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11
552화 개를 누가 쫓았을까?
드디어 진항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진 원장 대인은 왜 침묵을 한 거지? 설마 그분······ 그분도 범한이 죽기를 바라시나?’
그러나 이는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진항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나······ 만약 진 원장 대인이 우리가 심어 둔 사람을 집어내면요? 그때는 추측했던 걸 황제 폐하께 말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추측이라.”
진 영감님이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너도 알다시피, 단순히 추측일 뿐인데 황제 폐하께서 무엇 하러 그 추측 따위를 믿으시겠느냐? 하물며 그 사람이 그리 쉽게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으냐?”
“그렇다면 다른 한 사람은요?”
진 영감님의 늙은 얼굴이 살짝 홍조가 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하도 안 싸워 그사이 얼굴이 피고 젊어진 것만 같았다. 그가 자그마한 소리로 비웃었다.
“황제 폐하께서 다스리는 조정에서 내가 경계했던 이는 진평평 원장과 전임 재상 임약보다. 하지만 임약보는 황제 폐하의 강요에 사직했지. 진평평은 딴 속셈이 있다. 그리고 장 공주는······.”
영감님이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만약 장 공주가 일을 일으키면, 우리 진씨 가문에 문제가 생길 텐데. 그러면 연소을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진항은 경악해서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아버지가 연소을의 아들을 부하로 숨겨둔 건 그도 어젯밤에서야 안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태도를 보아하니, 연소을 아들이 산골짜기 사건에 앞서 범한에게 화살을 날려 범한 일행을 산골짜기로 끄어들인 건 모두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진항은 아버지에 대해 경외심이 들었다. 아버님은 여러 해 전부터 집무를 보지 않으셨는데. 그런데도 일단 직접 나서시면 과연 대단하게 일 처리를 하셔서였다.
“우리 진씨 가문은 항상 황제 폐하 편에 섰고 조정에서는 중립을 유지했단다.”
진 영감님이 무심하게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양쪽에서 우리를 유인하려 하고 있는데, 그건 안 좋은 일이구나.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해야겠지. 모두 똘똘 뭉쳐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보자꾸나.”
말을 마친 영감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진항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군의 거물들도 각자 생각이 있을 텐데. 그런데도 만약에 정말로 똘똘 뭉친다면,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닌가요?’
“오늘 추밀원 앞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진 영감님은 자기 정보통을 통해 이미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이에 진항이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해드렸다. 중점은 범한의 태도 및 그 차마 눈을 뜨고는 봐줄 수 없는······ 피칠갑을 한 사람이었다.
피칠갑을 한 사람은 산골짜기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두 팔목이 잘려나가고 눈을 잃는 중상을 입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우리 군 소속의 장정이다. 감찰원에게 굴욕을 당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어르신이 싸늘하게 말했다.
진항은 산골짜기 급습에 투입된 사람들이 효산 요충지에 몰래 두고 훈련시킨 자기 집안 사병이라 군 측 인명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범한이 200명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하더라도 진씨 가문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진항이 망설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장수는 기개가 있는 사람이라······.”
진항이 말하고자 했던 건 ‘그자가 진씨 가문에 대해 털어 놓을 리 없는데 무엇 하러 내부 첩자가 폭로되는 위험까지 감수하며 입막음을 하려 하십니까?’였다.
“우리 군 소속은 똑바로 선 상태로 살아가야지 앉은뱅이로 살아서는 안 되느니라!”
영감님이 작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를 영예롭게 죽도록 해주는 게 이 아비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구나.”
진항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겨울 달이 은빛을 흩뿌리는 가운데 진씨 가문 저택에 쌓인 눈이 미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영감님은 두어 번 기침을 하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앞으로 일을 할 때는 결단을 더 빨리 내리고, 준비도 더 충분히 하거라.”
진항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은 오늘 산골짜기 급습 사건 후 마지막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진항은 수비사의 기마병을 끌고 산골짜기로 들어갔었다. 한데 범한의 조심스러운 뒷 작업에 가로막혀 최후의 모험을 아예 감행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진항이 ‘흐흐’ 하고 소리 내어 짧게 자조적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범한처럼 아무도 안 믿는 똑똑한 사람 앞에서 내가 무슨 수를 쓸 수 있었을까?’
* * *
다음날 새벽, 정징자부(靜澄子府)의 후문은 평소 아침과 다를 바 없었다. 식재료를 배달해주는 사내가 찾아왔고, 그는 공손한 태도로 채소를 안으로 들여 놓고는 저택 내부의 공기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 감히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하는 처지라 조심스럽게 관리자와 두어 마디 잡담을 나누고는 서둘러 물러났다.
작은 골목을 지나 대로로 나온 식재료를 배달하는 사내가 고개를 들고 정징자부라고 써진 검은색 편액을 쓱 바라보며 코를 쓱쓱 문질렀다.
‘언 대인 댁은 정말 너무 조심스럽구먼.’
주변 사람들은 이 저택이 황제 폐하께서 언 대인에게 하사해준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현재 언 대인은 작위는 이미 3등급이나 더 올라가 있었고, 작은 언 공자에게도 작위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저 편액에 있는 글자를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식재료를 배달하는 사내는 떠났지만 음식물 광주리는 언씨 가문 저택 주방 빈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관리자는 주변에 아무도 없자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식재료가 든 광주리를 들어보았다. 마치 오늘 양이 제대로 들어왔나, 식재로 배달하는 이가 무게는 속이지 않았나 가늠해 보는 것처럼 보였다.
양이 제대로 되어 있자 관리자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 엄동설한에 감기라도 들새라 소매를 솜옷 주머니에 넣었다. 한데 아무도 못 봐서 그렇지 그는 이미 광주리 맨 위쪽에서 대쪽(대를 쪼갠 조각) 하나를 쭉 뽑은 후였다.
관리자가 서재로 오니 이미 퇴직한 과거의 4처 수장 언약해가 매일 그래왔던 것처럼 일찍 기침해 세수를 마치고 차분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관리자가 공손하게 차를 따랐다. 그런 후 별로 길지 않은 대쪽을 무심하게 찻잔 옆에 놓았다.
언약해가 대쪽을 집어 들고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살짝 힘을 주어 그것을 분질렀다. 그런 후 안에서 자그마한 흰 천 조각을 꺼내 위에 있는 글자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언약해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데 한동안 그러고 있어서 마치 정신이 나간 것만 같았다.
한참 후, 현 4처 수장이자 훗날 감찰원 제사 후계자가 될 작은 언 공자가 서재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후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언빙운이 아버지 앞에 앉아 하얀 천 조각을 받아들고 그 위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줄곧 서리가 내려앉은 듯 냉랭했던 그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
“그 생존자는······ 추밀원에서는 아예 데려갈 수 없구나. 너무 난처한 상황이라 양측은 하루 종일 서로 미루기만 할뿐 어느 쪽도 자기 관아 쪽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자가 돌연 죽기라도 하면 제사 대인이 발광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거지.”
언빙운이 걱정을 드러냈다.
“우리가 방법을 찾아내 그자를 죽여 입을 막았는데······ 작은 범 대인이 알게 되면 어쩌죠?”
그러자 언약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감님께서 집까지 사람을 보내셨으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란다.”
언빙운도 아버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제사 대인이 산골짜기에서의 습격에 대해······ 우리가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상관도 않았다는 걸 아시게 된다면, 우리 집을 부수고 우리 부자의 목을 치실까요?”
언약해는 놀라 어안이 벙벙해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에는 무기력감이 가득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니! 원장 대인께서 시킨 일이니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작은 범 대인이 만약 우리를 죽이려 든다면······ 우선 그 바퀴 달린 의자부터 부숴버린 후 다시 얘기해보자고 건의하는 수밖에.”
줄곧 냉랭했던 언빙운의 얼굴에 번뇌가 드리워지더니 한참 후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 군에서 감찰원으로 오신 겁니까?”
“30년 전이란다.”
언약해가 과거를 생각하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을 이어 갔다.
“나는 군에서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무도 모르게 진 영감님의 친위병에 속해 있었단다. 그 안에 묻혀 지내느라 아무 역할도 못 했던 게지.”
언빙운이 고개를 내저으며 감탄했다.
“어쩐지 영감님께서 아버님을 무척 신뢰하신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감찰원에 들어오신 후 계속 같은 자리에 계셨으니, 영감님께서는 분명 옛날에 잘 보내놓았다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러자 언약해가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문제는······ 내가 군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감찰원 밀정이었다는 거다. 그러니······ 진 영감은 운이 그다지 좋지 않으신 게지.”
언빙운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원장 대인께서는 과연 타고나기를 총명하신데다 계산을 정말 주도면밀하게 잘 하시는 분입니다. 하온데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일인데 왜 그 일이 일어나도록 지켜보고만 계신 걸까요?”
* * *
경도 외곽에 위치한 진원.
진평평은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고는 옆에서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비개에게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러나? 아침 댓바람부터 나를 죽이러 온 것인가? 그 녀석이 자네가 제일 아끼는 제자이기만 하고 내가 제일 아끼는 후계자는 아닌 거 같은가?”
눈에 불꽃을 일렁이며 비개가 찬바람이 쌩쌩 불게 말했다.
“대체 뭘 하시려고 그런 겝니까? 하마터면 범한이 죽을 뻔했다고요!”
그러자 진평평이 두어 마디 투덜대고는 그만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왜냐고? 당연히 그 사실 때문이지. 그 정해진 사실 말이네······. 모두들 내가 황제 폐하의 개라고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 영감탱이가 황제 폐하의 최고의 충견이야······. 제대로 된 피를 흘려 봐야 개 주인에게 개를 때리도록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진평평이 손뼉을 치고 살짝 마른 입술을 축인 후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내가 황제 폐하의 개들을 모조리 한데 몰아넣고 마구 짖게 만들면, 황제 폐하께서는 외톨이가 되실 텐데. 그분께서 어떻게 하실지 줄곧 궁금했다네.”
“어떻게 하실지 궁금했다고요?”
비개의 이상한 눈동자 색상은 더 짙어지기 시작하고 봉두난발 같은 머리카락은 불꽃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보도 어떻게 할지 알 겁니다. 한데 원장 대인, 하나는 일러둬야겠습니다. 아무리 잘 숨겨 놓는다고 해도 이미 많은 사람이 연루됐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일단 일이 터지면 황제 폐하께서는 대인을 의심하실 겁니다!”
진평평이 얼어붙은 나무토막 같은 무릎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하나를 살짝 굽히며 말했다.
“자네가 말한 상황은······ 황제 폐하께서 이기셨을 때네. 그래야 나를 의심하실 수 있지. 나는 애당초 그 점을 부인한 적 없어. 그건 사실이니까. 내 비록 이 세상 비밀의 9할 9푼을 장악하고 있기는 해도 그래도 1푼에는 접근할 수조차 없네. 예를 들어 제왕의 마음 같은 게 있지. 그래서 갈라 보는 편을 택했다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득하기에 부족하니까. 그 아이가 나중에 쭉 행복하게 사는 데 부족하게 될 테니까.”
이는 피와 불로 가른 것이었으며, 가장 진실한 죽음의 숨결로 가른 것이었다. 비개는 옛날부터 감찰원 고위직으로 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계에서 진평평의 진짜 생각을 가장 잘 아는 건 본인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원장 대인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그도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갈라 본다는 말을 통해 비개는 원장의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몇 년 후 산골짜기의 저격 사건은 한 장의 종이로, 한 조각의 천으로, 한 조각의 검은 천이 되겠지. 그리고 진평평만 자기 마음을 숨기면, 용좌로부터 쏟아지는 어느 젊은이를 향한 활활 타는 의심의 눈초리를 막아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