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38
478화 나를 감히 죽일 수 있을까요? (3)
범한은 섭류운을 딱 한 번 본 적 있었다. 바로 그가 12살 되던 해였다.
그 해 범한은 절벽에 엎드려서 아래쪽에 있는 반쪽짜리 배며, 모래사장에 생긴 수만 개의 구멍이며, 절세의 실력자 둘이 펼치는 일촉즉발의 강자전을 두 눈을 반짝이며 주시했었다.
그때 두 사람 중 하나는 경국의 대종사 섭류운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죽 아저씨였다.
열두 살의 범한은 이제 막 패도의 권을 완벽히 익히고 난 후라 안목이 썩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일전에 감탄만 했을 뿐 그 속에 숨은 정수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가끔 당시를 회상하다가 기억 속에 일부에서 미묘한 부분, 놀라운 부분, 배울만한 점들을 발견해 내고 있었다.
기억나는 게 많아질수록 오죽 아저씨와 섭류운의 절세의 실력을 향한 감탄도 늘어갔다. 어떤 때는 섭류운이 반쪽짜리 배를 타고 바다를 떠가는 모습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물론 그 예스러운 가락도 함께 귓전을 맴돌았다.
하지만 경국의 대종사가, 그것도 만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큰 인물이 기생집 꼭대기 층에 나타나 자신과 맞서려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범한은 이 세계에서 죽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가 홀로 적과 마주하고 있을 수 있는 건 이미 상대에 대해 충분한 사전 분석을 거쳤다는 뜻이었다.
범한은 이미 자신의 실력과 주변 상황 등등을 놓고 이리저리 계산해보고 헤아려본 상태였다. 그 결과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람은 동이성의 사고검이었다. 아울러 그에게 가장 예측 불가한 사람은 북제의 고하였으며, 제일 껄끄러운 상대는 황실에 계신 몇몇 분들이었다.
사고검은 백치 같은 사람이기는 해도 범한을 별 것 아닌 듯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대게 백치는 문을 나서면 낯선 곳에 가는 걸 제일 싫어하지 않던가.
한편 가장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자 인육을 맛나게 먹은 고행자 고하의 경우, 범한에게는 평범한 수준의 실력자였다. 범한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고하가 친애하는 오죽 아저씨와 겨룬 후부터였다. 오죽과 겨뤄서 다친 고하가 그다지 무섭지 않다고 느껴진 것이었다.
경국 황궁에 있는 이들은 범한과는 친족 관계였다. 그래서 범한은 이들에 대한 생각은 잠시 보류한 상태였다.
종합해 보면, 범한은 대종사급 인물만 걱정하는 중이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범한이 과도한 자신감에 차 있어서 저가 잘난 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실력에 맹인 아저씨까지 합세해줘야 이들을 어떻게 해보는 걸 걱정해 볼 수 있는 처지인데 말이다.
그리고 유독 4대종사 중 섭류운에 대해서만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건 어릴 때 인상 깊게 남은 기억 때문이었다. 범한에게 섭씨 가문의 큰 어르신은 흐르는 구름처럼 맑은 기풍을 지닌 사람이었다. 또한 진정으로 여행을 좋아해서 항상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유쾌한 성격에 재미없는 인간사 투쟁에는 끼어들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경도 섭씨 가문의 상황 때문이었다. 안목이 날카로운 범한이 봤을 때 섭류운은 정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황제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현공 사당의 화재 사건으로 섭씨 가문이 고초를 당했지만, 그런 저속한 조치에도 섭류운은 꾹 참으며 경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섭씨 가문 자손의 행복과 안위, 가문의 존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섭류운이 경도에 머물지 않고, 시세에 있어서 평형을 유지해 주자 황제도 섭씨 가문을 어쩌지 못했다. 이는 굳이 말로 꺼낼 수 없었다. 황권과 섭류운이라는 초절정의 무력 사이에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는 묵계 때문이다.
그래서 섭류운이 군산회 일로 직접 나서고, 거기다가 자기를 찾아와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하자 범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게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흑기를 철수시키면, 황제 폐하께서 섭씨 가문과 군산회의 관계를 모르실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이렇게 된 이상 균형은 이미 깨진 것 아닌가?
그래도 해볼 테면 해보라지! 범한은 대종사의 급소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조소를 퍼붓고 ‘대역무도’하게 요리조리 찔러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섭류운이라면, 나를 감히 죽일 수 있을까요?’라고.
* * *
범한은 이 대종사가 갑자기 소주에 나타난 진짜 의도를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삿갓 아래에 있는 가을날 물 같은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섭류운이 다음과 같이 반문할 경우를 생각해 속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범한은 강호를 휘젓고 다니는 대형 살상 무기를 언급하며 냉랭하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나를 죽여요. 그러면 오죽 아저씨가 당신네 섭씨 가문 사람을 몽땅 죽여줄 겁니다.”
단순하지만 간단한 진리이기 때문에 섭류운은 절대적으로 믿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보니······ 그때 절벽에서 훔쳐보고 있었군.”
범한의 예상과 달리 섭류운은 범한의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쥐고 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잘생긴 범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어다.
범한은 깜짝 놀랐지만 여전히 냉정한 척하며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섭류운이 물었다.
범한은 그가 어떻게 안 건지 이해가 안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까 일부러 독하고, 계획이 있는 척했을 때보다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섭류운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 절벽에 없었다면 어떻게 그 글귀를 읊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내가 나인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 또 네가 그자와 아는 사람인 걸 내 어찌 알 수 있으며, 또 내가 너를 감히 죽일 수 없다는 걸 어찌 알겠느냐?”
‘아 복잡해라. 무슨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지.’
범한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평범한 정상인보다 십여 년은 계몽이 되어 있었고,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어, 논리적인 기초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견고했다. 이에 범한은 머리를 몇 차례 굴려본 후 섭류운이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섭류운이 하려는 말은 간단했다.
‘이 세상에서,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것도 강남에서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섭류운의 말뜻을 알아들은 범한은 경악했다.
‘경국의 대종사인데, 설마 저 사람을 아는 사람이 몇 안 된다고?’
* * *
범한은 무의식적으로 종이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입가에 조소를 띄우며 말했다.
“멋진 척하면 우리 아저씨를 흉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삿갓을 쓰면 대머리인 고하인 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말고요. 검을 부수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사고검으로 여길 거라고도 생각하지도 말아요. 당신은 섭류운이에요. 제가 당신을 알아봤든 아니든, 당신은 섭류운입니다.”
사고검의 행방은 감찰원의 중요한 감시 사항 중 하나였으므로 섭류운은 사고검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섭류운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정말로 황제 아버지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기 위함인 건지 궁금했다.
범한이 조소하며 말을 이어 갔다.
“사고검은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 우리 경국에게 여러 차례 누명을 쓴 거고요.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이번 연극은 준비가 너무 부실했어요.”
* * *
“내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섭류운이 싸늘하게 범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냥 일깨워주고 싶을 뿐이다. 네가 강남으로 내려온 것 때문에 강남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걸 말이다.”
범한이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전혀 위축되지 않은 태도로 천하에 겨우 넷밖에 없는 최상등급의 강자 중 하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세상에 사람을 죽이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이냐?”
“저는 신하이니······ 제가 책임지고 있는 건 황제 폐하의 이익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범한이 눈에 이채를 잠시 번뜩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 말고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죽게 되어도 말이냐?”
“안 죽을 건데요. 저는 죽을 리 없거든요.”
한동안 아무 말 없던 섭류운이 다시 입을 뗐다.
“네······ 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어머니를 언급했지만 범한에게는 전혀 의외랄 게 없었다. 하지만 서릿발이라도 선 것처럼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찬바람이 쌩쌩 돌게 말했다.
“어머님을 들먹이며 압박하지 마시죠. 그리고 살인에 관해서라면 당신이 저보다 더 잘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제 어머님은 저와 별반 다르지 않으십니다.”
“내가 말한 건 근성과 천성이야.”
섭류운이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말을 이어 갔다.
“살인을 즐기는 자가 어떻게 큰 권력을 쥘 수 있겠느냐?”
옛날이야기로 잠시 느슨해졌던 꼭대기 층의 분위기가 순간 다시 얼어붙고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네가 경도에 있을 때는 걱정 많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음 쓰게 하더니만. 일단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마.”
말을 마친 섭류운은 곧게 뻗은 나무처럼 꼿꼿하게 탁자 옆에 앉아 한 치의 흐트러짐도 내보이지 않았다.
“네가 강남에 내려오니 강남에도 일이 많아졌다. 얼마나 많은 이가 너의 그 뛰어난 솜씨에 죽어 나갔는지 아느냐?”
범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목소리를 낮게 깔고 대답했다.
“제가 강남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강남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황실 금고에 있는 염병할 놈들이 더 이상 염병할 놈이 아니고, 명씨 집안 도적놈들이 의적으로 변모라도 한답니까?”
범한이 경멸의 웃음을 내지었다.
“어르신, 아까 제 어머니를 들먹이며 압박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는데, 하나 더 추가하지요. 대의명분을 내세우셔도 제게는 아무 효과가 없을 겁니다.”
섭류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가 희로애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범한에게 차분히 말했다.
“원몽을 죽일 때 네가 그 집 여종들을 마취약에 취해 자게 했으니, 조금은 착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한데 정신을 잃고 있던 사람들은 사건 발생 후 몽땅 소주부로 잡혀가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했어.”
섭류운이 범한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자리를 뜰 때 감찰원의 압박 때문에라도 그 무고한 사람들이 죽은 목숨이란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어. 그러니 네가 그 무고한 사람들을 직접 죽인 건 아니어도 그들은 너 때문에 죽은 거야.”
“저는 제가 져야 할 책임만 질 겁니다.”
범한은 전생에 들었던 뻔뻔한 말로 담담하게 응대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거대한 지진이 일고 있었다.
범한은 무고한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어서 마음이 조금 암담하기는 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린 건 전부 섭류운의 말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 저택에서 살인을 행한 정황을 섭류운이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흘려서였다.
범한은 섭류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이 대종사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벌써 사고검의 검술을 익혔다는 걸 섭류운이 알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터. 왜냐하면 그건 범한의 비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단 경도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 아시게 되는 날에는 그림자와 현공 사당의 일 때문에 감찰원은 철저히 짓밟힐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 그것은 자신을 협박할 수 있는 도구였다. 하지만 섭류운의 표정만 보아서는 세세한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섭류운은 그 많은 일들 가운데 하필이면 별것 아닌 원몽을 언급한 걸까?’
범한의 눈에 순간 엄숙함이 번뜩이더니 그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살인과 입막음이란 단어들을 머리에서 지웠다. 오늘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지 않은가. 과거에는 자신이 칼이고 세상 사람이 생선 토막이었다면, 오늘 도마 위에서 몸부림치는 쪽은 범한 자신이었다. 앞에 있는 삿갓을 쓴 객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오죽 아저씨는 아직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니, 범한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자신의 바람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탁자를 내리치고는 소리치며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