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22
일단의 병사들이 달려 나왔다.
“샤즈광. 네가 이들을 직접 지휘하지?”
“예. 맞습니다.”
“너희들은 소총을 챙겨가라.”
“예?”
“말했잖냐. 이건 전쟁이다. 특히 상하이에서는 더욱 그럴 거다.”
위기는 기회.
이번 기회에 천치메이를 친다.
도쿄에서 도망친 천치메이는 어느새 상하이의 대부가 되어 있었다.
청방(靑幇)은 홍콩의 삼합회와 더불어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악명높은 범죄조직이었다.
신해혁명 이후의 혼란스러운 대도시를 폭력으로 정복한 청방은 상하이를 폭력배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덕에 상하이는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었으니 현실판 고담시라 해도 말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상하이는 중국 중남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
선거 유세의 핵심지다. 제낄 수는 없다.
그러니, 전쟁이다.
“시내에서 총격전은 피해라. 민간인이 한명이라도 휩쓸리면 그거야말로 최악이다.”
“예.”
“청방의 소굴이 있을 거다. 소탕을 목적으로 기동해라.”
“예.”
“놈들을 일반 건달이라 믿지 마라. 적군이라 생각해라.”
“예.”
그리고 조금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았다.
“만약 생포 당했을 시에는···.”
“바로 자결하겠습니다.”
“아냐. 입만 열지 마라. 고문은 당할 거다. 하지만 버텨라. 버티고 있으면 꼭 구해주마.”
“···예.”
샤즈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봤을 때는 쌩 날라리 같던 놈이 이젠 제법 믿음직하다.
“한계다 싶으면 삼합회에서 왔다고 해라. 고문을 한참 버틴 끝에 털어놓으면 아마 믿을 거다.”
“그, 그렇게 하면 삼합회에 피해가 가는 것 아닙니까?”
“이미 청방의 세는 삼합회에서도 좌시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하여 조직의 이익에 심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걱정 마라. 삼합회의 이름은 그 정도 무게는 버틸 수 있어.”
이번에 홍콩에 지원 요청을 하며 이미 용두와 상의한 바였다.
청방을 친다는 말에 젊은 용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었다.
다시 한번 병사들을 훑었다.
잘 훈련된 군인의 전투 수행 능력은 길거리 깡패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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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를 위하여
“이봐. 도착했어. 상하이라구.”
“벌써?”
기타 잇키의 일갈에 쪽잠을 자던 쑹자오런은 눈을 비비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중국의 경제 요충지인 상하이는 익숙한 곳.
동맹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숱하게 드나들던 도시다.
하지만 방문할 때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통에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했다.
이제 곧 역사적인 전국 총선거가 실시된다.
신문에서는 연일 헤드라인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돌아가는 상황은 나쁘지 않다. 사설에서도 대부분 공화당의 승리를 예측하니.
큰 공은 마술 같은 수완을 부린 한신과 민주당에 있었다.
량치차오 쪽에서 지지 의사를 밝혀온 덕에 입헌파를 지지하는 많은 표가 공화당 쪽으로 흘러들어왔으리라 예상이 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합의 하에 전략적으로 출마 지역을 조율하고 필요에 따라 후보도 단일화하였다.
차이어와 한신의 인기가 절대적인 윈난성, 후베이성의 선거는 걱정할 것 없었다.
즈리성과 동북3성을 합한 화북 지방 또한 량치차오의 인기가 드높은 덕에 공화당에 유리할 거라 전망하고 있었다.
문제는 화중과 화남 지방.
그중에서도 혁명파의 모체, 난징 정부가 있는 화중 지방이 격전지였다.
특히 난징의 코앞에 있는 상하이는 인구수 150만의 대도시로 선거의 향방을 가를 요지였다.
상하이의 거리.
기타가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휘유. 이 도시는 언제 보아도 썩은 내가 풍기는군. 마치 도쿄 같아.”
“말조심해. 시민들이 보고 있어. 정치인은 항상 언사를 신경 써야 해.”
“훗. 이렇게 든든한 친구들이 우리 주변을 꽉 메우고 섰는데 상하이의 어떤 시민이 우리 대화를 엿듣겠어?”
기타의 말대로 그들은 우락부락한 양복쟁이들에 꽁꽁 둘러싸여 있었다.
한신이 보낸 자들이다.
후베이성 정무만으로도 바쁠 터인데 이렇게 선거에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과하잖아. 몇 명이 붙은 거야, 대체.”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베이징에서부터 자신을 호위하겠노라 나타난 신비스러운 사내들.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전에 쑹자오런은 그 숫자에 압도당해 버렸다.
유세 인원이라 해봐야 10명 안팎인데.
무슨 경호 인력이 50명이 넘는단 말인가.
물론 50명이 한꺼번에 뭉쳐다니는건 아니나 지금 그들을 둘러싼 자들만으로도 충분히 갑갑하다.
이름이 샤즈광이라는 경호대장은, 신경 쓰지 말고 선거에 집중하라 말해주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이봐 쑹자오런. 내가 말했지, 한신의 행사에는 토를 달 필요가 없어.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귀신처럼 모든 일이 이루어진단 말이야.”
“하지만 응당 유세란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손도 마주 잡는 것인데, 이래서야 무슨 유세를 하겠어.”
“아냐. 쑹자오런. 우리가 온 목적에 집중해. 토론회 때문에 온 거잖아.”
상하이 광장에서 예정된 합동토론회.
겉으로는 정책 교류를 빙자했지만.
실상은 서로를 깎아내리고 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토론이 될 것임을 쑹자오런은 잘 알고 있었다.
“기자들이 많이 올까?”
“당연한걸. 상하이의 조계(租界, 외국에 임대된 지역)에서 나온 외신들도 우글거릴 거야.”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화당의 대세를 굳힌다.”
“천치메이, 그 개자식을 잘근잘근 씹어버려.”
이번 토론회의 상대는 국민당.
토론자는 국민당의 선거본부장 천치메이다.
“씹어먹을 것까지는 없고, 논리로 정정당당하게 승리해야지.”
“아니. 질겅질겅 이빨로 찢어서 소화해야 부활하지 않을 놈이야. 도쿄에서 몸뚱이만 간신이 건사해 도망쳤었는데 지금은 상하이 도독에, 산업부장관에, 국민당 선거본부장에 감투를 덕지덕지 달고 있잖아.”
“이번 선거에서 패하면 정치 생명에 금이 가겠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몰락할 거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무조건 죽인다는 각오로 임해.”
“그럴 필요까지 있나. 같은 각료인데.”
평소 기타 잇키의 천치메이에 대한 증오심은 알고 있으나 간간이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하는 쑹자오런이었다.
쑹자오런과 기타 잇키는 둘도 없는 친우지만 마음이 살짝씩 어긋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기타 잇키는 뭘 하든 거리낌이 없었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살인이든, 테러든, 전쟁이든 도무지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다.
혓바닥을 무시무시하게 놀리며 혁명의 정당성과 수단을 설파하는 기타 잇키의 모습은, 가끔은 마왕이 인간의 몸을 빼앗아 현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쑹자오런은 기본적으로 피와 폭력을 혐오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에게 강제하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나.
언제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합리와 이성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토론회가 중요하다.’
쑹자오런은 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들을 둘러싼 경호대가 흉흉한 눈빛을 뿜으며 거리 이곳저곳을 수색하듯 노려보았다.
‘이런 경호 인력 없이 상하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그날을 내 손으로 일구어내고 마리라.’
***
토론회의 날이 밝았다.
또다시 경호대에 꽁꽁 에워싸여 상하이 광장에 도착한 쑹자오런.
생각보다도 열기가 더 대단하였다.
마련된 자리에 올라섰다.
드넓은 광장이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국민당의 기수로 나선 천치메이가 특유의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쑹 장관. 오늘 한번 잘해봅시다.”
“예. 잘해봅시다.”
곧바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
몇 개의 토론 주제들이 실속 없이 흘러갔다.
서로 본격적으로 날은 빼 들지 않고 검집째로 붕붕 소리만 내며 위협하는 꼴이었다.
“중화민국 전체에 통일된 제도가 필요하다는 쑹 본부장의 발언에는 저 역시 동감하는 바입니다. 국민당에서는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언어 등에 있어서도 공통된 분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화당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동의합니다. 다만 중앙 정부가 권위적으로 강제하는 형태에는 반대하니, 제도로 확립하기 이전에 지방 시민들의 실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당초 여러 신문의 논설에서 박투를 예측했던 군사 분야에서도 토론은 싱거웠다.
“북양 정부가 들어섰으나 아직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군사력 증강에 나선다면 선의에 의한 행동이 자칫 혼란과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공화당이 집권한다면 당분간은 군제 개혁과 장교 양성에 주안점을 두겠습니다.”
“오. 그러한 군사 개혁이라면 국민당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군의 인재 양성에 반대할 정당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경제 발전이나 재정 개혁 문제는 더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다.
쑹자오런이 제시하는 모든 정책에 천치메이는 그저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쉬는 시간.
사회자가 떠들어 대는 동안 기타 잇키가 헐레벌떡 올라와 속삭였다.
“뭐 하는 거야! 우리가 짰던 전략은 다 어디로 팽개쳐버렸냐고.”
“건전한 토론을 통해 양 정당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토론회의 순기능이잖아.”
“미친. 순기능 같은 소리하네. 잊었어? 오늘 너는 천치메이를 찢어버리기 위해 여길 온 거야.”
“···토론은 이길 거야.”
“이따위로 해서는 가망 없어.”
기타 잇키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이마를 긁었다.
힘줄이 솟은 관자놀이 옆의 인공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덜덜 흔들렸다.
“아직 핵심 주제가 남아있다. 의원내각제냐 대통령제냐. 이 주제라면 천가 놈도 어물쩍 넘어가진 못하겠지. 여기서 끝내야 해. 국가 체제에 있어 확립된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할 때 어떤 시너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또 그간 전승되던 일인 통치가 역사에 어떤 해악을 끼쳐왔는지. 너도 알잖아? 망설이지 말고 상대의 심장을 후벼 파란 말이야!”
쑹자오런은 대답 없이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이곤 시선을 돌려버렸다.
마음은 불편하였으나 기타의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천치메이에게 끌려가고 있다. 토론회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토론이 재개되자마자 쑹자오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국민당은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느 정부 형태를 지지하십니까?”
“물론 대통령제입니다.”
“그렇다면 청조의 전제군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당연히 부정적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청조의 황제를 옥좌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이 바로 국민당의 쑨원 대표님입니다.”
천치메이의 노련한 회피에도 쑹자오런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군요. 제가 살펴본바, 국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제와 청조의 전제군주제는 놀랄 만큼 흡사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좋고 전제군주제는 싫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니요. 다릅니다.”
“대총통의 권한은 이미 황제와 다를 것 없습니다. 게다가 연임에 관련한 규정도 없지요. 무엇보다 문제는 국민투표가 아닌 임의의 기구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총통이 선출된다는 겁니다.”
천치메이는 안경 너머로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물어보지요. 공화당이 주장하는 의원내각제에 따르면 800명이 넘는 의원들이 다 서로 다른 의견을 늘어놓을 텐데, 중화민국은 이제 막 탄생한 신생국. 강력한 중앙집권방식으로 의견을 통일하여야 위기를 넘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곧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전제정의 방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제 막 움돋이 한 중화민국입니다. 좀 전에 우리는 이미 제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한번 뿌리내린 제도를 뒤바꾸기 위해서는 그 열배의 노력이 필요하니 처음일수록 만사에 신중히 접근하여야 할 것입니다.”
토론회가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비로소 말다툼 비스름한 게 생기자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쑹자오런은 굴하지 않고 시민이 국가의 적극적인 정치 행위자가 되는 공화의 의미에 대하여 논설했다.
“오늘의 이 열기를 보십시오. 광장을 가득 채운 공화정을 향한 열망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중국의 백성들은 몽매하다 했습니까? 어느 누가 중국의 시민들은 권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까? 국민당이 말하는 대통령제는 공화 정신에 위배됩니다! 지금껏 수천년간 그래왔듯 중국의 시민들을 그저 교화하고 다스려야 할 존재로만 보는 겁니다!”
쑹자오런은 자신의 연설에 도취되었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청중을 향해 외쳤다.
“이번 전국 총선거는 천하를 향한 중국 시민의 외침입니다! 상하이의 뒷골목, 윈난성의 깊은 수풀, 남해의 이름 없는 섬. 중국 전역 어느 곳에서든 중화민국 한 명의 구성원으로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감히 자유를 말하고 민주를 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나라! 공화당은 바로 그런 공화국을 원합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자신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은 광장 중앙의 일부분뿐이었으나.
화답하듯 청중이 우와아 고함을 질렀다.
시간 차를 두고 파도가 치듯 함성의 물결이 광장을 휩쓸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자신 쪽으로 넘어 왔다.
시민들은 공화당에 환호하고 있었다.
쑹자오런은 들끓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이거다. 내가 원했던 게.’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크게 뛰는 심장을 움켜잡았다.
이어지는 토론회는 주도권을 가져온 쑹자오런의 완벽한 승리.
단상을 내려가자마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천치메이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곧바로 광장을 떠나버렸다.
어느새 어둑해진 저녁.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쑹자오런은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봐라. 오늘처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세상은 바꿀 수 있어. 꼭 폭력만이 능사는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여관문을 열려는 찰나.
“피하십시오!”
옆에서 날아온 강력한 충격에 쑹자오런은 볼썽사납게 엎어졌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엎어뜨린 것은 경호대장.
아니. 그보다.
쾅!
여관문이 폭발했다.
나무터기의 잔해가 흩날리는 와중에 여관에서 삐져나온 희끄무레한 총구들이 보였다.
경호대의 반응은 민첩했다.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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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를 위하여2
“엄폐해! 엄폐! 씨발!”
“쏴라! 쏴!”
여관을 사이에 두고 살벌한 싸움이 오갔다.
쑹자오런은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거적때기를 덮어쓴 채 엄폐물 뒤에서 벌벌 떨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상하이의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경찰은 무얼 하나. 벌써 폭탄이 터지고 총격전이 벌어진 지 수십 분은 지난 것 같은데.
거리에는 인적 하나 없다.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는 집도 없다.
그저 총성과 악다구니뿐이다.
“돌입한다!”
경호대장의 외침에 일사불란하게 경호대가 뛰어들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경호 인력은 아니다. 오히려 군인 같다.
“놈들이 뒷문으로 튄다!”
총성이 간헐적으로 잦아들었다.
투덕거리는 소리.
한참 만에 경호대장 샤즈광이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본부장님을 노린 암살자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위험 요인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쑹자오런은 눈앞에서 폭발을 목도한 이후부터 무언가 붕 떠 있는 느낌이었으나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았다.
일행의 총책임자는 자신이다. 상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쑹자오런은 배에 힘을 꽉 주고 입을 열었으나 어째 생각과는 다르게 모깃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요?”
“여관 주인이 암살자들을 들여보내 준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암살자들과 한패인 건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몸을 피해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처음부터 한패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그럴 수가···.”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경호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자신은 폭사했을 것이다.
죽음이 그토록 가까이 다가왔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까 뒷문으로 도망간다던 적은···.”
“경호대는 4개 소대로 나뉘어 움직입니다. 도망치던 놈들은 매복대가 사살했습니다. 한놈을 생포하였는데 본부장님도 보시겠습니까?”
“생포를 했다고요?”
“예. 정강이에 총알이 박혀서 도망을 못 갔지요. 보시겠습니까?”
쑹자오런은 갈등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렸다.
“총알을 맞았다면서요.”
“예.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에 넘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 바닥에는 이 바닥만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피에는 피로. 강호의 법칙이지요.”
쑹자오런은 문득 메스꺼운 느낌이 차올랐다.
토할 것 같았다.
“···경호대장이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예.”
피는 싫어.
세상은 왜 이렇단 말인가.
***
빛 한점 없는 독방.
천치메이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한참 전에 비웠어야 할 재떨이는 비벼 끌 자리가 없는 지경이다.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회중시계의 침을 살폈다.
아직인가?
깜깜한 방에서 기다리는 일은 천치메이에게는 의식과도 같았다.
암살을 지시한 후에는 꼭 비밀 거처에 틀어박혀 고요히 소식을 기다렸다.
까만 벽 위로 낮에 있었던 토론회가 재생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쑹자오런의 역량을 가늠하는 행사였다.
전국 총선거가 결정된 이래, 쑹자오런의 명성은 하늘을 꿰뚫고 치솟고 있었다.
특히 그가 반포한 약법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약법삼장의 고사에 대입하여 쑹자오런을 장량에 빗대는 호사가들도 있었다.
황제가 아닌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
길거리를 잠깐만 거닐어도 약법의 몇조가 어떻고 몇항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문자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죄다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다소 느슨했어.”
독방에 자신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신해혁명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모조리 실패했던 수십 번에 이르는 무장봉기.
자금성의 거인은 절대로 거꾸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 생각했던 것이 1911년의 여름인데.
고작 몇 달 만에 이토록 손쉽게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안스카이는 제법 말이 통하는 자였다.
그가 100퍼센트 선의에 의해 움직인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최소한 현시점 중화민국에서 가장 대총통 자리에 어울리는 자인 것은 확실했다.
원래는 쑨원 선생님을 밀었던 천치메이였으나, 선생님은 정치를 고사하셨다.
천치메이는 다시 한번 선생님의 큰 뜻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권력을 쟁취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그렇듯 순수할 수 있기에 자신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천치메이였다.
위안스카이의 거동을 주시하던 천치메이는 북양 정부가 큰 문제 없이 안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쑨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혁명은 완수되었고 이제는 산업 발전에 힘쓸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업부부장을 맡아 상하이를 거점도시로 개발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쑹자오런 쪽에서 세를 크게 불려온다.
중국혁명동맹회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쑨원 선생님과 난징 정부!
그러나 선거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역으로 축출당하게 생겼다.
천치메이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낮의 토론회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억누를 수 있는 자인지 확인하는 마지막 자리.
그게 아니라면 폭력밖에 없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쑹자오런은 자기 살길을 걷어차 버렸다.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끝장을 내야 한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동지들을 배신하고 저 후베이성의 음모쟁이들에게 붙은 쑹자오런을 처단하라!
상하이는 자신의 안방.
온 도시에 깔린 부하가 수백이다.
경비대든 경찰이든 모두 자신의 손안이다. 이 도시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왜 이리 소식이 늦는 거야?
천치메이는 문득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이상하게 가슴이 쿵쿵 울렸다.
탕!
총성이다.
천치메이는 벌떡 일어났다.
탕! 탕! 탕!
연이은 총격.
뭐지? 상하이에서 자신의 거처를 습격할 배짱을 지닌 놈들이 있다니.
문을 열고 나가려던 천치메이는 멈칫했다.
탕! 탕! 탕!
총성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워진다.
천치메이는 뒤돌아 비밀통로를 열었다.
언제나 거점을 만들 때는 통로를 두 개씩 만들어 놓는 천치메이였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다.
등불도 없는 땅굴을 천치메이는 엉금엉금 기었다.
통로의 끝은 무저갱처럼 어두웠다.
그 어둠을 노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신···!
도쿄의 밤바다를 탈출해 구멍 난 가슴을 움켜쥐고 달리던 그날 저녁이 생각났다.
쑹자오런의 호위병이 만만찮아 보인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놈이 연관되어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곳 상하이에서 자신이 쫓긴다고?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비밀 거점을 불시에 습격당했을 뿐. 조직은 멀쩡하다.
군대만 대동하지 않았지, 이건 전쟁이나 다름없다.
청방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 사달을 일으킨 놈들을 죄다 처단한다.
한신도 더 두고 볼 수 없다.
우창에 틀어박혀 있다고는 하나 기회를 노리면 못 할 것도 없다.
천치메이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 어두컴컴한 지하통로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신의 얼굴이 흐릿해지며 이번에는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쑨원 선생님. 선생님은 밝은 곳에서 나라의 부흥에만 힘 써주십시오. 우리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칭송할 중화민국의 얼굴이 되어주십시오.’
공기가 부족한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선생님 가시는 길은 제가 닦아 놓겠습니다.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들은 모두 치우겠습니다. 혁명이 필요로 하는 피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서 제가 모두 흘리겠습니다.’
퍽.
땅굴의 끝에 부딪혔다.
천치메이는 손끝을 더듬어 상부의 문짝을 찾았다.
“휴우.”
문짝을 열고 일어서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겨울의 날씨. 땀범벅 된 이마를 훔쳤다.
천치메이는 곧장 청방의 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쟁이다.
오늘 밤 자신을 습격한 간덩이 부은 놈들은 결코 상하이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급해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참을 걸었다. 먼 곳에서부터 동이 터 왔다.
청방의 본부에 도착한 천치메이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문지기 세 명이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사이좋게 흙바닥 앞에 쓰러져 있었다.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했을 정도면.
상황이 방금 시작되었거나, 수습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 말은 곧···.
천치메이는 마당 앞에 우두커니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칠흑빛의 총구가 보였다.
한번 자신의 생을 구원해주었던 리볼버 따위가 아니다.
1미터를 훌쩍 넘기는 기다란 총신. 군용 소총이다.
“천치메이?”
총구를 들이댄 사내 뒤로 십여명의 또 다른 사내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근거리에 이만한 숫자가 숨어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이놈들. 단순한 깡패 나부랭이가 아니다. 훈련받은 군인이다.
천치메이는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사내들은 자신이 인쇄된 사진을 들고 대조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저자가 천치메이입니다.”
“그렇다는데. 당신이 천치메이요?”
맨 처음 총을 겨눈 사내가 또다시 물었다.
천치메이는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음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흰 누구냐.”
“맞나 보군.”
“말하지 않아도 짐작 가는 바가 있지···. 자칭 전략의 천재라는 네놈들 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은···.”
탕!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천치메이는 풀썩 나자빠졌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했다.
하늘을 보고 누운 천치메이를 향해 사내들이 다가왔다.
이번엔 총구가 이마를 향해 겨눠져 있었다.
천치메이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짜냈다.
“한신···. 한신···! 한신···!!! 그놈이 내게 남긴 전언은 없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