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40)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40화(40/319)
‘갔네.’
은월이 떠난 후, 설화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은월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자신을 기절시켜 화오루로 데려가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월은 돌아갔다.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살펴도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간 것이다.
죽이지도, 데려가지도 않는 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어디 한번 마음껏 날뛰어 보라는 것과 언제든 자신을 데려갈 자신이 있다는 것.
‘어쨌든 다행이야.’
어떤 의도이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유예’이니까.
그 기간이 짧든, 길든, 그를 대적하기 위해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 두 가지를 확실히 알았다.
혈마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지금 당장은 안전하다는 것.
그 생각에 안심하는 것과 동시에 돌연 눈앞이 흐릿해졌다.
“…?”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설화는 곁에 있는 나무를 짚고 섰다.
수면탄의 효과가 퍼지는 모양이었다.
그것 외에도 파월에게 입은 상처에서 피가 멎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몸의 긴장이 풀어지니 자연스레 수면탄과 스며든 혈기의 영향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안 돼.’
어쩌면 가문에선 이미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자신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더 걱정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해 뜨기 전까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간이었다.
설화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얼마나 흘렀을까.
터벅, 터벅 걷는 그녀의 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남궁무천의 기감을 피해 너무 멀리까지 나온 것이 문제였다.
어린아이의 몸은 생각보다도 연약했고, 이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설화는 고개를 돌려 산등성이 아래에 펼쳐진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도심의 빛들이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조금 전부터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거워서 자꾸만 내려앉고 있었다.
‘…졸리다.’
너무 졸려.
“어라?”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앞에서 다소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화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흐릿한 시야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화….’
….
….
…화산…?
설화가 풀썩, 쓰러졌다.
“어어어어?”
누군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그것이 그녀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 * *
사람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다.
어린 자식들을 빼앗기고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
‘죽여라.’
사형 선고와 같은 목소리가 짓누른다.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숨이 점점 더 가빠진다.
사람들의 시선 속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두려움과 동시에 작은 희망.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러나 그 기대감은 한순간에 짓밟힌다.
촤악―
검붉은 선혈이 튀어온다.
비릿한 혈향에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조금 전만 해도 생의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어느새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가 칼날처럼 귓가에 스며든다.
‘망설이지 마라. 저들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마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후환을 남기지 마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네가 죽는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제게 사람을 죽이라 명하고 그들을 제 손으로 죽인 스승이 떠난다.
멀어지는 발걸음엔 조금의 죄책감도 없다.
남은 건 그저 붉은 혈도(血道)뿐이다.
* * *
눈을 떴다.
동이 터오는 어슴푸레한 하늘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설화는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들을 곱씹었다.
왜 밖인가.
왜 쓰러져 있는가.
‘십이 월과 이 월을 만났지.’
십이 월이 죽고 이 월은 떠났다.
그리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밤의 일을 떠올린 설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
팔과 다리가 무언가로 꽁꽁 묶여 있어 완전히 일어날 수 없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의 몸 위에 덮여 있던 무언가가 스르륵 떨어졌다.
‘무복?’
매화 문양이 그려진 무복이었다.
“일어났어?”
목소리는 옆에서 들려왔다.
몸을 비틀어 돌아보니 남자아이 하나가 평상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열다섯 정도 되었을까.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은 질끈 올려 묶었고, 검은 눈동자 역시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피부는 매끄럽고 이목구비가 정갈한 것이 딱 봐도 그런 상이었다.
약한 주제에 의협심은 강해서 정면으로 들이받다가 일찍 죽을 상.
“잘 자더라. 춥진 않고?”
“…괜찮아.”
“날이 따뜻해서 다행이지 입 돌아갈 뻔했어. 다음부턴 아무 데서나 막 잠들고 그러지 마.”
남자아이가 히― 웃었다.
티 없이 해맑은 웃음엔 조금의 적의도 없었다.
누가 보면 오랜 친구인 줄 알겠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스승이 보냈어?”
남자아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음….”
깊이 고심하던 그가 다시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스승님은 나 여기 있는 줄 모르시는데? 아, 근데 이제 아실지도 모르겠다….”
그가 기죽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젯밤엔 절대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몰래 나온 거거든.”
“….”
“따악 한 시진만 놀고 들어가려고 했어. 너만 아니었으면.”
설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이거나 풀어.”
“안 되지.”
아이가 설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지금 되게 위험해 보여.”
“….”
“얼굴에 살. 수. 라고 쓰여 있는데, 풀어 줬다가 누굴 죽일 줄 알고?”
“그런 거 아니니까 풀어.”
“살수가 아닌데 몸에 피를 잔뜩 묻히고 살기를 잔뜩 풍기면서 야산에서 쓰러지기도 하는구나.”
“그러면 안 돼?”
“응. 안 돼.”
생글생글 웃는 낯이 재수 없었다.
설화는 처음으로 적의 없는 상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