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26
567화 한결같은 마음 (2)
두 어린 태감이 신선처럼 이러한 금군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럼 아까 그 사람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작은 범 대인이란 말인가?”
황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위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과연 소문에서 들었던 것처럼 외모가 아름답구먼. 다만 안색이 좋지 않으시던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며칠 전에 자객을 만나 중상을 입으셨는데 안색이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작은 범 대인은 상처도 이렇게 빨리 회복한단 말인가? 다친 몸을 이끌고 급히 조회에 온 이유는 뭐지?”
“잊지 말게나. 작은 범 대인이 우리 경국에서 가장 어린 9품 고수라는 걸!”
“하지만 습격을 당했다고······.”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이 일이 너무나도 무서운 일인 만큼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었다.
황궁 안으로 들어간 범한과 1 황자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 떠드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1 황자도 같은 이유로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을 이끌고 급히 입궁한 이유가 무엇일까?
“급히 입궁한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 황궁 안이 조금 소란스럽네. 자네가 습격당한 일을 조사하는 걸 가지고 모두들 긴장하고 있어.”
범한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잊으셨습니까? 제가 왕부에 초대장을 보냈는데, 아마도 큰 공주께서 직접 받으셨겠지요······. 제가 오늘 저녁 포월루에서 연회를 열 생각입니다. 연회를 열 기력이 있는데 입궁해 업무를 보고하지 않으면 폐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큰 왕비나 형수라고 불러야 하네. 왜 아직도 큰 공주라 부르는 건가?”
“큰 왕비라는 말이 어색해서 그럽니다. 하긴 섭령아를 형수라고 부르는 게 더 터무니없지만······ 태상사 정경의 면전에서 욕을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범씨이고 1황자께서는 이씨가 아닙니까.”
거리낌 없는 말이었다. 최소한 신하가 1 황자에게 하기에는 규격이 맞지 않은 말이었다.
1 황자는 그의 마음을 알기에 어쩔 수 없다는 미소만 짓다가 돌연 숙연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 일을 자네도 알고 있나?”
“무슨 일 말입니까?”
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연소을의 아들이 어젯밤에 자객을 만나 죽임을 당했네.”
1 황자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눈동자에서 이번 암살 사건이 그와 연관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려는 것 같았다.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든 제 사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일은 저와는 관련이 없으니 그런 눈으로 저를 떠보려 하지 마십시오.”
1 황자가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와 관련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자네를 의심할 거네.”
“의심하고 싶으면 의심하라 하십시오.”
범한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 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두 명 늘어나는 건 대수롭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은······ 연소을이네.”
1 황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범한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옆에 있는 1 황자가 군대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가졌는지 실감했다. 성문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원대 진영에서 발생한 일을 알고 있었다.
1 황자가 범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 일은 절대 좋게 끝날 수 없을 거네. 생각해보게나. 경도 근처 수비사 진영에 자객이 들어온 거네······. 이 일이 알려진다면 좋은 날은 다 끝난 거라 할 수 있지. 정말이지······ 오만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범한은 그의 말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알아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원대 진영이요? 며칠 전에 누군가가 군대에서 성을 지킬 때 쓰는 쇠뇌를 산골짜기로 옮겨와 흠차 대인을 쏴 죽이려 했던 것이야말로 오만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요.”
1 황자는 범한의 말 속에 담긴 강렬한 분노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산골짜기에서 그가 부하들을 많이 잃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가 화제를 바꿔 물었다.
“신아는 언제 돌아오는 건가? 할마마마와 내 모친께서 보고 싶어 하시네. 내년에 다시 강남으로 내려가는 것에도 아쉬워하고 계시고.”
범한이 말했다.
“내년에 가면, 그 부족 공주도 데리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제가 양총 골목에 있는 집을 한 채 샀는데,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 첩을 숨기기 아주 좋습니다.”
그 말을 들은 1 황자가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슨 첩을 숨긴다는 말인가?”
범한에 품에서 집문서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첩을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1 황자가 화난 눈빛으로 범한을 노려봤다. 한동안 입만 벙긋거리던 그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시선이라 칭송하는 자네가 준수한 외모와는 다르게 교활한 여우의 입을 가졌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네.”
“그 말도 사실이죠.”
범한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미 충분한 명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는 체면 따위는 벗어 던지고 모두와 함께 신명 나게 놀아볼 생각입니다.”
놀란 1 황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연회에 사람들을 불러 뭘 할 생각인 건가?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나.”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오시는 분들 모두 지체 높은 분들이시니 아첨하기 바쁘겠지요.”
범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저하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형제간에 싸움이 심해지기 전에 빨리 그들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1 황자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듣기 싫군.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 둔 형제인 만큼 조용히 천자의 결단을 기다릴 거네. 자네도 분수를 알고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됐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제 성은 범씨가 아닙니까······.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저도 제 발등을 찍는 취미는 없습니다. 오늘 저녁 이후 그들이 솔직하게 나온다면 저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1 황자가 미소를 짓자 범한도 잠시 생각하다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젊은 신하가 당당히 황태자와 황자를 위협하고 더구나 가르치는 말투로 말하는 것은 극히 드문 오만방자한 행동이었다.
범한은 자신이 범씨라고 말했지만,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그의 성이 원래 이씨가 아니었다면 그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황족 자제들과 이렇게 당당히 협상할 수는 없었을 거였고, 오히려 오만방자한 행동에 일찌감치 목숨을 잃었을 거였다.
그래서 어서방에서 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발을 걷고 들어오는 이씨 성을 가진 황제를 만나자 그는 겉으로는 공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따금 냉혹함과 고집스러운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의 연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어서방은 바깥과 비교해 훨씬 따뜻했다. 안에 놓인 화로 세 개에는 랑아주에서 공수한 은죽탄이 타고 있었는데, 정교하게 계획해 만들어 탄 재가 넘치지 않았고 사방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어 추운 밖과는 달리 안은 봄 날씨처럼 포근했다.
다만 방 전체에 은은하게 탄 냄새가 났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범한처럼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맡을 수 있었다. 탄내에 코를 킁킁거리며 힘겨워하던 범한의 머릿속에 어느 멀리 있는 세계의 흰색 방 안의 따뜻했던 온기가 떠오르면서 자연히 이전 세계에서 봤던 ‘마오(毛) 주석은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했고, 황제는 에어컨 바람을 쐐보지 못했다.’라는 재미있는 말이 떠올랐다.
어서방에 들어와 긴 의자에 앉는 황제의 표정을 보니 어서방의 따뜻한 온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흰 머리와 눈가에 파인 주름이 평온해 보였다. 황제가 긴 의자에 앉아 밖에서 입는 용포를 벗자 어린 태감이 목면으로 만든 일상복과 따뜻한 제비집 죽을 가지고 왔다.
범한은 한쪽에 조용히 서서 몰래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천하 지존인 황제의 일상생활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싶었다.
죽을 마시던 황제가 힐끗힐끗 자신을 엿보는 범한의 시선을 의식해 웃으며 꾸짖었다.
“강남에서 맛난 것도 못 먹은 것이냐? 왜 군침을 흘리는 것이야?”
범한이 멋쩍은 표정으로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입궁을 서두르느라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손을 뻗어 그에게 앉을 것을 주라는 지시를 내리자 요 태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발 뒤에서 도자기로 만든 둥근 걸상을 꺼내왔다. 범한은 의자에 앉으면서 1년 반 전에 자신이 처음 어서방에 들어와 공무를 논의했던 장면이 떠올렸다.
‘오늘 조회가 끝난 뒤에 폐하께서는 어째서 어서방에서 회의를 계속하지 않고 단독으로 나만 부르신 것일까?’
황제를 1년여 동안 보지 못한 탓에 범한은 자신의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지 감이 서지 않아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더구나 군신의 관계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황제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므로 어사방 안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제비집 죽을 반쯤 먹은 황제가 그릇을 탁자에 놓고는 고개를 들어 범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잘생긴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지난 20년 동안 차갑게 식어 있었던 마음이 움직였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떨쳐냈다.
“상처는 어떠한가?”
황제가 최대한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범한이 허리를 살짝 굽히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관심을 보여주시니 소신은 무사합니다.”
그는 황제가 이미 연소을의 아들이 심상치 않은 죽음을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상대방이 언급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이 일을 자신과 연관 지을 수 없는 이상 그는 모르는 척 연기하며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폐하······?”
황제는 마음이 또 움직이자 한숨을 쉬며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행동할 것 없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보아라. 작년에 짐이 너를 강남에 보낸 것은······ 너를 단련시키고 등용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너는 고생스러웠겠지만.”
황제가 이처럼 온화한 말투로 말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범한은 조금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어찌 폐하를 속일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강남에 가면서······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강남의 풍광이 아름다워 계속 그곳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소신에서 제가로 용어가 바뀌는 것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매번 황제와 신하의 관계로 시작해 나중에는 모호한 부자의 모습으로 끝이 났다. 그럼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두 사람 모두 애매하고 비통하며 몰염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황제가 미소 지은 채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강남에서 일을 잘 해내서······ 짐은 무척이나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강남의 일이란 황실 금고에서의 일과 교주에서의 일, 그리고 강남로에서는 일 등 모든 일을 포함한 것이었다. 범한은 젊은 명신으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품격과 기백을 드러내며 조정을 위해서, 황제를 위해서 민간과 군대에서 아주 많은 이득을 가져왔다.
범한은 지금 황제가 쥐고 있는 칼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정에서 힘이 있는 계층은 대부분 벌을 받았고, 황제도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습격 사건을 떠올리면 황제는 범한에게 불쌍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건 그저 살짝 마음이 일렁이는 정도일 뿐이었다.
강남의 일을 대충 보고하니 나랏일과 관련된 일은 모두 끝이 났다. 어쨌든 조정에 돌아와 업무를 보고하는 일은 조정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었고, 대조회가 열리려면 아직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날 범한은 특명을 받아 관복을 입고 조회에 참석해 조정 문무백관들의 찬사와 질책을 들어야 할 거였다. 오늘 황제가 범한을 어서방에 부른 이유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남과 교주의 일은 이미 황제도 밀서를 통해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오늘은 자연스럽게 화제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다른 곳이란 담주를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범한이 담주성에 직접 갔다 온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물어봤다. 범한은 황제가 담주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자세히 설명했고, 심지어 동아에 관한 일도 허심탄회하게 모두 이야기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곁에 황제의 눈이 항상 있을 거라 짐작했기에 굳이 숨겨서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자연히 담주 유모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고, 범한은 잘 지내신다고 대답한 뒤 흰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이나 성 주변의 절벽 등 담주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한참을 말하던 범한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