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09)
EP.453 설중조난 # 1
그날 이후로 아야네는 틈만 나면 다가와서 내게 아부했다.
“걸음걸이도 사내다워서 아주 멋지군요. 부회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더십이 느껴집니다.”
“아나! 이 새끼 뭘 좀 아네!”
“이거 받아주십시오.”
그러면서 은근슬쩍 비타오백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 내게 아주 잘 보이고 싶어하고 있군!
주저 없이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원샷을 때렸다.
“캬!”
“이리 주십시오.”
“고맙다.”
쓰레기까지 처리해주다니 센스가 좀 있다.
내가 삥을 뜯는다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자꾸 주는 걸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좀 아니니까.
물론 내게 뇌물을 바쳤다고 해서 뭘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야네에 한해서 나는 언제든지 받기만 하는 남자가 될 수 있거든.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근철씨의 검술을 더 견식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조금 내어주신다면… 나중에 보상할 테니. 어떠신지요?”
“견식이라.”
내 칼솜씨를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지.
“아, 근철아. 거기 있었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니 시후가 왔다.
“어. 시후야.”
“아야네랑 이야기하는 중이었구나.”
학교랑 집에서의 갭이 큰 녀석이다. 집에선 슴가압축을 안 하니 지금이랑 느낌이 완전히 달라.
“좀 이야기하고 있었지.”
“…”
아야네가 고개를 숙여 시후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좀 어색해하는 건지 섣불리 입을 열진 않는다.
낯을 좀 가리나.
“으음.”
시후도 말로 오는 인사가 없으니 좀 곤란해하는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아야네 이거 애들이랑 잘 지내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야네가 입을 열었다.
“…시후씨는 방과 후에 근철씨와 대련을 하곤 하죠?”
“응? 응. 그렇지. 그게 왜?”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그 대련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실런지요?”
“뭐어?”
뭐?
“대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네.”
아야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호승심 같은 게 아직 남아있나 보다.
근데 이건 바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음, 잠깐만. 거기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서. 새로운 멤버를 받으려면 좀 알아봐야 하거든.”
내가 하려던 말을 시후가 했다.
“그렇지. 다른 애들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일단 가자. 근철아.”
“어. 그래.”
가야지.
시후가 날 데려가려고 하니 아야네가 인사했다.
“네. 다음에 또 이야기하러 오겠습니다.”
“그래라.”
근데 저거 언제까지 아부하러 올까. 솔직히 어깨가 좀 으쓱거리긴 해도 음료수 값이 좀 부담될 텐데 말이지.
아무튼.
학생회실로 돌아가니 애들이 날 반겨줬다. 그러면서 아야네에 대해서 물었는데, 나는 오늘도 걔가 와서 아부를 했다고 설명해줬다.
“오늘도 그랬다구요?”
“어.”
“무슨… 아부하는 법이라도 배운 걸까요? 다른 건요?”
“아. 맞다. 우리 대련 클럽에 좀 끼워달라는데.”
“대련 클럽에요?!”
레오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고 해. 어때?”
시후의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어. 난 반대.”
반대 의견.
“야. 요즘 그거 김근철이 니한테 막 아부한다매? 이 새끼. 그거에 완전히 빠져들어선. 아주 그냥 좋아 죽겠지?”
“뭐? 아니, 뭘 빠져들어. 좋지도 않구만.”
부담된다.
“지랄. 그런 것 치곤 걔가 아부하면 존나 좋아하던데?”
유리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다리를 꼬곤 소파에 기대 양손으로 뒤통수를 짚었다.
“응? 이렇게. 그 목소리로, 어? 근철씨 쬐고오. 근철찌 짜랑해여어. 근철씨 쪼아여어. 이러면 막 니 몸 비틀면서 크하하 웃잖아.”
이게 뭔 소리야!
“야 임마! 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 그런 소리 들은 적 한 번도 없거든!”
과장을 얼마나 하는 거냐!
“그리고 누가 그렇게 깜찍한 목소리 내래!”
“깜찍 이 지랄. 하여튼. 난 반대야. 아직 걔가 뭐 하는 녀석인지 감도 잘 안 잡힌다고. 게다가 외국 귀족에 납치 전과도 있지.”
흠.
“우리와의 대련으로 실력이 늘어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검증도 안 된 녀석을 막 넣을 수는 없지 않겠냐?”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이다.
유리가 반대한다면야 참가 허락을 하지 않을 거다.
아부도 존나 많이 하니까 수상하기도 하고.
“뭐냐? 이 새끼 내가 반대 안 하면 끼워주고 싶은 눈치다? 왜? 아야네한테 마음이 가? 응? 응응?”
“아이고! 아니라니까!”
“크크크, 어떻게. 둘이서 만날 수 있는 자리 같은 것 좀 주선해줄까? 니가 가서 아야네의 밑천을 까보는 거지.”
“오늘따라 왜 그러냐, 진짜.”
아야네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한 편이다. 뭐 자기 나와바리에서 개짓거리를 한 녀석이니 당연한 일이지.
“알았어. 거절할 테니까. 확실히 뭐 요즘 나한테 잘 보이겠답시고 아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유리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
“어깨가 으쓱거리긴 해도 아직 아야네의 의도를 다 알지는 못하는 상황이지. 막 접촉하는 것도 안 좋을 것 같긴 해.”
“그래. 바로 그거야. 캬. 바로 이거지.”
그제서야 유리가 짜증이 풀린 것처럼 눈을 풀었다.
“우쭈쭈. 우리 김근철이 말 잘 알아들었네. 일루와. 누나가 안아주께.”
“안아주긴 뭘 안아줘.”
“추우니까 좀 오라고. 이 인간난로 자식아.”
부끄러우니 안 가.
“우유리 당신 팔 벌려도 소용없거든요? 아무튼. 김근철이 잘 생각했어요. 우유리 말이 백번 맞죠. 앞으로 아야네가 와서 아부를 하면 적당히 받아넘기도록 하세요.”
“흠. 그건 좀 아쉬운데.”
“뭐라고요? 아니, 김근철이 칭찬이 그렇게 고팠나요?”
아부 받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아부 받아서 나쁠 건 없지.”
“김근철이잇! 칭찬해주면 누구라도 좋은 건가요옷!”
“아닛!”
“이걸 어쩜 좋을까!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칭찬해줄게요! 다른 여자는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격하게!”
“허억…!”
그 말에 나는 홀린 것처럼 레오나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야! 왜 나한텐 안 오면서 레오나한테는 가!”
“칭찬해준다잖아!”
그럼 가야지!
“착하다, 착해. 김근철이 네오다이묘 가문의 자녀도 꺾고.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ㅡ슥슥.
레오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해줬다… 이게 바로 천국이지.
“아, 그런데 이건 아부가 아니라 칭찬이잖아.”
“뭔가 차이가 있나요?”
“그게 좀 미묘한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근철이 이 새끼 설마… 자기보다 못난 여자가 쩔쩔매는 걸 좋아하는 거 아냐?”
“뭐라고?”
“허억?! 김근철이?! 그런 건가요?!”
“아니 이게 먼 소리야!”
이해조차 안 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근철이 얘는 그냥 거들먹거리는 걸 좋아할 뿐이야. 말할 때도 막 허세 부리고 그러잖아.”
“날 쑥쓰럽게 만들래?”
“왜 쑥쓰럽다는 말이 나와? 아무튼. 나는 그 아야네를 조금 더 포용해줘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안 그래?”
아니, 시후가 이렇게 좋은 말을 하다니.
“왜?”
“가정사가 불쌍하잖아.”
유리의 말에 시후가 그런 말을 했다.
“아니. 할 말 없게 만드네. 뭐 불쌍하기야 하지.”
“으음… 불쌍하긴 하죠.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저도 날개를 펼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레오나는 엄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집안이지.
근데 아야네 쪽은 집안 분위기 자체가 그냥 구식 군대다.
“그래도 뭐. 난 별로 신경 안 쓸란다. 니는 그냥 앵락이나 제대로 감정해 두라고.”
“넹.”
아야네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했다. 이게 그래도 화제를 몰고 온 전학생이라서 그런가. 학생회실에서도 그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
*
*
시간이 좀 지나니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근데 좀 존나 심하게 접어든 모양이다.
ㅡ펑펑.
폭설이 존나게 내렸다.
온 세상이 새하얘질 정도로.
“제설 파티다! 시발! 교관님! 저희들 정말로 제설해요?!”
“김근철이. 교관 앞에서 비속어를 쓰면 되겠나?”
ㅡ꽈악!
“아악!”
“이 교관님이 김근철이를 사랑해도 그건 용납할 수가 없어.”
교관님의 아이언클로가 내 머리를 터트리려고 한다…! 하지만 제설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어!
“그치만 생도인 저희들이 제설을 한다고 하잖아요!”
“안타깝게도 이건 아주 특수한 이상기후다. 수도권에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 거. 본 적 있나?”
아이언클로가 풀렸다.
“강원도에선 일상인데요.”
“그쪽에서 살았던 적도 있는 모양이지?”
“아뇨.”
근데 뭐 확실히 눈이 많이 오긴 했다.
GOP 제설할 땐 보통 하루에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데, 지금 수도권에 그것보다 많은 눈이 내리고 있는 상태니까.
진짜 존나 많이 내리긴 했다.
“제설을 위해 예비군이 소집되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지.”
“아.”
절로 숙연해진다.
진짜 마음이 찢어질 것 같군.
너무 슬퍼서 뭐라고 말을 할 수조차 없다.
“이 정도 폭설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에선 이계의 존재에 의한 특수재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군.”
“그런 만큼 생도들도 제설 작업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로군요.”
“그렇지. 자, 빨리 애들 통제해서 장비 챙겨라. 너희들은 제설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순식간에 치울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는 건 금방 할 거다.”
“크으… 알겠습니다.”
“너무 두껍게 입진 마라. 제설을 하다 보면 몸에 열이 오르니까. 가방 속에 외투를 넣어두고 쉴 때 꺼내 입는 편이 나을 거다.”
“아이고, 교관님 전문가시네요.”
왜 이렇게 잘 알지?
“이 정도는 기본이다. 그럼 움직여라.”
“네!”
바로 부회장으로서 애들을 통제했다.
“자, 얘들아! 눈삽 하나씩 챙겨가자고! 지금부터 지정된 위치로 이동할 건데, 가면 눈을 모아두는 지점이 있을 거다! 거기로 눈 싹 다 치우면 된대!”
“오우!”
“그래!”
아직 제설의 두려움을 모르는 녀석들답게 신난 분위기다.
하여간 애송이 녀석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이,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네오다이묘 자녀라도 소용없어. 한국 아카데미에선 중노동도 해야 돼.”
“불만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핫산이다.
“후후후, 김근철이. 이것 보세요. 찾아보니 넉가래라는 것도 있네요. 이거 잘 어울리나요?”
ㅡ빙그르르!
ㅡ촤악!
무슨 대낫 사신처럼 넉가래를 빙 돌린 레오나가 간지나는 포즈를 취했다.
“캬! 레오나! 너 그냥 오늘 눈의 여신해라!”
“여신 이 지랄!”
절로 박수가 다 나오네.
“아무튼. 뭔가 기대되네요.”
뭐?
“이렇게 단체로 눈을 치우다니. 저 이런 적 처음이에요.”
“흐흫. 나도 그래. 뭔가 재밌을 것 같네.”
“야 시발. 가서 눈사람도 만드냐?”
잠깐 방심한 사이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모종의 광기에 사로잡혀서 웃는 얼굴로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저 하늘에서 떨어진 새하얀 광기의 결정이 사람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얘들아 제발 이러지 말자.
“얘들아. 제설은 결코 즐거운 게 아니야.”
“그런가요? 뭐, 그렇다고 해도 작업은 즐겁게 해야 효율이 나는 법이죠. 이럴 줄 알고 장갑 챙겨왔어요. 김근철이 이거 끼세요.”
“오오!”
레오나가 준 장갑!
“이거면 걱정 없지! 고마워, 레오나!”
“뭘요. 우유리랑 이시후도 받으세요.”
“고마워!”
“크크크, 진짜 잘 챙겨준다니까.”
뭐 그렇게 장비를 다 챙긴 다음.
“출발하지. 따라와라.”
교관님의 지휘에 따라 아카데미를 나섰다.
ㅡ펑펑.
여전히도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눈을 치우면 다시 그 자리에 쌓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행하는 것이 바로 제설이다.
“제설의 악마, 김근철이 깨어나려고 해.”
백색 광기가 내 정신을 사로잡는다.
“또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새끼 너무 추워서 맛탱이가 갔나?”
“난 지금 누구보다도 제정신이야.”
“지랄하네. 아. 맞다. 야.”
“음?”
ㅡ스윽.
돌연 유리가 내게 뱀처럼 슥 다가와 귓속말을 시전했다.
“추워지면 말해. 안아줄 테니까.”
“야…! 뭘 안아줘!”
“크크크, 말만 하라니까. 후우.”
“억!”
아예 내 귀에 바람까지 분 유리가 갑작스럽게 땅을 박차 내 얼굴에 눈이 튀게 하더니 저 앞까지 총총총 뛰어갔다… 아니, 유리 저거 진짜 혼쭐을 내줘야 한다니까.
아주 그냥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