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90)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90화(90/319)
* * *
청해는 앉은 자리에서 동이 떠오르는 아침을 맞았다.
술과 시끄러운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청해는 천무제 후 연회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본래라면 가문의 대행사이니 되도록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 테지만, 어제 연회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다.
어제 연회의 주인공은 형님, 청운. 아니, 형님의 딸인 설화였다.
청해는 이번 천무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왔다.
소가주 자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지금, 가문의 모든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렇기에 최선을 다했으나 자신은 패배했다. 자신은 가문의 ‘평화’를 보여주었지만, 형님은 가문의 ‘영광’을 보여주었으니.
아무리 일선에서 물러났다곤 해도 가문의 어른들은 모두 무인이다. 응당 무인이라면, 평화보단 영광에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청해는 그 결과에 승복했다. 형님인 청운이 초절정의 고수에 올랐다는 것은 동생으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하하 호호 웃으며 연회장에 앉아있을 정도의 대인배는 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한 만큼, 아쉬움이 컸으니까.
톡. 톡.
청해는 책상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작은 함을 바라보았다.
지난밤, 자신을 찾아온 아이의 말을 떠올렸다.
* * *
“설화 네가 여긴 어쩐 일이더냐?”
집무실로 돌아와 책상 곁을 서성이던 청해는 아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숙부님. 전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렸어요.”
“형님은,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아버지는 아직 연회장에 계세요.”
“하면, 너 혼자 온 것이냐?”
“네. 숙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 밤에 어린 조카가 홀로 찾아와서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청해는 설화를 안으로 들였다.
“우선 들어오거라. 차라도 내어주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차는 괜찮아요. 금방 갈 거라서요.”
“…그래. 앉거라.”
청해는 차 대신 물을 따라 아이의 앞에 내어주었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할 말이 무어냐? 굳이 이 밤에 찾아온 것을 보면 급한 것인 모양이구나.”
설화는 미소 지으며 청해의 앞에 작은 함을 내려놓았다.
“이게 무어냐?”
“환약이에요.”
“환약?”
청해가 함을 받아 뚜껑을 열자, 약재 향이 훅, 풍겨 나왔다.
함에 든 것은 설화의 말대로 약지 손톱만 한 작은 크기의 환약들이었다.
“환약이구나. 무슨 약이더냐?”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멍할 때 드세요. 이 환약이 숙부의 증세를 낫게 해줄 거예요.”
“피로를 풀어주는 약이로구나. 고맙다.”
“숙부께선 이번 일의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
함을 닫아 품에 넣으려던 청해의 손이 멈칫했다.
청해가 함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말이더냐?”
“무력단의 일이요. 적룡대주가 그 모든 일을 꾸몄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으시잖아요?”
“흠…. 내가 적룡대주에게 그 일들을 시켰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아뇨.”
설화가 청해를 꼿꼿이 마주했다.
“숙부님이 아니라, 숙모님이요.”
“!”
청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굳은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던 설화는 청해가 도로 내려놓은 함을 가리켰다.
“그 환약은 해독제예요.”
“!”
“조금 전 말한 증세는 중독 증세이고요.”
“…뭐?”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 그런 증세가 나타나면 그 환약을 드세요. 서서히 중독되신 것일 테니 증세가 나타나면 이미 꽤 많은 양의 독을 드신 걸 거예요. 하지만 그 해독환이면 충분히….”
“잠시….”
“이상한 것은 섞지 않았어요. 믿을만한 의원에게 해독환을 확인하셔도 좋아요.”
“잠시,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다오….”
청해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함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이 복잡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숙모가, 나를… 독살하려 한다는 것이냐?”
“네.”
이전 생에도 당신은 그렇게 죽었으니까.
딸을 찾기 위해 가주의 자리를 포기한 청운과 부인에게 독살당해 단명한 청해.
그것이 이전 생에 셋째 청산이 남궁의 가주였던 이유다.
“말도 안 된다. 부인이 나를 왜?”
“질문이 그게 먼저가 아닐 텐데요.”
“뭐…?”
“왜 이번 일의 배후가 숙모님이라는 말엔 이유를 묻지 않으세요?”
“!”
“숙부님께선 알고 계셨던 거죠? 적룡대주를 시켜 검대를 휘두르려 했던 사람이, 숙모님이시라는 거요.”
남궁청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긍정을 대신했다.
“숙모님은 남궁을 손에 쥐고 싶어 하세요. 검대를 휘두르려 하신 것처럼, 남궁을 휘두르고 싶어 하시죠. 그것 때문에 숙부님과의 혼인을 선택했을 거고요.”
연소란은 거대 상단의 딸이다.
남궁청해와 연소란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 서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위해 혼인을 선택했다.
두 사람이 원한 정략결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숙부님께서 가주가 되지 못할 것 같아지면 어떨까요?”
“…나를 죽여서라도 가문에 빚을 지우겠지. 그래야 소룡이를 가주의 자리에 올릴 때 유리할 테니.”
정확하다.
몇 마디의 정황만 말해주었을 뿐인데도, 남궁청해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전 생에 남궁청해의 죽음을 조사해 놓길 잘했어.’
본래는 남궁청해가 긴 행선을 떠날 때 습격할 셈이었지만, 황당하게도 남궁청해는 행선 중 사망했다.
그 이유를 추적하다 보니 연소란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이런 것들을… 너는 대체 어찌 알고 있는 것이냐.”
“이전에 몸담고 있던 곳이, 정보 수집에 능해서요.”
“…그렇구나.”
주루에 몸을 담고 있었다 하였으니, 아마 하오문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굳이 정확히 해줄 필요는 없었다.
“저는 이번 일의 배후가 숙모님이시라는 걸 밝히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째서냐?”
“숙부님께서 그것을 원하실 테니까요.”
남궁청해는 알고 있음에도 연소란의 일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그것은 연소란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일의 배후가 그녀임이 밝혀지면, 청해의 평판이 깎이고 소가주의 자리에서 한 걸음 멀어지게 될 테니까.
“저는 숙부님께서 정정당당하게 저희 아버지와 겨루어 주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