 받고 가주전에 가셨습니다! 일 공자님께도 얼른 사람을 보낼게요!”
“아니. 말하지 마.”
“네…?”
설화가 어질러진 방을 돌아보았다.
“언제 돌아오신다는 말씀은 없으셨어?”
“저녁 식사 전에는 돌아오신다고….”
“그래. 그럼, 방 좀 정리해 줘. 아버지 돌아오시기 전에.”
“하지만….”
걱정하실 텐데….
피를 흘릴 정도면 작은 상처도 아닌데, 정말 알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팔을 다쳤을 때도 다친 사람은 자신인데 펑펑 눈물을 쏟던 아이였다.
그 이전엔 음식에 관해 설명해 주기도 했고.
‘감정이 풍부한 아이구나.’
감정에 무딘 자신과는 참 다른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비치고는 남 일에 관심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뭐 하고 있어? 나 피 나.”
“아앗, 네! 다녀올게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던 시비는 설화가 손을 내보이며 하는 말에 그제야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린 설화는 의자에 앉아 의약당주를 기다렸다.
탁자 위에 준비되어 있는 찻잔이 따뜻했다.
남궁청운이 가주전으로 간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언제 잠들었지?’
나들이에 다녀온 이후 남궁청운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어느 순간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암시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 잠을 설쳐서 그런지 모르겠다.
‘어린아이의 몸… 생각보다 귀찮네.’
“계속 이런 식은 곤란해요, 아가씨.”
설화의 손바닥에 깨끗한 천을 둘둘 감으며 의약당주 초련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가씨 부탁으로 암시에 관한 건 숨겨 드리고 있지만… 이렇게 계속 다치시면 저도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그럼 나도 말하겠지.”
― 혈왕독.
“아가씻!”
파드득 놀란 초련이 불안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낮게 속삭였다.
“그러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래서 전음으로 말했잖아.”
“…그랬나요?”
하도 자연스러워서 깨닫지도 못한 초련이었다.
초련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요 작은 머리통에 무슨 생각이 든 건지 모르겠네요. 길고양이가 아니라 범이라도 되시는 건가요?”
“글쎄. 자라 봐야 알지 않을까?”
고양이 새끼인지, 범의 새끼인지?
빙글 미소 짓는 설화의 표정에 초련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보면 아가씨는 아이가 아닌 것 같다니까요? 제가 어디서 이렇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성격이 아닌데….”
마침 초련의 치료가 끝났다.
“자, 다 됐어요. 상처 벌어지지 않도록 당분간은 조심하시구요.”
“고마워.”
“그보다 정말 언제까지 숨기실 건가요?”
단단하게 묶인 천을 살피던 설화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초련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가주님께 말씀드려 보시는 게 어때요? 가주님이라면… 어쩌면 해결 방법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그렇겠지.”
천룡검황 남궁무천.
‘그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무려 천하 10대 고수다.
이 세상에 몇 없는 화경의 고수이니 방법을 모르더라도 그가 가진 힘으로 암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암시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야.’
남궁으로 돌아오기 전에 정리했어야 하는 혈교와의 질긴 악연이자, 제 손으로 끊어 내야 하는 업보다.
부탁한다면 남궁무천도 들어줄 것을 안다. 하지만, 남궁을 위해 살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혈교와의 연을 끊지 못해 무력하게 휘둘리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내가 해결해야 해.’
“아 참,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한층 심각해진 설화의 표정에 초련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설화는 그제야 상념을 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층 상기된 목소리로 초련이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