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55)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55화(55/319)
“마물을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검을 세운 채로 설화가 물었다.
“원숭이들이 어째서 마물이 되었는지, 알고 계셨잖아요.”
“…네가 말해 주었지.”
“어떠셨어요? 그 마물들을 죽이면서요.”
청운은 답할 수 없었다.
마물을 벨 때의 감각만이 손끝에 저릿하게 저며 올 뿐이었다.
“그 마물 중에는 눈앞에서 자식의 뇌가 파먹히는 걸 지켜본 원숭이도 있었을 거예요.”
인간에게는 신선함을 알리는 방울 소리는, 그것을 지켜보는 어미 원숭이에겐 자식의 마지막 생을 알리는 소리다.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마침내 멎었을 때, 어미 원숭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버지가 저를 잃었을 때 그러했겠죠.”
아이의 울음이 거센 물살에 삼켜질 때.
온 감각이 곤두선 채 추락하는 아이의 울음을 듣고 있던 그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힘이 없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비통하고 원통한 건 결국, 약함의 방증일 뿐이죠.”
약하기에 비통하고, 약하기에 원통한 것이다.
힘이 있다면 반격하고 복수하겠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으니, 그저 비통함을 키우고 원통함을 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 생의 혈교인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도 억울함에 맞설 힘이 없어서, 원통함을 풀 기회가 없어서, 그들은 항상 분에 차 있었다.
분(忿)은 혈(血)이 되어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또 다른 억울함과 원망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굴레였다. 누구 하나 끊어 내지 못해 점차 질겨지고 억세질 뿐인 굴레.
“…설화야….”
청운의 시선에 설화는 외로워 보였다. 홀로 선 아이의 외로움이 너무나도 짙어서, 가슴이 욱신거렸다.
청운이 설화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설화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
카앙―!
남궁청운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칼날을 막았다.
정확하게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온 일격.
막지 않았다면 단칼에 베였을 것이 분명한 일격이었다.
“설….”
카캉!
“화야…!”
청운이 숨을 짧게 들이켰다.
카앙! 캉! 카앙―!
아이의 검은 멈추지 않고 연신 청운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왔다. 청운은 뒤로 물러나면서 아이의 검을 막아 냈다.
검을 받아 내면서, 청운은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검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지독한 비통함과 원통함이 아이가 휘두르는 검에서 느껴졌다.
마치 왜 자신을 잃어버렸느냐고, 왜 자신을 붙잡지 못 했느냐고, 왜 자신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그 원망을 토해 내듯.
카앙―!
“크윽….”
아이가 검을 토해 냈다.
부딪치는 검격 속에 불꽃이 튀었고, 그 불꽃 속에서 청운은 한 사람을 보았다.
캉!
그것은 추락하는 한 떨기 연꽃이었으며―.
아비를 부르짖는 백설이었으며―.
카앙―!
낭떠러지 끝에 꿇어앉아 비참함에 몸부림치던 자신이었다.
“아버지.”
설화의 검은 열셋의 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전 아버지가 가주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원이 실린 만큼.
“기왕이면 힘을 가진 가주가요.”
무겁고, 무거운 검이었다.
청운이 으득, 이를 다물며 검을 다잡았다.
카앙―!
아이의 일격을 힘을 주어 내쳤다.
설화가 원통함을 쏟아 냈다면, 청운은 비통함을 토해 냈다.
“나는 너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이미 족하다. 설화 네가 살아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하단 말이다. 그것으론 안 되겠느냐? 굳이 위험한 자리로 아득바득 올라가야겠느냐?”
카가가각….
검이 맞물렸고, 원이 맞물렸다.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안 되느냐고?
‘당연히.’
이전 생에 남궁의 가주는 남궁청산이었다.
남궁청산은 남궁을 이끌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 또한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청산이 지키지 못한 남궁이 무너져 가는 동안 청운은 딸을 찾기 위해 강호를 떠돌았다.
그리고 딸의 손에 죽었다.
그 얼마나 허망한 죽음이던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느냐? 가주가 되면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더냐? 대체 무엇을 위해 그 자리를 탐하여야 하느냐?”
“허무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요?”
허무하게 쓰러져 간 남궁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허무하게 던져진 당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난 다른 무언가를 지키다 가족을 잃는 비참함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가주가 되면 모두를 지켜야 하겠지. 하나, 나는 너만 지키면 된다. 너만, 내 딸만 지킬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아이가 검을 휘둘렀다. 구름이 물러가고 기운이 요동쳤다.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제비처럼, 아이의 검이,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이 하늘을 휘감았다.
남궁의 검법.
창궁비연검(蒼穹飛燕劍).
제1식 천공연무(天空演舞).
하늘에서 춤을 추듯 유려하게 쏟아지는 검을 보며 청운은 땅을 디딘 하체에 힘을 실었다.
카아앙―!
온 힘을 쏟아부어 아이의 검을 받았다. 아이의 원을 받았다.
쿠우우웅―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봉우리를 무너트릴 기세로 맞붙었다.
“전 필요해요.”
그 거센 기세 속에서 흘러나온 설화의 차가운 목소리가 청운의 비통함을 베었다.
“힘이 필요해요. 가문이 필요해요. 저를 지켜 줄 울타리가 필요해요.”
누군가는 생사도 모르는 딸을 찾겠다고 헌신한 그 삶이 어리석다 할 것이다.
결국에는 딸의 손에 죽임당한 생의 끝이 한심하다 할 것이다.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포기하였다 할 것이다.
하지만, 설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부모가, 어느 미물이. 제 자식이 골이 파여 죽어 가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추락하며 자신을 부르짖는 제 자식의 울음을 듣고도 다른 어떤 것을 우선할 수 있겠는가.
“권력을 손에 쥐어 주세요. 힘을 가져 주세요. 남궁을 다스려 주세요. 그것으로….”
한낱 미물조차 원(怨)을 쌓는데.
인간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저를 지켜 주세요.”
다만, 이번 생엔 당신의 헌신을 헛되이 만들지 않겠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던 당신의 삶이 허무한 죽음으로 끝나게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