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26
466화 풍파가 일다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은 감찰원이 명씨 가문과 대적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일벌백계의 표적으로 삼은 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로 소주부에 갇힌 것이었고, 하옥된 지 벌써 십여 일이 지났는데도 석방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명씨 가문은 본디 세력이 거대한 가문 아니던가. 그러니 소주부가 그를 다른 죄수와 똑같이 취급했다면 주변에서 한 소리 들었을 터. 이에 그는 비교적 편히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강과 바다에서 도적질을 하다가 옆방으로 잡혀온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었다.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이 도둑놈은 상대도 않고 감방 문 밖에 있는 아속 셋을 흘겨보며 멸시와 조소가 담긴 투로 말을 건넸다.
“오늘 무슨 일이 났는가?”
아속이 감옥 문을 열자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아속 하나가 몸을 굽히고 비위를 맞추는 웃음을 내지었다.
“넷째 어르신, 요 며칠 고생하셨습니다. 감찰원에서 너무 밀착 감시를 하는 바람에 저희도 독방을 내드리기가 힘드네요.”
그러자 넷째 어르신이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탄식했다.
“일찌감치 나가는 게 당연한 일이거늘. 집안에서는 무슨 말이 없었는가?”
그 순간 다른 두 아속이 감방 안으로 들어와 음식과 좋은 술을 그 앞에 놓아주는데 맛있는 향이 진동했다.
넷째 어르신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점심 식사 시간이 안 되었는데. 오늘은 왜 갑자기 시간을 당겨서 밥을 주는 거지?’
그 순간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그가 갑자기 변한 낯빛과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으로 주는 건가?”
“맛있게 드시고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아속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명씨 가문 넷째 어르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내가 한 짓이라곤 기껏해야 시장 독점권을 가지고 싸운 것뿐인데. 어떻게 그게 죽을죄라는 거야? 게다가 나는 명씨 가문 사람이야. 왜 관에서 나를 죽이려 드는 거지?’
그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더니 두 눈에 독기를 담아 아속을 바라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몸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속들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꾸했다.
“감찰원의 뜻입니다. 그러니 넷째 어르신께서는 절 탓하지 마십시오.”
넷째 어르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해보니 이번 사건의 전후 사정을 훤히 알 것만 같았다. 이에 잠시 침묵을 이어가다가 처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찰원이라니! 집에서 날 죽이려 하는 거겠지!”
아속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낮추어 대꾸했다.
“어르신께서도 이미 다 눈치채셨으니,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다 집안을 위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감찰원이 지금 댁에 핍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명원으로 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리 해서라도 뭔가 일을 만들어야, 감찰원에서 손을 떼지 않겠습니까! 그쪽은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이잖아요. 어르신의 목숨 하나 바쳐서 집안이 반년 정도 평안히 지내면, 그 또한 가치가 있는 거겠지요.”
넷째 어르신이 벌컥 화를 내며 욕을 내질렀다.
“이런 뒈질 놈들아! 죽어야 한다면 큰어머니나 죽으라 하거라! 감히 누구보고 죽으란 것이야!”
생사의 갈림길에 서자 그는 모든 게 명확해졌다. 명씨 가문이 왜 자신을 죽이러 사람을 보낸 건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입막음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자신은 집안의 핵심 사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감찰원의 체면을 깎는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것이었다. 명씨 가문은 작년 말부터 불쌍해 보이는 전략을 취하기로 계획을 세운 터였다. 그러니 계획을 위해서라도 넷째 어르신을 죽여 상황을 키워야만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절망적이고 씁쓸한 마음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까 말했던 아속이 낯빛을 바꾸고 말했다.
“큰 노마님께서는 모두를 돌봐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넷째 어르신은 언사에 존경심을 좀 담으시지요.”
넷째 어르신이 처참하게 웃더니 뒤로 물러서서 아속을 꾸짖었다.
“나는 명씨 가문의 어르신이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나를 죽인다는 것이냐! 내가 그녀의 친생자가 아니라 그런 것이냐?”
그가 말하는 사이 아속 둘은 이미 넷째 어르신 옆에 와 있었다. 그들은 그가 욕하고 반항해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더러운 걸레를 그의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더 이상 욕지거리를 못 하도록 하고 동시에 그의 양손을 뒷짐 지도록 한 후 결박할 뿐이었다.
순간 감방 안에서 일대 소란이 일자 대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호기심과 두려움 섞인 눈으로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두머리 격인 아속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감찰원에서 일 처리에 나선 것이니라. 그러니 모두 가만히 있거라!”
죄수들은 감옥에 갇혀 있기는 해도 요즘 감찰원이 명씨 가문을 압박하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찰원이 대감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을 암살하리란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에 오싹해진 죄수들은 명씨 가문이 불공평한 처사를 당하고 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해 다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볼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아속이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젓더니 애석해하며 말했다.
“마지막 식사인데, 이마저도 다 못 드시다니. 참으로 안쓰럽군요.”
말을 마친 아속이 손을 휘 내저었다. 그러자 넷째 어르신을 비틀어 쥐고 있던 아속이 그의 목에 밧줄을 채웠다.
밧줄이 목에 걸리자 넷째 어르신은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변해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 발로 발버둥을 쳐대는 통에 건초가 어지럽게 날리고, 어느 순간 아래 깔려 있던 이불도 더럽혀지고 말았다.
갈수록 강하게 조여 오는 밧줄에 넷째 어르신은 눈동자가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콧구멍이 넓어져 이상하리만치 괴상한 형상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발길질마저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의 두 발은 죽은 개구리처럼 맥없이 팔딱이기만 했다.
죽기 직전인 넷째 어르신은 분명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명씨 가문의 큰 노마님과 명청달을 향해서도 원망을 쏟아냈을 것이다. 한데 곧 죽은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아속은 죽어 축 늘어져 있는 넷째 어르신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순간 싸한 기분이 들어 곁눈질로 건넛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웬 죄수 하나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매우 냉정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냉혈한이 구경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튼 그에게서는 두려움이란 게 보이지 않았다.
아속이 깜짝 놀라 몸을 돌리자 죄수가 건초 더미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바로 쇠뇌였다.
청, 청, 청! 화살 세 발을 쏘는 소리가 울리더니 정확히 아속들의 목구멍에 박혔다. 화살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은 두 다리를 두어 번 팔딱거리고는 죽어버렸다.
아속들이 죽자 밧줄의 조임이 느슨해졌다. 그러자 무기력하게 축 늘어져 있던 명씨 가문 넷째 어르신의 양발이 점점 원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아직 흐릿한 눈으로 건넛방에 있는 죄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방이 왜 자신을 구해줬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자신을 구해주었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 순간 죄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바로 앞만 바라본 채 감방 울타리 옆에 꿇어앉아 있었다.
넷째 어르신은 온몸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바지에 오줌을 지린 터라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넷째 어르신 뒤에 있던 두툼한 벽에 귀신이라도 들린 듯 조용히 구멍이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구멍을 통해 밖에 있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 * *
고달이 살짝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장도를 거둬들였다. 소주부 대감옥의 두툼한 벽에 억지로 구멍을 내다보니 정기를 상당히 소모한 탓이었다. 고달이 감방 안으로 들어가 명씨 가문 넷째 어르신을 한 손으로 들어 데리고 나갔다.
그러자 감찰원 관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 아속들 목에 꽂혀 있던 쇠뇌의 화살을 뽑아 놓고는 조심스레 감옥 안 상황을 정리했다. 그 후 그가 울타리 옆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앞서 넷째 어르신의 목숨을 구한 죄수가 암살용 쇠뇌를 조용히 감찰원 관원에게 건네고는 옆에 있는 찬합을 가리켰다.
감찰원 관원이 닭다리 하나를 집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죄수는 만족스러웠는지 씩 웃어 보였다.
감찰원 관원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두 달 후 대인께서 자네를 증인으로 청할 것이네.”
그러자 죄인은 닭다리를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찰원 관원이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죄수가 먹다 남은 닭다리를 건너편 감옥으로 툭 던져 넣고는 갑자기 낯빛을 바꾸었다. 그리고 처참하기 그지없게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누가 옥졸을 죽이고 죄수를 탈옥시켰다!”
* * *
마차는 소주부 뒤쪽으로 나 있던 작은 골목에서 나와 천천히 총독 관저 겸 관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데 마차에는 아까와 달리 한 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
비참한 표정의 명씨 가문 넷째 어르신이 의자에 맥없이 앉아 고개를 들어 젊고 잘생긴 인물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범한이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했다.
“거대한 가문이다 보니 과연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군.”
범한이 이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 갔다.
“이제 똑똑히 알았을 테니 본관이 더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이제 자네는 명씨 가문을 제대로 장악해 나가야 할 것이네. 일곱째와 함께 말이지.”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던 순간 너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에 더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바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한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 갔다.
“큰 노마님은 자네를 죽이고 우리 감찰원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어. 그리고 그걸로 백성들에게 나, 범한을 뻔뻔한 냉혈한으로 만들려 했고, 또 그들의 정서를 자극해 명씨 가문을 보호하려 했지······. 하나 내가 자네를 구했으니, 그 똥물은 오히려 명씨 가문을 더럽히고 명씨 가문에서 감옥을 습격했다고 알려질 테니······ 말해보게나. 큰 노마님이 이제 어떻게 나올 거 같은가?”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은 얼이 빠진 눈을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는 목에 통증이 있는데도 갈라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인······ 그 큰 노마······ 그 죽일 년을 얕보지 마십시오.”
“자네가 지금 죽었든지, 아니면 명씨 가문에 의해 탈옥을 했든지······.”
마차에 앉아 있는 범한이 밖을 주시한 채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 갔다.
“자네는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네. 감찰원에서 이미 장소를 봐 뒀으니 그곳에 숨어 있다가 이번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오게.”
그러자 명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은 힘없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범한이 고개를 돌려 그를 잠시 바라보고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전에 일곱째와 만나보라 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어. 그러면 지금 이런 꼴을 당할 리도 없었겠지!”
그러자 명씨 가문 넷째 어르신이 이를 악물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자(母子)가 이렇게나 모질다는 건 아무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러자 범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 큰 가문을 보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희생물이 필요하겠지.”
넷째 어르신은 붉게 부어올라 아픈 목을 조용히 매만지기만 했다. 그는 자신이 일개 희생양에 불과하며, 무언가를 더 많이 요구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