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303)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 299화(303/319)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공기가 선선한 이른 시간.
뜨거운 열기 속에 눈을 뜬 아무개는 거칠게 차오르는 숨을 토해 내듯 흘려보냈다.
복부에서 뜨거운 열감과 고통이 느껴졌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고통이었다.
끙.
‘살았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그 끝없이 밀려드는 강시들과 무너지는 절벽의 잔해 속에서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게 낫지.
“…….”
아무개는 고개만 살짝 돌려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문 가까이에 놓인 탁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날이 아직 채 밝지 않은 탓에 사위가 캄캄했는데, 그가 있는 곳은 더 짙은 어둠으로 덧칠해진 기분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의 사자 같아서 아무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날 죽이러 온 것은 아닐 테지?”
“깨어나시자마자 하는 인사치곤 살벌하군요.”
어둠 속에서 그가 일어나 침상 곁으로 다가왔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받으니 그제야 인영의 주인이 명확히 보였다.
“내게 조언을 해 주었던 이가 사도련의 수장이었을 줄이야.”
무영마신을 상징하는 검은 가면 속의 눈동자는 분명 자신이 알던 눈빛이었다.
인피면구를 쓰고 있으나, 감출 수 없는 살아있는 눈빛.
무영마신이 픽, 웃으며 의자를 끌고 와 곁에 앉았다.
그는 평소와 달리 가볍고 수수한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 탓에 품이 큰 장포에 가려져 있던 몸집이 여실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개는 그의 몸집이 생각보다 왜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못 보면 여인의 몸인 줄 알겠군.’
그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집이었다.
“천귀호가 죽었더군요.”
“….”
아무개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는 무언가를 깊이 고심하듯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설화는 그런 아무개를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다소 긴 침묵 끝에 아무개가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절벽이 무너지는 순간에 내게 달려들더군.”
“….”
“정신없는 틈을 타 나를 죽이고 신물을 빼앗으려 하였던 것 같네.”
절벽이 무너지는 순간, 쏟아지는 잔해들을 피해 도망칠 때 아무개의 복부를 날카로운 무언가가 관통했다.
커헉- 소리를 내며 아무개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모두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기에, 후미에 있던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이는 없었다.
아무개는 자신을 공격한 이를 보았다.
천귀호. 개방의 후개였다.
“쓰러진 내 몸을 뒤지더군. 어리석게도 내가 그 자리에 신물을 가지고 나갔을 거라 생각하였던 게지.”
조금만 생각하면 신물을 가지고 나왔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천귀호는 그런 어리석을 우를 범했다.
“사람이 다급하면 눈이 머는 법이지요.”
“그래. 불안해 보였네. 아마도 새외인들과 결탁하려 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겠지.”
천귀호는 개방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화오루와 먼저 손을 잡았고, 화오루와의 결탁을 개방 장로들에게 설득시켰다.
화오루는 정파도, 사파도 아닌 알려지지 않은 새롭고 작은 세력이었으나, 신흥 세력이 중원을 휘어잡지 못하리란 건 없으니 개방은 후개의 뜻에 따라 주었다.
하나, 이번에 골짜기에서 자신들이 결탁하려 한 세력이 새외의 세력이었음이 밝혀졌다.
아무개의 말처럼 아무리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개방이라지만 긍지를 가진 이들이니 새외의 세력을 따르려 하진 않을 터.
천귀호는 이번 일로 자신을 지지하던 장로들의 신임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장로들은 천귀호를 여전히 따랐을 것이네.”
“개방을 새외의 손에 넘기려 하였는데도요?”
“전대 방주의 유지를 이은 아이니까.”
전대 방주는 살해당했다.
그것도 새외인들의 손에.
자신이 아는 개방이라면 갑작스레 떠난 전대 방주를 기리고 그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세워 놓은 후개를 방주로 추대할 가능성이 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지. 오해를 풀었으니 나 역시 신물을 넘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말이야.”
자신에게 신물을 돌려받아 방주의 자리에 오른 후 개방을 위해 힘쓰면 신임은 자연스레 회복될 터인데.
무엇이 그리 불안했던 것인지,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신물을 빼앗으려 했던 것일까.
“내가 그 아이를 절벽으로 몬 것은 아닐까, 죄책감이 드는군.”
“복부를 관통하고도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다니. 존경스럽군요.”
설화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무개의 머리맡에 올려 두었다.
아무개가 이게 무어냐는 눈빛으로 눈동자만 굴려 그것을 보았다.
“천귀호가 화오루에 방주를 죽여 주는 대신 개방의 힘을 넘기겠다, 약속한 증명서입니다.”
죽은 모월의 품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무개를 향한 개방의 오해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걸리던 차에 운 좋게 증명서를 발견하였다.
“…무어라…?”
아무개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방주를 죽여달라고 한 것이 천귀호였다고…?
“춘팔이 그러더군요. 당신과 천귀호가 갑자기 몸싸움을 벌였고, 그 탓에 잔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늦었다고요.”
절벽에서 격전을 벌인 이후, 신물이 없음을 확인한 천귀호는 절망했다.
그리고 죽음이 자신들을 덮쳐오고 있음을 그제야 인지했다.
그 순간, 아무개는 고통을 이기며 일어나 달렸고, 천귀호 역시 달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장로들이 당신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뻗었을 때, 먼저 빠져나간 개방 장로들은 아무개의 손을 붙잡았다.
춘팔은 잔해에 파묻히기 직전 배신감과 절망으로 물드는 천귀호의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고 했다.
“이런 증거물이 없었어도 아마 개방 장로들은 천귀호를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자가 그간 어찌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천귀호는 이미 지도자로서의 신임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 찰나의 순간, 장로들이 망설임 없이 아무개의 손을 붙잡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니.
개방 장로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천귀호는 방주가 될 재목이 아님을.
“…그렇군.”
아무개는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개방은 어찌 되려는가.”
“그건 아무개님이 어찌하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개방은 힘이 없네.”
중원을 관통하는 정보망을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하다.
때문에 정보를 노린 수많은 세력들이 개방도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죽여서라도 정보를 빼앗으려 들곤 했다.
“거지들의 목숨은 목숨도 아니라는 거지.”
개같은 놈들.
분노가 차오르는지, 아무개가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저와 손을 잡으시지요.”
아무개가 눈썹을 휘었다.
“사도련의 밑으로 들어가라는 것인가? 하나, 그쪽엔 이미 훌륭한 정보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하오문을 거느리고 있으니 개방까지 필요 없지 않은가.
물론 하오문에 개방을 더하면 중원 전역을 손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역할이 겹치는 세력은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하오문이 자리 잡은 곳에 셋방살이 하고 싶지는 않군.”
분명 뒷전이 될 테니까.
“사도련이 아닙니다.”
아무개가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휘었다.
잠시 침묵하던 설화는 이내 천천히 무영마신의 가면을 벗고 목소리를 바꾸었던 점혈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