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67
508화 제독 저택 안에서 벌어진 연극 (1)
원래 조용했던 제독 저택 안이 더욱더 조용해졌다. 저택 안에 있는 모든 관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쩍 벌린 채 범한을 바라봤다.
몇몇 수군 고위 장군들은 무의식적으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게 곧 불어 닥칠 폭풍의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려는 것 같았다. 집안 전체에 일촉즉발의 대치하는 분위기가 무섭게 퍼져나갔다.
경계하고 대치하는 분위기가 퍼지게 된 것은 사실 고위 장군들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천하 사람들 모두가 범한의 원래 신분이 뭔지 알고 있었고, 그가 감찰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런 감찰원 제사가 황제의 명을 받아 변방에 있는 수군을 조사하러 왔다는 것은 분명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애써 마음속에 치솟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서로를 바라본 수군 고위 장군들은 모두들 같은 생각을 했다.
‘설마······ 동해에서의 일이 발각된 건 아니겠지?’
겁에 질린 관리들과는 다르게 춤을 추고 노래하던 기생들은 큰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범한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은 신선 같다고 알려진 작은 범 대인이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또 작은 범 대인처럼 주목받는 인물의 눈에 든다면······ 앞으로 삶이 편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대청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오늘이 미인계를 쓸 좋은 시기는 아니라는 걸 이들도 알고 있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위 장군들은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으며 수군 부장 당효파를 바라봤다. 상곤 제독이 자리에 없으니 수군 부장 당효파가 대표해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효파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교주 지주와 나란히 서서 범한을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러자 모든 관리와 고위 장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범한을 향해 인사했다.
“제사 대인을 뵙습니다.”
“흠차 대인을 뵙습니다.”
문신과 무신의 마음이 다르듯 수군과 교주부 관리들이 범한을 부르는 호칭도 달랐다.
“번거로운 인사는 그 정도만 하지요.”
범한이 아래턱을 살짝 움직여 인사를 표시한 뒤 관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친위병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수군 제독 상곤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일곱 명의 감찰원 관리들이 따라가 그의 뒤에 선 뒤 검 손잡이를 잡은 채 대청에 있는 관리들을 감시했다.
범한의 모습은 방자하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당효파는 겉으로는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는 범한처럼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오히려 다루기 쉽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작은 범 대인이 소문처럼 치밀한 사람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른기침하며 목소리를 다듬은 뒤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하관 제사 대인을 뵙니다. 대인께서 오늘 교주에 무슨 일을 처리하러 오셨는지요?”
“수군 부장이십니까? 저희 감찰원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일손이 부족하니 대인께서 인원을 차출해 주시지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교주 지주를 향해 말했다.
“오늘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사건을 처리하러 왔으나 사람이 부족합니다. 오 대인께서 주군을 동원할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주 지주의 성은 오(吳), 이름은 격비(格非)였다. 과거 구정(舊政) 시기에 삼갑에 합격한 그는 임약보나 범씨 집안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오늘 처음 본 작은 범 대인이 자신의 성을 불러주자 마음이 복받쳐 오른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대인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사실 교주 지주 오 대인은 ‘분수를 아는’ 사람으로 욕심내도 되는 은전은 반드시 탐했지만, 감히 건들 수 없는 건 절대 건들지 않았다.
그래서 외진 교주에 부임한 뒤로는 곳곳이 수군의 통제를 받고 있어 정무를 처리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볼 기회도 좀처럼 가질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감찰원에서 뭘 조사하러 왔던 떳떳한 입장이었다.
더구나 오격비는 진작부터 다른 돈 많은 주로 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도 안에 부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오늘 작은 범 대인이 친밀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자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의 어머니의 성이 무엇인지도 잊어 버렸다.
그리고 감찰원이 병력을 동원하려 할 때는 감찰원과 추밀원의 명령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그가 직접 측근에게 뭐라 몇 마디 말하자 측근이 곧장 명을 전달하러 갔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수군 부장 당효파가 살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제사 대인은 이번에 처음 교주에 와놓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교주 지방 군대를 요구한단 말인가? 도대체 뭘 할 생각이지?’
이렇게 생각하던 그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범한이 뭘 하려 하든 그걸 뒷받침해 주기에는 교주 지방 군대의 실력이 너무도 형편없었다. 주군이라고 해봤자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백여 명 정도의 병력뿐이니 수군의 위협이 되지도 못했다.
그러니 감찰원에서 정말 교주 수군을 상대하려 한다고 해도 범 제사가 일곱 명의 감찰원 관리들만 가지고 뭘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설사 주군을 사용한들 자신의 적수는 되지 못할 거였다.
그래서 당효파는 범한 앞에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저 감찰원이 도대체······ 무슨 일로 오늘 이곳에 왔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제독 대인은 어디 계십니까? 어째서 황제 폐하의 교지를 받으러 오지 않는 겁니까?”
범한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제야 불길함을 감지한 당효파의 얼굴이 굳었다.
‘밖에 이렇게 큰일이 터졌는데 어째서 제독 대인은 나오시지 않는 거지? 설령 뒤채에서 여자와 놀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상황이면 달려 나오셨을 것인데. 범 제사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안 나오신단 말인가?’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범한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친위병들에게 빨리 후원에 가서 제독 대인을 찾으라고 눈짓을 했다.
범한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제독 저택 안에서 울려 퍼진 날카로운 비명이 교주의 조용한 밤공기를 뚫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허둥지둥 탁자 안에 두었던 무기를 꺼내 들고는 후원으로 달려갔다. 모두들 교주 제독 저택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저택에 울려 퍼진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진짜였다.
당효파는 후원에 달려가지 않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범한을 지켜봤다.
하지만 범한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교주 지주에게 물었다.
“아직도 안 오시는 것인가?”
더듬대며 뭐라 말하려 하는 교주 지주 오격비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그가 벌떡 일어나 수군 고위 장군들의 뒤를 따라 후원으로 걸어갔다.
후원은 온통 피바다였다.
일고여덟 명의 제독 저택 친위병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몇몇 시체들은 몸이 분리되거나 가슴 한가운데가 뚫려 있었다.
너무나도 참혹한 모습에 놀란 교주 문관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놀란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수군 고위 장군들의 눈에 피바다 너머에 서 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그를 발견한 수군 고위 장군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하더니 당장이라도 상대에게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주지 못해 한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처럼 모두들 당황하고 격분해 있었지만 차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의 손에 교주 수군 제독 상곤 대인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교주 일대를 호령했던 상곤 대인의 몸에서 흐른 시뻘건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원을 가득 채운 시신과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제독 대인을 보자 수군 고위 장군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평생 바다를 누비며 적들과 싸웠던 용맹한 장수가 교주 자택에서 자객에게 당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수군 고위 장군들은 자신의 상사를 공격하고 동료들을 죽인 자객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대인을 내려놔라!”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검을 내려놓지 못할까!”
장군들이 소리치며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둘러싸기 시작했지만, 혹여나 제독 대인이 다칠까 겁이 나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했다.
범한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교주 지주 오격비를 본체만체한 채 검은 옷 입은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나 나보다 일찍 도착했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후원 상황을 바라보던 당효파가 그 말을 듣고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감찰원 제사 대인이 직접 교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감찰원은 비밀리에 조사하지 않고 곧장 생일잔치 자리에 들이닥친 것일까? 왜 범 제사는 제독 대인이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걸까? 범 제사가 자신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머릿속이 재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건은 동해 섬에서 있었던 일과 분명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상곤이 아니었기에 군산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모시는 제독 대인이 어느 조직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고 있는 것만 알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범한의 말을 듣자 그는 자연스럽게 터무니없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효파가 재빨리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그가 잡고 있는 제독 대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설마 조정에서 그 조직을 조사하려 하는 것인가? 그래서 조직에서 입막음하기 위해 제독 대인을 죽인 거고······ 작은 범 대인은 이를 알고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가? 그렇다면 작은 범 대인은 왜 빨리 움직이지 않은 거지?’
이런 생각에도 그는 여전히 감찰원에 대한 의심을 가라앉힐 수 없었기에 힐끔힐끔 범한을 관찰했다.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피바다 너머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걱정과 우려, 그리고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오지 마라. 누구든 오면 이 사람을 죽여 버리겠다.”
위협적인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살기와 자신감이 가득했다.
수군 제독은 고위 관리인만큼 그의 죽음은 조정과 민간에 큰 충격을 주는 일이었고, 교주 수군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후원에 있는 수군 고위 장군들은 누구보다도 조급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손을 조금이라도 잘 못 움직여 제독 대인의 목이 그어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제독 저택 밖에서는 수군 관병들이 일찌감치 저택을 포위하고, 일부는 저택 담장 위에 올라서서 활로 검을 옷을 입은 남자를 조준하고 있었다.
이처럼 군대에 겹겹이 포위된 상태에서 검은 옷 입은 남자가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아무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역할을 책임질 엄두가 나지 않은 수군 고위 장군들이 노기등등한 눈빛으로 교주 지주를 쳐다봤다.
이 일은 엄연히 교주성 안에서 발생한 일이었고, 그러니 교주 지주가 처리하는 게 맞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에 화들짝 놀란 교주 지주는 두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화가 치솟았다. 그는 평상시에는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수군이 막상 큰일이 발생하자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게 못마땅했다. 그가 이를 갈며 자신은 절대 수군의 방패막이가 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술을 샐쭉거리며 생일잔치에 쳐들어온 감찰원 제사 범한을 바라봤다.
이제 모두의 시선이 범한에게 쏠리자 수군 고위 장군들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일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조정의 체면을 중시하기로 소문난 제사 대인이 만약 수군 관병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한다면······ 제독 대인은 죽은 목숨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던 범한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본관은 자네가 누구인지 관심 없네. 하지만 조정의 고위 관리를 죽이는 것은 멸문지화를 당할 대죄이네······. 본관은 범한이라고 하네, 자네도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겠지. 설사 오늘 자네가 이곳에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본관은 자네가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네······.”
“그리고 본관이 약속하건대 자네가 죽었다는 게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자네의 부모, 아내, 자식, 친구, 고향 동료, 심지어 거리를 지나던 자네에게 물을 줘 호의를 베푼 시골 아낙네까지······ 모두 찾아낼 거네.”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모두 찾아내서 죽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