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312)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 308화(312/319)
2부 9장. 붉은 혈기로 뒤덮인 눈은 이내 녹아버리고
* * *
무당산의 소란이 정리되고, 유강은 당호진과 금련비가 있는 석가장으로 돌아갔다.
남궁무천에게 근신령을 받은 설화는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로 향했다.
다만, 근신을 받기 전 사도련의 일을 정리해야 했기에 본가에 돌아가기 앞서 그녀가 먼저 향한 곳은 사도련의 본거지가 위치한 호남성 장사였다.
“련주님께서 드십니다!”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거의 반년 만에 돌아온 사도련.
중원 곳곳에 산개한 지부를 통해 사도련의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남궁세가로 돌아간 이후 본거지에 들른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사도련주님 만세!”
“무영마신 만세!”
“사도련 만세!!”
사도련의 본거지는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였다.
중원의 흑도 세력들의 힘을 사도련이라는 이름 하에 한데 모은 데에 이어 수로채와 녹림까지 산하로 복속시켰으니.
사도련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가질 수 있는 우월감과 그 엄청난 일을 이룬 사도련주를 향한 일원들의 존경심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련주님께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연회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막 자리에 앉는 설화를 향해 하오문주가 말했다.
무영마신의 가면 아래 설화의 눈썹이 설핏 휘었다.
“연회?”
“예. 수로채에 이어 녹림투왕 마저 련주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그것을 축하하기 위함이랄까요.”
하오문주가 후후, 웃음을 흘렸다.
그저 부드러워 보이는 그 미소 뒤엔 사도련주의 정체를 아는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짓궂음이 섞여 있었다.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는 건가?”
“모처럼이 아닙니까. 수장들도 전부 모이기로 하였고, 고작 하룻밤의 흥취일 뿐이니 동참해 주시지요.”
사도련의 모두가 참석하는 이런 커다란 연회를 준비해 놓고 동참해 달라니.
무당파의 일이 정리된 후 모두가 본거지에 모여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분간 연락이 어렵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온 것뿐인데.
곤란한 상황에 고민하고 있는데, 하오문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 근신을 받으셨다, 들었습니다.
설화가 하오문주를 바라보았다.
– 근신에 들어가시기 전에 사도련에 새로이 들어온 이들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잠시 고민하던 설화는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주의 말대로 짧은 시간 동안 수로채와 녹림, 이 거대한 두 세력이 사도련에 복속되었다.
사도련의 주축을 이루던 흑도 세력 수장들은 그들의 합류가 기쁘겠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할 터.
한 번쯤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래. 참석하지.”
하오문주의 입꼬리가 빙긋 휘어졌다.
그녀의 미소가 어쩐지 조금 신나 보였다.
“쉬고 계시지요. 모시러 오겠습니다.”
하오문주는 방을 나섰고, 이내 방 밖에서 ‘련주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라는 외침과 ‘와아아아!!’하는 환호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면 아래 설화의 입매엔 어느새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 * *
그날 밤, 예고한 대로 사도련이 결성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연회가 열렸다.
연회를 꽤 오랫동안 본격적으로 계획한 것인지, 먼 지역의 수장들도 참석하여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성대한 연회장의 가장 상석에 앉아, 설화는 연회를 즐기는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전 생에선 혈교 아래로 들어가 피를 탐하며 살아가던 이들, 지금쯤 이미 목숨을 잃고 세상에 없었을 이들.
그런 이들이 사도련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모여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남궁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 어느새 수많은 이들을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새삼 와 닿았다.
“당신 덕분에 옛 사부님과 재회할 수 있었소.”
술병을 들고 설화에게 다가온 이는 녹림투왕이었다.
그는 소림사의 정체성을 저버리지 못하고 홀로 암자에 은거하던 때와는 다르게 흑도들 사이에서 꽤나 호탕하게 어울리는 중이었다.
“내 술 한잔 올리겠소.”
“기꺼이.”
설화는 녹림투왕의 잔을 받았다.
“그대가 와 준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녹림투왕이 픽, 웃음을 흘렸다.
“글쎄. 방해가 되지 않았다면 다행이로군.”
백여 명의 녹림도들을 끌고 와 강시의 수를 늘린 것에 대한 말이었다.
“천만에. 그대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하지 않았나.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술을 따르던 녹림투왕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미처 다 채워지지 않은 술잔에 설화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녹림투왕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은….”
“?”
“가끔 보면 정파의 사람 같을 때가 있단 말이오.”
가면 아래 설화의 눈이 깜박였다.
정파의 사람….
“하하하….”
설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에겐 흑도 같고, 누군가에겐 백도 같은 사람이라.
꽤나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은가.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당신도 알다시피 나로선 욕이 아니오.”
“그래. 술은 달게 받겠다.”
녹림투왕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음으로 찾아온 사람은 놀랍게도 수로채주 맹등호였다.
“한 잔 드려도 되겠소?”
맹등호가 먼저 다가올 줄은 몰랐던 설화는 잠시간 침묵하다가 잔을 내밀었다.
맹등호가 그런 그녀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내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있소.”
“….”
그러고 보니 소약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건강을 되찾다 못해 불괴천강지체가 되어버린 소약이 지칠 줄 모르고 수련에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무공 수련에 힘써 남궁세가 무력대주가 되겠다던가.
‘그런 자식을 눈에 넣으면 꽤 아플 텐데.’
소약이는 꽤 컸으니까. 꽤 많이.
‘그나저나….’
소약이 이야기를 먼저 꺼낼 줄은 몰랐는데.
맹등호는 수로채에 협력하고 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남궁세가의 간자다.
그의 보고는 여전히 꾸준하게 전해지고 있고, 그런 입장에선 여기서 자신의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난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몸이오.”
“…그렇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을 썩 좋게 생각하오.”
“….”
설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던가.
사도련과 사도련주에 대한 맹등호의 보고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던 것이.
처음의 보고는 그저 덤덤하게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것에 불과했다면, 근래의 보고는 사도련을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었다.
마치 사도련이 결코 나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기라도 하고 싶은 듯이.
“하….”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 맹등호가.
남궁설화가 아닌 사도련주를 이렇게까지 믿어줄 줄은 몰랐으니까.
“…영광이군. 기쁘게 받겠다.”
맹등호는 짧게 고개를 까딱인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다른 이들과 크게 말을 섞지 않는 듯 보였으나 그렇다고 분위기에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하들의 모습에 웃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하오문주와 총군사, 책사 옥면선생 그리고 흑도의 수장들이 차례로 다녀가고.
마침내 그들이 올라왔다.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설화는 저절로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