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74)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74화(74/319)
“아닙니다.”
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 아가씨의 검을 본 순간부터 아가씨께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전의 아가씨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강직하고 흔들림 없었다.
강렬한 눈빛에선 그 말이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라는 것을 강하게 전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설화는 조금 궁금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고작 검 한번 보여 줬다고, 목숨을 바칠 것처럼 구는 게 가능한 것인가.
‘중요한 순간엔 돌아서겠지.’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엔, 등 돌리겠지. 그게 인간인걸.
설화는 본래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이전 생에 혈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고마워. 믿어 줘서.”
그 말을 하는 설화의 눈빛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령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쩐지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아가씨, 저는….”
“이만 갈까?”
그러나 위로는 필요 없다는 듯이 설화는 발걸음을 돌렸다.
령은 타박타박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간 보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세가로 돌아갔다.
어느새 해는 지고 달빛 하나 들지 않은 어둑한 하늘만이 가득한 밤이었다.
* * *
같은 시각.
어둠이 내려앉은 화산의 연화봉 정상.
그 어둠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어두운 옷과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이는 바로 화산의 일대제자 유강이었다.
“후… 후우….”
유강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겼다.
밤이라지만 이곳은 화산.
검 하나로 중원 전체에 이름 날리는 고수들이 즐비한 대검문이다.
조금만 실수하면 장로들의 기민한 감각에 들킬 터였다.
기운을 움직여 제 기척을 최대한으로 줄이며 유강은 남궁 소저가 말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금천궁의 뒤편, 유강이 자주 숨어들던 샛길의 나무를 지나쳐 장로들이 향하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나오는 것은 알고 있는 대로 외진 측간뿐이었다.
유강은 기감을 끌어올려 눈을 밝게 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최대한 끌어모아 측간 주변의 발자국을 훑었다.
‘뒤쪽.’
몇몇 개의 발자국이 측간의 뒤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유강은 그 발자국을 따라 나아갔다.
측간 뒤편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화산은 산새가 거칠기로 유명한 산. 거기다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금천궁의 뒤편이니 당연히 낭떠러지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뒤편을 제 눈으로 확인한 유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절벽 아래,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전각 하나가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아이의 말이 사실이다.
그 순간, 남궁 소저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장문인의 상태와 화산의 위기에 대해 논하였던 아이.
화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임에도 누구보다 화산을 꿰뚫어 보고 있는 아이.
“….”
절벽엔 전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낭떠러지의 석벽을 부숴 계단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질 테지만, 유강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확인해야 해.’
그 아이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마침내 유강은 전각의 문 앞에 도착했다.
전각 안에는 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유강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 외진 곳에 전각이 있는 것도, 그 전각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유강이 전각의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붙든 순간이었다.
“노백, 자네인가?”
“…!”
들려왔다. 2년간 폐관수련에 들어가 뵙지 못하였던 장문인의 목소리가.
“이 밤중엔 무슨 일인가?”
오랫동안 듣지 못하였기에 생소하고, 생소하기에 명료해진다.
이 문 너머에 장문인이 계시다.
유강은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놓고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장문인, 제자 유강입니다.”
“….”
문 너머에서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은 놀라움이자 인정이었다.
“그래, 유강이구나.”
장문인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이제는 정말 부인할 수 없어졌다. 장문인은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들어오겠느냐.”
“예.”
유강은 주위를 짧게 훑은 후 방 안으로 들어섰다.
“…!”
방 안에 들어선 순간, 유강의 움직임이 설핏, 멈추었다.
방 안은 향을 피우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향 너머로 나는 냄새였다.
살이 썩어들어 가는 퀴퀴한 냄새.
그것을 감추기 위해 피워 놓은 향의 냄새와 섞여 참을 수 없는 악취가 가득했다.
그러나 유강은 불쾌한 기색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으며 방문을 닫았다.
장문인은 창가 쪽 길게 늘어진 가렴(葭簾) 뒤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유강아.”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장문인.”
“못 본 새 더 큰 것 같구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
장문인의 목소리는 2년 전 유강이 기억하는 것과 같이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마치 유리 탁자 위를 굴러가는 옥구슬의 소리 같았다.
“이곳은 어찌하다 오게 된 것이냐.”
“우연이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네 옷차림이 그러하다 말해 주고 있구나.”
유강의 옷차림은 누가 보아도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아낸 것이더냐?”
“들었고, 들었기에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누가 네게 말해 주었더냐?”
“남궁세가의 소저입니다.”
장문인은 다시금 침묵했다.
이곳까지 찾아온 이상 화산의 장로 중 하나가 유강에게 언질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의 스승인 노문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남궁의… 아이가…?”
“그리고 남궁 소저가 장문인께 이 쪽지를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