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29
570화 포월루 앞에서 웃는 형제 (2)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서 줄곧 펑펑 쏟아지던 눈이 갑자기 멈추긴 했지만 해가 떠오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처럼 경도 전체가 차가운 냉기로 가득했지만, 붉은 등이 높이 걸린 건물만큼은 촛불로 환하게 밝혀져 온기로 가득했다.
포월루의 대문에는 세 겹의 두꺼운 가죽 발이 걸려 있었다. 가끔 종들이 지나면서 살짝 들릴 때마다 건물 안의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거리에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거리의 공기는 다른 거리보다 훨씬 따뜻했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행인은 없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근처 경도부 아속과 경도 수비 병사들이 언 손을 비비며 휘황찬란한 건물을 바라봤다. 봄날처럼 따뜻한 온기를 누리며 안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추위와 싸우며 바깥을 지키는 이들은 입으로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지만 분명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천하에 있는 술집과 기생집을 모두 통틀어 봐도 이처럼 화려한 곳은 포월루 밖에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포월루의 모습은 평상시보다도 훨씬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포월루는 오늘 영업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리 절반은 경도부와 경도 수비가 막고 있었다. 이건 포월루가 미리 사전에 관아에 보고해 특별 허락을 맡은 사항이었다.
경도부의 대인은 이런 모임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곳을 경호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도 안에 다른 관리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들은 어느 파벌에 소속되어 있든 상관없이 오늘만큼은 포월루에서 벌어지는 연회가 잘 치러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현재 경도에서 세력가라 할 만한 인물들은 모두 포월루에 모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태학사업 겸 태상사 소경 겸 황실 금고를 지휘하는 운송사 정사 겸 감찰원 전권을 가진 제사 겸 순무 강남로 흠차 대신 범한이 귀빈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푸는 날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상당한 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곧 있으면 나열되는 관직명이 족보보다도 더 길어질 작은 범 대인이 연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청한다는 데 누가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호의를 저버리고 외면할 수 있겠는가? 모두들 작은 범 대인이 조정에 미움을 받으며 고립된 신하를 자처하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황태자와 세 명의 황자들, 그리고 추밀원 부사 두 명까지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처럼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 범한이 체면을 위해 참석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고 외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포월루에는 나라의 중요한 인물들과 조정 중신들이 대거 모였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오늘 밤 이곳에 침입해 이들을 모두 다치게 하거나 죽인다면 경국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이게 바로 경도부와 경도 수비가 주변을 살벌하게 경계하며 황궁에 버금갈 만한 방어를 하는 이유였다.
황혼을 틈타 고급 가마 몇 채가 포월루 앞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조정 대신들 몇 명이 마차를 타고 도착했고, 이어서 군대 안에 힘 있는 몇몇 사람들이 말을 타고 등장했다.
참석하는 이들은 모두 범한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몸종을 최소한으로만 데리고 왔다. 황족들은 호위병 두세 명을 데려온 것이 전부였고 대신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신했기에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비록 최근에 산골짜기에서 습격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포월루가 범씨 집안은 재산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1 황자가 도착하고 추밀원 좌우 부사가 도착했다. 신기물과 임소안도 도착했다. 오늘 연회를 위해 포월루 전체가 쓰였기에 기생들은 연회가 시작될 때까지 휴식할 수 있도록 대인들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손님들과 인사를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범한이 옆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황태자 저하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범한의 손에 이끌려 고분고분 따라가는 아이를 보자 추밀원 두 부사와 상석에 앉은 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과거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들에게 호령한 권신처럼 오늘 범한은 소년을 끌고 가고 있었다. 저 두 사람에 의해서 앞으로 경국의 모습과 천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범한과 손을 잡고 가고 있는 상대는 바로 3 황자였다.
대문에 걸려 있는 가죽 발 밖은 약간은 추웠다. 3 황자가 살짝 몸을 떨며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스승을 바라봤다. 눈에서 숭배하는 기색이 보이더니 곧이어 공손히 물었다.
“스승님, 상처는 나아지셨습니까? 굳이 나와서 맞이할 필요가 있습니까?”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설명했다.
“황태자 저하는 다른 이들과 신분이 다르고, 또 저하의 형님이 아니십니까. 대신이든 형제이든 마땅히 존중해야 할 분이시지요.”
작은 가마가 십여 명의 호위병의 보호를 받으며 포월루에 도착했다. 범한이 예리한 눈으로 등에 장검을 찬 호위들을 차갑게 바라봤다. 민심을 건들 정도로 포월루에서 연회를 너무 떠들썩하게 진행해 조정이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연회에 참석하는 귀빈들은 모두 행차 의식을 생략했고, 그래서 황태자도 최대한 행차를 간소하게 했다.
만일 형식에 맞게 도로에서 온갖 행차 의식을 치렀다면 인파에 막혀 모두들 숨 막혀 죽었을지도 몰랐다.
가마 발이 열리자 연황색 옷을 입은 황태자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가마에서 내렸다.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범한과 셋째가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허례허식이기는 했지만, 오늘 상당한 권력을 가진 범한이 이처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황태자로서는 필요했다.
범한과 3 황자가 앞다투어 예를 갖춰 인사하자 황태자가 급히 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일순간 황태자가 도착한 걸 알게 된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달려 나와 인사를 했다. 유일하게 벌써 술이 오른 1 황자만 나오지 않았는데, 황태자는 군인인 자신의 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건물 앞에 모인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가마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황태자가 고개를 돌려 가마를 보고는 생각했다.
‘누구기에 나보다 더 큰 가마를 타고 늦게 도착하는 거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가마에서 수척한 중년 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관리는 자신의 품계를 드러내는 복장을 갖추지 않고 있었음에도 모두들 그가 누군지 알아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이 자리에 그가 등장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황태자보다 늦게 등장한 관리는 바로 강남로 총독 대인인 설청이었다. 천하 7로 중에서 한 곳을 관장하는 설청은 제일 품계가 높은 관리이자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가장 무시할 수 없는 점은 그가 황제의 심복이자 과거 서각에서 황자들을 가리킨 스승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조정의 다른 대신들보다 더욱 지위가 높았다.
설청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바라보다가 황태자를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황태자를 선두로 모두가 설청에게 공손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범한이 웃으며 말했다.
“설 대인께서 업무를 보고하러 경도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가 1년 동안 강남에 있으면서 설 대인의 도움을 받았기에 보답하고자 초청을 했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겉으로는 작은 범 대인의 위신이 대단하다고 칭송했지만, 속으로는 설 총독까지 초대한 것을 두고 욕했다. 산골짜기 습격 사건 사건을 계기로 범한이 오늘 모든 세력에 자신의 위세를 떨쳐 보이기 위해 설청을 초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늘 포월루 연회는 젊은 세대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었다. 진 원장, 서 대학사와 같은 나이 든 대신들은 초대 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눈을 굴리며 범한이 오늘 무슨 목적으로 각기 다른 세력들을 포월루에 모아둔 것인지 궁금해했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모두들 공무로 바쁘신 분들이니 연말을 맞아 함께 쉬어 보자는 것이지요.”
범한이 포월루 문 앞에 서서 웃으며 설명했다.
그러던 중 마차 한 대가 포월루를 향해 다가왔다. 바로 2 황자의 마차였다. 2 황자는 범한과 생김새가 무척이나 비슷했고, 기질이나 성격도 판에 박은 것처럼 비슷했지만 범한은 경도에서, 북쪽에서, 강남에서 2 황자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해야 했다.
물론 지금까지 승리자는 범한이었다.
범한과 2 황자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아무 말 없이 동시에 허리를 살짝 굽히고 양손을 모아 인사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동시에 입가가 꿈틀대더니 약간은 수줍어하는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통해 인사를 나누었다.
* * *
포월루 1층 대청을 볼 수 있는 3층 응접실은 아름답게 장식에 바닥에는 이국적인 붉은 색의 커다란 모포가 깔려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이 바로 오늘 연회가 열릴 장소였다. 잘 꾸며진 응접실로 들어가던 2 황자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들어 올려 금으로 새로 쓴 두 글자를 바라보고는 무슨 의미일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홍문(鴻門)이라.”
주인인 범한이 웃으며 응접실로 들어오는 귀빈들을 맞이했다. 병풍과 발에 둘러싸인 응접실은 따뜻하다 못해 더울 정도였다. 응접실로 들어온 귀빈들은 옆에 있던 기생들의 도움을 받아 외투를 벗고 홑옷 차림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사용된 것들은 모두 강남에서 생산된 최상품들이었다. 탁자에는 잔에는 정성껏 우린 차가 담겨 있고, 쟁반에는 맛좋은 간식이 가득 담겨 있었으며 유리잔에는 술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바로 천하에서 가장 비싸다는 독주 오량액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시중을 드는 기생들은 모두······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은 황태자가 차려진 것들을 바라보다가 범한을 타박했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누리고 사는 줄은 몰랐네. 여기 있는 물건들을 보니 모두 3대 작업장에서 생산된 것들이 아니지 않는가. 황궁에서는 오매불망 3대 작업장 물건들이 빨리 은전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네는 여기서 이렇게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풍속이 호화로운 북제 조정과는 다르게 경국은 소박해서 경국 황족과 관리들은 근소하게 생활했으므로 범한이 준비한 오늘 연회는 확실히 관례에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실 금고를 관리하는 범한에게 이만한 사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황태자 저하가 웃으면서 범한을 타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범한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누릴 수 있을 때 얼른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왼쪽 첫 번째 탁자에 앉은 설청은 오늘 황명을 받아 연극을 보러 왔으므로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강남에서 오래 있으면서 이런 사치를 누리는 게 습관이 되었기에 경도 세력가들이 놀라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누리는 면에서는 경도가 강남에 한참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연회가 시작되자 기생들이 조용히 귀빈들에게 술을 따르고 음식을 권했다. 비록 이틀 동안 특훈을 받았음에도 나라를 주름잡는 거물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어 자꾸만 불그스름한 입술이 오므라졌다.
풍류계에서 뒹굴어본 경험이 있는 황자와 관리들도 갑자기 많은 사람이 응접실에 모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