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세 가지 목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오죽이 고민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지금 서 있는 곳도 이 세상의 일부분이지 않습니까?”
범한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지금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이 궁금하고, 또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 온 ‘자신이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를 찾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비개가 범한의 스승으로 있던 시절에 그가 신묘에 대해 언급했었다. 당시 범한은 ‘이전 세계에서 임종 직전이었던 자신이 현재 세계에서 소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묘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곳에 찾아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또 경도에도 무척 가 보고 싶었다. 범약약이 새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받지 않고 잘 생활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몇 년 전에 떠난 비개에게 찾아가 인사도 올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있었던 데다가 이 세계에서는 어린 소년의 몸에 갇혀 오랜 시간 담주에만 머물러 있었던지라 마음속에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불꽃은 그의 정신을 괴롭혔고 욕망을 자극했다. 자꾸만 하고 싶은 것과 얻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안정과 야심, 권력과 행복, 사랑과 미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단어들이지만 수면에 비친 달처럼 한 쌍으로 그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범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 한 번뿐인 삶이라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것은 진심이었다. 이전 세계에서 침대에만 누워 있으면서 그는 만약 다시 살게 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오죽이 말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먼저 스스로 살아갈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범한이 쪼그리고 앉아 돌을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힘을 쓰지 않아 바로 아래 검은 암초에 떨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그런 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세 가지 목표를 이룰 거예요.”
오죽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목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거고, 두 번째 목표는 책을 많이 쓰는 거고, 세 번째 목표는 정말 즐겁게 잘 사는 거예요.”
범한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목표를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이 세계가 지구가 아니라면 자신은 지구 인류를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인류의 육체를 전승할 책임이 있으니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다.
동시에 자신이 지구 인류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는 인류가 지금까지 창작해 낸 아름다운 예술 성과들이 없었다. 그러니 만약 자신이 쓰지 않는다면(또는 표절하지 않는다면?) 조설근과 같은 작가들이 쓴 고전 작품이나 과 같은 현대 영화들은 알려질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평행 우주에 있을 고독한 선현들께 죄송스러운 일이었고 물론 자신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범한은 지구 인류를 대표해서 이 세계를 관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 관찰하기 위해서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며 장수하고 싶은 것이다.
범한이 이런 목표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사실 이러한 목표들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 마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만함, 그리고 탐욕스러운 욕심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벼랑 앞에 서서 잠시 생각하던 오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일단 여러 여자와 결혼을 하고, 소객과 종도 많이 거느려야겠군요.”
“소객이요?”
범한은 소객이 문인을 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오죽이 이어서 설명했다.
“책을 많이 쓰려면 도련님을 대신해서 전문적으로 글을 써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소객은 낙후한 문인이니 자신의 글이라 떠벌리며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을 겁니다.”
오죽의 제안에 범한은 미소 지으며 속으로 자신은 위대한 작가들의 명작을 알고 있으니 소객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죽은 계속해서 범한의 목표를 분석했다.
“여러 여자와 혼인하고 많은 종과 소객을 거느리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권력이 필요하니 권력의 중심에 가까워져야겠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오죽이 몸을 돌려 떠나면서 말했다.
“도련님이 만으로 열여섯 살이 되시면 경도로 돌아갈 겁니다.”
범한은 벼랑에 그대로 서서 멍한 표정으로 오죽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무슨 웅장한 포부를 밝힌 것도 아닌데 왜 이야기가 저기까지 가는 거지? 머리에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고작 저 정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국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니 말이 안 되잖아. 게다가 경도로 돌아갈 결정을 하다니.’
범한은 자연스레 자신이 이 세계에 태어난 날 오죽이 자신을 안고 경도에서 도망치던 순간을 떠올렸다.
난처한 표정을 짓던 범한은 자신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감정을 털어 내고는 히죽 웃으며 오죽을 쫓아가 말했다.
“제가 아저씨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으니 아저씨도 제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 주세요.”
“알고 싶으신 게 뭡니까?”
“제 어머니에 대한 일이요. 왜 경도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했던 거지요? 우릴 쫓아온 사람들은 누군가요?”
“아가씨 일은 도련님이 열여섯 살이 되면 모두 말할 겁니다. 이건 아가씨의 유언이니 도련님도 따르세요. 그리고 우리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도련님은 아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10년 전에 죽었으니까요.”
담주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성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오죽과 헤어진 범한은 혼자서 성안으로 들어왔다. 성안의 주민들은 범씨 가문 도련님이 성 밖을 쏘다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담주성 부근에는 대형 야생 동물도, 위험한 장소도 없었지만 그래도 도련님 신분에 혼자서 쏘다니다니 안 될 말이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백작가 사람들이 서자라는 이유로 도련님의 안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람들의 눈에 범한은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열두 살짜리 소년일 뿐이었다.
나라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 종일 한가롭게 지내는 담주항 주민들은 종종 기괴한 상상을 하고는 했다. 이를테면 백작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저 서자 도련님이 기괴한 야생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벼랑에 떨어져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 말이다.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년이 위험한 저택에서 살아간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은 짜릿한 쾌감에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다.
범한은 길거리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기에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별저로 돌아갔다.
이 시간 즈음이면 범한이 식사를 하러 저택에 돌아오므로 종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노부인은 졸음에 겨운지 눈을 감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