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9)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9화(9/319)
불타오르는 남궁세가의 가주전 앞.
혈도가 막힌 채 무릎 꿇린 남궁문은 팔 하나가 잘려 나갔음에도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내 사지가 찢겨 나가도 남궁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날 죽이거라! 지옥에 가서라도 복수할 터이니!’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그것은 남궁을 불태우는 불길이기도, 일화를 향한 복수의 칼날이기도 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일화는 남궁문의 마지막 발악이 참으로 부질없는 소모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불타고,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럼에도 끝까지 복수의 불길을 태우다니.
그날, 일화는 남궁문의 사지를 베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남궁의 비급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일화를 향한 살기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혈이 막히고 사지가 잘려 나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온몸의 피를 철철 흘리며 말라 죽어 가는 그 순간까지도.
“….”
일화가 눈을 떴다.
끝까지 자신을 노려보는 남궁문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단칼에 목을 떨어트린 외당주 남궁염 역시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부릅뜬 눈동자에는 적을 향한 분노와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궁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욱신거리고 돌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일까?
그들을 마주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기 때문에?
일화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린아이로 돌아온 것이 실감 나지 않을 때마다 몇 번이고 손을 보던 것이 어느새 그녀의 습관이 되었다.
작은 손을 보면 이전 생의 일들이 오히려 전부 꿈같이 느껴져서 생긴 습관.
검 한 자루 쥐기에도 약해 보이는 손을 쥐락펴락하며 일화는 속으로 되뇌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스스로를 위한 주문처럼 나직이 읊조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 * *
침대에 누워 휴식하기를 잠시, 이내 시비들이 식사 시간을 알려 왔다.
차려진 점심 식사는 하나같이 고급 음식들이었다.
양고기가 들어간 탕 요리와 오리고기를 양념하여 견과류와 함께 볶은 요리 등….
일화가 이전 생에선 보지 못했던 귀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식탁 위를 살펴보던 일화가 한 요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지?’
넓적한 그릇 위에 기다랗고 푸른 잎으로 촘촘하게 둘러싸인 그것은 속이 보이지 않아 어떤 요리인지 알 수 없었다.
잎을 벗겨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정성스럽게 싸여 있어 막상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일화가 젓가락을 들어 풀잎을 쿡쿡 찌르고 있으려니, 요리를 나르던 어린 시비 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멈춰 섰다.
일화의 행동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어린 시비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잠시 도와 드려도 될까요?”
일화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젓가락을 집었다.
시비는 거침없이 요리를 둘러싼 잎들을 걷어 냈다.
“이 요리는 각종 해산물을 한데 삶은 요리예요. 데친 대나무 싹과 함께 드시면 아주 맛있답니다.”
“왜 풀잎 같은 걸로 싸여 있는 거야?”
“이건 대나무 잎이에요. 대나무의 향이 요리에 배도록 하고 요리의 풍미를 지켜 준답니다.”
“그렇구나.”
맛있겠다.
어쩐지 시원한 맛이 날 것 같네.
대나무 잎을 벗겨 내자 풍겨 나오는 요리의 향이 군침을 돌게 했다.
“남궁에선 천객원의 귀빈들껜 매 끼니 최고의 식사를 준비해 드리고 있답니다. 다른 객원보다도 천객원의 귀빈을 더욱 우선시하여서….”
“으응.”
시비의 말이 이어져도 일화의 시선은 이미 요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린 시비가 저도 모르게 쿡쿡, 웃음을 흘렸다.
“…?”
“아앗, 죄송합니다!”
어린 시비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귀빈께서 너무 귀, 귀여우셔서 그만…!”
일화의 눈썹이 비뚜름히 휘었다.
귀엽다고? 내가?
살수인 자신에게 귀엽다는 말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을까?
‘그것도 남궁가의 시비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
무엇을 보고 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당한 변명이었다.
“괜찮아. 이만 나가 봐.”
어린 시비는 꾸벅 인사한 뒤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일화는 개의치 않고 식사를 이어갔다.
남궁의 음식들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 * *
거나하게 식사를 마치자, 시비들은 또다시 순식간에 그릇과 음식들을 치워 갔다.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고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것이, 시비들 역시 무공을 익힌 것 같았다.
모두가 나간 후, 일화는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운기했다.
동굴에 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정순한 내공은 운기할수록 혈도가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이 폭발적으로 솟구치고, 피 냄새를 맡고 싶어 날뛰던 혈공의 내공과는 결이 달랐다.
내공의 양이 쉽게 늘지는 않아도 통제하기 쉬우니 활용도가 다를 터였다.
‘지금은 고작 이류의 단계인가.’
이전 생에서 죽기 직전 일화의 무위는 화경의 경지였다.
지금의 남궁무천 정도의 경지.
아니, 어쩌면 남궁무천보다도 내공의 양은 많았을지도 모른다.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내공이어서 그리 강하진 못했지만.’
하지만, 정복해 본 이와 해 보지 못한 이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는 법.
물론 이번엔 정도를 따르기로 작정했으니 생각보다 느리게 오를 수밖에 없을 테지만, 죽었다 살아났다고 깨달음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전 생보다는 빠르게 화경에 이를 수 있을 거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해.
옳은 길을 따라, 빠르게.
“….”
자연스레 내공을 운기하던 일화는 어느 순간 운기를 멈추었다.
그녀의 단전으로 모여들던 내공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채 연기처럼 흩어졌다.
‘내공이 늘어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아직, 남궁의 내공심법을 배우지 못했다.
남궁의 내공심법 정도야 이미 알고 있지만,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은 심법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
‘적어도 오늘 천호전에서 만난 세 사람은 내공이 늘어나면 이상함을 알아차릴 테니까.’
아무리 초조하고 급하다 하더라도 신뢰를 얻기도 전에 깨트릴 수는 없다.
정식으로 배우기 전까진 남궁의 무공을 익힌 것을 숨겨야 한다.
‘그래도 수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