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19
459화 하늘의 위엄
전전긍긍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황태자는 범건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자 마침내 모든 게 이해가 되면서 교활한 늙은이인 범건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이 호부 조사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범건은 황태자가 호부에서 몰래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도록 이 일을 조용히 은폐하면서 나중을 위해 자세히 조사하지 않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작은 실마리를 하나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 실마리는 7사 중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범건은 그동안 황태자를 대신해 문제를 덮어주면서 한편으로는 황태자의 약점을 잡고 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 일을 황태자를 위해 돈을 빼돌리고 장부를 조작했던 방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진행했다. 은전 40만 냥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사라져서 이 일을 주도한 방려까지도 나중에 문제가 발각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더구나 예부는 몰락했고 황태자는 눈앞에 있는 함정도 발견하지 못할 만큼 멍청했다.
천하를 통틀어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범건 뿐이었다. 이처럼 상서 대인은 직접적으로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작은 실마리를 남겨두는 식으로 공격했다.
예를 들어 북쪽 설원에 주둔해 있는 장군과 군사들이 입고 있는 솜옷이나 남월 전선에는 필요하지 않은 공성 기계와 같은 것들 말이다.
조정은 호부를 조사해 그런 실마리들을 찾아낼 때마다 마지막에 발견한 건······ 바로 자신들이었다.
이들은 몇 년 동안 묵혀둬서 잊어버렸던 과거의 일들을 마주해야 했다.
범건이 직접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위협하는 관리들이 남겨 놓은 실마리를 통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 * *
예부에 대한 조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곽유지가 사망한 뒤 예부 관리들이 대거 교체되어 당시 문서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지만,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의 노력과 감찰원의 수색 덕분에 예부에서 돈을 요청한 문서와 호부에서 줄곧 보관해온 증명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은전 40만 냥이 예부로 간 것은 확실했다. 문제는 예부가 서원과 향시 학원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14번 요청해 은전 40만 냥을 마련한 뒤······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거였다.
호 대학사는 오랜 시간 천하 각지를 돌아다니며 관직 생활을 하다가 문하중서로 부임했기에 각 군과 로에 있는 서원들이 낡고 망가졌으며 지방 향시 학원 중에서도 관리가 안 돼서 물이 새고 바람이 드는 곳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에 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예부 관리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은전 40만 냥이 어디로 간 것인가?”
호 대학사가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여 황태자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조정의 그동안의 상황을 아는 관리들은 예부가 동궁의 편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은전 40만 냥은 예부에서 단독으로 빼돌려 유용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으니 관리들은 모두 그 돈이 동궁에 흘러갔으리라 짐작했다.
동궁과 관련된 일인 이상 더는 조사를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호 대학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은전 40만 냥의 행방을 알아내는 거네.”
황태자가 놀란 가슴을 애써 숨기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호 대학사의 말에 일리가 있네.”
대신들과 함께 앉아 있을 자격이 되지 않아 줄곧 서 있던 목철이 정중앙에 앉아 있는 범 상서의 안색을 살피다 넌지시 말했다.
“은전은 예부로 간 건 분명하나 이 일과 관련된 관리가 지난 춘시 사건에 연루되어 죽었습니다.”
황태자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현재 곽유지는 죽었고 곽보곤은 행방불명이 된 상태였다. 더구나 지금 감찰원에서 관련된 사람이 죽었다고 확인을 해주었으니 설사 은전 40만 냥이 자신이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장 공주라 할지라도 증거를 찾아 호 대학사에게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황태자는 조금은 안심이 되면서 한 편으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고모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때 목철이 황태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으면 돈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저희 감찰원에서 예부를 수색해도 되겠습니까?”
‘예부를 수색한다고?’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감찰원에서 예부를 수색하겠다니? 조정에서 호부를 조사한 것이 멀리 강남에 있는 작은 범 대인의 심기를 건든 게 분명해. 만일 작은 범 대인의 지시에 따라 감찰원에 예부를 조사하게 된다면······ 예부 관리들은 살아남지 못할 텐데.’
하지만 목철의 요구는 너무나도 합당한 것이었다.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범건의 수염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속으로 범한의 심복인 목철이 영리하게 자기의 의도를 알아챘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범건의 의도는 아주 간단했다. 호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선을 쪼개 이 일에 되도록 많은 관아들을 끌어 들어야 했다. 예부를 시작으로 6부 관아를 모두 끌어들인다면 아무리 영민한 황제 폐하라도 6부 상서들에게 모두를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부상서 안행서가 범건의 교활한 전략이 혀를 내두르며 재빨리 반대했다.
“폐하의 명을 받아 호부를 조사하는 데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네.”
범건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럼 그래야지.”
범건의 비꼬는 말투에 안행서가 얼굴을 붉혔다. 예부가 연관되어 있는 이상 호부를 계속 조사하기 위해서는 예부도 조사해야만 했다.
호 대학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에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의논해 보세.”
감찰원이 예부를 조사한다면 결국에는 황태자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게 분명했기에 조사를 총 책임진 호 대학사는 황제의 의견을 묻기 전까지는 결정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황태자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예부의 일은 조사해야 하네. 다만 일에는 모름지기 순서가 있어야 하는 만큼 호부 문제를 조사하라는 폐하의 뜻을 망각하고 함부로 조사 영역을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네.”
범건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호응했다.
“황태자 저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호 대학사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시했다.
“예부의 일에 대해서는 입궁에 폐하의 뜻을 들은 뒤 결정하도록 하고 일단은 황태자 저하의 뜻대로 호부 조사를 계속하도록 하세.”
은전 40만 냥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조사가 계속되자 호부에서 여러 많은 문제가 드러났고, 황태자는 범씨 가문이 호부를 깨끗하게 운영하지는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당연하게도 호부는 깨끗한 곳이 아니었고, 범 상서가 깔아놓은 실마리는 황태자만을 가리키고 있지도 않았다.
조사를 깊이 파헤쳐 호부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 순간 이번에는 대리사가 궁지에 몰려야 했다. 관리들이 눈을 부릅뜨고 조사를 하는 동안 줄곧 옆에서 조용히 있던 대리사경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눈치를 살폈다.
호부는 부패한 관아가 아니라 베일에 싸인 관아였다. 드리워진 베일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조정 관아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청렴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태학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장 공주와 2 황자만이 호부 조사에서 연루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항상 황실 금고에서 돈을 융통했기에 호부와 관련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범건이 주도면밀하게 배치한 실마리 속에서 2 황자와 관련된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안행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입궁해 폐하의 뜻을 들어본 뒤에 내일 다시 하도록 합시다.”
“그럼요. 그래야지요.”
범건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 대학사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조사를 맡은 관리들을 바라봤다.
‘조정이 이 정도로 부패했단 말인가? 폐하께서는 범 상서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조사를 하라 하셨던 것인데······ 강남과 관련된 건 나오지 않았으니 범 상서가 책임질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만일 계속 조사를 한다면 조정 관리 중 태반이 물러나게 될 것이야.’
* * *
황궁은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궁 안의 낮은 담장 위로 모습을 드러낸 살구나무의 싱그러운 잎사귀와 화려한 꽃들이 주변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어서방의 문은 일을 의논하러 온 대신들 때문에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고 마지막에는 황제와 초를 밝히는 늙은 태감만 남게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경국 황제가 탁자를 내리치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짐이 호부나 동궁을 못 건들 거라 생각하는 겐가?”
어서방을 처음 찾아온 건 호부 조사를 맡은 관리들이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경국 황제는 살짝 화가 났다. 그가 호부를 조사하게 한 이유는 호부가 강남에 돈을 조달한 일을 가지고 범건을 물러나게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비교적 깨끗하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고 새롭게 조정의 균형이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호부와 범건은 너무나도 깨끗했고 오히려 나머지 5부와 3사, 심지어 동궁까지도 호부에서 마음대로 돈을 조달에 쓴 사실이 드러났다.
호 대학사는 예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넌지시 호부를 계속 조사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계속 조사를 했다가는 호부에 죄를 묻기도 전에 다른 관아의 대신들이 먼저 체포될 상황이었다.
황제는 이런 사실에 화도 나면서 한편으로는 호부의 주도면밀한 방식에 마음이 오싹했다. 더욱이 범건이 그동안 비리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에게 숨겨왔다는 사실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자신이 호부를 건드릴 때를 대비해 숨겨 온 게 분명했다. 오래전 각 관아에서 저지른 비리를 하나하나 들춰 관리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고······ 황제인 자신의 손발을 묶어버리려는 계략이 분명했다.
범건과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황제는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주도면밀한 호부의 대응 방식에 놀라지 않았다. 그가 분노한 것은 대신들이 너무나도 무능해 호부의 함정에 쉽게 걸려들었다는 것과 황태자가 천하를 물려줘도 될지 의심스러울 만큼 멍청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황제를 가장 화나게 했던 것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였던 범건이 자신에게 이처럼 신랄한 반격을 했다는 점이었다.
“짐을 협박하려 하는 것인가!”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늙은 호 내관이 고개를 저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노비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마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입니다. 충신이 범 상서 대인이라도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생각해 내는 법입니다.”
황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계략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실행하는 사람을 충신이라 할 수 있는가?”
늙은 홍 태감이 한숨을 쉬었다.
“진 원장께서는 누구보다도 계략을 좋아하시지만, 이 늙은 노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충성스러운 분이 아닙니까.”
황제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짐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준 진평평과 범건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범 상서 대인이 그동안 호부를 관리하면서 나라에 잠재해 있는 여러 위험을 해결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조정의 안녕을 위해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늙은 홍 태감이 탄식했다.
“만일 범 상서 대인이 정말 불충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들을 이용해 다른 일을 꾸몄을 겁니다. 범 상서 대인이 조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줄곧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조정의 혼란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짐에게는 말해줄 수 있었다.”
황제가 투덜대자 늙은 홍 태감이 가벼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범씨 집안에서 들려온 정보를 보면 범 상서 대인이 자세히 알리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 근심하시다 옥체를 상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도 며칠 전에 보고된 정보를 기억하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