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28)
EP.371 수상한 녀석 # 4
키티가 나타났다!
“아니, 너 임마!”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게이트를 등진 탓에 키티에게서 후광이 쁨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런 키티는 평소 같은 나팔과 장난끼 넘치는 얼굴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척척 걸어 나와서는 우리 앞에 섰다.
이 녀석이 무슨 분위기를 잡고 있어…!
무서운 척해도 이미 나한테 밑천 다 털린 녀석인데!
“네 이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아앗! 근철아!”
잽싸게 땅을 박차고 뛰어가서 키티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높이 들어 올렸다.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말해!”
ㅡ흔들흔들!
그대로 마구 흔들어줬지만.
“…”
반응이 아주 미적지근하다.
아니, 니가 이러면 이 오빠가 뭐가 되냐?
다들 진지한테 혼자 장난치는 것 같잖아.
키티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말했다.
“근철이 오빠. 그만해.”
“네.”
잽싸게 키티를 내려준다.
“아니, 키티야. 왜. 이 오빠가 반가워서 그런 건데.”
“키티 지금 그럴 기분 아니야.”
“이 깍쟁이 녀석 같으니라고. 흐흐흐.”
“…”
갑자기 키티가 나타나서 시후가 놀랄까 봐 분위기를 이완시키려고 했는데 키티 임마 이거 전혀 받아주질 않는다.
“허어.”
너 임마 자꾸 이러면 다음에 밥 먹으러 왔을 때 미역무침만 주는 수가 있어.
그런 뜻을 담아 키티를 응시했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다.
“근데 근철아?”
“왜.”
어느샌가 내 뒤에 자리 잡은 시후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 오빠라니. 저 애한테는 그런 말투를 쓰는 거야?”
“아, 뭐. 오빠 맞잖아.”
“근철이 네가 그러니까 뭔가 오글거리잖아. 그리고 깍쟁이는 또 뭔데? 근철이 너 우리 없는 곳에선 그렇게 말해?”
“야!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 중요한 건 내 말투 따위가 아니라 키티란 말이다.
“근철이 이거 아주 수상해. 너무 친한 거 아냐?”
“악!”
목소리를 낮춘 시후가 내 귓가에 입을 더욱 가까이 대고는 말한다. 귀에 바람 좀 그만 불어라.
“야, 야! 뭐 어때! 지금은 넘어가! 지금 중요한 거 아니잖아!”
“음, 중요하진 않지. 그보다.”
시후가 경계심을 끌어올리면서 키티와의 간격을 재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도 키티는 그냥 무표정한 얼굴로 우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도중.
“끝났어?”
마침내 키티가 입을 열었다.
마치 우리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보면 볼수록 나팔이 마려워진다.
“안녕. 저번에 만났지?”
인사하기 시작하는 키티.
“다시 소개할게. 키티라고 해.”
“나는 근철. 근철 킴이야.”
“근철이 오빠랑 친하다는 건 알고 있어.”
끼어들었지만 키티는 나한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시후만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경계하고 있던 시후가 조금 날이 선 어조로 말했다.
“그것도 나랑 근철이가 같이 있을 때 노린 것처럼.”
“글쎄에.”
모른 척을 하는 키티.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해? 이시후 오빠?”
오빠라고?
잠깐 흠칫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키티는 시후의 성별을 모르는 건가? 이 녀석이라면 알법했는데 모른단 말이지… 아, 물론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다.
“무슨 말?”
시후 역시 딱히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받았다.
“조만간 다시 볼 거라고 했잖아. 오늘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야.”
그리 말한 키티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살짝 불길한 미소였는데, 아무리 봐도 나팔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것 치곤 너무 빠른데. 역시 내 힘에 대한 게 궁금한 거지?”
“응. 언니가 이시후 오빠의 힘에 관심을 보이고 있거든. 어서 데려오라고 했어.”
“그럴 거면 직접 데리러 오라고 하지? 누굴 시켜서 오라가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할 말은 한다, 시후콜라!
말 잘한다!
내가 항상 보프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다!
ㅡ꽈악!
절로 믿음이 생긴 나는 시후의 뒤에 선 채 그 어깨를 꽉 잡고 격려했다.
“역시. 할 말은 하는구나, 이시후! 믿음직스럽다!”
“당연한 거야. 근철아.”
시후가 내 손등 위에 자기 손바닥을 올리면서 나를 살짝 돌아본다. 그 얼굴에 걸려 있는 것은 나를 믿으라는 듯한 시원한 미소.
이 녀석이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줄이야.
“아무튼 뭐. 키티야. 그렇다는데?”
“흐응.”
뒷짐을 진 키티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들기면서 말했다.
“그냥 와주면 안 될까? 할 이야기가 있어.”
“안 가겠다면?”
날이 선 시후의 반응. 잠시 시후를 바라보던 키티가 포기했는지 내게 말했다.
“근철아 오빠. 설득 좀 해줘.”
이 녀석이 이제 와서?
“흥. 싫어.”
“으응?”
“근철아?”
나 삐졌다.
“오늘 나팔도 안 불어주고. 무게 잡으면서 수상한 척하고. 오늘 오빠는 키티 말 안 들어줄 거야.
“아니…! 근철아, 무슨 말투야! 그게!”
실제로 삐진 시늉을 하면서 말하자 시후가 입을 떡 벌렸다. 키티 역시 포커페이스를 잃고 눈을 크게 떴다.
“근철이 오빠.”
“아, 왜.”
“빨리.”
“뭐가 빨리야 임마. 지금 어? 오라는데 얼마나 수상해? 나는 몰라도 시후 보고 거기 가라고 시키라니 난 못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키티 못 믿어?”
“오늘은 좀 수상해, 우리 키티. 나팔도 안 불어주고. 듣고 싶었는데.”
“…”
거기까지 말을 하자 잠시 멈칫한 키티가 다른 반응을 보여줬다.
“위해를 끼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내 힘을 보여달라고 하겠지. 아니야?”
바로 나서는 시후.
“응. 아마도.”
“그건 내게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인데.”
맞는 말이다.
“기술이란 건 비장의 수단이기도 해. 그런 걸 괴인한테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지 않겠어? 원래는 국가 반역에 해당하는 일이라구.”
시후의 논리정연한 말에 키티가 말을 잃었다.
“무엇을 원해?”
그리고 시작되는 거래 제안.
“위험을 감수할만한 대가. 그런 거라도 있어야 보이드 프린세스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훌륭하다.
협상을 이끌어 내다니.
“좋아. 그럼 그렇게 전할게. 잠시만 기다려줘.”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키티가 돌아갔다.
“캬! 이시후! 완벽하다! 난 보프한테 바짝 쫄아서 그런 말도 잘 못 했는데!”
바로 시후의 몸을 돌려서 날 보게했다!
너무 믿음직스러워!
“하하… 근철아. 이건 당연한 거야. 게다가 여기서 세게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
“그건 왜?”
“보이드 프린세스, 활동을 중지한 지 벌써 십몇 년이 지났잖아?”
“그렇지.”
“그동안 안 나타나다가 갑자기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정보가 없는 저 키티라는 애도 그렇고. 잘은 몰아도 보이드 프린세스는 대리자를 써야 할 만큼 문제가 있는 상태인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그냥 본인이 와도 되는 거니까.”
“오.”
그 추론은 나도 해본 적이 있다.
보프는 모종의 이유로 심부름꾼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조금 강하게 나가도 괜찮은 거야.”
“역시.”
그래도 그걸 실천하는 건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아무튼. 시후 너 대가를 요구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받으면 갈 생각이냐?”
“글쎄… 특이한 괴인인 만큼 뭔가 있겠지. 뭐라도 내 마음에 들면 한번 가볼 생각이야. 그런 존재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봐둬야 하기도 하니까.”
설마 사냥할 생각인가?
“약점이라도 찾으려고?”
“모르겠어. 그래도 직접 봐서 나쁠 건 없지.”
그렇게 나는 시후랑 같이 키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하니 그냥 티비나 보면서 같이 시간을 때웠는데.
ㅡ지이잉.
키티가 돌아왔다.
“가져왔어.”
“아니, 그건 뭐냐?”
뭔가 기다란 케이스를 안아 들고 있는 키티.
“이시후 오빠? 확인해줘.”
“좋아.”
바로 시후가 케이스를 받아들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오오!”
뭔가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이었다.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검신이 거울처럼 반짝인다. 빛나는 황동색 크로스 가드도 그렇고, 검은 손잡이도 딱 심플해서 마음에 든다.
“이건.”
검을 잡아든 시후가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좋은 검이네. 그런데 뭐지? 이 특이한 기운은?”
“특별한 공정이 들어간 검이야. 보면 알겠지?”
“쓸만한 것 같긴 하네.”
“아니, 뭐 얼마나 좋은 검이길래?”
난 봐도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설명해줄게. 그런데 이것뿐?”
“더 있어.”
키티가 또 뭔가를 꺼냈다. 이번엔 무기가 아니라 악세사리다.
“음?”
마치 무희가 착용할 법한 금빛의 팔찌와 목걸이. 그리고 발찌와 서클릿이다.
“뭐냐? 이 수상한 건? 디자인이 좀 올드한데.”
“확인해 봐.”
“…”
시후가 진지한 얼굴로 악세사리를 잡아 든다.
“역시… 이상한 힘이야. 좋아.”
마음에 들었다는 듯 물건을 챙기는 시후. 나는 봐도 잘 모르겠는데 시후는 확실히 뭔가를 느낀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정성을 보인다면 한 번쯤 만나줄 수 있지.”
“거래 성립이야?”
“그래.”
“그럼 출발하자. 근철이 오빠. 딱 서.”
“어.”
뭐가 됐든 이걸로 어느 정도 대화를 할 여건이 마련된 것 같다.
“근철아. 준비해. 혹시 모르니까.”
“뭐… 그러마. 뒤는 내게 맡겨라.”
“좋아.”
잠시 시후랑 작당을 하는 사이.
ㅡ파앗!
발 아래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나와 시후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손을 맞잡고 중심을 잡으면서 하강했다.
*
*
*
익숙한 검은 공간.
이곳이 바로 보이드 프린세스의 둥지다.
ㅡ타악.
나는 시후와 착지한 즉시 주변을 경계하면서 보이드 프린세스를 찾았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손님을 이상한 곳에 초대할 일은 없으니까.
“저게 바로…”
시후가 계단 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계단의 위에 있는 것은 왕좌.
“왔느냐?”
왕좌 위에 금발의 보이드 프린세스가 다리를 꼰 자세로 거만하게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처음 출현한 이후, 계속해서 테러 행위를 일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춘 보이드 프린세스가 바로 저기에.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시후는 전혀 쫄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크… 크하하, 네놈 역시 손님의 태도는 아니지 않느냐아? 피차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말자꾸나.”
근데 보프씨 기분이 좋은가?
표정은 좀 좋아보이는데.
“그러지.”
“그럼 이야기를 진행하겠느니라. 선물은 마음에 들었느냐?”
“어느 정도는.”
“그렇다면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데.”
“말씀하시죠.”
“…”
너무 나만 조용히 있는 것 같아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로 했다. 보프는 잠시 내게 시선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본녀는 네 힘을 보고 싶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