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00
099화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맛있는 냄새
“형님 참 대단하네.”
모기에게 물리는 게 싫어 줄곧 마차 안에만 머물러 있던 범사철이 멀리 있는 남녀를 보고는 감탄했다.
“방금 만났는데 저렇게 가까워지는 걸 보면 조금만 있으면 신방으로 들어가겠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범약약은 피식 웃었다. 범한이 밤에 임완아를 찾아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자주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두 사람의 가까운 모습이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범약약이 호숫가를 바라보다 범사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위들이 오면 골치 아파지니까 네가 가서 짐을 내리는 걸 도와 드려.”
범사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종들이 하면 되잖아?”
그러자 범약약이 부드럽게 웃었다.
“여종들보다 네가 힘이 세잖아.”
범약약의 미소에 겁을 먹은 범사철은 순순히 마차에서 내려 여종들이 짐을 옮기는 걸 도왔다. 오늘 범한이 짐을 한가득 가져왔기 때문에 여종들과 범사철이 함께 옮겨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짐을 다 옮긴 범사철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호숫가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짐 전부 내렸어. 어떻게 할까?”
호숫가에 앉아 있던 범한이 소리를 듣고는 임완아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마차 옆으로 걸어와 지시했다.
경도 생활이 안정되자 담주에 있는 노부인이 범한의 물건들을 모두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를 오늘 장원에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범한이 가져온 물건에는 수공 천막 세 개, 구이용 철제 틀 하나, 석쇠, 가는 대나무 가지가 있었고, 후추와 마근, 달걀, 생선, 무, 두부와 숯도 있었다. 모두 구이용 도구들이었다.
여종이 한 무더기로 쌓인 천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물었다.
“이건 어디다 쓰는 건가요?”
“이걸로 천막을 치면 밤에 호숫가에서 별을 볼 수 있어.”
범한이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해 주자 여종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으로 갔다.
범한은 숯을 피운 뒤 돌 몇 개를 가져와 그 위에 석쇠를 올렸다. 그러고는 양념 바른 생선을 대나무에 꽃은 뒤 조심히 익혔다. 생선이 익어 가면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가 코를 쓱 비비며 호숫가에 홀로 앉아 있는 임완아를 바라보고는 씩 웃었다. 꼬치 세 개가 구워지자 그는 범약약과 범사철에게 하나씩 준 뒤 나머지 하나를 들고 호숫가로 걸어가 임완아 옆에 앉았다.
“자요.”
범한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임완아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는 표정으로 범한을 힐끗 쳐다본 뒤 조심스럽게 한 입 먹었다. 가만히 맛을 보던 그녀가 놀란 눈으로 범한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다시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생선 하나를 단숨에 해치운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꼬치를 바라봤다.
범한은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임완아의 통통한 입술을 바라보던 그는 경묘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는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밤마다 닭 다리를 가져다줬는데도 성이 차지 않았나 봐요?”
그러자 임완아가 입을 삐죽 내밀며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요리 솜씨가 좋은 줄 알았으면 차갑게 식은 닭 다리 같은 건 먹지 않았을 거예요.”
범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크게 웃다가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임완아는 어떤 때는 부끄러워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다가도 어떤 때는 귀여운 얼굴로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화를 내기도 했는데, 범한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임완아가 고개를 돌려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음식을 굽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일찌감치 생선을 다 먹은 범사철은 여종들과 함께 옥수수를 구워서 먹고 있었고, 범약약은 꼬치를 먹으며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는 범약약의 표정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범한이 가져온 물건들을 보던 임완아가 말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장원 안에서 식사를 해서 여종들이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요. 오늘 가져온 물건은 전부 신기한 것들이네요.”
범한은 웃으며 설명했다.
“비록 여종이긴 하지만 매일 당신과 함께 호화로운 생활을 하니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을 거예요. 저렇게 구워 먹는 게 꼭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직접 만들어 먹기 때문에 혀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죠.”
“혀의 감각이요?”
임완아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혀는 부분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혀의 안쪽에서 쓴맛이 느껴지고, 혀의 앞쪽에서 단맛이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에요.”
임완아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비개 대인의 제자라서 그런가 이런 것도 알고 계시네요.”
비개의 이름을 듣자 범한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진평평 원장도 돌아온 마당에 비개는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범한은 여전히 비개를 존경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경도에 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게 야속했다.
임완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범한은 씁쓸한 기분을 털어 내고 불을 피웠다. 두 사람은 호숫가에 앉아 오순도순 음식을 구워 먹었다. 물론 대부분 범한이 굽고 임완아가 먹는 식이었다.
“음, 이 조미료는 색다르네요.”
임완아가 입가에 묻은 참깨를 핥아먹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근이 구하기 어렵지 참깨는 구하기 쉬워요.”
마근은 이전 시대에 커민이라 불린 향신료였다. 범한이 경여당 대행수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구하기 힘든 재료다. 맛있어하는 임완아의 모습에 범한은 뿌듯해하며 말했다.
“혼인하면 매일 해줄게요.”
혼인이란 말에 순간 임완아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기름이 묻어 번지르르한 입술에 검댕이 묻은 코로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게 몰래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 먹은 아이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범한은 임완아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눈에는 임완아의 얼굴이 완벽하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범한의 웃음에 부끄러워진 임완아가 화를 내며 달려들려 하자 범한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호숫가 식물들이 여종들의 시선을 가려 줬기에 범한은 임완아를 안아 볼 수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완아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범한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뒤로 뺐다.
범한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호수 물에 손수건을 적셔서 돌아왔다. 그러고는 임완아의 코와 턱에 묻은 재를 닦아 줬다.
범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긴장한 임완아는 치마를 꽉 움켜쥐었다. 얼굴을 닦아 주던 범한은 그녀가 긴장하자 손을 멈췄다.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임완아를 바라보던 범한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놀란 임완아가 부끄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급히 실망한 기색을 숨기고는 뭐라 따지려 하자 범한의 입술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향기롭고 달콤했다.
“아야!”
임완아가 범한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놀란 범한이 재빨리 일어나 그녀를 바라봤다. 놀란 표정으로 임완아를 바라보던 범한은 그녀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웃음 지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임완아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범한이 용기를 내어 미래의 아내인 임완아를 안았다. 어색하게 범한의 품속에 안겨 있던 임완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범한을 바라보고 물었다.
“제가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괜찮아요?”
‘그럼 당연히 괜찮고말고. 안 괜찮은 이유가 뭐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며 임완아를 바라보던 범한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비록 호숫가 풀들로 가려졌지만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던 여종들의 눈에 두 사람의 모호한 실루엣이 보였다. 상황을 눈치챈 여종들이 당황하며 시선을 피했다. 누군가는 주저앉아 고기를 뒤집었고, 누군가는 몸을 돌려 장신구를 정리하는 척했으며, 누군가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다가 주저앉아서는 다리를 다친 척 연기했다.
범사철은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고, 범약약은 소화하기 위해 산속을 산책하고 있었기에 몰랐다. 사실을 알고 있는 여종들은 헛기침으로 두 사람을 경고하려 하지도 않은 채 내버려 두었다.
나라의 권력을 갖고 싶으면 환관 우두머리의 환심을 사고, 집안의 권력을 갖고 싶으면 가장 가까운 여종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걸 범한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그는 아버지의 권력과 책방에서 벌어들인 은전을 이용해 여종들의 환심을 사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호숫가에서 붙어 있던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떨어졌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모습이 애정을 나눴다기보다는 한차례 전쟁을 치른 것 같았다.
임완아가 머리를 다듬으며 여종들이 있는 곳을 힐끗 바라봤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쑥스럽고 화가 나 그녀는 범한을 노려봤다. 대낮에 이런 짓을 벌여 당혹스러웠지만 입술에 남은 달콤한 맛에 즐겁기도 했다.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밤에는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범한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임완아의 귓불을 튕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임완아가 한숨을 쉬며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때렸다.
“남편을 죽이려 하는구먼.”
범한이 놀리며 말했다. 그는 임완아를 놀리는 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자 임완아가 씩씩대며 있는 힘껏 그의 손을 물었다. 범한은 무진장 아팠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씁쓸히 웃었다.
“요정의 싸움도 아닌데 이렇게 세게 물 필요는 없잖아요.”
‘요정의 싸움’이란 말은 원래 《홍루몽》 제73회에 나오는 말이다. 사대옥이란 여종이 대관원 안에 들어가 향주머니를 주웠는데 거기에 남녀가 벌거벗고 부둥켜안고 있는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바보였던 사대옥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두 요정이 싸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향주머니는 형님 부인의 손에 들어가고, 이를 계기로 대관원을 조사하게 된다.
《홍루몽》을 모르는 경국 사람들은 요정의 싸움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임완아는 범한이 쓴 《석두기》라는 책을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얼굴을 붉히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를 뭐로 보는 거예요?”
범한이 빙그레 웃었다.
“당연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죠. 옛사람이 이르길 요정의 싸움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거라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좀 전에 요정의 싸움을 한 것뿐이에요.”
“흥! 옛사람의 이름을 빌려 그런 거짓말 하지 말아요.”
임완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었다.
“요정의 싸움과 그냥 싸움은 어떻게 구별해요?”
“그냥 싸움은 손이나 발처럼 몸의 모든 부분을 사용해서 하는 거고, 요정의 싸움은…… 입술만 가지고 하는 거죠.”
“죽여 버릴 거야.”
범한이 능글맞게 웃었다.
“당신 품 안에서 죽으면 되겠네요.”
* * *
사랑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정오가 되어 있었다. 범약약이 장원에 묶어 뒀던 늙은 궁녀들은 정오가 되어서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떠오른 듯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 모습에 범한이 웃으며 범씨 가문은 잔머리를 굴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범한은 여전히 늙은 궁녀들이 성가셨다. 그녀들이 돌아오자 임완아가 태도를 돌변하더니 쌀쌀맞게 인사하고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까지 범한이 준비한 재료로 먹을 수는 없었기에 일행들은 휘황찬란한 장원으로 돌아가 운치 있는 집 안에서 종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시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온 건지 아는 듯 범한과 임완아가 동시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듯 일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마차가 두 대인 것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첫 번째 손님이 나오자 범한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임완아가 초대한 사람은 섭령아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별궁 밖에서 싸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 만나게 해 마음속에 있는 앙금을 풀어 줄 생각이었다. 범한은 임완아의 생각을 이해하고는 섭령아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섭씨 아가씨, 어서 오세요.”
섭령아는 여전히 코가 시큰거리며 아팠지만 어색한 표정으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범 공자의 무공에 감복했습니다.”
범한이 웃으며 임완아를 힐끗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범사철이 낮은 목소리로 범약약에게 말했다.
“누이, 미래의 형수가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나 본데 이러다가 형님에게 아내가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범약약이 인사하려 앞으로 걸어가다가 범사철의 말을 듣고는 멈춰 섰다. 그러고는 음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범사철의 이마를 찰싹 때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가 원한다고 한들 섭씨 아가씨 신분에 첩으로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니?”
범약약은 누구와 결혼하든 범한이 좋으면 상관없었지만 범사철의 말은 너무 터무니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