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96
조국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과장된 애국주의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외세에 억눌려 신음하고 비틀거리는 조국을 염려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임을 알기에.
나는 결단코 쑨원의 혁명을 향한 순수성만큼은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암살을 지시할 정도면.
얼마나 타락해버린 걸까.
작년 여름에 있었던 쑨원의 체포는 그 배경이 모호했다.
익명의 고발자가 쑨원이 부정을 저지른 증거를 제출했다는데.
그토록 신속하게 긴급체포가 결정된 것도.
광저우까지 직접 정치경찰이 내려간 것도.
가장 미심쩍은 부분은 그렇게 호송해온 쑨원에 대해 내가 체포 절차와 관련된 정보공개를 요구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쑨원이 그대로 풀려났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 탄압이니 뭐니 소란이 커질 것 같으니 재판을 포기한 모양새인데.
아니 그럴 거면, 대낮에 수갑을 채워 뭣하러 힘들게 베이징까지 데려갔느냔 말이다.
그저 수갑을 찬 쑨원의 사진을 언론에 뿌리는 게 목적이었을까?
소련에서 돌아온 장제스는 장문의 글을 써서 서면으로 보고를 해왔다.
상당히 긴 내용이라 암호로 적기에는 벅찼던 걸까.
삼합회에 부탁한 듯, 조직원이 직접 보고서를 들고 나타났다.
그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빨래방에서 보고서를 넘겨받아야 했다.
애초에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곳이 삼합회 소유의 무도회장이었던 만큼.
나와 삼합회와의 관계를 시시우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조직폭력배는 나쁜 놈들이니까.
한허도 있는 집안에 들였다가는 혼이 날지 모르니까 그랬다.
장제스의 필체는 한결 담백해졌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창이라 했던가.
이리저리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폭주하던 필체는 한결 정제되어 소련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담담히 기술하고 있었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대회에 참석하고 정치 요원들이 담화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소련의 사회, 당, 군대는 모두 정상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동기는 단 하나다. “투쟁.” 그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서로를 목 조르려 하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 투쟁한다···.」
지금쯤이면 레닌이 오늘내일하고 있을 터인데.
레닌의 후계를 놓고 소련의 지도부가 한창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시기이다.
어지간하면 스탈린이 아닌 다른 자가 정권을 잡았으면 좋겠는데.
거기에 개입할 만한 힘이 지금 내게는 없다.
설사 개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스탈린이 그리 만만한 자도 아니고.
한편으로 더 걱정스러운 점은.
만약 스탈린이 아니라면 트로츠키가 레닌의 후계자가 될 터인데.
글쎄다.
스탈린에 비해 트로츠키가 더 낫다고 하기도 뭣한 것이.
트로츠키 같은 위험한 인간이 소련의 1억 5,000만 인민을 통치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쩌면 이념전쟁에서 사회주의가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될지도.
「···나는 이번에 소련에 가기 전까지는, 국민당에 대한 소련공산당의 원조가 그들이 약소 민족을 돕고자 하는 지성에 기댄 행위이고, 사심이나 악의가 개입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5개월간의 시찰 끝에 내린 결론은, 소련 공산정권이 지향하는 바는 차르 시대의 러시아제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제국의 남하정책은 오랫동안 중국을 괴롭혀 왔다. 만약 볼셰비키 정권이 안정되고 난 후, 그들이 다시 예전과 같은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면, 중국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다···.」
장제스의 관찰력은 매서웠다.
작년 천안문 공청회 당시, 중국의 최고 엘리트들이라는 베이징 대학 학생들과도 많은 대담을 나누었지만.
학생들은 그저 천편일률적으로 코민테른의 사회주의 연대를 이야기할 뿐.
누구 하나 정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먹고 먹히는 국제관계를 조망하는 자가 없었다.
사회주의는 이념일 뿐이다.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는 언제나 권력이다.
보통의 사회라면 법과 제도에 묶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 이르면,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탐욕스러운 권력 지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제연맹이지만.
소련은 회원국이 아니며.
국제연맹의 중재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장제스가 말한 대로 국제관계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되고 만다.
「···너는 내게 소련이 장차 중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거라 했지. 진짜는 스탈린이고 말이야. 그 말에 십분 동의한다. 국민당의 연소용공 정책은 농촌과 공장에서 일시적으로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도리어 중국의 자주에 위협이 될 것이다. 특히 소련이 말하는 소위 “세계혁명”의 책략은 서방의 식민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장제스의 보고서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나는 국민당에 계속 남아 있겠다. 이건 네가 강요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내 선택이다. 너는 내가 첩자가 아니라 했지만, 나는 네게 첩자로 있겠다. 네게 충성하겠다. 앞으로 중화합중국을 이끌 사람은 쑨원이 아니라 한신, 너다.」
초반부의 담담했던 어조는 보고서의 후반부에 가서는 격동하고 있었다.
장제스가 소련에 간 목적은 쑨원의 부정을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일절 관련 내용이 없다.
그러나, 편지의 말미에 쑨원이 아닌 내게 충성하겠다고 서약한 것을 보면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으아앙···!”
잠에서 깬 한허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는 것을 바로 알아챈 것이다.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엄마 없어···?”
“잠깐 어디 가셨어. 아빠랑 놀자.”
“싫어. 아빠 재미없어.”
이런 꼴인데, 시시우는 복직하겠다고?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자, 이거 봐라. 현무 전차 나가신다~!”
까맣게 칠해진 탱크 장난감.
금세 한허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다.
역시 이 나이대의 남자아이에게 탱크는 무적이다.
한허의 고사리손에서 움직이는 전차가 형형색색의 카펫을 마구 질주한다.
“홍나라 점령! 적의 방어가 강하다! 어떻게 할까요, 장군님? 필요 없다! 다 죽여라! 우와~!”
혼자서 1인 2역, 아니 3역을 맡은 한허.
카펫의 붉은 무늬를 홍나라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다음은 어디냐! 예! 백나라입니다! 바로 공격한다!”
하얀 무늬의 백나라까지 현무 전차의 무자비한 공세 아래 짓밟혔다.
차례로 초록과 노랑, 검은색의 나라들이 천하무적의 한허장군에게 굴복하는 장면을, 나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런 게 트라우마라는 걸까.
장난감에 불과할지라도 전쟁과 연관이 되면.
자꾸만 시체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강철과 피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천하통일은 완성되었고.
내가 있는 곳은 전장이 아닌, 따스한 볕이 드는 우창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초부터 쌓아 올려진 중국의 시스템을 믿었다.
대총통 쑹자오런의 권력은 제한적이며, 결정권은 의회에 있다.
책임내각은 지방정부를 견제하되 존중하며.
각 성의 자치는 지역의 문화와 가치관을 수용하며 즐기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중국은···.
평화롭다.
마구잡이로 질주하는 현무의 기동은 두 살배기 어린아이의 손에 맡겨두어도 무방할 터.
나는 카펫의 모든 나라를 정복한 뒤, 신이 나서 내게 안겨드는 한허를 꼭 안아주었다.
아내에게서와 비슷한 물망초 냄새가 났다.
이대로 평생 살아도 썩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
“보고하라! 예! 우측 경사로에 적 포대가 다수 관찰되는 바! 공세를 취한다면 상당한 격전이 예상됩니다! 음···! 공격한다···! 준비해라! 현무를 믿고 아군의 힘을 믿어라! 공격~!”
서른 대의 현무를 거느린 장군 한허는.
단번에, 책걸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목나라를 공격해 들어갔다.
현무의 작전 수행 능력을 확실히 파악하고, 적이 가장 믿고 안심하고 있을 경사로를 밀고 올라가는 것은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작전이었다.
두 살 때도 전쟁놀이를 가장 좋아했는데.
다섯 살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내년이면 소학교에 들어갈 텐데.
잘 적응할지 모르겠다.
1927년의 봄은 따듯했지만.
중국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으니.
중화합중국은···.
흔들리고 있었다.
연성자치를 너무 일찍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중국에 맞지 않는 정책이었을까?
권위를 떼어내고, 쪼개고, 끊임없이 나누어주던 대총통 쑹자오런은.
집권 5년 차에 이르러서는 시장바닥의 개인양 비천하게 전락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봄비가 늦는다며 쑹자오런을 욕하는 농민들은 차라리 애교다.
지방정부는 자기들이 행정을 개떡같이 해 놓고도, 모든 잘못을 중앙정부에 떠넘기고 시치미를 떼기 일쑤였으니.
국민들은 그저 베이징 정부를 증오했다.
쑹자오런을 뜯고 씹고 맛보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참하게 도살했다.
이게 민주주의의 익숙한 맛이기는 한데···.
구역질이 나는 것은 왜일까.
“나 왔어.”
지주회사 신양의 경영자이신 시시우 마마께서 도착.
“허는?”
“잘 놀아.”
“또 전쟁놀이?”
“애가 좋다는데 뭐.”
“치, 돌잡이 때 인형을 잡길래 좀 인간적인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투덜대는 시시우를 앞에 두고.
나는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꺼냈다.
“나 복직할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1927년 3월 25일.
쑨원이 죽었다.
내가 알던 역사보다 대략 2년가량을 더 산 셈인데.
그 사실을 두고 복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기존의 역사대로라면.
마지막 숨을 토해낼 때까지 광저우와 베이징, 상하이와 도쿄를 오가며 국민당의 영수로서 바쁘게 역할을 수행하여야 했을 것이나.
속칭 ‘200만 금루블 사건’으로 알려진 부정 축재는 쑨원의 명성을 크게 실추시켰고.
당권에서 밀려난 쑨원은 홍콩섬의 자택에 기거하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고된 일정을 소화할 의무가 사라졌으므로.
아내 쑹칭링과 말년을 오순도순 보내며, 그나마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쑨원이라는 인간은 본래부터 고난과 좌절을 피하거나 꺼리는 자가 아니었다.
혁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다 그 아래 깔려 죽기를 바랄지언정.
자택에서 평온하게 지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가장 두려워한 최후일 것이다.
나는 쑨원의 장례식에 참석할 채비를 했으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도 한동안 장례식이 거행되지 못했다.
이유인즉슨.
국민당과 쑹칭링 사이에 의견 차가 있었다.
기독교인인 쑹칭링은 기독교식 장례를 원했으나.
국민당 내부에서는 민족주의 혁명가의 장례식을 서방식 종교의식으로 거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살아생전에는 쑨원을 당에서 내쫓고 혁명의 수치로 여겼던 국민당 인사들이.
쑨원이 죽고나자 돌연 입장을 바꾸어, 혁명의 큰 별이 졌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앞다투어 조화를 보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쑨원의 장례식은 결국 기독교 의식과 전통 의식을 둘 다 반영하여 거행하기로 결정되었고.
그제야 나는 조문을 위해 출발할 수 있었다.
홍콩역 앞에서 만난 장제스는 팔짱을 끼고 회색빛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무표정한 눈빛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와 있었냐.”
“기차 시간이야 뻔하니까.”
준비된 차에 타고서도 장제스는 계속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침묵한 채 페리를 타고 홍콩섬에서 내렸다.
상복을 입은 쑹칭링은 나를 보자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별일은 별일이네요. 발이 무겁기로 소문난 한신 장군께서 직접 한적한 이곳까지 찾아주시고 말이에요.”
“마땅히 와야지요.”
“흥. 살아계실 때 잘 대해주시면 어디 덧나나요? 그분의 임종을 저 혼자 지켰다는 사실을 아세요?”
오랜만에 마주한 쑹칭링은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상하이의 자기 집 이층방에 갇힌 채, 쑨원과 결혼하고 싶다며 내게 도움을 청하던 소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일본행 여객선을 타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소녀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내 앞에는, 찬란했던 명예를 반납하고 초라하게 죽어간 남편을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증오하기로 마음먹은 미망인이 서 있었다.
쑹칭링은 나보다 두 살 아래지만, 벌써 군데군데 흰머리가 나고 눈가에 주름이 잡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