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179
520화 상황을 뒤집을 만한 큰 사건 (2)
2 황자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부황께서는 그동안 범한을 신뢰하면서도 군대와 관련된 일은 맡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교주 수군 문제를 맡긴 걸 계기로 범한이 군대 측과 관련을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있던 섭령아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셨군요.”
배 위에 무거운 침묵이 생겼다. 한참 말없이 있던 2 황자가 느리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왜 내가 앉으면 안 되는 겁니까? 내가 그 의자에 앉는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범한에 대한 말들뿐이니 제가 여기 배 위에서도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다시 오랜 침묵이 흐른 뒤 2 황자가 다시 말했다.
“범한과 비교해서 제가 열세라는 건 인정합니다.”
2 황자가 상관없다는 듯 소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가끔 불만스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요. 만약 부황께서 감찰원을 제게 주셨다면, 황실 금고를 제게 맡기셨다면 제가 범한보다 못했을까요? 오랜 시간 계획해 왔던 것이 난데없이 나타난 배다른 형제 때문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와 싸워보려 했다가 철저하게 졌고······ 진심으로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게 화가 납니다.”
“그렇게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섭령아가 한숨을 내쉬며 남편을 바라봤다.
2 황자가 문득 아내에게 혼인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천방지축다운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그가 속으로 한숨 쉬며 자신과 혼인해 매일 권력 싸움과 같은 일들만 생각하느라 변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섭령아가 가벼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최근에 장 공주마마께서 낭군과 황태자 저하를 자주 만나신다는 걸 알고 있고,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장 공주마마가 신아의 친모이시기는 하지만 저는 그분을 좋아했던 적이 없습니다.”
“고모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2 황자가 단어를 세심하게 고르며 더듬더듬 설명했다.
“고모께서 조정을 위해 한 여러 일 중에는······ 자신의 사심 때문에 했다고 볼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모께서 앞으로의 부귀영화만을 염두에 두셨다면 저를 선택해 교육시키기 보다는 동궁 편에 서셨을 겁니다. 동궁도 고모를 필요로 했으니까요.”
“장 공주마마가 낭군을 선택한 이유가 뭔지 모르십니까?”
섭령아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낭궁이 황태자 저하보다 더 잘생겨서가 아닙니까?”
“그만하십시오!”
2 황자가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아내가 장 공주를 이처럼 싫어할 줄 몰랐던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섭령아가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장 공주마마는 낭궁이 황태자 저하와 대적하도록 부추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와서는 황태자 저하와 함께 범한과 셋째에게 대적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요. 이렇게 싸우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설사 장 공주마마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어 범한이 세력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낭군과 황태자 저하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어차피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그건 나중 일입니다.”
2 황자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고모는 저를 아끼십니다.”
“나중 일이라고요?”
화가 난 섭령아는 과거 말을 타고 경도로 달려왔던 대담한 면모를 드러내며 솔직하게 말했다.
“장 공주마마께서는 이 일에 도취해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낭군과 황태자 저하는 누군가가 쓰러질 때까지 싸워야 할 겁니다. 낭군이 장 공주마마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일에 얽히실 필요가 있습니까? 황태자 저하가 용상을 물려받는 건 당연한 일이고, 범한이 앞으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의 일입니다. 어째서 낭군께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살려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쉴 새 없이 말하던 섭령아는 문득 자신의 말이 너무 빨랐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쉰 뒤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황궁 안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십시오. 범한이 말했던 것처럼 한 걸음만 물러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또 범한이군.’
2 황자가 이렇게 생각하며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그러는 범한은 왜 물러나지 않는 겁니까?”
“그는 물러나면 죽기 때문이지요. 이건 낭군이 했던 말 아닙니까.”
남편의 반박에도 섭령아는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똑바로 그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낭군은 다르지요. 물러난다고 해서 누가 낭군을 건들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나를 건들 수 있냐고요?”
2 황자가 얇은 입술을 작게 달싹이며 말했다.
“저는 범한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 저를 그가 가만히 둘 것 같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저를 가만히 둘 것 같습니까? 셋째는······ 그 애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요.”
섭령아가 실망한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남편을 바라봤다.
“황태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패입니다.”
2 황자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강바람을 들이마셨다.
“저는 동궁의 명분과 할마마마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섭령아는 남편이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말에서 풍기는 위험한 기운을 감지한 그녀는 한여름임에도 겨울날처럼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황태자 저하가 바보가 아닌데 장 공주마마의 생각을 모를 것 같습니까? 황태자 저하가 낭군을 정말 신뢰하고 있을까요?”
“그건 고모께서 생각하실 문제입니다. 양쪽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황태자와 황후마마가 고모를 완전히 신뢰하게 만드는 일에 저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기다려야 하지요.”
2 황자가 두 눈을 천천히 뜨고 강물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작년에 저는 인내할 줄 몰라 범한에게 기회를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은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요. 저는 부황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저한테도 기회는 있는 셈입니다.”
섭령아가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낭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장 공주가 마지막에 용상에 오를 사람으로 낭군을 선택해 줄 거라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오른 용상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2 황자가 갑자기 빙그레 웃었다.
“부황께서도 과거 여자의 도움을 받아 황위에 오르셨지만,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황제라 칭송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 오르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 * *
진원에서 노년 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진평평은 교주 사변 문제로 인해 황제에게 부름을 받아 급히 정방형의 회색 건물로 돌아가야 했다.
감찰원의 음침한 밀실 안에서 진평평이 무릎에 덮은 양털 담요를 쓰다듬으며 하품을 했다.
“그깟 일로 나를 귀찮게 하는 건가.”
오늘 비개는 평소와 달리 산에 약초를 캐러 가지 않고 진평평 옆에 앉아 있었다. 그가 쉰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중요한 황실의 문제입니다. 범한이 큰일을 저지를 때마다 황제 폐하는 갈수록 그를 좋아하지만, 황궁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황태자가 바보인가?”
진평평이 물은 뒤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했다.
“하긴 바보이긴 하지. 그렇지 않다면 그 미친 여자와 다시 손을 잡았겠는가?”
“장 공주는 미쳤지만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개가 기괴한 색깔의 눈동자로 진평평을 빤히 노려보며 물었다.
“그리고 이건 대인의 계획이 아닙니까? 제가 힘겹게 만든 약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진평평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황태자의 담이 너무 작아 우리가 도와줘야 하네.”
“하지만 이건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는 죄를 저지른 겁니다.”
비개가 한숨을 쉬었다.
“저는 아내도 자식도 없지만, 대인께서는 먼 친척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진평평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범한이 내년 설에 경도에 돌아와 찾아오면 뭐라고 둘러댈지나 생각하게. 자네가 준 약 때문에 신아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는 걸 범한이 알면 자네를 찢어 죽이려 할 걸세.”
비개가 발끈해 반박했다.
“그래도 폐병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힘들게 병을 고쳐준 스승에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거야 모르는 거지. 어쨌든 최근에 보낸 편지에는 원망하는 기색이 역력할뿐더러······ 자네가 어디 있는지도 무척이나 궁금해하더군.”
진평평이 비개를 힐끗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실 비개도 이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와의 만남을 피하고 있었다. 범한이 자신을 찾으려 한다는 말에 당황한 비개가 입술을 샐쭉하며 투덜댔다.
“최근에 여종을 첩으로 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해당도 있고······ 성녀는 몸이 건강하니 아이를 낳는 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해당타타는······ 암탉이 아니네. 천일도 사람이 그 말을 듣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야.”
진평평이 웃으며 말하자 비개가 인상을 찌푸리며 화제를 돌렸다.
“교주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진평평이 콧방귀를 뛰며 설명했다.
“내가 그 애에게 그림자와 흑기, 그리고 감찰원 전체를 주었는데······ 그 애는 나에게 이런 쓰레기 같은 결과를 안겨 주었어!”
진평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언빙운이 곁에 없으니 음모를 꾸미는 일에는 완전히 무능한 놈이 되어 버렸어. 하지만 운 하나는 타고 난 게 분명하네. 어찌 되었든······ 이번 일도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네.”
진평평이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창가로 다가가 습관처럼 창문을 가린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두꺼운 유리 덕분에 밖의 더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멀리 황궁의 황색 처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퀴 달린 의자에서 몸을 움츠렸다.
“언빙운 보고 들어오라고 하게.”
비개는 이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진 원장이 항상 큰일을 하기 전에 빠져나갈 구멍을 먼저 만들어 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감찰원이 화를 피할 구멍 말이다.
밀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진평평이 들어오게 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문밖에 있는 사람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 걸 보며 확실히 범한보다 적합한 인물이었다. 진평평이 문을 바라보며 오른손 손가락으로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를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사람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4처 수장을 맡고 있는 언빙운이었다.
언빙운은 경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1년이 다 돼가면서 몸에 상처도 모두 치료했고, 이전에 차갑고 도도한 모습도 회복한 상태였다. 그는 4처를 자신의 아버지인 언약해가 있었을 때보다 더 일사불란하고 기세등등한 조직으로 만들어냈고, 이에 경국 조정에서 중요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었다.
다만 감찰원에서 하는 일은 대중에게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언빙운의 지명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 사정을 잘 아는 고관 귀족들은 지명도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모두들 자신의 딸을 언씨 집안에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언빙운은 권력, 능력, 외모를 다 가지고 있었고 범한과도 사이가 좋으며, 언씨 집안은 작위도 보유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언빙운은······ 누구에게나 탐나는 사윗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