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276)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 273화(276/319)
* * *
탓- 타다닷-
지붕을 뛰어넘어 내달리던 설화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어딘가를 응시하던 그녀가 이내 복잡한 골목 뒤편, 사람이 다니지 않는 막다른 곳으로 향했다.
탓-
높은 담과 전각 사이,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곳.
그곳에서 죽립을 눌러쓴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하거라. 경지를 가늠할 수 없는 자다.]이무기가 그녀의 품속으로 모습을 숨기고, 설화는 검을 든 손을 말아쥔 채 그에게 다가갔다.
이무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경지라면, 최소 현경 이상의 고수라는 의미.
설화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당신 누구야.”
죽립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가면 아래 깊은 흉터가 고개를 따라 움직였다.
설화는 그 흉터를 바라보다가 남자와 눈을 마주했다.
“소교주. 아니, 이제는 남궁설화라 해야 하나.”
설화가 저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소교주… 라고…?’
아직 금제가 풀리지 않았을 터인데?
자신을 혈교의 소교주라고 부른다는 것은, 혈교의 존재를 안다는 것이다.
혈교의 존재를 아는 이 중 금제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를 소교주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
이 자는 대체….
설화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당신… 누구냐고.”
반가면 아래 남자의 입매가 비릿하게 휘어졌다.
“글쎄. 말하면 알까?”
“….”
“그리 애쓰지 마라. 넌 나를 만난 적 없으니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러는 당신은 나를 어떻게 아는데?”
남자의 비소가 일순, 사라졌다.
남자가 돌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휙, 던졌다.
“!”
설화가 얼결에 그것을 낚아채듯 받았다.
손가락 두 개 만한 작은 주머니였다.
“너라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테지.”
설화가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내용물은 검붉은색의 가루.
“…!”
가루의 정체를 알아본 설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인혈귀독(千人血鬼毒).’
천 명의 사람을 혈귀로 만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 전역을 순식간에 피바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혈교의 치명적인 독분이었다.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가려졌으니 이제 곧 그 독분이 무한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당신…!”
“내가 벌인 일이 아니다. 혈교 놈들의 소행이지.”
“!”
“무림맹이 저들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어지간히 애가 타는 모양이더군.”
남자가 실소를 흘렸다.
혈교를 비아냥대는 듯한 태도에 설화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혈교 사람이 아니야?’
이 남자는 번번이 자신의 일을 방해했다.
더군다나 혈교의 간자들을 빼돌리는 일을 도와주지 않았던가?
혈교가 아니라면 대체….
“팔에 검은 천을 묶은 이들을 잡아라. 그들이 독분의 운반책이다.”
“나한테 이걸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말했을 텐데. 곧이라고. 나와 입씨름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나?”
설화가 주머니를 꽉, 쥐었다.
궁금한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많지만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말대로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만일 독분이 퍼져 비무대회가 혈극으로 끝난다면, 무림맹을 향한 사람들의 신뢰에 치명적일 터.
혈교가 발호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무림맹이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건 혈교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밖엔 되지 않는다.
설화는 남자를 향한 수많은 의문과 물음을 제쳐두고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설화가 서둘러 자리를 뜨려던 그때.
“남궁설화.”
남자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당신을 다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는 침묵했다.
설화는 그를 짧게 일별하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탓-
* * *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우승자는 설매도라는 별호로 대회에 나온 무명의 도객.
무림맹을 이루는 주요 세력의 제자나 직계가 아닌 독문 도객의 우승에 각 세력의 수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만, 소림사 방장 법공의 말에 의하면 도객은 구양도의 제자라고 하였다.
구양도는 대대로 뛰어난 도객이라 알려졌으니, 다행히 어느 정도 면은 세울 수 있을 터였다.
“허허, 우승을 하였으니 이제 얼굴을 보일 때도 되지 않았소이까?”
“이제 무림맹의 대주로 자리하게 될 터인데, 언제까지 정체를 숨길 것이오?”
누대 위 무림인들은 구양도의 제자라는 그를 보고 싶어 했다.
사람들 역시 결승에 오를 때까지 정체를 꼭꼭 숨겨 온 설매도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단 몇 사람.
설매도가 유강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만 잠자코 침묵할 뿐이었다.
“듣자 하니 흉악한 살인귀라는 오해도 받고 있다지 않소?”
“무림맹 대주가 될 자인데, 오해는 풀어야겠지요.”
술렁임이 점차 커지는 그때.
남궁무천이 손을 들자, 좌중이 일순 조용해졌다.
누군가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남궁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
죽립 아래 유강 역시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잠히 맞물리길 잠시.
“설매도는 죽립을 벗고 모두에게 얼굴을 보이거라.”
남궁무천이 말했다.
유강의 눈빛이 불안감으로 흔들렸다.
이 자리엔 화산파의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옛 사형제들이 전부 자리하고 있다.
화산파를 떠난 뒤 그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화산파의 파문제자.
혹여 문파에서 파문된 이가 정체를 감추고 비무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으나.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무천의 눈빛에서 신뢰와 격려가 묻어 나왔다.
마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유강은 결연한 표정으로 죽립을 쥐곤 천천히 벗었다.
목에 두르고 있던 천을 풀어 죽립과 함께 바닥에 내려놓곤 누대 위 무림인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아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었소? 그 왜, 최연소 매화검수라 불리던 아이 말이오.”
누대 위는 유강을 알아본 이들의 목소리로 술렁였다.
유강은 화산파를 떠나기 전까지 화산파의 천재 검수라 불리던 유망주였다.
화산파와 종종 교류를 나누었던 문파의 수장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저 아이, 파문되지 않았소?”
“파문제자라고?”
술렁임은 점차 거세졌다.
유강이 파문제자라는 말은 어느새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문파에서 쫓겨난 사람이 무림맹 비무대회에 나와도 되나?”
“무림맹 대주가 될 사람을 뽑는 거라면서? 파문된 제자를 무림맹에서 쓰는 건 좀….”
유강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남궁무천이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할 때였다.
“내가 허락하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