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seong Detective Agency RAW novel - Chapter 76
00070 거리의 등불 =========================================================================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탐문했지만 뾰족한 소득은 없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황망함도 황망함이었고, 당장 이번 달의 월급을 줘야 할 경두가 경찰에 체포되어 들어간 일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경두가 인간적으로 썩 좋은 사장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월급을 밀리는 일은 없었다고 했고,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직원들은 크고 작은 일로 경두와 다툼 없는 이들이 없었으나 기본적으로 몇 년씩 일해 온 사람들이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래도 사장으로서는 경두만한 이도 없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수상한 시국에 월급 한 번 안 밀리고 따박따박 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불만을 입 밖으로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며칠 전에 직원과 다툰 일이 있다는데 혹시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결국 별로 건진 것도 없이 하루가 다 가는 바람에 늦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소화를 다시 향운정에 데려다 준 해경은 신신당부를 했다.
“혹여 몸이 좋지 않거나 하면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까?”
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경은 대답만 저렇게 하지, 몸이 안 좋더라도 소화가 내일 사무실에 나오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구절절 붙들고 훈계를 할 계제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할 일이 많을 때는 소화가 있는 편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기에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향운정 안으로 들어가는 소화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해경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며 관자놀이 부근을 눌렀다. 그 투서만 아니었어도 그냥 운 나쁜 사고 정도로 끝났을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경두를 보험사기 혐의로 익명 고발한 탓에 일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어 버린 것이었다.
일단 경찰에서도 현장 조사 결과가 사고로 나온 이상 경두를 오랫동안 잡아 두기는 어려울 터였다. 경두가 풀려나면 짐작 가는 사람에 대해 묻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생각이 많은 탓인지 밤새 잠을 설친 해경은 일찍 사무실로 나섰다. 배달되어 온 신문을 집어 들고 책상 앞에 앉은 해경은 신문을 펼쳤다. 별다른 소식이 없는지 눈으로 훑던 해경은 이른 아침부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멈칫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사무실로 연락이 오는 일은 드물었다. 고개를 갸웃한 해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정해경입니다.”
― 종로서 이성국입니다.
해경이 아,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 성국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그 왜, 정 선생께서 부상자를 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뜻밖의 이야기에 해경은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네, 그랬지요.”
― 어제 오후에 한 중년 신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조선극장 폭발 사고로 다친 사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냐고 묻더군요. 허경두 사장이 화재보험을 든 것을 안다면서 거기에 해당 조항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름을 물으니 대답 없이 끊었는데 허경두 사장을 불러 물어보니 인명의 피해에 관련한 보상 특약이 있다고 하더군요. 상해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중상의 경우 인당 팔천 원 이상을 보상한다고 합니다.
“중년의 신사라고 하셨습니까?”
― 목소리는 틀림없이 사오십 대쯤 된 사내의 것이었습니다.
해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본 부상자는 젊은 부부였던 탓이었다.
“다른 말은 전혀 없었습니까? 부상자가 누구라든지…….”
— 아니오, 이름을 묻자마자 곧 끊어 버리더군요.
“목소리를 잘못 들은 것은 아니고요? 분명히 나이 든 남자가 맞았습니까?”
— 네.
해경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모르는 부상자가 더 있을 수도 있었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방금 성국이 한 말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경두가 화재보험을 들었다는 것은 보험사기로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나갔기에 신문을 읽은 사람이면 알 수도 있었지만, 거기에 인명 피해의 보상 조항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인명 피해의 보상 조항은 대체로 화재보험의 특약 상품인 경우가 많았다. 그저 넘겨짚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허경두 사장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 어젯밤 아홉 시 경에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해경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어젯밤에 경두가 석방됐다면 보나마나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직원들에 대한 탐문도 별 소득이 없었으니 며칠 전 다툰 사람에 대해 물으려면 다시 경두의 집에 방문해야 했다. 해경은 시계를 보았다. 곧 소화가 출근할 시간이었다. 소화를 데려갈까 생각하던 해경은 곧 고개를 젓고는 쪽지에 ‘잠시 외출 예정’이라고만 써서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기에, 경두를 만나고 곧바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었다. 겉옷을 챙겨 다시 사무실을 나선 해경은 대화정으로 향했다. 대화정에 도착한 해경은 경두의 집을 찾아 대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개 짖는 소리만 날 뿐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해경은 다시 한 번 문을 더 크게 두드렸다. 이십 분 이상을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린 뒤에야 안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안에서 나온 사람이 대문의 걸쇠를 여는 것인지 달그락대는 소리가 났으나 몇 분이 지나도 문이 열릴 기미가 없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해경의 귀애 마침내 걸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고, 잠시 후 대문이 한 뼘쯤 열렸다. 대문 틈으로 보이는 하나코의 얼굴에 막 입을 열려던 해경은 순간 멈칫했다. 새하얗게 질린 하나코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하나코는 잠옷 차림인 데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대문을 열어젖힌 해경은 하나코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장님이, 사장님이…….”
하나코가 벌벌 떨며 더듬거렸다. 경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해경은 하나코를 제치고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닥치는 대로 방의 문을 열어 보던 해경은 서재와 붙어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침대 위에 경두가 누운 채였다.
“허경두 사장님?”
해경이 조심스럽게 불렀으나 경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빨리 침대 곁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은 해경은 손을 뻗어 경두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얼핏 보면 잠이 든 것 같았으나 입가에 흰 거품이 끓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해경은 경두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보았다. 열이 상당히 높은 상태였다. 해경은 어느새 문가에 서 있는 하나코를 돌아보았다.
“가까운 병원에 빨리 전화를 넣어 주십시오. 당장이요!”
얼어붙어 있던 하나코가 네, 네, 하고 더듬거리며 거실로 뛰어갔다.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듯 예의 그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넘어왔다. 해경은 잠시 후 다시 돌아온 하나코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하나코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파랗게 질린 입술을 달싹였다.
“모, 모르겠어요……새벽에 배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변소에 두어 번 오가셨는데, 잠들었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셔서…….”
“배가 아프다고 했다고요?”
해경은 미간을 가볍게 좁혔다.
“그런 적이 자주 있었습니까?”
“아, 아니오.”
“그럼 어제 저녁에는 무엇을 드셨습니까?”
해경의 물음에 하나코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집에 돌아오신 것도 열한 시가 넘어서였는걸요. 집에서는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어요. 서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해서 이제 돌아오셨다고……물도 한 잔 안 드셨어요.”
“열한 시가 넘어서요?”
해경은 하나코에게 되물었다. 성국은 분명 어젯밤 아홉 시 경에 경두를 석방했다고 했는데, 집에 열한 시가 넘어서 돌아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종로서에서 대화정까지 걸어서 간다 해도 절대 두 시간이 걸릴 리는 없었다.
“어제 사장님이 어디에 들렀다 온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하나코가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해경이 무언가를 막 물으려 했을 때 바깥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의사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하나코가 뛰어나가 문을 열자 왕진 가방을 든 의사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가방에는 京城醫院(경성의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처의 병원인 모양이었다. 의사가 경두를 보고는 청진기를 꺼내 배 위에 대었다. 소리를 듣더니 입을 벌려 안을 확인하고 눈꺼풀을 뒤집어 본 의사가 해경을 쳐다보았다.
“아드님이십니까?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사정을 설명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해경은 하나코 대신 대답했다.
“새벽에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아침에 의식이 없으셨답니다.”
해경의 말을 들은 의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한 번 배 위에 청진기를 이리저리 대어 보고는 경두의 체온을 재었다. 체온계를 확인한 의사는 해경을 마주보았다.
“큰 병원으로 바로 옮기시지요. 위장에 문제가 있는 듯 한데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열 때문에 의식이 없는 겁니다. 그대로 두면 위험해요.”
사건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건 좀 골치가 아팠다. 자신에게 중요한 증거를 제공해야 할 경두에게서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게 된 탓이었다. 해경은 할 수 없이 의사의 말에 수긍했다. 의사가 전화를 찾자 하나코가 의사를 거실로 안내했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하던 의사가 곧 돌아와 경두를 가리켰다.
“환자를 경성제대 병원으로 옮기지요.”
해경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경두를 들쳐 업었다. 경두의 집을 나서 길가에서 택시를 잡은 해경은 뒷좌석에 경두를 눕히고 의사와 하나코를 택시에 태워 보낸 뒤 사라지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보다가 이마를 짚었다. 아침부터 웬 소동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하나코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경두가 갑작스럽게 저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하나코는 경두가 두 시간의 공백을 두고 열한 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다고 했고, 새벽에 잠시 깨어 복통을 호소하며 변소에 들락거렸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어쩌면 관계가 없을 수도 있었다. 만약 두 시간의 공백 사이 무언가 극약 따위를 먹었다면 즉시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코가 알지 못하는 지병 따위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해경은 자리에 선 채 머릿속을 정리했다. 두 시간의 공백. 종로서에서 대화정까지는 도보로 삼사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고, 택시를 탄다면 십 분이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 한 시간 동안 경두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미 이틀을 꼬박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이가 풀려나자마자 갈 만한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는 없었다. 한참을 선 채 생각을 거듭하던 해경은 결국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새 출근해서 편지를 정리하고 있던 소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오셔요? 아침에 오니 쪽지를 두고 가셔서…….”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해경은 소화에게 간단히 경두의 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소화도 고개를 갸웃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책상 의자에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주저앉은 해경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소화가 미리 내려 놓은 차를 찻잔에 따라 해경에게 가져다주었다. 해경은 가볍게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숨도 쉬지 않고 차를 들이켰다. 완전히 비운 찻잔을 내려놓은 해경은 미간을 누르고 있다가 소화에게 말했다.
“종로서 이성국 형사님에게 전화를 좀 연결해 주시겠습니까?”
“네.”
자리에서 일어난 소화가 얼른 전화기로 향했다. 수화기를 들고 종로서로 전화를 건 소화가 이성국 형사님 계십니까, 하고 묻고는 잠시 후 해경에게 수화기를 가리켰다. 해경은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정해경입니다. 허경두 사장 댁에 들렀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나서요.”
―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금복 씨가 보험금 문제로 서에 와 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 대답하는 성국의 말에 해경은 잠시 멈칫했다. 이금복. 낯선 이름이 귀에 걸렸다. 해경은 성국에게 물었다.
“이금복 씨라고요?”
― 허경두 사장의 부인 되시는 분입니다. 조금 전에 병원에서 허경두 사장이 의식 불명이라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일체의 보험금 수령 문제와 보상 문제 때문에 대리인 자격으로 왔습니다.
허경두 사장의 부인, 이금복. 해경은 경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부인은 황금정에서 별거중이고 생활비만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고 했던가. 아직 이혼 상태도 아니었고 하나코가 정식으로 입적하지도 않아 대리인 자격으로 금복이 와 있는 모양이었다.
“보험사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해경의 물음에 성국이 다소 피곤함이 묻어나는 투로 대답했다.
― 보험사에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부인께 어제 온 부상자의 보상 연락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상태입니다. 서류에는 대리인 자격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부인은 보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모양이더군요.
“서에서 보험사 직원과 부인을 만나볼 수는 없습니까?”
성국이 그 말에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 서 바깥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야기해 두는 것은 모르겠지만, 정 선생께서 서에 직접 드나드는 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이해합니다. 일이 끝나거든 제가 따로 뵙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난처함이 묻어나는 성국의 말에 해경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으며 머릿속에서 흩어진 정보들을 정리했다. 하나코는 사업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별거 중임에도 보험 대리인을 부인으로 지정해 둔 것은 부인이 어느 정도 사업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들었다. 최소한 하나코보다는 극장 사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 것임은 거의 확실했다.
구식 여자라고 했던가. 부인이 원한을 가질 일은 없냐고 묻자 안사람은 음전하기 이를 데 없다며 펄쩍 뛰던 경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탓인지, 아무래도 젊은 여자에 눈이 팔려 별거를 하고 있어도 믿을 만한 것은 조강지처 쪽인 모양이었다. 쓴 입맛을 다신 해경은 책상 위에 펼쳐 놓은 경성 지도를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종로서와 대화정 사이의 길을 손끝으로 따라가 보던 해경은 문득 손을 멈췄다. 경두는 이틀 동안이나 보험사기 혐의를 뒤집어쓰고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뒤였다. 그가 막 풀려났을 때 집 말고 갈 곳이 과연 어디일까?
해경은 손을 움직여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황금정. 자신의 사업과 보험 내역에 대해 알고 있는 조강지처. 금복은 경두가 가장 먼저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종로서에서 황금정으로 갔다가 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대화정으로 돌아왔다면 중간의 두 시간 공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황금정에서 대화정까지의 거리 역시 도보 이십 분, 차로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다툼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생각에 완전히 빠져 있던 해경은 소화가 선생님, 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지요?”
해경이 묻자 소화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해경의 눈치를 보았다.
“저, 허경두 사장님이 경성제대 병원에 입원했다 하셨지요? 제가 그리 가 보아도 괜찮을까요?”
“소화 양이 그곳에요? 무슨 이유로?”
“복통이 있고 의식을 잃었다고 하기에 혹시나 무슨 이유인지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약방 딸이라 주워들은 것은 조금 있어서요. 선생님께서는 다른 하실 일이 많으니까 제가 가서 살짝 물어보기만 하고 오면 어떨까요?”
어차피 병원에 다시 가서 경두의 증세와 그 원인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 있었기에,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구는 소화에게 약간 놀란 해경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소화가 조마조마해하는 표정으로 해경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경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사무실 일은 다 끝낸 것 같으니까요. 대신 절대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됩니다. 가서 허경두 사장님에 대해서만 알아보고 바로 돌아오세요. 알겠습니까?”
소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소화에게 지전 두어 장을 쥐어 주자, 소화는 날 듯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아무래도 마음이 충분히 놓이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피식 웃음이 나와 해경은 잠시 소화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