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72
513화 누가 누구의 사람인가? (1)
해 질 무렵, 교주 성문이 닫히고 나서 범한은 이후 명령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교주 지주 오격비는 달랐다.
그는 성안에 큰일이 발생해 심각한 충돌이 있었던 만큼 반드시 조심히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일 성 밖 항구에 있는 1만 명에 달하는 수군 관병이 성안으로 쳐들어온다면 자신은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심복들에게 직접 성을 방어하고 항구의 동태를 살피라고 명령했다.
동시에 그는 교주부 관아 관리들과 주군들을 동원해 성안에서 조사와 수색을 진행했다. 조정은 교주 수군 문제를 조사하러 온 것이었지만 제독 대인이 살해당한 만큼······ 그 자객을 찾아내야지만 숨겨진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오격비는 자신이 그 비밀을 알게 되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약간 마른 눈을 비비며 쉰 목소리로 범한에게 성안의 상황과 성 밖 동정을 보고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주 대인의 반응 속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주 대인의 협조가 없었다면 그가 이처럼 쉽게 제독 저택을 통제하고 수군 고위 장군들을 연금시킬 수 없었을 것이었다.
범한이 격려의 말을 한 뒤 지주 대인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자 오격비가 눈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황자가 잠을 자지 않는데, 감이 잠자리에 먼저 들 수는 없지. 게다가 제독 저택 안에 상황도 아직 진정되지 않았으니 밤중에 예상치 못한 변고가 생길지도 몰라.’
오격비가 기어코 자신의 곁을 지키려 하자 범한이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성 밖의 상황이 걱정되십니까?”
오격비가 당황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상곤 제독은 10년 동안 수군을 통솔하며 심복들을 많이 만들었고, 하급 병사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제독 대인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수군 고위 장군들이 연금되었다는 사실이 항구에 알려진다면······ 몇몇 선동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병사들이 하나로 뭉쳐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범한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원래 상곤 대인을 굴복시킨 뒤 그에게 수군 병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기도 전에 자객을 만나 죽임을 당할 거라고는······.”
그가 냉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상대방이 정말 교묘하게 움직였군요. 이로써 조정과 수군 사이에 큰 갈등을 빚게 되었으니 본관이 참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상곤을 죽인 건 범한 자신이었고, 만일 상곤을 죽이지 않았다면 수군을 굴복시키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오격비가 허리를 살짝 숙이고 피곤함에 절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이 알려지는 걸 계속 막을 수는 없으니 얼마 뒤면 조정이 사건을 처리하러 왔다는 말이 군 안에도 들어갈 것입니다.”
범한이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도 자신의 계획이 순리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원래 계획은 먼저 상곤을 죽인 뒤 상곤의 측근자들을 잡아 감찰원의 방법을 사용해 결정적인 자백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직 조정에 충성할 마음이 있는 수군 고위 장군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진정시키고 수군 안에서 동해 섬과 관련된 증거를 찾아내려 했다.
이렇게 뒤집힐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다면 저항할 생각을 품고 있는 수군 관병들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수군 고위 장군 중 누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감찰원의 정보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이상 심리전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직접 찾아내야 했다.
순간 범한의 머릿속에 멀리 경도에 있는 언 공자가 떠올랐다. 언빙운이 지금 자신 옆에 있었다면 더욱 완벽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자신처럼 한밤중에 제독 저택에 서서 수군 고위 장군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머리를 싸매지 않고 말이다.
범한이 돌 탁자에 옆에 앉아 미간을 찌푸렸다. 결심이 선 그가 옆에 서 있는 청와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청와가 굳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고 얼마 뒤 제독 저택 뒤쪽에 있는 장작 창고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청력이 민감한 사람이라면 인두로 살을 지지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격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순간 귀신도 울고 갈 정도로 잔혹하다고 소문난 감찰원의 고문 방법이 떠오른 그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치솟는 긴장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대인,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범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었다. 이처럼 대놓고 고문을 하다가는 제독 저택 안에 감금된 수군 고위 장군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범한이 원하는 바였다.
폭력과 굴욕을 통해서 수군 고위 장군들의 분노를 돋워 들고 일어나게 만든다면 그들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노출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격비가 걱정했던 것처럼 제독 저택에 연금되어 있는 수군 고위 장군들이 참혹한 비명 소리를 듣고 자신의 방에서 뛰쳐나왔다. 모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범한을 노려보았다.
범한이 이들을 본체만체하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아직도 주무시지 않고 계셨군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바로 그때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제독 저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미 밤이 깊었고, 제독 저택은 겹겹이 포위된 상태였으며 생일잔치에서 발생한 일이 밖에 전해지는 걸 엄격히 차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밖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오격비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속에게 나가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재빨리 달려 나간 아속이 난처한 표정으로 돌아와 보고했다.
“고위 장군들의 가족들입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소문이 퍼지는 걸 막았다고 한들 수군이 교주를 오래 장악하고 있었던 만큼 몇몇 사람들은 소식을 전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고위 장군들의 부인과 첩들은 이미 밤이 깊었는데도 집안 남자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주변에 무슨 일이라도 났는지 물었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사실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면서도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범한이 즉시 자신이 대청에 남겨둔 거상들과 강남 상인들이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과연 비밀을 오래 감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적으로 항구에 주둔해 있는 수군이 떠오른 그는 성문을 닫은 거로 항구 쪽 반응을 충분히 늦출 수 있기를 바랐다.
오격비가 난처한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봤고, 수군 고위 장군들도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집안 여자들이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누가 소식을 밖에 알렸을지 생각했다.
“사람이 데리러 왔으니 장군들은 돌아가십시오.”
범한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가둬두지 않겠단 말인가? 어째서 풀어주는 거지?’
범한이 가벼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본관은 명을 받아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드러낸 당효파 부장을 비롯해 수군 안에서 잔혹한 짓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본관은 연루되었을지 모른다는 의혹만으로 여러분을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고위 장군들은 범한의 설명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범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장군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부인들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붙잡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위 장군 중 교주성 안에 정부인을 두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이 첩이었고, 심지어는 남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경우도 있었다.
그러기에 범한의 이 말은 고위 장군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장작 창고에서 당효파와 몇몇 사람들의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밖에 있는 부인들이 이 소리를 들은 것인지 집안 종들을 시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일순간 제독 저택이 안팎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고위 장군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제독 저택을 떠났다. 이들은 교주성 안에서 감찰원의 무수히 많은 눈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성 밖에 있는 수군과 연락할 마음도 없었다.
연락을 취한다고 한들 나중에 조정의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다.
더구나 범한의 마지막 말은 고위 장군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제사 대인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조정의 품에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야. 누가 먼저 제사 대인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려나······.’
고위 장군들이 각자 자신만의 생각과 꿍꿍이를 품은 채 제독 저택을 떠났다.
오격비는 범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기에 교주성 방어를 강화하는 데만 신경 썼다.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살며시 조언했다.
“대인, 너무 과격해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오격비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호부가 그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상곤의 영향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필적하는 수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범한은 당효파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동해 작은 섬에서 일어난 잔혹한 사건의 증거인 당효파는 나중에 경도로 압송되어야 했다.
* * *
한편 교주성 안에 부인들은 감찰원이 제독 저택을 통제하고 있으며 제독 상곤이 사망해 수군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자기 집안 어른의 신변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범한이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통제했음에도 이미 많은 사람의 귀에 이 소식이 알려진 셈이었다. 더구나 오격비 수하의 주군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지만, 수군을 성을 빠져나가는 자신들만의 길을 가지고 있었다.
당효파가 사전에 보낸 측근은 바로 이 길을 이용해 가까스로 봉쇄를 뚫고 성 밖으로 나갔고, 지금은 작은 길을 따라 조용히 항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가 멀리 항구 불빛을 바라보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효파가 이미 감찰원에 잡혔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수군이 생겨난 이래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일단 진영에 있는 병사들을 모아 교주성을 점령해 수군 고위 장군들의 안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윗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진영까지 수백 장 거리만 남겨두고 있었을 때 갑자기 땅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지만 분명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란 그가 처음 고개를 돌렸을 때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뒤 검은 갑옷을 입은 십여 필의 말이 보였고, 말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밤에 검은 갑옷에 반사된 달빛은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가 동공이 수축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속으로 소리쳤다.
‘저건 흑기잖아. 감찰원 흑기야!’
머리가 하늘로 날아가고 몸 안에 붉은 피가 흘리면서 사망하기 전 찰나의 순간에 교관이 느낀 건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수군을 처벌하러 온 감찰원이 흑기를 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은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형과가 차가운 눈으로 시체를 바라보고는 자신의 옆에 있는 친위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위병이 말고삐를 당겨 몸을 돌린 뒤 산비탈 아래 서서 수신호를 보냈다. 밤이 깊어 주변이 어둡고 달빛도 밝지 않은데 과연 누가 이 명령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수신호가 끝나자 무언가가 교주성과 수군이 주둔한 항구 사이를 이어주는 산마루 위를 빼곡하게 감쌌다. 비를 맞은 나무처럼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것은 모두 흑기였다. 산등선 위에 등장한 흑기는 멀리 수군 주둔지를 바라보며 진형을 갖춰 서서는 유령처럼 조용히 명령을 기다렸다.
진영은 가지런했고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기병들이 자신이 탄 말을 어떻게 통제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 울음소리나 채찍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항구에 주둔해 있는 만 명이 넘는 관병들은 주변에 흑기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