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52
493화 별이 빛나는 똑같은 밤하늘 (1)
임완아가 불쌍한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 눈썹은 바람에 일그러진 버드나무 잎처럼 찌푸려져 있고 울먹이는 눈은 뭔가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착한 상공님, 용서해 주세요!”
그러자 범한이 웃었다.
“착하지. 약 먹자꾸나. 안 먹으면 궁둥이를 맴매해줄 거야!”
임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통스럽게 약을 먹고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멍청하게 군 걸 후회했다. 상공에게 모두 털어놓다니. 그의 성정대로라면 자신의 결정을 허락해 줄 리 없는데 말이다. 이 사실을 진즉에 알아챘더라면, 강남에 내려오는 걸 포기하고 경도에서 몰래 약을 먹지 않고 지내면 되는 것을.
임완아가 순간 살짝 수줍어하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강남으로 내려오지 않고 약을 끊고 몸 안에 있는 독소를 모두 빼냈는데······ 상공이 없다면, 아이를 가질 수 없잖아!’
손수건으로 임완아의 입가에 묻은 약을 닦아주려던 범한은 아내의 이마가 갑자기 붉어져 깜짝 놀랐다. 이에 ‘요 자그마한 머리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웃으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부인, 왜 갑자기 부끄러워하시오?”
임완아가 눈을 흘기며 ‘흥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안 말해줄래요.”
임완아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녀가 강남에 온 이유는 첫째, 작년 말에 이미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둘째, 범한과 긴급히 상의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아랫사람을 시켜 전달하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였다.
범한이 임완아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귀를 가져다 대며 아내의 속삭임을 들었다. 범한은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아무런 변화 없이 여전히 차분했다. 대신 그는 아내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을 이리 서둘러 강남으로 내려 오게 만들었으니까······. 황궁에 계신 어르신들께서는 남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씀하는 걸 좋아하시지만, 실제로는 많이는 모르고 계시잖아요.”
경도에서 지내는 동안 젊은 부부 사이에는 묵계가 있었다. 그리고 범한이 일찌감치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아내가 험한 일에 가담하는 걸 원치 않았다. 실제로는 아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는 범한에게 임완아가 아내이자 여인이고, 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 황자가 범씨 가문 저택을 방문한 날 부부의 대화만 봐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임완아는 자기 주변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전혀 가깝지 않은 친모와 상공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는 건 두 눈을 가리고 못 본 척 할 수는 없었다.
여인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서 임완아는 범한을 보호하면서도 양측이 돌이킬 수 없는 국면까지 가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한데 그 방법은 너무 어려웠다. 범한도 딱 떨어지는 해결책이 없었으니 임완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임완아는 경도에서 여기저기에 조심스레 묻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범한을 대신해 여인들의 정치에 숨은 현묘함을 분석하고, 황궁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는 특권을 이용해 저 먼 강남에 있는 범한이 황궁의 모든 이들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해주고, 상공에게 불필요한 장애물이 제거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일은 범한도 알고 있었고, 막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임완아가 중간에서 윤활제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춘시 사건 발생 후 황궁에서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범한의 반대로 임완아는 능력은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이에 정치며 황궁과 관련한 그녀의 타고난 감각은 강제로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예 모르고 지내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황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들은 후에는 단호하게 강남 행을 택한 것이었다.
범씨 가문의 아씨 마님이 강남으로 내려오자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북제 성녀인 해당타타를 보기 위해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임완아는 범한에게 무언가에 대해 경각심을 주려고 강남으로 온 것이었다.
“황궁 내 어르신들께서······ 많은 영향을 미치실 수 있어요.”
임완아가 걱정스레 범한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 갔다.
“황태후마마는 황후마마의 친고모세요. 그러니 두 분 관계는 절대 갈라놓을 수 없을 테고······. 황후마마가 황궁으로 들인 이가 황태후마마께 《석두기》에 관해 말했어요. 그 안에 여러 음모가 숨어 있겠지만, 그래도 상공은 너무 개의치 마세요.”
범한은 침묵했지만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담주에서 《석두기》를 쓸 때, 애당초 그건 자신과 사사만의 놀이였으며, 누이 범약약에게 재밌는 걸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울러 문학을 좋아하는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물론 범한은 원작자 조설근이 당시 금기시했던 걸 《석두기》에 담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와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라 금기 같은 건 없을 거란 생각에 그는 대범하게 행동했다.
그러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신분과 향후 겪게 된 변화 때문에 《홍루몽》의 내용이······ 마치 자신이 지닌 불망과 원망을 서술해 놓은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었다.
특히 교 ‘누나의 시’가 그러했다.
이 책은 범한만 아니라면 그 누구나 써도 되는 책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세상 사람들은 범한을 이 책의 저자로 믿고 있었다.
책에 담긴 원한과 분노가 자신이 과거 섭가의 일에 대해 불복하는 것처럼 보이니······. 황후마마가 보낸 사람이 황태후마마께 《석두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예민하고 의심 많은 황태후마마가 과연 범한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황족 간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즉, 마음이 의심스러우면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는 거고, 마음에서 죽이게 되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범한은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다가 이는 곧 겪게 될 문제라고 확신했다. 황태후마마께서 정말로 범한이 불만을 갖고 과거 일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쩌면 노부인께서 지금처럼 잠시 침묵 중인 상황은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경국은 효로 천하를 다스렸다. 그러니 황태후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면, 황제 아버지도 무언가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범한이 강남으로 내려와 있은 지 오래. 그리고 실력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 있지 않은가. 그러니 범한은 이정도의 작은 풍랑에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에 아내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온화하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노부인께서 나를 걱정하신다 한들······ 어쩌겠어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그분도 황제 폐하께 나를 삭탈관직하라 요청하시지 못할 겁니다.”
임완아가 소리 내어 씁쓸하게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범한의 미간에 가볍게 선을 그으며 범한을 질타했다.
“그분은 내 외조모님이시자 상공의 조모님이신데······ 왜 노부인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자 범한이 히히히 웃었다.
“그도 그렇군요. 과거 경묘에서 당신과 만났을 때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당신은 내 사촌 누이인데 말이죠.”
“흥······ 나를 그렇게 오래 속인 게 누구였더라?”
임완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구시렁댔다.
범한이 그녀의 마음을 풀어 주기도 전에 임완아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어 갔다.
“그 일은 잠시 괜찮다 치죠. 그래도 명씨 가문 일은 어쩌죠? 강남에서 소송 하고 소란을 일으킨 게 경도까지 소문이 났어요. 지금 송세인은 엄청난 유명인이 됐고요. 적장자에게 천부적인 계승권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많은 사람들에게는 선을 넘는 언사였어요. 송세인이 하서비를 돕고 있기는 해도 경도 사람들은 상공이 그들의 배후인 걸 다 알고 있다고요. 그래서 다들 ‘우리 작은 범 대인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 중이실까?’, 라고 생각한답니다.”
범한이 눈썹을 씰룩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임완아가 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상공이 하서비에게 명씨 가문의 재산을 돌려주는 거지만······. 황태후마마께서 설마 의심 안 하실까요? 더욱이 석두기 때문에 생긴 일 때문에······ 모두들 두 가지를 한 데 놓고 생각할 거예요. 상공이 황실 금고를 가지려 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황실 금고는 누구 거죠?”
“우리 황궁에서 적장자가 누굴까요?”
임완아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 갔다.
“상공이 강남에서 하시는 일은, 본인을 위해 태자 오라버니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고, 심지어 황태후마마와 대립면에 서는 일이라고요.”
범한이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자신의 진짜 생각을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황궁에 계신 분께서 내게 다른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시도록 만들 거예요.”
임완아가 깜짝 놀라 입을 살짝 벌렸다. 이렇게 무모하게 돌진하는 건 상공의 성격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완아가 며칠 늦었어요. 그래서 태감을 통해 황제 폐하의 성지가 당도한 일은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범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며칠 뒤면 경도에서 내 결정을 알게 될 거에요. 내가 셋째 편에 서기로 했거든요.”
임완아는 조금 믿기지 않았다. 이에 긴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를 싸움판으로 올려보내다니······. 한데 셋째는 고작 아이일 뿐이에요.”
“셋째는 고작 아이가 아니에요.”
범한이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리고 웃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꽤 능력이 있더라고요. 더군다나 나는 내 인지능력과 스승으로서의 자질을 믿고 있어요. 내가 길러낸 녀석이니 덜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한데······ 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려는 건지는 아직 말을 안 해줬군요.”
임완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현 국면이 그대로 확대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양측 모두 화해할 기회를 잃을 것이었다. 그리고 압박해서······. 임완아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 놀란 사람처럼 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공······ 그분들께서 손을 쓰시도록 하려는 건가요?”
한동안 고요했던 침실에서 범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황후마마와 태자 전하를 간과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 중 한쪽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나도 그분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황제 폐하께서 나를 아직 총애하시니, 이때를 이용하면 숨어 있는 화근에게 더 빨리 폭발하도록 압박할 수 있을 거예요.”
임완아가 점점 불안해하며 암담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천자 집안의 싸움에서는 인정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음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과 가장 친한 상공과 태자 오라버니를 떠올리는 순간 누구 한 사람은 죽게 될 것만 같아 오싹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범한이 눈동자에 아내의 마음보다 더 싸늘한 기색을 싣고는 천천히 냉랭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살인은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몇십 년 전에 살인을 해 본 적 있지요. 그러니 지금의 나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직접 이 일을 끝내야겠지요?”
임완아는 아무런 대꾸도 않다가 한참 만에 입을 뗐다.
“그러면······ 그분은 어쩌지요?”
임완아가 말한 ‘그분’은 당연히 범한 부부 사이의 최대 난제이자 줄곧 제 분수를 지키지 않고 있는 장 공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