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31
대관절 뭔 잘못을 했는데?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황급히 삼키는 위안스카이.
“일단은 알겠습니다. 여론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상황이 바뀌는 기척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알려주십시오. 각하께서는 일본제국과 협력의 길을 걷기로 하셨으며, 그건 최고의 선택입니다. 톈진의 조계에 지나주둔군 1,500명이 대기 중입니다. 유사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습니다.”
일본 공사가 방을 나간 후에 위안스카이는 생각했다.
그럴 일은 없을걸. 아무리 염치가 없기로서니 중화제국의 황제가 일본군의 도움을 받을까 봐?
장쉰의 병력만 도착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깜빡 졸았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청나라의 전통 북소리였다.
위안스카이는 재빨리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열의 선두에 갈색 말을 타고 청나라 전통 장삼을 걸친 장쉰이 보였다.
그 뒤로는 변발을 하고 총과 대도를 든 고색창연한 군대가 의기양양하게 행군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오와 열이 맞지 않고 무장도 빈약하다.
위안스카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저런 꼴이라니, 내가 기다리던 부대가 이 녀석들이란 말이야?
이미 북양군은 10년 전부터 군개혁을 통해 서양식 군제와 최신식 무기로 무장해 왔다.
으레 군대라 하면 그런 북양군을 기본으로 생각해 왔는데.
창밖의 풍경은 19세기 청나라 팔기군이 관을 박차고 튀어나온 것만 같다.
덜컥 가슴 한구석이 내려앉았다..
저 자식들, 싸움은 잘 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다행인 건 보고받은 대로 병력의 수가 많았다.
5,000에 이르는 군대. 베이징의 대로가 변발한 병사들로 가득 찼다.
장쉰은 군대를 멈추지 않고 중난하이 앞까지 진군해왔다.
위안스카이는 급한 나머지 길 앞까지 마중 나갔다.
“장쉰 장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지금 중화민국에 장군의 힘이 꼭 필요하다네!”
장쉰은 대꾸 없이 말 위에 앉은 채 위안스카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키에 열등감이 있는 위안스카이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장쉰 장군? 뭐하나? 내리지 않고.”
“신해년에 북양정부에 간했었소. 천자에 대한 신하의 의무를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뭐라고?”
“하지만 총통은 폐하를 자금성에 유폐하고 그저 본인의 안위 지키기에만 골몰하였지.”
위안스카이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장쉰은 드높은 자금성의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가가 젖어 들더니 금세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졌다.
“아! 무슨 일인가! 300년 대청국의 사직(社稷)이 이렇듯 자금성의 내조(內朝)에 건재한데, 세상은 천자의 은총에 담겼던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의 온기를 벌써 잊어버렸단 말인가! 폐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장쉰이 왔습니다! 대청제국은 잠깐의 부침을 거쳐 작금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다시 세계의 중심을 회복할 것입니다!”
꺼이꺼이 울어대는 장쉰을 보고 위안스카이는 뒷걸음질쳤다.
슬금슬금 걷다 종래에는 총통부 건물로 마구 내달렸다.
미친놈이란 건 확실한데 미쳐도 아주 체계적으로 미친놈이다.
“반역도를 잡아라!”
장쉰의 외침에 변자군(辨子軍, 변발군대)이 질풍처럼 달려와 위안스카이를 포박했다.
“북을 세게 쳐라! 온 천하에 대청국의 부활을 알려라!”
위안스카이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씨발. 왕스전 어딨어?
신해혁명 이후 자금성 내정(內廷)은 고요하게 유지되어 왔다.
중화민국 건국 당시 약조한 에 따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외국 군주(청국 군주)로 대우받으며 자금성에서 이전과 같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담 너머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청나라 소조정은 베이징 안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적막이 깨지고 있다.
장쉰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건청문(乾淸門)을 열었다.
이곳에 중국 유일의 정당한 황제, 선통제(宣統帝)가 계신다.
익숙한, 황색과 적색의 휘황찬란한 장식이 펼쳐졌다.
장쉰은 감정이 벅차오르는 걸 느끼며 황제의 처소로 향했다.
어디선가 꺄르륵 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장쉰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는 건드리지 마! 반칙이잖아!”
“죄송합니다. 폐하!”
“지금 좋아! 잘하고 있어! 그래, 이겨라! 죽여라!”
건청궁(乾淸宮)의 앞마당에서는 한창 귀뚜라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쉰은 몸가짐을 조심하며 황제의 앞으로 달려가 부복하였다.
“폐하···!”
“옳지, 잘한다! 밀어붙여! 씹어 먹어 버려!”
아홉 살의 황제는 장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귀뚜라미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환관이 아뢰자 그제야 이쪽을 돌아보았다.
“너흰 뭐야?”
“폐하! 소신은 한때 금위군의 지휘를 맡았던 장쉰이옵니다! 일찍이 선황제(先皇帝)께서 제 무위를 칭찬하며 바투루(만주어로 위대한 전사라는 뜻)의 칭호를 하사하셨으니, 그때 이후로 죽을 때까지 청조에 충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 늙은이입니다.”
“땅바닥이 그렇게 좋아? 잘 안 들리잖아. 고개를 들고 말해.”
“오늘날의 중국은 도둑놈들이 장악하여 제멋대로 국사를 논하고 국고를 탐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청조의 은혜를 입은 신하 된 도리로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 소신이 이미 반역도들을 잡아넣었으니, 남은 것은 폐하가 다시 보위에 오르는 일뿐입니다.”
장쉰이 간곡하게 아뢰었으나 황제의 표정은 알쏭달쏭하였다.
“보위가 뭐야?”
“황제의 자리를 말함입니다.”
“황제가 되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귀찮은 공부에는 질렸어.”
“물론입니다. 황제는 공부 따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쎈 귀뚜라미도 구할 수 있어?”
“당연합니다. 이 늙은이가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진짜? 좋아! 그럼 황제 할게!”
자금성을 나온 장쉰은 곧바로 위안스카이를 감금한 총통부로 향했다.
대총통이 잔뜩 성이 난 몰골로 삿대질을 해왔다.
“장쉰!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민중이 피땀 흘려 이룩한 공화정을 하루아침에 뒤엎으려 하다니!”
“무슨 소리냐, 총통. 나는 분명 군주제가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북상한 것인데.”
“누,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정당한 절차로 선출된 중화민국의 대총통을 감금하고 협박한 행위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야!”
“하! 닥쳐라, 매국노야! 어디서 감히 역사를 운운하느냐? 신해년의 변란 당시 너는 분명 반란군을 진압할 능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 운운하는 벌레들과 야합하여 폐하를 옥좌에서 끌어내렸지. 오늘의 일은 하늘이 네게 업보를 내리신 거다.”
손짓하자 3개조의 긴급조치가 적힌 문서가 전달되어 왔다.
장쉰은 큰 소리로 읽었다.
“첫째, 청조의 부활을 헌법에 명시한다. 둘째, 유교를 국교로 정한다. 셋째, 변자군을 금위군으로 재편성하여 전력을 증강한다. 자, 위안스카이. 어서 날인해라!”
닦달에도 불구하고 위안스카이는 도장을 들고 손을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교활하게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뭐 하느냐? 어서 찍으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첫째 조항에 문제가 있다. 대총통의 권한은 미약해. 아직 헌법이 제정되기도 전이라고. 헌법에 명시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건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날인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냐? 후베이성의 한신이 제멋대로 군대를 이끌고 국회를 점거하여 엉터리 헌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가히 국회 전제정을 열려는 시도이니, 그쪽을 먼저 제압하지 않고서는 청조의 부활은 요원할 것이다.”
장쉰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국회 앞에 진을 친 군대는 군사훈련 중이랬는데···.”
“거짓말이다! 놈들은 장군부가 관할하는 훈련이라 둘러대지만, 대총통인 내게 어떠한 상의도 하지 않은 독자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네놈이 진정 청조를 위한다면 나대신 한신부터 구금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야.”
“정말이냐? 지금 국회에서 약법 대신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고?”
“그래! 뒤떨어진 늙은이야!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한 신헌법이다. 얼른 달려가서 막으라고!”
위안스카이의 다그침 대로 장쉰은 병사를 이끌고 국회로 향했다.
정말 단순 군사훈련이라기에는 국회를 에워싼 경비가 심히 삼엄했다.
한사코 국회 진입을 막는 보초병과 실랑이를 벌였다.
“족발이 뭐 어쨌는데? 지금 날 모욕하는 건가!”
양쪽이 총을 겨누며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불현듯 국회 안쪽에서 젊은 놈이 휘적휘적 걸어 나왔다.
“족발은 당수입니다. 장쉰 장군.”
“너는 누구냐?”
“후베이성의 한신.”
“네놈이···? 어리단 말은 들었지만 놀랍군, 그 나이에.”
장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벌이는 군사훈련은 누구의 허락을 받은 사안인가.”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군요. 장군부 관할입니다.”
“대총통은 허락한 바 없다던데?”
“착오가 있으셨겠지요. 고령이니, 깜박깜박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장쉰 장군도 비슷한 연배이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놈 봐라?
이래서 유교를 법으로 정해 가르쳐야 한다.
장유유서도 모르는 놈이 장군 자리에 오르다니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나는 대총통의 인가를 받고 베이징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거병하였다.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예. 그럼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담백한 한신의 대답에 몰아붙이던 장쉰이 오히려 당황하였다.
“진심이냐? 진심으로 베이징 중심가에서 교전을 벌이자는 거냐?”
“교전을 입에 담은 건 제가 아닌 장쉰 장군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군은 단순 기동훈련 중. 시범이 끝나면 자연히 해산할 겁니다.”
장쉰은 위협적으로 어깨를 쭉 펴고 한신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하룻강아지 같은 놈이 감히 전투 운운해?
“나는 네놈이 엄마 젖을 빨 때 이미 청불전쟁과 청일전쟁 참전 경험이 있으며, 의화단의 난까지 진압한 전력이 있다. 네놈의 일천한 병력으로 상대가 되리라고 보느냐?”
“제가 장쉰 장군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신해혁명 때였지요. 상하이 도독 천치메이가 생각 외로 큰 피해 없이 난징을 점령하였었는데 당시 난징에 주둔하셨던 분이 장쉰 장군 아닙니까?”
당시 일은 장쉰으로서도 답답한 부분이었다.
우창에서 봉기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징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장쑤성의 총독이라는 작자는 벌벌 떨면서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었으니.
장쉰은 크게 꾸짖고 북양군 제9사단을 이끌어 혁명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상부에서 난징을 버리고 후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장쉰은 9사단의 병력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나마 자신이 이끄는 변자군으로 수비해 보려 했으나 중과부적.
결국엔 천치메이의 혁명군에 난징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위안스카이가 대총통이 되는 것을 보고 어떤 야합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가 대총통을 단호하게 대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거기엔···, 사정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불대다니. 고얀 놈!”
“아무튼 선택은 장군이 하는 겁니다.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보십시오.”
한신은 마지막 말을 하고는 국회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장쉰은 국회를 둘러싼 군대의 진용을 살폈다.
분명 국회를 점거하고 의원들을 감금하여 국회 전제정치를 펼친다고 들었는데.
살펴보니 오히려 반대다.
모든 시야가 바깥을 향해 곤두선 가시 방패와 같은 진지.
이건 국회를 포위하는 게 아니라, 국회를 보호하는 진형이다.
좀 전에 보초병의 응대만 보아도 쉽게 볼 군대가 아니다.
전투를 벌인다면 양측이 모두 심대한 피해를 볼 거다.
장쉰은 안전하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베이징에 들어온 5,000여 병력은 선발대.
이미 난징에서 2차 출병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헌법 따위 그저 뭉개도 상관없다.
헌법 위에 있는 것이 바로 황제 아닌가?
공화제를 폐하고 군주제를 복고하면 옛 주인을 그리워하던 백성들이 중국 전역에서 들고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다.
일단은 복벽이 우선이다!
온 대륙에 군주제의 부활을 화려하게 선포하는 거다!
돌아온 총통부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안스카이가 감금되어 있어야 할 집무실은 텅 빈 채였다.
“감시를 맡은 놈은 어디로 간 거야?”
“실은 대총통이 자꾸만 금은보화를 약속하며 자신을 풀어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교대한 녀석은 예전부터 욕심이 많았으니. 꼬임에 넘어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망할! 대역죄인을 놓치다니! 얼른 병사를 풀어 수색해!”
“예!”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로 자꾸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나니.
세상 사람들이 괜히 복마전이라 떠드는 것이 아니었다.
장쉰은 꾹 참고 버티며 내각 대신들을 모아 황제의 즉위식을 준비하였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단 하나.
우국충정(憂國衷情). 청조를 위한 마음뿐이었다.
***
국회의사당 내부.
지켜보는 모든 이가 쑹자오런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개표 결과. 가(可) 602, 부(不) 2, 기권 11, 결석 255인으로 중화민국 헌법대강이 가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쑹자오런이 의사봉을 땅땅땅 내리쳤다.
헌법 제정안이 통과되었다.
의사당 내부에서 의원들이 종이를 집어던지며 환호했다.
쑹자오런이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결국엔 성공했군요.”
“아니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뭘 또 시작을···?”
“총리님이 국회에 갇혀있는 지난 며칠간, 바깥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쑹자오런과 함께 국회 정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표정이 황망하게 변했다.
“이, 이게 대체?”
“방금 국회에서 입헌정치의 개시를 알렸는데, 자금성에서는 군주정치를 복고하려 합니다. 듣기로는 오늘 태화전에서 즉위식을 치른다더군요.”
베이징의 거리에는 즉위식을 준비한답시고 변자군이 달아놓은 황룡기가 온통 휘날리고 있었다.
변발을 한 병사들이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니 쑹자오런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꼴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지금껏 제 최우선 목표는 입헌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표는 방금 이루어졌으니 이제 다음 우선순위를 따져야지요.”
“이미 공화정체가 중화민국에 단단히 자리 잡았는데, 황제 즉위식이라니. 이 무슨 희극이란 말입니까! 당장 중지시켜야 합니다.”
“장쉰이 이미 베이징의 요충지에 변자군을 배치하여 장악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공화정은 그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것이라 그럴까.
무척 흥분한 쑹자오런이었다.
“우창에 전보를 쳐 놨습니다. 의회의 의결이 떨어지면 참전군 제2사단이 출동할 겁니다.”
“그 말은···?”
“위안스카이는 총통직을 내팽개치고 도주했으며, 자금성에는 장쉰과 같은 작자가 시대착오적인 복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제가 수습할 테니, 총리님은 이후의 정치에 집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의회에서 참전군의 출병을 의결해야겠군요. 참전군이라는 말은 맞지 않으니 공화군으로 하지요.”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베이징에 난위안항공학교(南苑航空學校)가 있는데 그곳의 전투자원을 공화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쑹자오런과 헤어지고 보병대를 이끌어 베이징 남쪽으로 향했다.
장쉰의 변자군은 우리 군의 움직임을 그저 지켜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낄낄대는 변발 병사들이 보였다.
겁을 먹고 달아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볼썽사나운 겁쟁이 꼬락서니는 너희들이 보여주게 될 거야.
난위안항공학교는 중국 최초로 항공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
수석 비행교관 리루옌(厲汝燕)은 다부진 체격의 내 또래였다.
의회의 비준을 보여주자 별다른 저항 없이 공화군의 지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 작전 지시를 듣고는 적잖이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자금성을···, 폭격하란 말씀입니까···?”
“헉, 헉.”
위안스카이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항상 타고 다니던 가솔린차에서 내려 이렇게 뛰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제기랄. 도저히 못 뛰겠다! 날 업어라!”
“그럼 1만 위안 더 주시오.”
이런 날도둑 같으니라고.
위안스카이는 눈이 뒤집혔으나 그러마하고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뛰었다가는 무릎이 나갈 것 같다.
자신의 감시역이었던 변발 병사를 돈으로 꼬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소한 일마다 돈을 요구해오니 정신이 돌 지경이다.
‘돤치루이, 펑궈장, 어디 있느냐···?’
북양군의 군권을 틀어쥔 그놈들이 제멋대로 낙향하면서부터 일이 꼬였다.
왕스전에게 일을 맡길 때 어째 이상하게 순조롭더라니.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그때 이후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졸지에는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몰래 총통부를 탈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휴우, 여깁니까?”
“한 골목 더!”
고생 끝에 위안스카이가 도착한 곳은 일본 공사관.
돤치루이와 펑궈장에게 연락도 해야겠지만 일단은 변자군이 살벌한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베이징에서 몸 하나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돈은?”
“이놈 자식아! 돈이 그리 바로 나오겠느냐! 기다려!”
그놈의 돈돈돈.
저런 자식을 부하랍시고 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장쉰도 얼마 못 갈 것이 뻔하다.
땀범벅이 된 위안스카이가 공사관 건물에 나타나자, 일본 공사는 뜻밖이라는 듯 우뚝 섰다.
한껏 예민해진 위안스카이는 그 단순한 멈칫거림만을 보고도 위화감을 감지했다.
이놈은 나를 반기지 않는다.
“각하, 총통부에 계신다고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내가 그깟 놈들에게 잡혀 있을 사람으로 보이나?”
“탈출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위안스카이는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꺼냈다.
벌컥벌컥 마시고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공사, 전에 말했던 톈진의 병사들 있지? 좀 움직여 줘야겠어. 베이징의 꼴이 지금 말이 아니야!”
“···.”
일본 공사는 대답 없이 냉장고로 걸어가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잔에서 쏟아진 상 위의 물기를 닦았다.
“왜 대답이 없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 일본군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개입을 한다고 치면. 각하는 일본제국이 어느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건지요.”
“무슨 말이 그런가? 당연히···, 당연히···, 북양정부의 편이어야지!”
“북양정부라···. 쯧쯧.”
일본 공사가 혀를 찼다.
“각하, 일본제국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저 얼간이 장쉰을 끌어들인 것이 각하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각하의 황제지몽(皇帝之夢)이 있다는 사실도 모두 파악한 바입니다.”
위안스카이는 뜨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일본 공사가 말을 이었다.
“그간 저는 각하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여 모든 정보를 공유해왔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간계를 꾸미다가 잘못되자마자 쥐새끼처럼 달려와 도움을 청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일을 일본제국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내 실수야. 다시 정권을 잡으면 반복하지 않을 실수.”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럼 톈진의 군대를 움직이는 건가?”
“예.”
위안스카이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섰다.
“좋아! 진행 결과를 계속 보고하게. 나는 내 부하들을 찾으러 가봐야겠어.”
그러나 일본 공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위안스카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깥은 위험합니다. 공사관 영내는 치외법권 지역이므로 이곳에 계시는 게 안전할 겁니다.”
“말은 고맙네만, 비키게.”
“안 됩니다.”
쿵. 쿵. 심장이 뛴다.
일본 공사의 미소가 점점 가증스러워졌다.
“날 감금하려는 건가···?”
“신변을 의탁했다고 생각하십시오. 공사관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계시면 상황은 알아서 종료될 겁니다.”
“이···, 이···!”
22개조 요구부터 시작하여 그간 일본에 쌓여왔던 원한.
거기에 지난 며칠간 한신과 왕스전, 장쉰같은 놈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이···, 쪽바리 새끼가 어디다 대고 명령질이야? 나는 현 중화민국의 대총통이자 곧 개국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될 사람이야! 내가 황좌에 오르고 나면 일본에 요구하여 가장 먼저 네놈부터 갈아치울 테다! 건방진 자식!”
한껏 노기가 올라서 마구 삿대질을 해대는데.
어째 몸이 무거웠다.
심장에 격한 통증이 왔다.
“크윽.”
이거 뭐야, 왜 이러지? 찬물을 잘못 마셨나?
위안스카이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베이징 남쪽 외곽.
난위앙항공학교에 설치된 공화군 사령부.
내가 들어서자 참모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보고해라.”
“공화군 제1사단이 지난시로 움직여 철도역을 장악했습니다.”
“난징에 있는 변자군의 동향은 어떠냐?”
“장쉰이 출병을 명령하였으나, 중간에 가로막은 우리 군 때문에 난징의 지휘관이 망설이는 모양입니다.”
“겁 없이 북상하다가 지난에서 생각지도 않던 대규모 교전을 치를지도 모르니 고민이 되겠지.”
칭다오 공략에 참여했던 참전군은 2개 사단.
제1사단은 산둥에 배치하고 제2사단은 후베이로 돌아와 훈련에 힘썼었다.
그중 이번에 베이징 앞까지 진군해 내 지휘를 받는 부대는 제2사단.
제1사단은 독자적으로 움직여 산둥반도의 서쪽 도시 지난을 점거하였다.
난징에서 철도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난을 통과해야 하니.
변자군의 2차 출병을 중간에서 저지하는 역할이었다.
“북양군의 동향은 어떠냐?”
참모진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보다 못한 부관 리페이양이 입을 열었다.
“돤치루이가 톈진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어제이니, 목적지는 톈진 마창(馬廠)으로 생각됩니다. 그곳에 주둔한 제8사단을 움직이려는 것 같습니다.”
“이제 병력을 꾸리려면 느릴 텐데. 늦게 오면 밥 없다고.”
“그래서 펑궈장이 서둘렀나 봅니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 전에 먼저 우페이푸(吳佩孚)와 펑위샹(馮玉祥)에게 지시 내려 토역군(討逆軍, 역적을 토벌함)을 조직했습니다.”
리페이양이 낑낑거리며 즈리성 전도를 펼쳤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즈리성에 포진한 주요 군부대의 위치가 나타나 있었다.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간 작전도를 그려보았습니다.”
“대단해, 리페이양. 점점 실력이 좋아지네.”
리페이양의 작전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나는 군부대의 향연이 마치 군벌 시대를 예고하는 것처럼 어지럽게 전개되어 있었다.
베이징 자금성에는 장쉰의 변자군이 웅크리고 있고.
자금성 남쪽의 난위안에는 공화군이 진공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톈진 남쪽의 군사기지 마창에서는 돤치루이가 제8사단을 움직이려 하고.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랑팡(廊坊)에는 펑위샹의 제16혼성여단이 출동을 준비한다.
그리고 베이징 서남부의 대도시 바오딩에서는 우페이푸의 제3사단이 역시 출동 준비중이다.
여기에 차오쿤(曹錕), 쉬수정(徐樹錚), 돤즈구이(段芝貴)와 같은 쟁쟁한 북양파의 거두들이 끼어드니.
한 명 한 명의 이름들이 죄다 쉬이 넘길 수 없는 훗날의 군벌들이다.
“이렇게 보니 마치 동탁 토벌전 같군요.”
“그거랑은 다르지. 우린 연합이 아냐. 북양군은 잠재적인 적이다.”
“따지고 보니 그렇군요. 게다가 동탁은 천하장사에 폭군이었으니 장쉰을 동탁이라 칭할 수는 없겠습니다.”
리페이양이 베이징 한복판에 삐뚤게 걸려 있던 장쉰의 명패를 바로 세웠다.
그럼에도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쌍하기까지 했다.
베이징을 둘러싼 군대들의 예상 진격로는 산발적으로 갈라져 있었으나.
목적지는 모두 같았다. 베이징의 자금성이었다.
공화군 제2사단만 해도 1만 5,000에 달하는 병력.
여기에 북양파의 병력을 모두 합치면 5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반면 원군이 끊긴 장쉰의 변자군은 5,000여명에 불과하다.
전쟁이라기보다는 누가 빨리 베이징에 입성하여 행정체계를 장악하는지가 중요한 싸움.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자금성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였다.
“회의를 마친다. 진공은 내일 새벽이다. 모두 푹 자 두도록.”
***
근래에 베이징에 들어갈 때면 어째 항상 군대를 대동하게 되는 것 같긴 한데.
이번 규모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웅장한 진용.
서로와 동로를 나누었음에도 그 위세가 어마어마하다.
이 위용을 맛보여줄 상대가 고작 팔기군 잔당들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베이징 남쪽 포대 앞에서 공화군은 멈추어 섰다.
“장군, 포격을 준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