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33
574화 홍문의 연회 (4)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1 황자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는 건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랐다. 2 황자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범한을 바라봤다. 그가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대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작은 범 대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순간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경도 소식을 보고 받은 사람들은 모두 범한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포월루에서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경도 안에서 몇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며, 2 황자의 가장 큰 힘인 여덟 가문의 장수 중 남은 여섯 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정보원을 통해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인물들은 모두 경도에 많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성 방어를 책임지는 추밀원 관리들은 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덟 가문의 장수 중 여섯 명을 깨끗하고 신속하게 처리했다는 건 평범한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 범한이 포월루에 모두를 초대했으므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일을 감찰원에서 했을 거라 확신했다.
모든 사람이 범한의 대답을 기다렸고, 분위기는 점차 살벌하게 변해갔다.
그런데도 범한은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범한의 능청스러운 말에 2 황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괴로움이 담긴 웃음이었다. 그는 충격에 마음 깊은 곳이 서늘해지고 다리가 시큰시큰 저렸다. 앞에 있는 감찰원 제사가 짓고 있는 미소가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황자이지만······ 당장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마음이 약간 아리고 아팠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추밀원 부사 곡향동이 범한의 두 눈을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오늘 밤에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2 황자 저하께서 거느리고 있던 여섯 명의 장수들이 동시에 죽임을 당한 사실을 작은 범 대인께서는 정말 모르고 계셨습니까?”
이 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고 있던 1 황자가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봤고, 기생을 품에 안고 신경 쓰지 않던 황태자도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범한의 침착한 얼굴을 바라보는 황태자는 너무 놀라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오늘 범한이 좋은 마음에서 연회를 준비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범한의 반격 방식은 정말이지 간단하고 직설적이면서 거칠었다. 세상의 이치나 뒷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범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모두 죽었단 말입니까?”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던 2 황자는 범한의 태연자약한 말을 듣자 마음이 흔들리면서 분노, 우울, 의문, 원망과 같은 감정들이 용솟음쳤다. 순간 감정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술잔을 내려놓는 손에 힘이 쏠리면서 ‘탁’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는 술병과 부딪쳤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일찌감치 여섯 명의 장수들이 전부 죽은 걸 눈치챈 범한은 홀가분한 기분이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은은한 미소만 지었다.
“2 황자 저하의 장수들의 일을 왜 본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듣자 하니 2 황자 저하께서 거느리신 장수들이 경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닌다는 말이 있던데, 그렇다면 그들에게 원함을 품은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연회가 시작된 이후 그가 자신을 본관이라 칭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도에서 여덟 가문의 장수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성은 분명 범씨일 거였다.
순간 연회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참 얼이 빠진 모양으로 범한의 얼굴을 바라보던 2 황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방이 한 짓이든 아니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순간에 죽일 수 있는 세력을 가진 그와 감찰원을 황자 혼자서 대항할 수는 없었다.
이에 그가 범한을 향해 술잔을 들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제사 대인은 좋은 수단과······ 패기를 가지셨군요.”
그러자 범한도 같이 술잔을 들며 위로했다.
“저하께서는 슬프시겠지만 오래된 것이 가야 새것이 오는 법입니다. 새로운 시대는 항상 이런 식으로 열리는 법이지요.”
추밀원 곡 부사는 서로 닮은 구석이 많은 두 ‘황자’를 보고 있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2 황자는 범한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명분상 신하에 불과한 범한이 어떻게 이렇게 오만방자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곡향동은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면서도 범한을 향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작은 범 대인, 오늘 밤에 감찰원 4처에서 조정 관리 몇십 명을 체포한 일을 알고 계십니까?”
범한이 조심히 양손으로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본관은 감찰원 제사 겸 1처 수장으로 폐하의 명을 받아 경도 관리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본관이 승낙이 없이 조정을 좀먹는 해충들을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에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 관리는 없고, 많이 탐욕스러운 관리와 적게 탐욕스러운 관리만 있다. 세상을 좀 먹는 해충은 많은 먹은 놈과 적게 먹은 놈의 차이가 있을 뿐 안 먹는 놈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국 조정에 감찰원이라 하는 기형적인 조직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범한이 1처 안에서 기풍 바로 잡기 운동할 때 발견한 것처럼 감찰원도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있는 곳은 파벌과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감찰원의 냉정함과 잔혹함은 유지될 수 없었다.
게다가 감찰원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3품 이상의 관리는 건들 수 없었고, 황제의 명이 없는 이상 군대의 일도 관여할 수 없었다. 설사 진평평과 범한이 힘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감찰원에는 나라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었다. 즉, 감찰원은 탐관들을 조사하는 곳이 아니라 황제의 의도에 따라 관리들을 감시하고 백성들의 원망을 잠재우는 곳이었다.
만약 정말 조사하려 한다면 진평평이 진원 안에 데리고 있는 미녀들과 범한이 황실 금고의 은전을 상당히 많이 토해내야지만······ 황궁 용상에 앉아 있는 황제와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황제란 자리는 굳이 탐욕을 부릴 필요가 없는 자리였음에도 그는 천하에서 가장 탐욕스럽게 천하를 탐냈으니 감찰원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탐욕을 부리기 마련이고, 감찰원은 범한의 광증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을 틈타 감찰원 1처에 소속된 관리들은 모두가 동원되어 골목과 모퉁이에 있는 저택에 침입해 2 황자와 신양 쪽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말단 관리들을 체포했다.
3품 이상은 건들 수 없었지만, 어차피 조정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신하들은 말단 관리들이었다.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된 포월루에 있는 귀빈들은 감찰원의 행동이 범한의 직접적인 승인을 얻어 한 일이라는 걸 알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추밀원 부사 곡향동도 놀라 입을 꾹 다물고 범한의 눈을 노려볼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오늘 밤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감찰원의 주요 목적은 신양과 2 황자 쪽이지 군대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는 범한이 갑작스럽게 이런 수준 떨어지는 방법을 사용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찰원의 행동력과 범한의 잔악무도함에 두려워졌다.
미녀들을 앞세워 밖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체포를 가린다고 한들 곳곳에 풍기는 피비린내까지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갑자기 날아온 소식에 모두가 침묵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보고하러 온 다섯 명의 관리들이 조심스럽게 병풍 뒤로 물러나자 1 황자가 굳은 얼굴로 범한을 향해 물었다.
“왜 그런 것인가?”
감찰원과 신양의 충돌은 이미 오랫동안 이어진 일이었고, 그 발단이 6년 전 황실 금고를 둘러싼 싸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거 2 황자가 범한을 연회에 초대해 놓고 외양간 거리에서 살해하려 했던 일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이 작년 가을날에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작년 가을 동안 범한은 포월루를 빼앗고 사필안을 죽이고 2 황자와 정왕 세자 이홍성의 명성을 더럽히고 북쪽의 최씨 집안이 반역했다고 몰아붙였다.
가을이 지나고 1년 동안 범한은 강남에서 명씨 집안을 억압하고 황실 금고를 인수했으며 교주에서 상곤을 죽였다.
모든 사람이 보듯이 범한은 2 황자와 신양에 대한 복수는 이미 충분할 만큼 모질었고, 많은 이득을 얻은 만큼 오늘 밤에 이렇게 포악무도한 짓을 다시 저지를 이유는 없어 보였다.
오랜 시간 침묵하던 범한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왜 그런 거냐고요? 폐하의 명을 받은 본관은 관리들의 품행을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높은 곳에 앉은 황태자는 짐작이 간다는 눈빛으로 범한이 아닌 2 황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1 황자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자네가 오고 나서 경도가 조용해질 새가 없군. 자네들은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건가?”
범한은 1 황자가 진심으로 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현재 금군 대통령인 그는 어려서부터 2 황자와 사이가 좋았음에도 영 재인과 임완아의 인연 때문에 범한의 편에 섰기에 2 황자와 범한의 싸움에서 난처한 처지일 수밖에 없었다. 1 황자의 말을 들은 범한이 한숨을 쉬었다.
“조용할 새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제가 없는 1년 동안 경도는 무척이나 조용했나 보군요. 그럼 제가 재난을 몰고 온 사람인가 봅니다······. 경도 교외 산골짜기에서부터 제가 조용히 있을 수 있도록 아무도 내버려 두려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휩싸였다. 모두들 범한이 산골짜기 습격 사건의 정황을 찾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걸 짐작했지만······ 너무나도 황당하고 잔혹하였다.
“이 세상에는 황당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의 생각을 읽은 듯 범한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산골짜기에서 하관이 죽을 뻔한 일을 조정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증거가 없어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제 부하들의 마지막 모습을 누가 알고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첫 화살이 날아왔을 때 제가 마부를 마차 안으로 끌어오려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서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만약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면 제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강남 총독 설청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황태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정에서 조사하고 있네.”
오늘 밤 동안 그는 이 말을 세 번째 말하고 있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일을 말하다 보니 갑자기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예전이 숲속에 흰색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토끼가 기분 좋게 문을 나섰는데 그만 회색 늑대를 만나고 말았지요. 회색 늑대가 흰색 토끼를 ‘짝!’ 때리면서 ‘내가 모자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외쳤습니다.”
모두들 서로를 바라보며 범한이 어째서 갑자기 어린아이들에게나 들려줄 동화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째 날 흰색 토끼가 모자를 쓰고 다시 대문을 나갔다가 다시 회색 늑대를 만났습니다. 회색 늑대에게 다시 흰색 토끼를 잡아 찰싹찰싹 때리면서 ‘모자 가져오라고 했잖아!’라고 소리쳤지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 때문에 늑대에게 맞은 흰색 토끼는 억울함에 곧장 호랑이를 찾아가 회색 늑대의 횡포를 고자질했습니다. 흰색 토끼의 괴로움을 들은 호랑이는 안쓰러워하며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대신해서 정의를 실현해 주겠다고 말했지요······. 이후 호랑이가 회색 늑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늑대, 오늘 아침에 흰색 토끼가 찾아와서 억울함을 호소했네. 괜한 트집을 잡아서 흰색 토끼를 괴롭히지 말고 정당한 이유를 찾아서 때리도록 하게. 예를 들면 토끼야 나에게 고기를 찾아다 주겠냐고 말하는 거지······.’”
“토끼가 커다란 고깃덩이를 찾아오면 작은 게 좋다고 말하고, 작은 걸 찾아오면 큰 게 좋다고 말하는 거네. 이렇게 하면 정당한 이유로 괴롭힐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이렇게 해도 되네. 토끼에게 암컷 토끼를 찾아 달라고 한 뒤에 그가 뚱뚱한 걸 찾아주면 자네는 마른 게 좋다고 하고, 그가 마른 걸 찾아주면 뚱뚱한 게 좋다고 하는 거지!”
범한이 진지하게 말하는 것과 달리 내용은 황당하고 유치했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안에 깊은 의미를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태자와 설청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한 듯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다만 그 호랑이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는······ 아무도 감히 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