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원정대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사막 보스를 처리한 덕에 원정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막 보스의 시체는 바란 제국에서 제일 많은 지분을 가져갔는데, 그 이유가 스칼렛이 흑마법사를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스칼렛은 처음에 렌이 잡아낸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검해본 결과 곳곳에 흑마법의 흔적이 묻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에 난 검상을 생각했을 때, 이미 다 죽어가는 묵빛 지렁이를 렌이 마무리한 것이라는 게 부검 결과였고, 렌 또한 그 사실을 인정했기에 사체의 소유권은 바란에게로 간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맘에 안 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니! 우리 렌이 한 게 없다니?”
“렌이 붉은 달 묘지도 찾고! 흑마법사도오오옵!”
“야야야! 누가 듣겠어!”
루이즈의 기사들은 이번 원정대의 배분 결과를 듣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사막 한쪽에서 검술 훈련을 하고 있었다.
쉬는 도중에 열 받은 기사 하나가 소리쳤지만 칼리드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누가 듣는다고? 아무도 없구만.”
“없기는, 그때도 흑마법사들이 어딘가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는데.”
“하긴, 그때 생각해보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니까.”
그들이 그 당시를 떠올리며 양팔을 쓸었다.
“사실 이번에 제일 공이 큰 거로 치면 렌 아닌가? 렌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그래도 뭐 어쩌겠어. 렌이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싶어 하는데.”
“왕자님께서도 그리 말하셨으니 우리는 경거망동하면 안 되지.”
“그나저나 브릴런트의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알기나 할까? 데케인의 묘지기가 사실은 엄청나게 강한 검사라는 걸.”
“기회가 된다면 나도 렌과 검이나 한번 맞대어보고 싶군.”
“너 같은 놈이랑 렌이 붙어주겠냐?”
“하! 너보다는 내가 낫지.”
“웃기네! 너보다는 내가-.”
“여기서들 뭐 하나?”
모닥불 피고 가운데 둘러앉은 기사들에게 루이즈가 다가가 물었다.
“왕자님! 언제 오셨습니까?”
“날씨가 춥습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마음에 여유가 넘치나 보군.”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루이즈의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본 그들이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빠르게 일렬로 도열했다.
“몸이 편하니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니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기사들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곧장 눈치채고는 고개를 숙였다.
칼리드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의 기사가 한 명을 힐끔 노려보았다.
“어딜 보는 거야!”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다고 방심하지 마라. 내가 렌에게 내 명예를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 약속했다. 근데 너희가 내 명예를 더럽힐 셈인가?”
“죄송합니다!”
“이번에 우리 모두 도움만 받았지 도움은 전혀 주지 못했다. 알고 있나!”
“예!”
“그런데도 여기서 시시덕거리고 있어?”
여태 훈련하다가 잠깐 쉬고 있는 것이었다.
꼭 열심히 하다 잠깐 쉴 때 상관이 그걸 발견하곤 한다.
기사들은 내심 억울했지만 그것을 표출할 순 없었다.
“죄송합니다! 당장 훈련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나와 특훈이다. 당분간 훈련 외에 아무것도 못 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예!”
그날 루이즈와 기사들은 싸늘한 사막의 공기를 마시며 몸에 땀이 나도록 굴러야만 했다.
* * *
“후우……, 그래도 잘 마무리된 건가?”
나는 바란 제국의 기사들과 신성 왕국의 사제들에게 그간 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어떻게 하다가 사막 보스를 때려잡은 건지, 흑마법사와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등.
다행히 이번 사건에서 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관심에서 제법 멀어질 수 있었다.
현재 바란 제국과 신성 왕국에서는 이번 사막 웨이브의 주범으로 흑마법사 집단을 범인으로 꼽고 있었다.
예상보다 빠른 주기로 생겨난 돌연변이 괴수.
묵빛 지렁이를 자세히 조사해 보니, 놈의 몸속에서 발견된 악마의 힘.
그러한 것들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흑마법사라 말하고 있었다.
그 결과 현재 바란 제국과 신성 왕국의 관심사는 오직 흑마법사에게로 쏠렸으며 내 존재는 완전히 잊혀지고 있었다.
“한 명만 뺀다면 말이지. 하아…….”
한 번 인지하고 나니 계속해서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
바깥을 돌아다니면 어딘가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곳을 바라보면 여지없이 보이는 한 여인.
‘스칼렛 아르젠…….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매번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면서 막상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스칼렛 아르젠은 강자와의 싸움을 좋아하는 광인(狂人).
이미 강하거나 미래에 강해질 것 같은, 싹수가 있는 이에게만 관심을 주고 약한 놈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과거 아르젠 가문에 있을 때도 가주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그녀가 내게 관심을 줬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금세 식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스칼렛에게는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
‘지금도 어디서 이 안을 보고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스칼렛이 내게 관심을 줄 이유는 없다.
내가 실력을 보인 것도 그녀가 없을 때이고 그 외에는 딱히 그녀가 내게 관심도 없었을 테니.
근데 왜 자꾸만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그때 못 괴롭혔던 거 지금 괴롭히는 건가……?”
그 고약한 아르젠 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지도.
하여간 아르젠 놈들이란.
“아우 모르겠다!”
나는 잠깐 쉬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사망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잡일을 도우며 바쁘게 움직였다.
원정대는 마무리되고 나는 용병들과 함께 빠르게 브릴런트로 돌아갔다.
루이즈는 남아서 더 할 게 있는 건지, 나중에 온다고 했고 스칼렛 아르젠도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드디어 해방인가!”
근 한 달 동안 뜨거운 공기만 들이마시다가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니 폐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남부 사막의 그 답답하고 뜨겁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다르게 이곳은 서늘하고 평화롭고 조용하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렌! 왔니? 고생했구나.”
집에 오니 어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랫동안 그 위험하다는 사막 남부에 가 있던 탓에 어머니도 걱정을 많이 하신 듯 보였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리렴.”
“예.”
집에 오니 레시아는 집에 없는 듯했다.
“레시아는 어딨어요?”
“아! 레시아는 지금 행정보좌관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을 거야.”
행정보좌관이라…….
아직 추밀원 귀족과 엮이려면 시간이 꽤 남아 있다.
행정보좌관은 공과 사를 구별하는 딱딱한 인간이기에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레시아의 능력이라면 알아서 잘할 테니.
‘그래도 슬슬 추밀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놔야겠어.’
내가 과거로 돌아옴으로써 미래가 조금씩 뒤바뀌고 있다.
어쩌면 레시아의 사건도 더 빠르게 앞당겨질 수 있기에 미리 대비해 놓는 게 좋았다.
“자, 먹으렴. 내가 힘 좀 썼지!”
어머니가 음식 여러 가지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
너무 많아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잘 먹겠습니다.”
돌아올 곳이 있고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 행복한 일이다.
이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가.
나는 음식을 먹으며 또 한 번 다짐했다.
이 행복을 마족들 따위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 * *
집에 들른 뒤, 데케인에 올랐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다.
‘잘 있으려나.’
근 한 달 만에 레이먼을 보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녀석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머니가 별일은 없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흑마법사가 쳐들어오거나 용병들이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흙내.
“오…….”
잡초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레이먼이 그동안 데케인을 열심히 관리하고 있던 것이 느껴졌다.
‘휴가라도 줘야겠는데.’
데케인 안쪽을 둘러보니 레이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데케인의 영웅들을 숨겨두었던 두 번째 묘지로 가 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아.”
나는 오늘이 왕실에 보고서를 올리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는 다시 데케인으로 향했다.
“조상님, 저 왔습니다.”
조상님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몸을 빠르게 훑었다.
– 안 본 새에 꽤 강해졌군.
“그러기 위해서 갔으니까요.”
– 검을 들어 봐라.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검을 들어 봐라.’라니.
하긴, 이래서 조상님에게 더욱 존경심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곧장 허리춤에 있는 검을 빼 들었다.
– 흐음…….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듯한 눈빛이다.
저 눈빛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척하면 착하고 알 수 있었다.
‘검 때문인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내가 들고 있는 검으로 향해 있다.
그제서야 나도 검을 다시 보았다.
여기저기 날이 빠지고 검의 손잡이는 흠집으로 가득하다.
애초에 그다지 좋은 검이 아니다 보니, 이번 사태로 인해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 지난번 용병 일로 돈 좀 벌지 않았느냐?
“벌었습니다.”
– 그거 다 어디 갔지?
“……검 좀 보러 가겠습니다.”
– 검을 들어라.
“예.”
지금은 검이 이것밖에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날이 빠진 검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지난 싸움으로 하벤베르크 검술의 숙련도가 제법 많이 올랐다.
잘라탄의 검술을 썼음에도 그랬다.
물론, 많이 오르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오르는 게 어딘가.
“아! 궁금한 게 있습니다.”
– 뭐지?
“아르젠 검술 중에 반월 형태로 검기를 날리는 기술이 있던데, 저도 할 수 있습니까?”
– 흠……, 가서 그걸 본 것이냐?
“예.”
– 물론 할 수 있다. 지금 네 놈의 상태로는 절대 못 하겠지만.
“그거면 충분합니다.”
시야가 흐릿한 와중에도 스칼렛이 보였던 그 검기는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피처럼 붉은 초승달이 허공을 가르고 흑마법사의 실드를 박살 내는 그 광경을.
언젠가는 나도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면 충분하다.
– 하벤베르크 검술 제3 결전기 월격(月隔)이라는 것이다.
“월격…….”
– 보고 싶으냐?
“보여주실 수……있습니까?”
– 그래. 네놈의 기력이 제법 많이 늘어왔으니, 원래의 위력에 1할 정도는 흉내 낼 수 있겠지.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 검기가 내 손에서 펼쳐질 것을 상상하니 손이 떨려온다.
“보여주십시오.”
– 그건 오늘의 훈련 마지막에 보여주도록 하지. 아마 월격을 사용하면 너의 몸이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러면 왕실에 다녀온 뒤에 훈련을 해도 되겠습니까?”
– 그래라.
“감사합니다.”
나는 곧장 데케인을 내려가 왕실로 향했다.
단순히 레이먼을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니다.
사막 원정을 출발하기 전에 트레비스의 가주가 지난 일의 보상을 준비해 놓을 테니 원정 끝나고 왕실에 들러달라는 말을 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보상으로 쓸 만한 검이나 한 자루 줬으면 좋겠는데.’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이다.
세상살이가 내 맘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검이 아니어도 좋다.
언제나 공짜는 즐거운 법이니까.
“어? 렌, 자네가 여기는 왜 왔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의전보좌관의 의아한 얼굴이 보였다.
“아하하, 볼 일이 있어서 말이죠.”
“볼 일? 자네가 나 만나는 거 말고 중앙부처에 볼일이 있나?”
순수 궁금증으로 물어보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
그냥 의전보좌관이 싫은 건가?
“이번에 사막 원정대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아! 자네도 그곳에 갔었지! 용케 살아 돌아왔구만.”
“……예. 아주 운이 좋았죠.”
“내가 그것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야. 기왕 온 김에 내 일 좀 도울 생각 없나?”
이제 알 것 같다.
저 인간이 그냥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너 같으면 돕겠냐?’라고 말을 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말입니다. 근데 레이먼은 어딨습니까?”
“아쉽군. 레이먼은 아까 보니, 그전 동료들을 따라 간 듯하네만……. 별로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더군.”
“훈련장으로 갔습니까?”
“그래. 걱정되면 한 번 가 보게.”
‘그 자식은 왜 사이도 안 좋은 동료들을 따라간 거야?’
나는 의전보좌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무언가를 빽빽이 둘러싸고 있는 사내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의 후끈한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몰래 그 틈바구니에 끼니 안쪽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먼과 어떤 남자가 웃통을 까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렁뱅이 새끼가, 왜 또 여기를 들락거리는 거야?”
“하! 내가 여기 있을 때 검으로 한 번도 날 이겨본 적 없는 등신이. 뭐라는 거지?”
“그때랑 지금이랑 같을 거라고 생각하냐? 네놈은 지금 내 발밑에도 못 미쳐. 더 창피당하지 말고 가서 하던 시체 뒤치다꺼리나 계속하지?”
상대가 레이먼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내며 도발했다.
“시체 뒤치다꺼리? 이 새끼가! 나는 모욕해도 우리 사수님을 모욕하는 건 내가 못 참는다!”
갑자기 눈이 뒤집혀 몸을 들이박는 레이먼.
“미친놈인가? 너 말한 거야! 이 머저리 새끼야!”
황당하다는 얼굴로 상대 준기사가 같이 몸을 들이민다.
“그마아아아아안!!”
그리고 거친 남자들의 몸싸움으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려던 찰나.
나의 고성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