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28
“그전에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진사(金沙)강 동쪽의 영토를 중화민국에 돌려주십시오.”
달라이 라마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잠자코 말을 이었다.
“물론 제1차 캄전쟁 당시 청나라가 티베트를 먼저 침공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달라이 라마께서 일으킨 제2차 캄전쟁의 정당성은 어느 정도 확보된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모든 얘기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군벌 간의 알력다툼 수준일 때 가능한 것. 저는 쓰촨 통일의 9할을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라마의 손에 쥐여 있지요. 그걸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손가락을 까닥여 승려들을 내보냈다.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그는 갑자기 영어로 말해왔다.
말투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진사강 동쪽 땅은 우리 군이 정당하게 얻은 땅이야.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병사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아나?”
“그 말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는 건지요.”
“내말은, 그 희생을 알아달라는 걸세. 가만히 두었으면 쓰촨의 군벌들이 끊임없이 라싸를 탐했을 테니, 완충지대를 위해서라도 쓰촨 정벌은 꼭 필요했어.”
“희생을 어떻게 알아드리면 될까요.”
달라이 라마 13세가 콧수염을 꼬며 말했다.
“조건을 제시해보게.”
“조건···, 입니까?”
“보상이라고 해도 좋겠지. 좀 전에 말한 철도는 불가일세. 티베트에는 티베트만의 생활방식이 있어. 철도는 그 리듬을 망가뜨릴 거야.”
“···.”
돈을 달라는 건가?
역시 환생자!
중요한 것이 뭔지 아는구나.
첫인상과는 상당히 다른 달라이 라마였다.
하지만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을, 나는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조건을 말씀하셨습니까? 쓰촨성에는 8개의 군단이 주둔하고 있지요. 그들은 당장이라도 출병할 수 있습니다.”
포탈라궁의 환생자
도(道)란 무엇인가.
깨달음은 무엇이고, 해탈은 어디에 있는가.
이 고통의 바다에서 중생은 어떤 반야를 찾기 위해 끝없이 항해하고 있는가?
제13대 달라이 라마.
툽텐 가쵸는 수 세기 동안 여러 이름으로 환생을 거듭하며.
세계의 커다란 진리를 터득하기 위한 통찰을 내면에서 천천히 형성해왔다.
포탈라궁의 멋모르는 신탁승들은 밀교(密敎)의 심득에 빠져 허우적대었다.
경전과 말씀에 집착하여, 근본해석이라는 신기루를 잡으려 애쓰지만.
달라이 라마가 보기에 생의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는 그런 식으로는 건널 수 없다.
울보에 겁쟁이.
한없이 나약하고 비틀거리는 인간에게는 그에 걸맞은 도구가 필요하다.
물결을 헤쳐 나갈 배. 노. 돛대. 나침반.
나아가서는 증기터빈.
엔진을 돌릴 기름.
거친 파도를 막아줄 단단한 철갑까지.
지난 수백 년간 티베트는 육지안의 고립된 섬이었고, 이제 티베트에 필요한 것은 개혁이라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생각이었다.
경구과 문자에 빠져 현실을 도외시하는 티베트 고위층을 타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암초와 격랑에 몇 번이나 휩쓸리기도 하였다.
거센 반발. 음모.
전생에 그는 독살당했다.
그 전생에도, 그 전생에도, 그 전생에도···.
19세기 포탈라궁은 마귀의 소굴이었다.
제9대 달라이 라마가 등극하고.
제12대 달라이 라마가 선종(善終)하기까지가 고작 60년이었다.
새롭게 옥좌에 오른 13대 달라이 라마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3살 무렵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낸 13대는 어렸을 때부터 식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신뢰할 수 있는 부하에게 독이 들어있는지 확인받은 다음에야 수저를 들었다.
장성하여 친정을 하게 되자.
폐습을 답습하던 신탁승들을 제거하고.
병기창 건설과 신식 군대 양성에 힘썼다.
바야흐로 티베트 근대화의 시작이었다.
때마침 청나라에서 일어난 혁명은 기회였다.
달라이 라마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눈엣가시 같던 중국의 군벌들을 흠씬 패준 뒤, 티베트는 자주국으로 비상하였다.
그러나 안심은 일렀다.
언제고 힘이 생기면 곧바로 침략해올 나라.
내부를 안정시키고 나면 다시 슬금슬금 손길을 뻗어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달라이 라마의 예상을 실현시키려는 듯, 이 자가 나타났다.
한신.
외교특사랍시고 온화한 얼굴을 하고서는 발톱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을 믿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본성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나 드넓은 땅덩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언제나 더 넓은 영토를 원하고 있다.
‘땅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는 중국의 속담처럼.
그런 중국의 야욕에 맞서 독립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평화 약속? 도장을 찍은 문서?
지도자 간의 우애?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다.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박격포와 기관총, 탄약이다.
명령 한 번에 죽음을 무릅쓰고 포화 속으로 달려나갈 군대다.
결국은 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달라이 라마는 어렵게 얻은 쓰촨의 땅을 소득없이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어떻게든, 가능한 한 많이, 반대급부를 얻어낼 작정이었다.
포탈라궁의 고위 승려들이 자신을 세속적이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결국 티베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
그것이야말로 보리심(菩提心,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써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신은 차갑게 거절했다.
달라이 라마는 일어서려는 한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잠깐! 어딜 간다는 건가!”
“멀지 않은 곳에 저의 8개 군단이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무척 보고싶어지는군요.”
몽골의 복드 칸에게서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복드 칸은 한신을 지폐가 돋아 나오는 돈나무인 것처럼 묘사했는데.
생판 다르지 않은가? 물렁하지가 않다.
달라이 라마는 억지로 한신을 앉혔다.
“다시 앉아보게. 그리고 내가 초청한 외교특사로 돌아와 주게.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봅세.”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야. 나는 알 것 같아. 알 것 같네.”
뭘 해야 이자의 관심을 잡아끌 수 있지?
방법이 떠올랐다.
“점을 쳐보겠나? 복채는 받지 않겠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궁금한 법이다.
그러나 한신은 시큰둥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궁금하네.”
달라이 라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십이분교(十二分敎)의 상징인 십이면체 주사위 세 개를 꺼냈다.
모아 쥔 두 손에 주사위를 넣고 흔들었다.
“질문을 하게.”
“아니. 괜찮대도 그러십니까. 죄송스러운 얘기지만 점은 믿지 않아서···.”
“없나? 그러면 내가 질문을 대신 해주지. 한신은 어떤 사람인가?”
또르르.
나직하게 법문을 중얼거리며.
주사위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렸다.
달라이 라마는 주사위의 숫자를 해석하다가, 다시 한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가.
또다시 주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한신이 말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관심 없다더니, 점괘가 나오니 궁금하긴 한 모양.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답할 여유가 없었다.
궁을 가득 메운 향 내음이 지독하게 풍겨왔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며 호흡이 가빠왔다.
이상한 느낌이 그를 휩쓸었다.
지난 몇 년간 티베트의 근대화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돈 놀이에 지쳐있던 달라이 라마로서는 숨이 멎을 듯한 영적 체험이었다.
피와 폭력이 읽혔다.
여느 사람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흔한 기질이지만, 그 규모가 섬뜩했다.
겪은 것인지, 겪고 있는 것인지, 겪게 될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다.
갈라지는 대지.
사람들의 비명.
온 시야를 강탈하는 강렬한 빛무리.
이게 뭐지?
불현듯 기이한 통찰이 왔다.
달라이 라마는 불시에 물었다.
“전생을 기억하지?”
여러 차례 변하는 한신의 표정을 보며 달라이 라마는 말을 이었다.
“자네도 환생자로군.”
한신은 대답없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가슴이 가늘게 떨리며 스스로 동요하고 있음이 생생히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침묵에 잠겨 한참 동안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적막을 깨뜨린 건 한신이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슨 생각?”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점괘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
무엇이 한신의 마음을 바꾸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달라이 라마는 얼떨떨했다.
한신과 영적 교류를 나눈 것 같아, 쓰촨의 땅을 조건 없이 포기할 마음마저 들었다.
“생각하시는 보상안은 금전적인 겁니까?”
한신이 물어왔다.
달라이 라마는 반사적으로 도리질을 했다.
“그 얘기는 되었네. 양국의 우애를 위한 자리인데,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네.”
“아니요. 잘 말하셨습니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물질인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뻔한 외교적 수사만 나누며 산적한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가면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겁니다.”
한신의 말은 달라이 라마 자신이 승려들에게 늘 하던 말과 판박이였다.
경전의 구절에 사로잡혀 철과 화약을 우습게 보지 말라!
달라이 라마는 소년 시절부터 물질을 위험하면서도 경건한 무엇으로 생각해왔다.
“조건을 말씀드리지요. 땅을 드리겠습니다.”
“땅?”
달라이 라마는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티베트가 쓰촨의 서부를 지배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아니오. 쓰촨의 땅을 중화민국에 반환하면, 다른 곳의 땅을 티베트에 돌려주겠다는 겁니다. 땅과 땅의 교환이 땅과 금전의 교환보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말은 그럴듯하다만, 어느 땅을 말하는 건가?”
“아루나찰 프라데시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크게 놀랐다.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일찍이 영국이 티베트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가로 강탈해간 지역.
1913년 심라회의에서 영국의 외교관 맥마흔이 새로 그은 국경선은 이라 불렸다.
조약에 따라 티베트 동남부의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제국에 할양되었다.
한신이 바로 그 땅을 되찾아 주겠다는 것이다.
“상대는 대영제국이야. 가능하겠나···?”
중국이 이웃집 깡패라면.
영국은 총칼로 무장한 군인이다.
상대가 중국일 때는 어느 정도 반항할 생각이라도 들지만.
영국은 그조차 불가능하다.
20세기 초반.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두 차례 티베트를 침공하였고.
온갖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당시 달라이 라마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서 직접 실권자 서태후를 알현하였으나.
국운이 쇠락한 청조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도리어 삼배고구두를 강요하며 달라이 라마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치욕과 모멸뿐이었던 베이징행.
달라이 라마는 자존심을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