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70
511화 서재 안에 울려 퍼진 황제의 밀서 (2)
그가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자네의 마음이 다른 데로 간 것인지다. 만약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범한에게 자네의 시체를 북쪽 황야로 싣고 가 들개의 먹이가 되게 하라 할 것이네. 과거 자네도 짐을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북벌에 나섰으니 그곳 들개들이 사람 시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범한의 입으로 전해진 황제의 말에 서재 안은 한겨울처럼 서늘해졌다.
특히 교주 지주 오격비는 폐하의 밀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상곤의 무슨 잘못을 저질러 폐하의 화를 돋웠는지 알지 못했기에 입을 쩍 벌리고 연신 몸을 떨며 당혹스러워했다.
반면 세 명의 교주 수군 고의 장군들은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중에서도 당효파는 등에서 땀이 연신 주르륵 흘렀고, 살기가 뼈에 사무치는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세 명의 고위 장군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연신 조아릴 뿐 묻거나 해명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밀서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상곤의 구체적인 죄상이 언급해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한 장짜리 밀서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천자의 분노가 담겨 있는 이상 수군 고위 장군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범한이 자리에 다시 앉은 뒤 무릎을 꿇고 있는 네 명을 향해 말했다.
“이제 아셨습니까? 본관이 오늘 교주로 온 이유는······ 폐하의 명을 받아 상곤 대인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상곤 대인이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객의 공격을 받아 돌아가실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요.”
그 말을 들은 당효파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일어나더니 당당히 범한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관, 무례를 무릅쓰고 제사 대인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조사하려던 사건이 무엇입니까? 항상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시고 힘들게 변방을 수비한 제독 대인께서 도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다는 건지······ 하관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혹시 교주가 경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점을 이용해 간사한 무리가 성상을 속인 건 아닌지······.”
범한의 눈빛이 더욱 섬뜩하게 변했다.
하지만 당효파는 이를 악물고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제사 대인께서 공정한 조사를 통해 나라를 위해 힘들게 변방을 지키는 수만 병사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범한이 아무 말 없이 무서운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당효파를 노려봤다.
침묵이 이어지면서 서재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묻는 것입니까?”
곧이어 범한이 서슬 퍼런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동이성과 몰래 결탁한 건 죄가 아닙니까? 나라를 지켜야 할 수군이 황실 금고 상품을 밀수하는 일에 나선 건 죄가 아닙니까? 강남 상인들과 결탁해 군대를 사사로이 움직인 게······ 죄가 아니란 말씀입니까?”
범한이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암암리에 수군을 동원해 섬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지요······.”
범한이 분노에 치를 떨며 당효파를 노려봤다.
“교주 수군은 용맹하다 못해······ 무모하더군요. 이런 게 죄가 아니라면 무엇이 죄가 된단 말입니까?”
그가 벌떡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조정이 수만 병사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해달라 하셨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한 짓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해적들보다 더 후안무치한 짓입니다. 여러분은 조정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폐하의 마음도 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범한의 시선은 네 명 중에서 세 명의 고위 장군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당효파는 여전히 당당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다른 두 고위 장군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 명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런 일은 전혀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조사하면 이들 중 누가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기에 범한은 이들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당효파가 침통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죄를 뒤집어씌우려면 어떤 구실이든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습니까? 감찰원이 모함하려 한다면 저희 수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독 대인의 시신이 아직 채 식지도 않았는데, 대인께서는 어찌 저희를 이리 핍박하시는 겁니까?”
범한이 냉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증거를 대란 말입니까?”
당효파가 이를 부드득 갈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모함만으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당효파는 겉으로는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속으로 교주성 밖에 주둔해 있는 친위 부대가 부디 소식을 듣고 성으로 쳐들어와 자신을 비롯한 고위 장군들을 구출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반역으로 보일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범한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관이 조사하러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죄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조사하지 않았는데 어찌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본관이 무턱대고 죄를 뒤집어씌워 여러분을 죽이지는 않은 테니”
순간 당효파는 섬뜩해지면서 제사 대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에 대한 이제껏 상상해 보지 못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수군 사람은 오늘 밤에는 성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범한이 계속 말했다.
“저는 오늘 밤을 이용해 여러분에게 자백을 받아낼 것입니다.”
민간에 널리 전해진 감찰원이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방법이 떠오른 세 명의 교주 수군 고위 장군들은 소름이 돋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당효파가 두 눈이 찢어질 듯 매서운 눈빛으로 범한을 노려봤다.
“대인께서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군대가 들고 일어날 거라고요?”
범한이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계속 말했다.
“과연 대인께 병력을 움직여 반란을 일으킬 능력이 있을지 보고 싶군요.”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태연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사백 명의 흑기가 자신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는 데 성공했는지 궁금했다. 경국의 중요 군사 요충지인 교주 수군을 혼란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수군 고위 장군들의 자백을 받아내는 동시에 믿을 만한 고위 장군을 찾아내 성 밖에 있는 수만 관병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문제였다.
이 일로 인한 득실을 계산해 보는지 당효파의 창백하던 안색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 교주성 성문이 닫혔고, 제독 저택도 포위되어 있어 부하들이 당장은 자신을 구하러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감찰원의 고문을 받는다면 단 하룻밤도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밖에는 십여 명의 수군 고위 장군들과 수군 병사들이 있었다. 비록 무기를 빼앗기고 감금당한 상태였지만 아예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당효파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번뜩였다. 마침내 앞에 있는 젊은 권신의 진짜 목적을 알아낸 그가 쉰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
“대인께서는 사건을 조사하러 교주에 오신 게 아니라······ 저희를 죽이러 오신 거군요.”
범한이 고개를 살짝 숙일 뿐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서 이야기한 죄상들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사 여러분이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하여도 누군가는 알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몇 년간 저지른 죄의 값을 치르는 날입니다.”
당효파는 절망스러웠다. 수군이 그동안 암암리에 강남 일에 관여하거나 조정에 대항하는 일들을 해온 걸 상곤의 가장 측근인 그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에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아는 그는 최후의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그때 범한이 그의 생각을 꿰뚫은 듯 나지막이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면······ 그건 정말 반역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당효파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그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사 대인이 황제 아들이고 9품 고수라 할지라도······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자백을 받아내려 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이 말은 내지르며 그가 손을 뻗어 범한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진짜 범한을 공격한 사람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던 고위 장군이었다. 언제 어디서 직도를 주워 숨긴 건지 장군이 우레와 같은 고함을 지르며 범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검은 보는 사람의 간담마저 서늘하게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한편 당효파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몸을 갑자기 돌리더니 손으로 몸을 감싼 채 서재 문을 향해 돌진했다. 서재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간 그가 정원으로 뛰어가더니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범한은 침착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 하나로 장군의 손목을 ‘톡’ 건드리자 왼손이 흐트러지면서 검이 옆에 있는 책상을 덮쳤다. 두꺼운 나무 책상이 산산조각이 날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책상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나무 파편들이 사방이 흩어졌다. 범한은 이미 재빨리 손을 움직여 검을 빼앗은 상태였다.
그리고 범한을 공격한 고위 장군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양쪽 어깨가 모두 부서지고 머리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죽어가는 그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범한을 바라봤다. 그는 머리가 웅웅거려서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공격이 실패한 원인이 뭐지? 그동안 수행으로 다져진 내 실력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무래도 오늘 밤에 마셨던 술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
범한은 그런 그는 보지도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일어나게 한 뒤 오격비를 향해 물었다.
“대인도 모두 보셨지요. 본관이 조사하려 하자 교주 수군 부장 당효파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상이 드러날까 봐 겁을 먹은 겁니다. 성상의 은총을 받으면서도 간사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걱정한 나머지 부하 장군을 시켜 본관을 암살하게 한 것이지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한 말에 불과했지만, 잔뜩 겁에 질린 오격비는 이빨만 딱딱 부딪칠 뿐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그러자 범한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손에 들린 검으로 자신을 공격한 고위 장군의 가슴을 찔렀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자 고위 장군이 ‘끅’ 소리를 내며 죽었다.
범한이 오격비와 놀라 얼굴이 거무죽죽해진 수군 고위 장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 정원의 상황은 이미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조사를 기다리고 있던 수군 고위 장군들이 당효파의 말에 한곳에서 똘똘 모여 경계심과 살기등등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이때 당효파는 이미 동료들과 함께 감찰원이 이곳에서 뭘 하려 하는지 경도 문관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제독 대인의 죽음이 얼마나 수상쩍은지에 대해 이야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감찰원이 세력을 등에 입고 수군 고위 장군들을 한 번에 몰아 죽이려 한다는 말까지 퍼진 뒤였다.
그러나 고위 장군들은 감찰원과 군대의 관계가 줄곧 괜찮았기에 그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감찰원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관아라 할지라도······ 감찰원이 교주 수군과 대적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해서 작은 범 대인이 얻는 게 뭐가 있다는 거지? 만일 작은 범 대인이 정말 병권을 빼앗으러 온 거라면 어째서······ 부하들을 일곱 명만 데리고 왔을까?’
이런 의문들 때문에 몇몇 수군 고위 장군들은 당효파의 주장에 반신반의했다. 더구나 이들은 조정에서 제독 대인을 음해하려 한다는 추측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들도 오늘 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작은 범 대인이 제독 대인을 구하려 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들이 수군을 십여 년 동안 이끌어온 사곤 제독의 시신을 바라봤다. 이때 상곤 제독의 시신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첩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상곤은 교주 수군 안에 심복들을 많이 두고 있었다. 이에 모두들 분명치 않은 상황에 반신반의하는 중에서도 몇몇 고위 장군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당효파의 뒤를 따를 준비를 했다. 그들에게 지금 상황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제독 저택은 이미 포위되었고, 교주 성문도 닫혔으며 해변 항구에 있는 수군 관병들은 자신의 상사들이 성안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만일······ 감찰원에서 정말 고위 장군들을 죽이려 한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수군 고위 장군들이 움직이자 무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감금되어 있던 수군 병사들도 큰 함성을 지르며 교주 주군과 대치했다. 이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어 갔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범한 만큼은 평온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