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76
517화 양 무리 안으로 들어가다 (2)
새벽 아침 식사를 파는 노점을 방문한 교주 백성들은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시민들은 성문 안과 밖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겁이 없는 몇몇이 손가락으로 흠차 의장을 가리키며 여자보다 더 예쁘게 생긴 젊은 남자가 바로 작은 범 대인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민간에서 범한의 명성은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교주 수군은 성안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다.
누가 하자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안과 밖에 있는 수천 명의 백성이 일제히 흠차 대인의 평안을 기원하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범한이 자신을 향해 엎드려 있는 검은 머리들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리둥절해야 하는 그의 머릿속에 새벽에 허무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사회의 가장 하층민들은 황제가 파견한 사신을 바라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꼈다.
마음이 편안해진 범한이 허무재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자 허무재가 아첨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범한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추게 한 뒤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 위에서 내려왔다.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백성들 앞으로 걸어간 뒤 인사를 하고 나이 든 노인 몇몇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이후 안부 말과 형식적인 말들을 한 뒤 다시 말에 올라 대열을 이끌고 떠났다.
* * *
수군의 연병장 높은 곳에서 범한이 편안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아래 관병들을 바라봤다. 관병들은 흥분, 분노,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높은 곳에 있는 흠차 대인과 관리들을 바라봤다.
수군 관병들 이미 대다수가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진영에 있던 상곤의 측근 장군들은 병사 모두를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에 일부 병사들만 이끌고 성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살짝 겁에 질린 수군 관병들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이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조정에서 갑자기 흠차 대인을 보낸 이유가 뭐지? 그리고 상곤 제독과 당효파 부장은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설마 소문이 사실인 건가?’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파도처럼 움직이는 검은 머리들을 바라봤다. 새까만 인파가 항구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범한은 순간 살짝 두려워졌다. 그는 금군도 봤었고, 흑기를 수하로 두고 있었지만 수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자신의 앞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위압감이 느껴졌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인원수에 압도당한 것이었다.
범한은 만약 이들이 자신의 적이었다면 이렇게 편안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한은 수군 삼인자인 고위 장군이 하는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속으로 자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군 내부에서 허무재를 찾은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아래 병사들이 약간은 불안해 보이지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허무재가 새벽 사이에 암암리에 조치한 것 같았다.
상곤은 이미 죽었고, 당효파는 쓰러져서 무리를 이끌만한 사람이 없어졌으니 혈기 왕성한 병사들이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범한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허무재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범한이 품속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 동해 일에 참여한 고위 장군의 자백이 적힌 종이었다. 당효파는 고문을 이기지 못해 기절할 지경이 되어도 입을 열지 않을 만큼 의지가 강했지만 다른 장군들은 그렇지 못했다. 감찰원의 매서운 고문에 이기지 못해 결국 자백하는 사람이 나왔다.
자백을 받아 명분이 생긴 범한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옆에서 고위 장군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범한 옆에서 말하고 있는 고위 장군은 바로 진씨 집안사람이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는 걸 원치 않았지만, 허무재의 의견을 들은 범한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범한은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그에게 나서줄 것은 요청하는 동시에 당효파의 죄상을 선포하는 힘든 임무도 맡겼다.
범한의 예상대로 그가 당효파가 외부 적과 결탁하고 해적과 공모했으며 규칙을 어기고 병사를 사사로이 동원했다는 사실을 말하자 병사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더욱이 중간층 교관 중에는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범한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아래 병사들을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관은 폐하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범한이라 합니다.”
범한은 신선이 아니었기에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를 조용히 만들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난폭한 정기를 빠르게 연병장 전체에 퍼뜨렸고, 이상한 기운을 느낀 관병들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을 틈을 타서 그가 재빨리 말했다.
“제독 상곤 대인은 어젯밤 자객에게 피살되셨습니다.”
그러자 또 병사들이 동요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말과 놀란 탄식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처음부터 연병장에 병사들을 집합시키는 걸 반대했던 교주 지주 오격비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작은 범 대인을 바라봤다.
범한이 아래 관병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설명했다.
“오랜 시간 이곳 교주를 지켜온 상 제독은 나라를 위해 어려운 일도 기꺼이 하는 나라의 기둥이셨습니다. 폐하께서도 항상 그 점을 언급하시며 상 제독의 공과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셨지요.”
단상 위에 있는 세 사람은 범한이 조정을 대신해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고위 장군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 제독을 조사하러 온 범한이 어째서 그의 공을 치하하는 걸까?
술렁대던 단상 아래 관병들도 점차 안정되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단상 위를 바라봤다. 단 한 사람도 흠차 대인의 말뜻은 이해한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범한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상곤 제독이 한창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요······. 어떤 극악무도한 무리가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점점 높아지는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마치 단상 아래 병사 중에서 범인을 찾으려는 듯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아래를 노려봤다.
짠 내가 나는 습하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범한의 양 볼은 얼어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빼곡하게 서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그는 마음이 점점 안정되었다.
수군의 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위험했던 때는 사실 어젯밤이었다. 그러니 가장 큰 위험은 지나간 만큼 그의 걱정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내막을 알지 못하는 고위 장군들과 교관들은 흠자 대인이 먼저 상 제독을 칭찬한 뒤에 죄명을 나열하며 비난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흠차 대인이 수군 제독 상곤이 어떤 잔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 병사들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조정의 결정을 알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작은 범 대인은 상곤 제독의 죄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범한의 목소리를 넓은 연병장 멀리까지 전해졌다. 그는 비통해하는 표정으로 경국을 위해 헌신한 상곤 제독의 위대한 공적을 치하하기만 했지 동해 작은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수군이 동이성과 결탁한 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격비와 진씨 집안사람인 고위 장군이 서로 한 번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 범한이 이미 중요 인물들에게 황궁의 뜻을 전한 상태였기에 이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1품 제독인 상곤의 뒤에 누가 있는지 밝혀낼 유력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장 공주의 군산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조정은 자신들의 허물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상곤을 정정당당하게 법정에 세워 죄를 묻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1품 고위 관리이자 군사 측 중요 인물이 해적과 결탁하고 외부 적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천하에 알려진다면 경국 조정과 폐하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상곤이 교주 수군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된다면 그가 죽은 뒤 도덕적 평가는 경국 황제나 범한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가장 적은 대가를 치러 이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임무였다.
물론 황제가 치솟는 분노를 그냥 삭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마도 경도 상황이 안정되면 황제는 조용히 상곤의 가족들을 모두 숙청하고 상곤의 시신을 파헤쳐 능지처참할 것이다.
한바탕 상곤의 업적을 찬양한 범한의 얼굴은 바닷물 아래 있는 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젯밤 본관이 교주에 온 것은 제독 대인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수군이 해적과 결탁한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본관이 도착했을 때는 대인이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감히 누가 제독 저택에 침입해 살인하는 잔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감히 누가 이처럼 광폭한 방법을 사용해 조정에서 조사하기로 한 사건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건이 밝혀지는 걸 막으려 제독 저택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어젯밤에 몰래 수군 병사들을 설득해 교주를 점령함으로써 자신들이 저지른 부패를 피로 감추려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감히 누가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어젯밤 수군 진영은 온갖 소문들로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 흠차 대인의 말을 들은 수군 관병들은 제독 대인이 조정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마 진짜로 수군 안에 몇몇 고위 장군들이 해군과 결탁해 조정에 대항했던 것인가!’
물론 모두가 이 말을 믿는 건 아니었다. 특히 상곤과 당효파의 심복들은 범한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왁자지껄 동요하는 군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당 장군은 어디 계십니까? 당 장군은 왜 안 보이시는 겁니까!”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소리쳤다.
“해적과 결탁했다는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잔뜩 흥분한 병사들이 단상 위로 몰려들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범한은 태연자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허무재가 단상 아래 자신의 심복에게 눈짓하자 병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교관이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제독 대인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그 개자식을 죽입시다!”
그 개자식은 누구일까?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은 그게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미 상사의 죽음에 분통해야 하고 있던 터라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바다를 울리고 하늘을 찢을 만큼 우렁찬 외침이었다. 암암리에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던 고위 장군들도 그 기세에 눌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범한이 양손을 들어 주의를 집중시키며 설명했다.
“그 잔악한 무리는 어젯밤에 이미 체포되었습니다. 사건 조사가 끝난 뒤 법에 따라 벌을 줌으로써 하늘에 계신 제독 대인의 영혼을 위로할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수군 관병들이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군대 안에서 누가 그랬을지 추측해봤다. 그러던 중 몇몇 똑똑한 사람들은 단상에 올라가 있는 고위 장군들의 인원수가 이전보다 줄어든 걸 알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범한이 이어서 말하는 이름은 모두 지난날 수군 안에서 존경을 받았던 고위 장군들이었고, 그중에서도 당효파의 이름은 가장 먼저 불렸다.
단상 위에서 들여오는 목소리는 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에게 수군에서 몇몇 고위 장군들이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상 오른쪽 뒤편에서 온몸이 피로 물든 다섯 명의 고위 장군들이 끌려 올라왔다. 이 사람들은 어젯밤 제독 저택에서 범한에게 대항했던 사람들로, 지금은 고문을 받아 얼굴은 핏기 없이 하얗고 눈동자는 풀어진 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더구나 감찰원이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범한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은 원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입을 열고 억울함을 말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