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32
573화 홍문의 연회 (3)
황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감찰원의 진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밀실 안에서 언빙운이 순백색 비단옷을 입고 탁자 위에 놓인 보고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며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태양혈을 눌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2처 정보 갑사의 관리 중 한 명이 재빨리 들어와 밀봉된 작은 죽통 세 개를 건네줬다.
언빙운이 손가락으로 밀봉을 벗겨 낸 뒤 안에 적힌 내용을 읽고는 종이를 촛불에 불태웠다. 그리고는 정보 관리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지친 목소리로 지시했다.
“오늘 일은 문서에 기록하지 말게.”
정보 갑사 관리가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43개의 목표 중 3개가 제거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언빙운은 다시 두통이 도지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고는 손을 저어 나가라는 표시를 했다.
밀실이 다시 조용해지자 언빙운이 탁자에 남아 있는 밀랍 부스러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밤 범한이 포월루에서 여유롭게 연회를 즐기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감찰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가는 동안 범한의 미친 발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죽임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밤의 계획은 언빙운이 직접 계획해 결정한 것이었다. 비록 그는 겉으로는 범한의 생각을 완강히 반대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계획을 통해 오늘 밤 11명의 사람을 죽이고, 32명의 사람을 체포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할 11개의 목표 중에서 여섯 명은 2 황자의 여덟 가문의 장수들이었다.
분명 광인이나 할 법한 복수였다.
2 황자의 여덟 가문의 장수 중 이미 세 명이 죽임을 당했고, 감찰원의 대대적인 반격을 왕부가 막을 힘이 없는 만큼 나머지 사망 소식도 곧 있으면 들려올 것이었다.
언빙운이 창가로 다가가 진평평이 그랬던 것처럼 창문을 가린 검은 색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좁은 틈새를 통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궁을 바라봤다. 밝게 빛나는 황궁은 어둠 속에서 거룩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황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폐하께서는 대인께 고립된 신하가 되라 했지 단절된 신하가 되라고는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 * *
경도의 밤은 항상 짙었고, 특히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에는 해가 진 뒤에 거리에서 행인들이 많지 않았다. 아니,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행인이 없는 거리에는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암살자들만 있을 뿐이었다.
암살자들은 어둠 속에 숨어 경도 거리와 처마 아래서 불쑥 나타나 올가미, 예리한 칼, 쇠막대기 등을 이용해 목을 베거나 목구멍을 찢거나 누군가의 몸으로 누군가의 눈을 가렸다.
붉은 피로 모든 사람의 눈을 가렸다.
자죽원에서 검은색 밧줄이 대문 위에서 내려오자 한 사람이 최후의 발악을 하며 두 다리를 힘없이 차가운 바람을 찼다.
희미하게 빛나는 초롱불이 공중에 버둥대는 두 다리 때문에 흔들리면서 그림자와 옅은 빛이 번갈아 가며 땅에 드리웠다. 길모퉁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빛이 자신을 비출 때마다 차가운 눈빛과 창백한 얼굴을 드러내는 등자월의 모습은 마치 어두운 밤에 나타난 마귀처럼 보였다. 공중에 버둥대던 두 다리가 힘없이 축 처지자 그는 목표물이 죽은 걸 확인한 뒤 몸을 돌려 떠났다.
계리방이란 붉은 파도가 넘실대는 기생집의 침대 위에서 근육질의 고수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얀 눈동자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자 옆에 있던 기생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두 다리를 쩍 벌리고는 음탕하면서 치명적인 자세로 그의 허리에 올라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기생이 희고 보드라운 손으로 남자의 귓전에서 아주 얇은 바늘을 뽑아냈다. 바늘 끝은 은은하게 푸른빛과 검붉은 빛이 났다.
고산탑에서는 요란스럽게 추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급히 탑 아래로 달리고 있었는데, 그의 옷은 이미 여러 갈래로 찢기고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뒤 추격자에 의해서 탑 아래가 막혀 그가 갈 곳을 잃자 쫓아오던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몰려온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그를 정중앙에 두고 둘러쌌다. 무예 고수인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저항했지만, 상어들에게 포위당한 고래처럼 온몸이 물리고 뜯겼다.
어두운 밤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살을 파고드는 금속의 섬뜩한 울림과 허공을 가르는 찬바람 소리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한참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때린 끝에 중앙에 있는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신경 자극에 의한 반응조차 없이 썩은 고기처럼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 *
언빙운은 손에 들린 보고서를 촛불로 불태웠다. 그의 두 손을 떨리지 않았고, 미간에는 짙게 드리워 있던 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이미 발생한 이상 조금의 의문도 가져서는 안 됐다. 활이 화살을 떠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았다.
2 황자가 직접 이끄는 여덟 가문의 장수 중 남아 있던 여섯 명이 모두 감찰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다른 장소에서 경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이후로 여덟 가문의 장수들이란 명칭은 역사상에서 더는 불리지 않게 될 것이었고, 아마도 역사에 기록될 자격도 갖지 못할 것이었다.
언빙운이 고개를 숙이고 탁자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콧등을 매만졌다. 계획대로라면 당장 다음 단계를 진행해 남은 다섯 명을 암살해야 했고, 이미 전문가도 파견되어 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감찰원은 산골짜기 습격 사건에 대한 광적인 복수를 진행했지만 언빙운은 여전히 상황을 일정 정도 안에서 통제할 방법을 모색했다. 2 황자가 거느린 여덟 가문의 장수들은 나라의 녹봉을 받는 대신이 아니라 왕부가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는 장수들이었기에 감찰원이 죽여도 약점이 되지 못했고, 조정에서 범한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죽이려 하는 다섯 명은 달랐다.
이어서 체포하려 하는 관리들도 달랐다. 비록 각 부서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볼품없는 관리라 하더라도 어쨌든 조정의 녹봉을 받는 관리를 하룻밤 안에 대규모로 잡아들인다면 어떤 혼란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언빙운이 한숨을 내쉬며 은밀한 통로를 통해서 밖에 있는 부하들에게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내린 뒤 그가 습관적으로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통해 황궁 처마를 바라보며 진 원장 대인이 애초부터 옳았다고 생각했다. 범한은 겉으로는 온화하게 행동하면서 안에 있는 광인의 기질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언빙운이 멀리 있는 듯하지만, 멀지 않은 황궁 처마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산골짜기에서 심복 십여 명이 죽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미쳐 날뛰는 사람인데······. 만일 진 원장 대인의 말대로 원장께서 세상을 떠나신다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으로 변할지······.’
* * *
한편 포월루에 있는 범한은 표정이 온화하고, 연신 눈썹을 위로 들썩거리는 것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치 건물 밖 경도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계속 이어지던 산골짜기 습격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켕기는 것이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든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다 그를 위로했다. 이어서 범한이 강남의 일, 명씨 집안 사이에 일어난 일, 황실 금고 일을 간략하게 말한 뒤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조정을 위해 강남에서 힘을 쓰고 있을 때 경도에서는 어째서 제 뒤를 칠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요.”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한이 강남에 나가 있는 1년 동안 경도에서 그를 방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것은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굳이 따져본다면······ 365일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호부 조사를 가지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소를 올린 일로 그러는 것인가? 게다가 이런 일들은 모두 아무런 문제 없이 해결되었는데 이제 와서 불만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모두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황태자가 미소를 지으며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모함을 해서는 안 되네.”
범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제가 1년 동안 경도에 없다 보니 많은 분께서 제 성격을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천천히 술을 홀짝이며 맛을 음미하고 있던 2 황자는 그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졌다. 오늘 황태자의 표정은 너무나도 수상했고, 범한의 태도는 오만방자하기 이를 대가 없었다. 이렇게 오만하게 구는 것은 상식이나 규범에도 맞지 않은 일이었고, 자신에게 조금도 좋은 게 없음에도 말이다.
‘설마 산골짜기 사건 때문에 이러는 것인가?’
2 황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 일은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여기서 우리와 왈가불가 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때 포월루 아래에서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황태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질타했다.
“감히 누가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포월루로 달려와 경도 수비와 경도부 아속들이 이중으로 설치한 방어선을 순조롭게 통과하자 포월루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와 진입을 막았다.
범한이 상문에게 눈짓을 주자 상문에 발을 열고 병풍 옆으로 사라졌다. 얼마 뒤 조급할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상문이 다섯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 다섯 명의 사람들은 모두 관복을 입고 있는 거로 보아 조정의 관리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 이곳은 조정 일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좌석에 있는 사람 중 몇몇이 자신의 심복을 알아보고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지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올 정도로 경도에 큰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다섯 명의 관리들이 서로를 힐끗 쳐다보며 상대방의 마음속에도 자신과 같은 불안함, 두려움, 황당함이 있음을 느꼈다. 더는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에 먼저 자리에 있는 귀빈들에게 사죄한 뒤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범한을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이 찾으려 하는 인물을 찾은 뒤 상대방의 귓가에 대고 뭐라 말을 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이 장면을 바라보던 범한이 술잔을 들어 황태자와 1 황자,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임소안을 향해 경배를 올렸다. 1 황자의 금군은 영향력이 황궁 일대에만 국한되어 있었기에 일이 발생해도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황태자는······ 무언가 짐작되는 바가 있는 듯 일부로 귀를 닫은 채 술만 들이켰다.
1 황자가 주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바라보다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냔 표정으로 범한을 노려봤다. 그러자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옆에서 부하 관리에게 보고를 받는 사람들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지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더욱이 2 황자의 잘생긴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가 붉게 상기되었다가 하더니 잠시 뒤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범한은 그 모습을 훔쳐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여덟 가문의 장수 중 남은 여섯 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2 황자는 순간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금세 원래의 침착함을 회복했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