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46
“소문이 사실이라면 방심할 수는 없지요.”
“어떤 소문?”
“쑨원이 출마한답니다.”
그 얘기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중화민국이 개국한 이래, 온갖 사건이 휘몰아쳤으나.
그때마다 쑨원은 멀찍이서 관망만 했을 뿐, 한 번도 주도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오늘날 그는, 신해혁명 이전에 쌓아 올린 명성을 깎아 먹으며 간신히 정치생명을 연명하는 위인에 불과하였다.
“별로 어려운 상대 같지는 않습니다만.”
“장군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동맹회에 있던 당시부터 쑨 선생과 잦은 교류를 해 왔습니다. 그의 결단과 추진력은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니, 어떤 변수를 몰고 올지 모릅니다.”
확실히 쑨원이 꿈꾸는 고고한 이상과 그 순수성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어떻게 져.
쑹자오런이 날 보며 말했다.
“물론 확실히 이길 방법은 있습니다.”
“어. 좋네요. 그렇게 하시죠.”
“들어보지도 않고요?”
“예. 본부장님께서 하시는 선거 전략에 잘못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공화당은 그럼 대총통 후보에 리위안훙, 부총통 후보에 한신이 입후보하는 거로.”
우왁, 이건 뭡니까.
반사적으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니, 제가 왜 부총통을.”
“확실히 이길 방법을 택한 겁니다. 국사무쌍의 한신을 후보로 내세우면 그 어떤 변수도 잠재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번 총선 승리를 분석하면서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지요. 한신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라는 걸. 대중들은 공화당에 투표한 것이 아닙니다. 한신에 투표한 거예요.”
물론 감투는 좋아해.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것은 야망에 찬 인간의 당연한 욕구.
하지만 여기서 더 어그로를 끌고 싶지는 않다.
중국 전역에 퍼진 내 이미지는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청렴결백하며 오직 중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참된 장수.
실제와 차이가 크긴 한데. 어쨌건 좋은 이미지다.
하지만 생각해볼 지점이 있었으니.
지금의 나는 이름 덕에 초한 쟁패기의 한신에 비견되곤 한다.
하지만 그는 용병술로 불세출의 무쌍을 찍었던데 반해.
정치력은 턱없이 모자라 전쟁이 끝난 후 유방에 의에 맥없이 숙청당하였다.
나 또한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한신의 신화는 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실제로 그러하든, 그러하지 않든. 이미지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니.
리위안훙에게는 미안하지만 베이징의 똥통에서 함께 허우적대고 싶지는 않다.
“저는 안 합니다. 대신 적절한 후보를 추천하지요.”
“누구요?”
한신의 신화 말고도, 중화민국에는 또 다른 신화가 있잖은가.
“특사 임무를 마치고 쉬고 있는 량치차오 선생입니다.”
차이어의 스승 량치차오.
군신의 유지는 스승이 잇는다.
***
안후이파의 본거지.
돤치루이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가만히 책상에 놓인 쪽지를 들여다보는데 위안스카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각하···. 당신도 이리 힘들었나? 젠장, 가끔은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군.”
그때, 문밖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발탁하여 장차 안후이파의 거두로 키우고 있는 장수. 쉬수정이었다.
“들어와.”
돤치루이는 항상 즈리파가 부러웠다.
즈리파에는 이상하게 인재가 넘쳐났다.
펑궈장이 반역죄로 감옥에 갇힌 후에도, 차오쿤이 나타나 즈리파를 수습했고.
우페이푸, 펑위샹 등의 쟁쟁한 장군들이 건재하고 있다.
반면 안후이파는 별달리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다.
쉬수정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쭐 말이 있어 왔습니다.”
“해봐.”
언제 보아도 듬직한 덩치.
우페이푸보다 키는 작으나 떡대는 더 큰 것 같다.
쉬수정이 입을 열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갑자기? 이럴 때가 무슨 때인데?”
“우리는 온갖 음해에 시달리고 있지요. 사람들은 고개를 내젓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참전3군이 결성되어 서북변방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국민들 시선도 달라질 겁니다.”
“외몽골 출병 얘기로군.”
어째서 위안스카이가 언론을 때려 막았는지 알 것 같았다.
눈엣가시 같은 가 참전군 편성에 일본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모든 일이 꼬였다.
“황색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중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국민들이 알아주는 날이 올 겁니다.”
“진실?”
돤치루이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진실이 뭔데?”
“변방을 안정화하려는 참전3군을 시기하여 특정 신문이 악성 기사를 날조하였다···. 아닙니까?”
“이걸 봐.”
책상에 놓여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언젠가는 쉬수정에게도 밝혀야 할 일이었다.
몸집에 비해 작은 눈을 깜박거리며 문서를 읽은 쉬수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진실입니까?”
“그래.”
일본에서 받기로 한 차관의 내역에 대한 기술.
문서의 정체는 돤치루이-쑨원 동맹에 의거한 비밀협정서였다.
철도와 케이블, 전신 등의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대가로 1억엔이 넘는 금액을 지원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돤치루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쉬수정을 살폈다.
같은 파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민감한 문제.
쉬수정이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돤치루이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역시···.”
“뭐라고? 뭐가 역시인가?”
쉬수정이 이전보다 두 배쯤 커진 눈을 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역시 진실은 바뀌지 않는군요. 이 돈은 입금이 되었습니까?”
“이제 절반 정도.”
“최고입니다! 이 돈만 있으면 그 자식이 했던 말도 완전 허튼소리가 아니게 됩니다.”
“그 자식이라니?”
“국민당의 왕징웨이 말입니다. 제게 천하통일을 말했었지요. 크흐흐.”
쉬수정의 반응은 돤치루이로서도 뜻밖이었다.
분노하기는커녕 기뻐하고 있었다.
천하통일 운운하며 한술 더 뜨기까지 한다.
“전국적으로 반일 감정이 불타오르고 있네. 자네는 일본에서 차관을 빌려 쓰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가?”
“저는 외교는 잘 모릅니다만, 실리(實利)가 중요하다는 정도는 압니다. 문서를 보니 각하가 니시하라라는 일본인에게 약속하신 이권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데 비해, 받을 돈은 명확하게 적혀있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응? 그, 그렇지.”
당장 돈이 급하였을 뿐이지.
특별히 세세한 부분까지 따진 바는 없었으나, 쉬수정이 말하는 요지 또한 명확했다.
“22개조 요구에서 처참한 쓴맛을 보고, 일본이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요. 정식 외교라인도 타지 않은 채, 니시하라같은 신분도 불명확한 인물을 내세워 엉망진창 계약을 맺다니. 이것 보십시오. 만주와 몽골의 철도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일본이 구입할 권리를 갖는다는 건데. 누가 만몽, 그 거지 같은 땅에 철도를 세우겠습니까? 계획도 없는데 이미 그 채권을 2,000만엔에 팔아넘겼습니다. 장강의 물을 팔아도 이보다 큰 이익을 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어려서부터 장쑤성 전체에서 신동으로 불렸던 이유가 있다.
자신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직시해내는 쉬수정이었다.
“가만있자. 일본이 이같은 대규모 차관을 공화정부가 아닌 각하 개인에게 제공하였다는 사실은···.”
“협정에 나 혼자만 관련된 건 아니야. 국민당의 쑨원이 보증을 서주었네.”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일본제국은 각하를 차기 중국의 지배자로 점찍은 겁니다!”
“나를?”
“그렇지 않습니까. 불명확하긴 해도, 이처럼 막대한 이권들을 단지 육군부장관의 재량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본은 각하가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돤치루이는 가만히 니시하라 차관이 적힌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쉬수정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문서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금 보물단지처럼 보인다.
왜,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거지?
아참, 그것 때문이지.
“자네, 말을 참 잘하는군. 그럼 문서의 마지막 부분은 어찌 해결해야 하겠나? 일본이 다시 2,000만엔 규모의 차관을 약속하며 시베리아 출병을 요구하고 있어. 이전부터 맺어오던 관행이 있으니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출병을 거론했다가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거야.”
“하죠.”
“하자고?”
“사실 제가 오늘 각하를 찾은 것은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우직하게 우리의 길을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온 건데, 덤으로 2,000만엔이라는 거금까지 생긴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지요.”
일거에 딱 정리해주니 마음은 편한데.
수습은 어찌할지 고민되는 돤치루이.
“국민 여론은 그렇다 쳐도···,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을 텐데?”
“각하. 우리가 일전에 했던 대담을 잊으셨습니까?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이미 결정했던 것 아닙니까?”
“그랬지.”
“장군부의 견제로 육군부의 예산을 써서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어렵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군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육군부 산하에 따로 전쟁청을 만들지요. 니시하라 차관을 전쟁청의 예산으로 돌려쓰면 독단으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불안 요소가 남아있다.
“그런데 말이야···. 장군부에는 한신이 있잖아.”
“갑자기 그자는 왜 언급하십니까?”
“육군부에서 단독으로 군대를 움직이면, 정부에서 가만히 있겠나? 당장에 중지시키려 들거야. 안되면 무력진압을 시도하겠지. 그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장군부의 한신. 인정하긴 싫어도 놈은 전쟁의 천재야. 괜히 회음후 한신의 부활이라며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니까.”
펑궈장은 수십 년간 동고동락한 동료였다.
적어도 군사 부문에 있어 펑궈장은, 감히 돤치루이가 따라갈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정치력이 부족한 탓에 북양의 개라고 놀림당하며 저평가받은 펑궈장이지만.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돤치루이는 펑궈장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다.
그런 펑궈장이 단 한 번의 승리도 맛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낮잡아 본 것도 아니었다. 펑궈장은 한신을 일생일대의 적수로 여기며 자신의 총력을 기울여 상대했다.
그럼에도 졌다.
펑궈장과 한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들을 복기하며.
돤치루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신과는 전선을 맞대면 안 된다는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똑같은 말을 또 드려야겠군요. 각하와 저는 이미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저들이 전쟁을 일으켜주면 의회의 동의를 받거나, 장군부의 인가를 받을 필요도 없이 북양군을 움직일 수 있게 되니. 전쟁은 오히려 이쪽에서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한신이야. 자네는 자신 있는가?”
쉬수정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일본에서 사관학교를 다니던 때가 기억나는군요. 놈은 애송이입니다. 제 군대를 상대하려면 10년은 더 전훈을 쌓아야 할 겁니다.”
마음이 정리되자.
북양 호랑이의 야성도 되살아났다.
돤치루이는 으르렁거렸다.
“좋아, 일본 공사에 연락해야겠어. 적백내전? 중국도 참전한다. 시베리아 파병이다.”
우한시의 한양병공창은 청나라 때부터 중국 최대의 무기공장이었지만.
후베이성의 발전에 따라 몇 차례 증축을 거치며,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최첨단 군사시설이 되었다.
나는 일단의 장교들을 이끌고 한양병공창을 방문했다.
오늘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지의 악마가 강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병공창의 공터.
특공대장 샤즈광이 카탈로그를 뒤적거렸다.
“대장, 아무래도 아깝습니다. 제 눈에는 역시 Mk-V가 좋아 보이는데요.”
“명예로운 영국 신사분들이 최신 무기는 팔기 싫다는데 어쩌겠냐. Mk-IV도 나쁘지 않아.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봤던 고철 덩어리들보다야 훨씬 낫지.”
“실물을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늦은 오후.
꺽꺽거리는 거친 엔진음을 내며 영국에서 수입한 Mk-IV가 병공창 부지에 들어섰다.
참호돌파를 위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무한궤도와 방탄장갑은 견고한 느낌을 준다.
포탑 대신 루이스 기관총이 달린 점은 조금 아쉽지만, 이 시대 전차의 목적이 참호를 돌파하여 적병을 사살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오오오! 대장 들립니까?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저 강철의 박동이? 저 안에 들어가서 한커우 평원을 질주하면 어떤 느낌일지 온몸이 짜릿짜릿해집니다.”
샤즈광이 호들갑을 떨었으나.
아무래도 내 눈에 찰 정도는 아니다.
역사상 최초의 전차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실 Mk-IV의 외형은 전차라기보다는 트랙터 같은 걸.
“한커우 평원에서 질주한다고? 이거 최고 속력 아냐? 사람이 뛰는 것보다 느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질주는 필요 없다. 이 전차의 용도는 보병을 호위하는 거니까. 오히려 보병과 발맞추는 속도가 좋아.”
나는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한 털보가 장갑차를 뚫을 것처럼 열렬히 몰두해 있었다.
한양병공창의 대표, 리쯔위.
예전에 일본의 미쓰이물산이 한야평공사를 집어삼키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리쯔위는 한야평공사의 대표였고 미쓰이물산의 압력을 견디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자금을 마련하여 제때 인수할 수 있었다.
독일 뮌헨공과대학에 유학한 리쯔위는 중국의 몇 안 되는 슈퍼공돌이다.
나는 리쯔위를 신임하여 요 몇 년간 한양병공창의 군수산업을 일괄 담당하도록 하였다.
덤으로 영국과 미국 등지의 무기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리쯔위를 보좌할 인재들도 키웠다.
“직접 보니 어떤가?”
“가까이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Mk-IV가 기동을 멈췄다.
리쯔위는 천천히 다가가 손바닥으로 전차의 장갑을 쓸어내렸다.
멀리서도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샤즈광이 이죽거렸다.
“대표님! 짝사랑하던 여자라도 만났습니까? 흐흐흐, 뭐 그리 수줍어하십니까?”
리쯔위는 놀림에도 아랑곳 않고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궤도의 바퀴와 트랙을 어루만졌다.
주먹으로 살살 두드려보고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등의 절차가 이어졌다.
강철장갑에 코를 박고 있던 리쯔위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동자는 용광로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해보겠습니다.”
“뭘 말인가?”
“시제품을 생산해보겠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앗, 들켰나. 하긴 뻔했지.
나는 리쯔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전차와 관련하여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 대전쟁 중에 신무기가 개발되었고, 한 대를 수입하였으니 살펴보라는 언질을 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국산 무기에 대한 나의 지대한 열망이 알게 모르게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짧은 시간에 리엔필드 소총을 국산화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야.”
“단지 베낀 것이라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렇다기에는···. 한양병공창에서 만든 한양식 리엔필드를 본 영국 병사들이 난리라던데? 자기 거와 바꾸자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며. 내구성이 좋다더군.”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Mk-IV 전차 기동식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뜻밖의 소식과 마주쳤다.
베이징에서 북양군 제9사단이 의회의 허가 없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
선거본부를 차린 베이징의 호텔.
언론에서 공화파라 일컫는 주요 인물 4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선의 러닝메이트인 리위안훙과 량치차오.
그리고 선거본부장 쑹자오런과 나였다.
량치차오가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최악의 사태는 막았습니다.”
“최악을 막았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나? 그놈들은 사실상 군사정변을 일으킨 거야! 당장에 쳐죽여야지!”
“군사정변···, 은 아니지요. 제9사단, 아니 소위 말하는 참전3군이 정부를 뒤엎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아니야! 자네는 군인이 아니니까 모르는 거야. 군인에 있어 명령받지 않은 군사행위는 그 자체로 반역이라고!”
량치차오와 리위안훙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나는 가만히 보고서를 들여다보았다.
일주일 전, 제9사단의 병력 일부가 갑작스레 차출되었다.
포병대, 기병대, 기관총대까지 골고루 포함된 병력이 톈진항으로 이동해 일본의 군함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했다.
시베리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내전에 참전하기 위함이었다.
의결한 적 없는 군대의 움직임에 의회는 당황하여 육군부에 따져 물었다.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의회는 이미 대전쟁이 벌어질 당시, 참전을 결의한 바 있고.
이번 시베리아 출병은 미영프일을 비롯한 협상국 지도부의 요청에 의거한 작전이므로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따로 의결할 필요없이 육군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참전이라는 얘기였다.
상위기관인 장군부와 전혀 협의가 없었던 점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나를 식물 대총통이라고 뒤에서 비웃는 건 좋다 이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앞에서 대놓고 이따위 수작을 벌여? 일언반구도 없이 육군부 나부랭이가 제멋대로 파병을 결정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취하지 않은 리위안훙은 오랜만이다.
부처라 불리는 그가 역정을 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봐, 한신! 보고서는 다 읽었잖아! 너도 말 좀 해보라고.”
” ···. 중요한 것은 돤치루이의 속내겠지요.”
“속내는 뭔 속내? 그냥 우릴 개밥으로 본 거야.”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릴 개밥으로 본거지요. 그렇다면 우릴 개밥으로 보고 멋대로 참전군을 편성한 안후이파의 저의가 뭘까요?”
리위안훙은 고민하는 척도 안 하고 외쳤다.
“빨리 말해주기나 해!”
“전쟁입니다.”
“어···, 어어?”
“놈들이 굳이 시베리아 전선에 나가서 생고생할 이유가 뭐겠습니까?”
“뭔데?”
“일본이 75,000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였으니, 그러한 일본군에게서 군자금 같은 대가를 받았든가···. 혹은 안후이파의 병력을 결집할 목적이라던가···.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요. 확실한 것은 자금을 받았든, 병력을 결집하였든, 공화정부에 반기를 들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전쟁이 언급되자 듣고만 있던 쑹자오런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모른 척하고 말을 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을 막고 되도 않는 강짜를 부리는 인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길을 가려 해도 비키질 않으니 바퀴로 밟아주길 원하는 줄 알았는데, 정작 바퀴가 살짝 스치면 죽는소리를 하며 되려 시비를 걸어오지요. 지금 안후이파가 하는 짓이 딱 그 꼴입니다.”
듣고 있던 쑹자오런이 말했다.
“그 말은 안후이파는 전쟁을 통해 공화정부를 뒤엎고 싶어하고. 협의되지 않은 이번 시베리아 출병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시빗거리라는 거군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이해도 가고요. 하지만 대선이 바로 다음 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그것도 내전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야! 쑹자오런, 너는 배알도 없냐? 한신이 말하잖아. 돤치루이, 그 새끼가 우릴 개밥으로 본 거라고. 근데 참고만 있으라고?”
“정치는 인내입니다. 마지막까지 참는 자가 승리하는 겁니다.”
“아냐. 틀렸어. 정치는 전쟁이다. 다 죽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새끼가 승리하는 판이다.”
량치차오에 이어 쑹자오런과 두 번째 설전을 벌이는 리위안훙.
결판이 나지 않자, 두 사람은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내 안색을 살폈다.
“장군. 육군부의 단독행동은 괘씸하지만, 의회정치로 충분히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돤치루이는 파면될 거고 죄질에 따라 정치감옥에 들어가겠지요.”
왼쪽에서 쑹자오런이 떠들고.
오른편에서는 리위안훙이 핏대를 올렸다.
“한신. 우리는 얕잡아 보이고 있어. 안후이파에 두려움이 뭔지 알려줘야지. 필요한 건 피의 응징이다.”
이건 마치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 같지 않은가.
내가 말을 않고 있자 쑹자오런이 의자를 바싹 땅겨오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잘해왔잖습니까. 이제야 공화정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베이징에서 또다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공화의 의미를 생각해주십시오.”
“공화요?”
나는 띄엄띄엄 말했다.
“공화의 정수는 법치입니다.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이 합의한 절차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지요. 육군부는 그 절차를 어겼습니다.”
“그 말은?”
“먼저 돤치루이에게 책임을 묻죠. 그가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사태는 수습될 겁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뒷말을 직감한 쑹자오런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고.
량치차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위안훙은 얼굴이 홍조가 돼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거부한다면, 그땐 전쟁입니다. 공화파와 안후이파의 전쟁이요.”
베이징에서 열린 공화당의 회담 이후.
나는 후베이성으로 돌아와 조용히 군대 소집에 나섰다.
돤치루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불을 보듯 명확했으니.
***
톈진의 독군단 회의.
북방의 내로라하는 독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최자는 과거 북양삼걸의 일인이었던 북양의 용, 왕스전.
모두의 존경, 혹은 무시를 받는 그가 아니었다면 제각기 갈라진 북양군 파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 오셨습니까?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안건은 중화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왕스전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으나 누구 하나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명색은 평화 회담이라는데.
어째 장내에는 비장감이 감돈다.
“아직 장관이 오지 않았소.”
“장관? 아 돤치루이를 말하는군요. 언제 도착하는지 아십니까?”
왕스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의장 문이 활짝 열리며 돤치루이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여기 있소.”
돤치루이가 등장하자, 안후이파의 독군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일부 움직이지 않는 즈리파의 군벌들 또한 여럿이었다.
돤치루이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왕스전 가까이 다가갔으나.
곧바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 선 채 말했다.
“왕 원로.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있군.”
“어···. 그런가? 어디 보자, 자리 배치도가 어디 있더라.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왕스전이 부산을 떨며 배치도를 찾는 동안.
돤치루이는 우뚝 서서 왕스전의 오른편에 앉은 자를 노려보았다.
그자는 돤치루이가 자기를 노려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차오쿤. 못 들었나? 거긴 내 자리야.”
“어? 그래? 에이, 아무 데나 앉자고.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저쪽이 비었네. 저기 앉아.”
돤치루이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차오쿤 이 새끼···. 펑궈장의 따까리였던 자식이 즈리파의 수장이 됐다고 나와 맞먹으러 들어?
거칠게 욕지기를 쏟아내려는 찰나,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올려다 보니.
차오쿤의 뒤에 우뚝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구가 있었다.
뭐야, 이놈은?
그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서릿발 같이 냉랭한 눈빛을 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패도적인 기세 앞에 돤치루이는 이상하게 오금이 저려왔다.
분명 북양의 호랑이는 자신인데, 그 앞에서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 찾았네!”
왕스전이 누덕누덕한 종이를 꺼냈다.
“으음. 어디보자···. 아니, 이게 아니네. 돤치루이 조금만 기다려봐. 분명 여기 어디 있었는데···.”
“됐소. 왕 원로. 내가 자리를 양보하겠소.”
돤치루이는 성큼성큼 걸어 차오쿤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오쿤이 능글능글한 시선을 던졌으나 돤치루이는 차오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차오쿤의 뒤에 서 있는 거인.
즈리파 제3사단장 우페이푸.
돤치루이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놈은 위험하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자신의 오른팔, 쉬수정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돤치루이는 왕스전의 말을 가로채며 외쳤다.
“회의를 시자···.”
“공화정부에서 내게 맨몸으로 의회에 출석하라더군. 이게 무슨 의미겠소? 저놈들은 중화민국의 정치, 사법, 행정에 이른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이제는 군대까지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소. 더 두고 볼 거요? 오늘이 바로 갈라졌던 북양군이 다시 뭉치는 날이오! 북양파가 공화파를 몰아내고 대권을 얻는 거요!”
북양파가 천하를 먹자!
돤치루이의 호쾌한 선언!
하지만 호응하는 자는 정해져 있었다.
안후이성과 저장성, 푸젠성 등지의 독군들 뿐이었다.
나머지 즈리성과 허난성, 장쑤성 등의 독군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뻘쭘해진 돤치루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 반응들이 미적지근하군. 차오쿤. 한마디 해보게.”
지목당한 차오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왜?”
한 대 콱 쥐어박고 싶다고 생각하던 돤치루이는 ‘참을 인(忍)’자를 떠올리며 주먹을 풀었다.
속으로 셋을 세고 억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네의 인망이야 알아주지 않는가. 즈리 독군인 자네가 입장을 밝혀줘야 다른 독군들도 따르기 쉬울 걸세.”
“흠···.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그럼 여긴 왜 왔어? 씨발.
“저 공화당 놈들이 슬금슬금 북양파의 세력권을 갉아먹고 있는 걸 모른단 말인가? 한때 화북 전역에 지배력을 떨치던 북양파가 오늘날은 정치권에서 축출되고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어. 이게 맞다고 보는가?”
“예를 들면?”
“공화정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뭔가. 도독의 권한 축소였네. 문무를 겸했던 도독을 성장과 독군으로 나누는 거였어. 그 결과, 북양파는 한순간에 지방의 행정력을 상실하고 냄새나는 병영에 처박히게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