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37
이미 보고서에 써서 영국 공사에 다 넘겼거든요.
“그렇다면 참전군을 맡을 장수와 이야기를 해보아야겠군. 어떤 분이시오?”
“예, 접니다. 한신입니다.”
“참전군의 전력을 말씀해보시오.”
그것도 다 문서에 있지만.
나는 참을성을 가지고 병력 규모와 편제, 작전실행능력 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방금 말씀드린 바는 지금의 편제일 뿐. 참전이 결정되고 나면 6개 사단 규모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과연 그렇단 말이군. 서부전선의 전황은 매일매일이 급박하니 큰 도움이 되겠소.”
“아닙니다. 서부전선은 희망하지 않습니다.”
거긴 지옥이다.
힘들게 편성한 군대를 비좁은 참호전의 구렁텅이 속으로 처박고 싶지는 않다.
이번 참전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중국군의 실력 양성도 있다.
하지만 참호전에는 작전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으니.
그저 어느 쪽이 더 개지랄 같은 흙구덩이 속에서 오래 버티는가 하는 싸움일 뿐이다.
서부전선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는데?”
“말씀하셨다시피 중국군의 역량으로 서부전선에서 제 몫을 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대신 활약할 수 있는 다른 전선이 있습니다.”
“어디?”
“중국의 넓은 영토에는 사막지대가 많으며 중국인은 더운 기후에도 잘 버팁니다. 중동 전역은 가까우며 중국군의 전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으니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이건 문서에 없는 내용이라 영국 공사도 놀란 듯 하였다.
“중동이라면···.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거요?”
“갈리폴리의 대실패 이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한 치 앞날을 알 수 없게 되었지요. 수비가 견고한 갈리폴리 대신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치고 올라가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갈리폴리란 말이 나오자 영국 외무관이 움찔했다.
그만큼 1915년 현재 진행 중인 갈리폴리 전투는 영국 최악의 실수로 기록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단번에 점령하여 중동 전역의 전투를 조기에 끝낼 생각이었던 영국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멀지 않은 갈리폴리 반도에서 수십 만 병력을 동원하여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성급한 작전의 결과는 참담하였으니.
상륙 과정에서 산화한 무수한 병사들의 목숨은 차치하더라도.
상륙 이후에도 영국군은 조금도 전진하지 못한 채, 해안가에 발이 묶여 지옥 같은 참호전을 겪고 있었다.
“돌아가는 전황을 매우 잘 알고 계시는구려.”
“장수라면 투입될지 모르는 전장의 상황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장군은 염려할 필요 없소. 아직 갈리폴리가 실패라기에는 이르오. 영연방의 병사들이 한 마음으로 항전 중이니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콘스탄티노플에 유니언 잭(영국 국기)이 휘날리게 될 거요.”
올해가 갈 때 즈음이면.
영국은 갈리폴리 전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어떻게든 병사들을 후퇴시킬 방안을 찾으려 골몰하겠지만.
지금 굳이 그걸 지적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다만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육군이 치고 올라간다면 오스만을 양방향에서 압박할 수 있으니 훨씬 효율적인 전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영국 외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군. 원하는 것이 있소?”
나는 대답 대신 리위안훙을 바라보았다.
누가 뭐래도 이 자리의 주재는 대총통.
턱을 괴고 있던 리위안훙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수십 개에 달하는 조계(임대한 외국인 거주지)를 반환받고자 하오. 또한 의화단 운동 때 청조가 맺은 신축조약의 폐기를 원하오.”
지금껏 긍정적이던 외무관의 눈살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확실히 리위안훙이 말한 두 가지는 서구 열강이 확보한 중국 이권의 핵심.
모든 굴레를 단번에 벗으려는 시도는 다소 성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다른 나라들의 권리가 섞여 있는 사안이라, 본국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아쉽지만 다른 방식의 보상을 생각해보는 게 좋겠소. 예컨대 군사 기술의 지원이라든가···.”
“물론 다른 열강의 의견들이 모여야만 가능하겠지. 중화민국은 다만 전후 회담에서 영국이 절대적으로 중국의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험. 그런 것이라면···.”
속내야 모르지만, 일단은 그럴싸하게 받아들이는 영국 외무관이었다.
이거 나중에 전쟁 끝나고서 대충 입 싹 닦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하지만 확실한 전공을 올린다면 아무리 혐성국이라도 중국을 무시할 순 없겠지.
나는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시게.”
“아편은 어쩌면 전쟁 이상으로 중국에 해악을 끼치고 있으니, 아편 판매를 중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갈리폴리에 이어 두 번째로 영국 외무관이 뜨끔한 표정이 되었다.
반세기 전의 아편전쟁은 중국에 아편을 팔겠다고 영국이 일으켰던 전쟁.
누가 영국인을 신사라 했던가. 누가 영국인을 명예롭다 했던가.
“그건 확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소. 파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중국에서 영국산 아편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오.”
이미 중국 곳곳에 양귀비밭이 생겨 영국령 인도산 아편의 수익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그리 쉽게 약속할 수 있는 거겠지만.
어쨌건 아편의 유통길은 막으면 막을수록 좋다.
조약의 큰 줄기가 잡히고 나자.
병력 수송방안부터 시작하여 영국군과 합동작전을 벌일 때의 작전권 등,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후 영국 외무부와 2차례 회담을 더 가진 끝에.
중영공동방적군사협정(中英共同防敵軍事協定)이 맺어졌다.
조약의 핵심은 영국과 중국이 공동 방위 체제를 결성한다는 것.
그에 따라 자연스레 영국과 전쟁 중인 독일, 오스만, 오스트리아-헝가리와도 전쟁 관계가 되었다.
영국의 무기 라이선스 지원을 받는 것은 덤이었다.
1915년 7월 13일.
의회에서 중화민국의 세계 대전 참전이 결정되었다.
올해 말까지 6개 사단으로 증원하여 내년 초에 출병하기로 의결되었다.
14개조를 요구하던 일본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닭을 물고 간 것이 자기보다 몸집이 수십 배는 큰 늑대이다 보니 뭐라 하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14개조 요구를 취소하여 없던 일로 만들었다.
영국은 벌써 수차례 파병을 요청하였으나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파병을 미루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얍삽하게 제 이익만 챙기는 놈보다는, 좀 덜떨어지고 미련하긴 해도 어떻게든 도우려 팔 걷어붙이는 놈이 더 예쁘게 보일 것이니.
영일동맹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었다.
대신 이번 군사협정을 계기로 영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나는 언제나처럼 다시 참전군의 편성에 몰입했다.
처음 지을 때는, 보는 사람마다 왜 그렇게 크게 짓느냐고 의아해 하던 한양의 거대 병영이 병사들로 북적거리고 생활관이 땀 냄새로 후덥지근했다..
에어컨···. 에어컨의 발명은 아직입니까!
참전군 6개 사단.
바야흐로 8만에 달하는 정예 병력.
중기관총대대와 중포대대를 따로 두어 화력에서만큼은 전 중국 최강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역시 우수한 지휘관의 부재.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다.
6개 사단의 지휘를 나 혼자서 맡을 수는 없었다. 최소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장군급이 필요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 얼추 정리되었을 무렵, 나는 짐을 꾸렸다. 목적지는 윈난성이었다.
일전에 차이어가 날 스카우트하려고 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함이었다.
***
윈난성은 덥고 덥고 또 더웠다.
그래서 에어컨 발명이 언제냐고.
의자에 대자로 몸을 뻗고 차이어를 기다렸다.
문득 건장한 병사들이 낑낑거리며 큼지막한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이게 뭐냐?”
병사가 대답하려는 찰나,
나는 상자 안의 기물들을 보고 정체를 알아차렸다.
“워게임입니다.”
“독군께서 좋아하시나 보군.”
“그게···. 수년을 연구하여 겨우 만드셨는데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
“왜?”
“규칙이···, 많이 복잡합니다.”
“설명서가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쿵! 병사가 설명서를 내려놓자 먼지가 풀썩 날렸다.
이거 몇페이지야. 100페이지는 그냥 넘어갈 것 같은데.
첫 장을 넘기자 사뭇 비장한 차이어의 친필이 펼쳐졌다.
– 「군사병략모의(軍事兵略模擬)」는 2인이 서로 군략을 겨루는 도상 연습이다. 지형과 병참, 군대의 편제와 작전술 등을 모두 고려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본 모의를 마친 후에 지휘관이 마치 실제 전투를 치른 것과 같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순서대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일목요연하게 룰을 설명해 나가는 차이어의 차분한 문체 덕에 방대한 양임에도 술술 읽혔다.
과연 중국 최고의 군략연구가라는 칭호가 허명이 아닌 셈이었다.
보통의 워게임은 역사 속의 특수한 전투를 지정하여 모의 전투 형식으로 진행한다.
일본 육사에서 겪었던 워게임 역시 뤼순공방전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차이어의 것은 달랐다.
지형과 병력 편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구성하여 어떤 전투든 재현해 낼 수 있고, 또 어떤 가상의 전투도 시도해 볼 수 있게끔 고안되어 있었다.
게다가 군기와해에 따른 모랄빵이나, 날씨 등의 무작위성을 추가하여 다회차 플레이도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었으니.
이거. 물건이었다.
정신없이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자.
눈앞에 차이어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떤가요? 괜찮습니까?”
“이거, 당장 해보죠.”
“그 말씀만 기다렸습니다.”
워게임 군사방략모의.
시자아아아아악하겠습니다!
“가상의 군대와 전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이어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물어 왔다.
이렇게 기대에 찬 차이어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
“한 번 보죠.”
소총보병 중심의 군대, 포병화력 중심의 군대, 기동전에 특화된 기병 중심 군대까지 다양한 선택지.
전장의 기후와 지형도 고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병과 기병 중심으로 꾸리되, 전장은 사막으로 합시다.”
“사막이라, 이유가 있습니까?”
“글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중동의 전장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선 환경.
물론 나뭇조각을 가지고 하는 모의 전투로 그러한 환경을 충분히 체험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 단편적인 인상을 받을 수만 있어도 개이득이다.
“그럼 사막을 기본으로 놓고 무작위 규칙에 의거하여 지형을 만들어 보지요.”
“규칙에 위반되는 것은 알지만, 제가 직접 설정해도 되겠습니까?”
뜻밖이라는 듯 묵묵히 서 있던 차이어가 빙긋 웃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무언가 노리는 게 있으신 모양인데, 기대하겠습니다.”
두꺼운 종이로 제작된 지형 카드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지도를 구성했다.
부대 또한 내 마음대로 기물을 배치하였다.
“끝났습니다. 시작하시죠.”
“이건···! 중양(中洋, 중동)이군요.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닙니까.”
어케 알았누?
“역시 식견이.”
“군사방략모의를 개발하며 전 세계 전쟁사를 많이도 연구했지요. 그래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중양의 전쟁이라면···, 짐작가는 바가 있지만 일단은 게임에 집중해 봅시다.”
“선공하시죠.”
“제작자 입장에서 어찌 그러겠습니까. 먼저 부탁드립니다.”
군사방략모의는 세 개의 페이즈로 구성된다.
1. 이벤트 페이즈 :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뒤섞인 이벤트 카드를 뽑는다.
2. 작전 페이즈 : 순찰과 진군, 원조와 돌격 등 여러 가지 작전을 골라 시행한다.
3. 전쟁 페이즈 : 양 부대가 맞닥뜨리면 조건에 따라 주사위를 굴려 전투를 실행한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이벤트 카드를 뽑았다.
작전에 따라 내가 이벤트를 섞어 넣을 수도 있지만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전장이 사막이니만큼 당연히···.
카드.
부대의 사기가 떨어진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지역 안정에 힘썼다.
우호도는 중요한 요소.
타지에서 작전을 실행할 때 가장 주요한 선결 요소는 토착민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차이어의 턴.
그는 카드를 뽑지 않고 한참 동안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 번에 중동, 그것도 메소포타미아 전역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차이어이니 양쪽 군대가 의미하는 바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병력의 질은 평범, 어쩌면 허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기후와 지형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강인하게 전투의지를 불태우는 차이어의 군대.
오스만 투르크 제국군과 판박이였다.
대신 내 쪽은 병력이 더 많았으나.
기후와 지형 이벤트를 뽑을 때마다 사기가 계속해서 떨어졌으며.
식수 조달에 고통을 받는 한편 지역 토착민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중화민국의 참전군이었다.
비로소 뽑은 차이어의 카드는 역시 . 그러나 불이익은 없었다.
그는 방어참호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정답에 가까운 플레이였다.
이 전쟁의 구도는 누가 보아도 차이어가 수비 하는 쪽.
내가 공격하여 깨뜨려야 하는 구도였으니.
한동안 두 사람 모두 카드를 뽑고 기물을 옮기는 행위에 집중하였다.
나는 주둔지를 안정시키고 철도를 정비하였다.
강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보급선(補給船) 또한 확충하였다.
점차 우호도가 증대되어 카드를 뽑아도 자원에 타격이 가해지지 않게 됐을 무렵.
차이어는 어느새 도시 주변으로 견고한 이중의 참호를 완공한 뒤였다.
그가 말했다.
“역시 게임은 게임일 뿐이군요. 실제 전장을 담아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갑자기 왜?”
“전쟁 역시 정치적 행위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일 진데, 전쟁의 양상만 가져와 도식화하니 이렇게 돼버렸군요.”
“이렇게라는게 무슨 의미입니까?”
워게임 초반에 생기로 반짝거리던 차이어가 어쩐지 풀이 죽어 있었다.
“정치가 빠지니 구도가 단순해졌습니다. 한신 장군은 공격, 저는 수비. 한커우와 베이징에서 장군이 몸소 증명하셨지요. 작정하고 참호를 파 수비만 할 경우에는 깨뜨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차이 장군의 승리라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어느 쪽도 상대의 본대를 항복시킬 수 없으니 무승부라 해야지요.”
“아니요. 다릅니다. 이 전황은 지키고자 하는 차이 장군과 뚫고자 하는 제 싸움이니, 수비에 성공한다면 차이 장군의 승리입니다.”
승리라는 말에도 차이어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만 접으시겠습니까? 더 하는 의미가 없군요.”
“설마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뭐가 말입니까?”
“바그다드를 점령하겠습니다.”
차이어가 대놓고 우주 방어를 펼친 도시.
지금부터 나는 그 도시를 중동의 바그다드로 칭하기로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군대를 가동하자 차이어의 눈빛이 비로소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갈라진 두 개의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따라 거침없이 중국군이 북상했다.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해봐야죠.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결국 전쟁의 결말은 우연성에 기대고 있으니, 주사위의 신이 강림하길 기대해 봐야죠.”
“재밌군요.”
차이어는 차분하게 오스만군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어떤 방면으로의 공격도 모두 수비할 수 있는 완벽한 방어였다.
마침내 중국군이 바그다드 바로 앞까지 진격하자 그제서야 차이어도 바싹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바그다드를 지나쳐 내륙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갔다.
“그렇게 나오신다고요.”
“확실히 차이 장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수비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따라서 군략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적은 공격해오고 아군은 수비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사막의 기후에 적응하고 토착민을 안내자로 둔 중국군은 파죽지세로 바그다드의 후방을 잇는 철도를 장악해나갔다.
“주사위 굴리겠습니다.”
철도를 지키는 차이어의 군대가 얼마간 있었지만.
압도적인 군세로 찍어 눌렀다.
오스만 영토의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였음에도 보급은 문제없었다.
때는 겨울. 건기가 지나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의 수량이 한창 풍부할 때여서 보급선이 안정적으로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겨울까지 일부러 기다리신 겁니까?”
“아다리가 맞은 거죠.”
자신의 영토가 유린당하는데도 차이어의 얼굴에는 오히려 활기가 되살아났다.
본토의 보급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바그다드의 군대가 드디어 참호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시작은 바그다드를 지켜내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는데.
전투는 전혀 다른 곳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차이어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중국군을 쫓는 대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을 통한 보급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나와 똑같은 전략이었다.
눈을 뻔히 뜨고 당할 수는 없으니, 나는 도로 회군하였다.
바그다드를 지나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합쳐지는 유역.
차이어의 오스만군 3개 사단과 나의 중국군 4개 사단이 사막평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섰다.
“결국엔 이렇게 됐군요. 참호를 벗어나 평야에서 맞붙게 되다니.”
“불평입니까?”
“아니요. 역시 한신 장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 군대를 끌어내는데 성공하셨잖습니까. 초심자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양군이 마주한 폭풍전야.
차이어의 턴.
이벤트 카드를 뽑은 차이어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작업질을 해서 섞어놓은 카드가 여기서 빛을 발하는군요.”
“좋은 거 나왔습니까?”
자랑스레 내보이는 카드엔 이라 적혀 있었다.
좀 전에 작전의 일환으로 카드 더미에 섞어 넣었던 것이 회전 직전에 뽑힌 것이었다.
단순 운이라기에는.
결국 미래를 내다본 차이어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지하드(이슬람에서 성전을 의미)에 따른 아랍군의 증원인 겁니까?”
“그런 셈이지요.”
차이어는 배수진을 피하기 위해 강의 상류로 이동하였다.
서로 진영이 뒤바뀐 채 보급 없이 결전을 준비하는 상황.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쪽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컸다.
내 턴이 왔다.
이벤트 카드를 뽑았다. 뽑힌 카드는···.
차이어와 똑같은 .
이거 갓겜이네?
차이어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점령군에서 토착병력 증원이라니. 이게 가능한 겁니까?”
“게임의 설계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도 운이지만. 초반에 제가 열심히 방어선을 건설하고 있었을 때, 한신 장군은 기후적응과 토착민과의 관계 개선에 힘썼었지요. 지금 보니 제 방어선은 활용을 못 하고 있는 반면 한신 장군의 안배는 적절히 활용되고 있군요. 제가 몇 수 뒤져있는 게 분명합니다.”
나는 괜한 말 말라는 뜻으로 손사래를 쳤다.
굳이 고증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아랍 민족이 갈가리 찢긴 채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오스만과 중국 양쪽 모두가 아랍군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가능성 있는 구도였다..
나는 이벤트를 마치고 작전 페이즈로 들어갔다.
병력의 수는 내쪽이 더 많다.
급한 기동전인 탓에 양쪽 모두 포병화력은 미약하거나 없는 수준이다.
이런 경우에는 역시 고전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 최고다.
나는 우익에 주력 보병대를 세우고 기병대를 좌익으로 우회시켰다.
다시 차이어의 차례였다.
그 또한 망치와 모루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차이어는 기동이 좋은 아랍군을 움직여 기병대의 우회를 차단했다.
다시 내 차례.
“이런. 이라니.”
처음보는 이벤트 카드.
보급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갔다.
오래 끌 수는 없다. 적어도 다음 턴에는 전면전을 해야한다.
나는 차이어의 아랍군에 상관않고 그대로 기병대를 돌격시켰다.
동시에 우익의 주력보병 또한 진군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차이어가 말했다.
“다음 턴에 오시겠군요. 이제 제게 선택의 기로가 왔습니다. 선공을 가할지, 아니면 전장에서 상대를 기다릴지.”
이미 차이어는 유리한 고지대를 장악한 상태.
누가 보아도 기다리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그러나 차이어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아무래도 꺼림칙하군요. 분명 무언가 노리고 계신게 있는데 확실히 알 수가 없으니. 저는 선공을 택하겠습니다.”
스스로 요지를 포기한 차이어가 일대 공세를 펼쳐왔다.
지형과 사기에 따른 유불리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엔 양군이 정면으로 맞붙는 대규모 회전이었다.
“주사위 굴리겠습니다.”
전투는 총 2곳에서 일어났다.
좌익의 기병대와 아랍군의 싸움.
우익의 보병주력간의 싸움.
승패는 반반이었다.
좌익의 기병대는 아랍군을 대파하였으나.
보다 중요한 우익에서는 밀고 밀리는 접전의 양상이 나왔다.
“한 턴 더 필요하겠군요. 한신 장군의 차례입니다.”
나는 을 통해 얻었던 아랍군을 움직였다.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게릴라 부대였다.
“아하! 노리시는 게 그거였군요, 아랍군을 게릴라로 굴려 후방 교란작전을 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턴만 더 있었더라면 게릴라군을 오스만군의 후퇴를 막는 모루로 쓰고 주력보병을 돌격시켜 망치와 모루를 실현할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전투는 진행중입니다.”
차이어의 말대로였다.
10만이 넘는 군대가 뒤엉킨 대규모 전투.
지난 번에 백중세를 보였던 양군의 전투의지는 여전히 살아 펄떡이고 있었다.
주사위가 또르륵 굴렀다.
후방이 불안했던 오스만군이 중국군의 일제 돌격에 치명상을 입고 무너졌다.
차이어가 감탄하여 말했다.
“저는 전쟁사를 공부하며 보병은 모루고, 기병은 망치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현대전은 전혀 양상이 다르군요. 보병대가 기병과 같은 파괴력을 가질 줄이야.”
“예, 기병대는 애초부터 눈속임이었습니다.”
“정말 완벽하게 속았습니다. 이거야 말로 제가 군사방략모의에서 가능했으면 싶었던 그런 꿈의 전투입니다!”
주사위를 굴릴 수록 오스만의 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럼에도 차이어는 싱글벙글이었다.
바그다드에 중국군이 입성하는 것으로 군사방략모의는 종료되었다.
정오에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 사람 다 어찌나 깊이 몰두하였던지.
차이어가 문득 내 눈치를 보며 몸을 움짤거렸다.
“왜 그러시지요?”
“혹시···.”
“말씀하세요.”
“한 판 더하시겠습니까?”
나는 밥부터 먹자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밥 먹고 한 판 더하자는 말로 알아들을까 봐.
대신 윈난을 방문한 본 목적을 꺼냈다.
“한 판으로 되겠습니까?”
“예?”
“방금의 전장을 구성한 이유는 차이 장군도 짐작하시겠지요. 저는 이르면 내년 초,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출병할 겁니다.”
“사막의 전쟁이라···.”
“참전군은 2개 군으로 나누어 운용될 겁니다. 제1군은 제가 맡는다 해도 제2군을 맡을 장수가 지금으로서는 마땅치 않습니다.”
차이어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참전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어째서 중국과 상관없는 먼 나라의 전쟁에 목숨을 내걸려 하는지 의구심을 가득 품고 보고 있지요.”
“확실히···, 그렇지요.”
“하지만 국제사회는 피와 땀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은 아시아의 병자라는 비웃음에 시달려 왔습니다. 저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그 인식을 바꾸고 싶습니다.”
차이어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모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냅다 말했다.
“저는 차이어 장군이 참전군의 제2군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예, 그러지요.”
거절할 경우, 차이어를 유혹할 몇 가지 군사지원 방안을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속 시원한 대답.
“단,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파병 전까지 저와 군사방략모의를 최소 10차례 이상 해주셔야 합니다.”
음···.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우한에 폭풍우가 분다!
참전군의 군세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