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20)
EP.364 좋은 청년 # 13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운 레오나는 낮의 일을 떠올렸다.
“…으음.”
정찰 중에 큰 소리가 나서 가보니 김근철이가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주 화가 난 얼굴이었는데, 일단 진정을 시키고자 다가갔음에도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정을 들으니 화가 날 만했다.
그런 재난 지역에서 약탈을 하다니, 크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자신도 화가 많이 날 정도였다. 안 그래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다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화난 모습… 상당히 멋있었죠.”
뭐랄까.
씩씩대면서 화를 내고 있는 모습이 좀 멋있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사정을 들으려고 하니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던가.
화를 내긴 하지만 자기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달래준다고 하니 얌전히 따라와서… 제 말을 들어줬고요.”
일단 김근철이가 화를 내고 있으니 달래줘야 한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레오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또 김근철이는 자기가 달래준다고 하니까 손을 꼭 잡고 얌전하게 쫄래쫄래 따라왔다.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욧…!”
솔직히 말해서 귀엽다!
게다가 손을 만져주면서 천천히 달래주고 있으니 김근철이의 분노가 실시간으로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 진정이 된 것이다.
씩씩대며 화를 내던 김근철이가 자신이 달래주자마자 금방 얌전해졌다.
“아읏!”
그 사실이 레오나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자신이 달래주고 있고 진정시켜줄 수 있는 남자… 그 사실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해진다.
자신은 김근철이의 감정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게 확실한 것이다.
“아, 진짜! 김근철이 뭐냐구욧! 누가 그렇게!”
울고 있다면 위로해줄 수 있고, 화가 났다면 달래줄 수 있다. 기뻐하고 있다면 역시나 옆에서 같이 웃어줄 수 있다.
몸에 열이 오른다.
“꺄악…!”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 레오나는 이불을 박차고 몸을 돌려 주먹으로 침대를 두들기면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해소했다.
“하아!”
그리 힘을 쏟고 나니 어쩐지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묘한 탈력감.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반대로 편안한 느낌이다.
“김근철이는 역시 손도 크지요. 팔뚝도 단단하고. 아니, 무슨 혈관이.”
손과 팔뚝을 주물러주면서 실컷 만져봤는데, 역시나 억센 손이다. 거기를 만져주니까 진정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하아… 앞으로도 제가 달래줄게요.”
김근철이는 자신이 달래줄 수 있는 남자다.
아무튼.
레오나는 김근철이 말고도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을 상기했다. 그 약탈자가 초인들을 아주 싫어했더랬지.
사실 일반인들 중 초인을 싫어하는 자들은 제법 있는 편이다.
당연하다.
명백하게 계급이 구분되어 있는데 불만이 없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가진 자본이나 혈통 때문에 귀족이 된 게 아니요, 그저 신비하고도 이질적인 이계의 힘으로 인해 랜덤으로 각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영웅이 되어야 하죠.’
사람들 위에 선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일반인들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뚝 나타난 초인들이 뚝 사라지진 않는다.
이미 세상엔 초인이 나타났고, 그들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그러니 모든 것은 그러한 사회상을 전제한 채 굴러가기 마련이다.
힘을 지닌 초인은 단순하게 마음에 안 드는 걸 때려 부술 수가 있다. 법으로 가둘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법으로 통제하며 그들의 인내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결코 강제할 수가 없다. 그들은 초인이니까.
초인에게 ‘바래야’ 한다는 시점에서 일반인과 너무나 크게 구분된다.
그러니 초인의 귀족화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마치 과거 중세 영주들이 무력을 가지고 귀족 행세를 했듯이.
‘그리고 인간은 그런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굴고 싶기 마련이죠.’
디멘션 워가 대충 종식되고 PTSD에 시달리던 초인영웅들이 세계에 난립해 있었을 때, 여러 가지 참사가 일어났었다.
법의 통제를 받지 않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하고 싶은 초인이 있었다.
일반인들은 그를 막을 수 없었고 방치했다. 그런데 그 초인의 방탕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기어이 일반인들을 가축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반발이 터져 나왔다. 녀석은 그 반발을 힘으로 찍어 눌렀고, 일반인들이 초인을 혐오하게 되는 구실을 제공했다.
그렇게 그는 군림하는 듯 싶었지만, 결국 다른 초인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제거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저 나쁜 놈!
-사람을 왜 막 죽여!
다른 초인이 보기에 그는 나쁜 놈이었다. 그냥 나쁜 놈이니까 몰려가서 가서 죽였다.
‘유럽에서 그런 일이 많이 발생했죠.’
그런데 폭군이 나쁜 놈이라고 죽여놓고선, 그 윗대가리를 차지하더니 결국 인명을 경시하며 부정을 저질렀다. 그 권세는 오래 갈 것 같았으나, 다른 초인들은 결국 알아보고 말았다.
저 나쁜 놈 내가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한 단순한 생각으로 2대 폭군은 살해됐고, 이후로도 혼란기에 그런 초인 정부가 여러 번 들어섰다 멸망했다.
그러다 이 사태에 종지부를 찍고자 의로운 초인들이 모였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미스터 도미네이터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귀족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초인들. 지배자는 명예로워야 하며 사람들을 수호해야 한다.
일반 민중은 그 가치를 지지했고, 결국 중세 기사도에서나 볼법한 명예를 외치는 초인들이 정부를 차지했다.
미스터 도미네이터즈는 초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명예가 없는 나쁜 초인은 빌런으로 지정해서 처형했다. 지배자의 의무를 다하며 사람들을 수호했다.
그리하여 칭송받았다.
어느 순간 초인들은 알게 되었다. 병신처럼 어설픈 폭군 짓을 할 필요 따위가 없노라고. 그저 통치하면서 나쁜 놈 때려죽이고 사람들을 지켜주기만 하면 칭송을 받으면서 권세를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살 수 있노라고.
그 이후로 많은 초인들이 힘에 취해 군림하는 것보단 명예를 지켜 칭송받는 걸 선택했다. 전자는 조금 즐거울 뿐이지만 후자는 귀족처럼 사는데 칭송도 받으니까.
결국 초인의 귀족화는 그런 것이다.
강력해서 통제하기 힘든 자들에게 명예를 주고, 초법적 권한을 줄 테니 알아서 잘 명예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초인적 지배욕을 충족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수의 일반인 속에서 살아가는 초인들은 반드시 그 우월함을 휘두르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상하는 것이 인간이다. 일반인들과 똑같은 통제를 받던 초인이 감정이 상한 순간, 법 따위는 알빠 아니라고 마음먹고 날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초인은 대우할 필요가 있다.
강대국들이 힘을 지니고 있다고 국제 외교에서 크게 존중받았듯이.
일반인들 틈 사이에서 똑같이 살게 했다가 사고가 터지느니, 아예 처음부터 귀족 계급을 쥐여주고 알아서 명예를 지키라고 하는 편이 몇 배는 더 효율적이다.
‘저야 뭐 초인귀족으로서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아는 거지만… 김근철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내일 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요.’
레오나는 아직도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평안함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
*
*
“아, 시발.”
오늘따라 좀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정보조사를 하다가 기억에 잠겨 잠든 탓에 잠을 설친 모양이다. 게다가 좀 어질어질한 것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다.
“흠.”
초인과 일반인이라.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해선 어른과 상의하는 게 낫겠지. 내가 아는 한 그분이라면 좀 시원하게 이야기해줄 것이 분명하다.
“교관님!”
일찍 등교한 나는 교관님을 찾았다.
“김근철이? 일찍 왔군?”
교무실에 앉아 있던 교관님이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요!”
“흐음, 상담이라도 필요한가?”
“그렇습니다!”
“따라와라.”
바로 상담을 받아주시는 교관님.
그대로 상담실로 가서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는 교관님께 어제의 일과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그런 의견을 봤다는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말이 좀 많던데요. 초인들 이거 존경받는 거 맞습니까?”
“아니, 인터넷에서 무슨 말을 못 한다고… 당장 타자로 개소리 지껄여서 올리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
“예?”
“그런 것들 대부분은 괴인이나 빌런들의 여론 조작이다.”
“뭐라구용?”
“놈들은 인터넷 공간에서도 공작질을 하고 있지.”
ㅡ끼익.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다리를 꼰 교관님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지금에 이르러 초인들이 특수한 힘을 발해 괴수들을 죽이지 않으면 민간인들은 살 수가 없다.”
“그렇죠.”
“그리고 영웅들은 누구보다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 싸우지. 그냥 상식이 있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초인들이 잘 먹고 잘사는 이유 따윈 전부 이해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그건… 그러네?
“몹시 놀랍게도 너무나도 당연하고 올바른 말씀 같습니다.”
“그래.”
“그럼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회구조에 딱히 불만이 없으며… 그런 인터넷 상의 공격적인 의견은 빌런과 괴인들의 공작이라는 겁니까?”
“그렇다.”
너무나 단호한 대답.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들 중, 그러니까 딱히 형사처벌을 받을만한 범죄를 저지른 이력이 없는 착한 사람들은 영웅들을 아주 좋아한다. 저들 원수를 묵사발 내주고 보상금까지 따블로 받아주는 존재들이니까. 김근철이는 누가 김근철이의 원수를 뒤지게 때려 팬 것도 모자라서 돈까지 전부 뺏어다가 줬는데 싫은 마음이 들겠나?”
“사랑하겠죠.”
“바로 그거다.”
아.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악질적인 사기범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녀석이 어떤 순진한 사람을 속여서 한 5천 만원 정도를 훔쳤는데, 그게 영웅의 귀에 들어가면 사기범은 뒤지게 처맞은 뒤에 몇 년 동안 혹독한 강제노역을 하면서 사기 친 돈에 배상금까지 얹은 돈을 뱉어내게 된다.
사기를 당했는데 반대로 돈이 벌렸다. 영웅들이 그런 일을 해주는데 싫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에서 영웅들을 증오하는 글을 쓰는 자는 영웅에게 처맞은 범죄자이거나 빌런 또는 괴인일 확률이 높다는 것.
“아니, 그럼 인터넷을 좀 규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실제로 빌런이랑 괴인이 공작질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 규제라니… 그딴 짓을 왜 하나?”
“예?”
이야기만 들어보면 인터넷은 빌런과 괴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마굴로서, 당연히 적절한 수준의 통제를 해야 함이 옳아 보인다.
“인터넷은 자유의 공간이다. 거기서 초인들 뒷담을 까든 말든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뒷담 좀 까였다고 규제를 한다니. 그건 초인답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짓이다.”
“아니, 그런 겁니까? 근데 괴인들 공작이 있다매요. 괴인들이 욕하는데 안 때려잡는 게 더 불명예 아닙니까?”
“하아… 분명 공작질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통제할 수는 없는 거다. 인터넷은 현실 공간이 아니야, 김근철이. 우리 영웅들에겐 가상공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뭔가.
이소라 교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전부 납득이 되면서 고민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김근철이. 그 마약중독자 꼬맹이들이 괜한 소리를 해서 그런 고민을 한 거겠지.”
“예. 그렇죠.”
“기특하군. 칭찬해주겠다.”
ㅡ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교관님이 심드렁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지만 딱히 신경쓸만한 일도 아니다. 그런 녀석들은 사회에 있어봤자 마약이나 빨면서 몸을 망치고 범죄나 저지를 테니까. 차라리 한번 노역을 하다 오면 경각심도 생기고 마약도 끊고 할 테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
맞는 말이다.
“불만이야 생기겠지만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런 정신이 썩어빠진 녀석들이나 할법한 생각이다. 앞으로도 그런 녀석들이 보인다면 초인으로서 잘 선도하길 바란다. 이상. 상담 끝.”
“네! 알겠습니다, 교관님! 상담 감사합니다!”
속이 다 후련하군!
“제가 봤을 때 교관님은 진짜 탁월하고 능숙한 상담가의 자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용하지! 교관님 초인 아니었으면 무당집 차려서 떼돈 벌었을 것 같아요!”
“하여간 그놈의 주둥이는 날이 갈수록 느는군.”
교관님이 옅게 웃으셨다.
“김근철이 말만 들어보면 나는 이미 무슨 드래곤이나 신적인 존재다.”
“비슷해요, 실제로.”
“훗… 대체 무슨 헛소리인지.”
“앞으로 그냥 드래곤 교관님 하세요. 드래곤 소라라던가.”
“요즘 김근철이를 잘 패는 애가 누가 있지? 레오나? 우유리?”
“문민이라고 있어요.”
“이 뻔뻔한 녀석.”
ㅡ사사삭!
내 머리 위에 얹어진 손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