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87
628화 명원 안 웃음소리 (1)
습관적으로 명원의 담장 밖 나무를 바라보던 명청달은 마음이 스산해지면서 속으로 겨울이 지나 봄바람이 불고 있는데, 어째서 푸르던 나무가 얼어 죽은 건지 생각했다.
그는 지금 자신과 가족들이 혹독한 겨울날처럼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백 년의 역사를 지닌 명씨 집안의 숨통이 이렇게 쉽게 끊어지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황실 금고 상품을 판매하는 황상이 된 뒤 명씨 집안은 많은 이득을 얻은 만큼 너무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점점 조정의 각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 되어갔다.
상인이 아무리 강한들 조정의 싸움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명씨 집안은 지난 1년 동안 지속해서 압박을 받아 왔을뿐더러 최근 몇 개월 동안은 시장 가격 통제로 상당한 손실을 보아야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악랄하고 후안무치한 방법에 의해 은거울까지 모두 깨져서 못 쓰게 되고 말았다······. 이처럼 그동안 너무 많은 피와 땀을 흘리고 너무 많은 힘을 잃은 명씨 집안의 가족들은 상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만약 그가 지금 몸을 뺀다면 명씨 집안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뺄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명씨 집안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자금 흐름이 원만하지 못한 거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태평전장은 영원히 명씨 집안에게 현금을 지원해 줄 수 없는 데다가 동이성에서 이미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은 시커먼 속내를 가진 초상전장뿐이었다.
명청달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기침을 하자 가슴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만약 초상전장이 요구한 것이 명씨 집안 지분 3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의 손에 충분한 현금이 쥐어져 있었다면 명청달은 이처럼 이성을 잃은 반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초상전장과 더 깊은 협력관계를 맺길 원하고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뒤 상황이 평온해지면 양측이 손을 맞잡고 다 함께 천하의 은전을 벌어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신의 가산에 손을 뻗을 생각을 하다니. 이건 명청달의 마지노선을 건든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무릎을 꿇고 치욕을 참아가며 지켜온 가산을 어찌 은전 4백만 냥을 위해서 남의 손에 넘겨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명씨 집안은 분명 은전 4백 냥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만일 초상전장이 가장 낮은 이율로 상환받기를 요구한다면 금액이 3백만 냥 정도로 줄어들겠지만, 명청달은 그것도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기침이 더욱 격렬해지자 그의 눈빛에서 낙담과 굴복의 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운지란이 또 한 번 자신들의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 검술의 대가인 그는 지난번에는 감찰원 사람에게 당해 부상을 입더니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이별에서 명청달의 아주 위험한 기미를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어젯밤 초상전장은 비록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장부와 차용증은 도둑맞지 않았고, 동이성에서도 어떠한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강남로 관아에서 앞다투어 초상전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파견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동시에 강남로 총독 설청의 주군들은 명씨 집안 사병들에게서 한 치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명청달은 이제는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정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이상 장사를 통한 방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또한 그는 이런 상황에서 명씨 집안이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살짝 피로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첩에게 말했다.
“초상전장에서 사람이 오면······ 자네가 최대한 상냥하게 맞이해 주도록 하게.”
과거 큰 노마님을 옆에서 보살폈던 여종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적했다.
“어르신, 최대한 빨리 경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명청달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과거 장 공주마마의 궁녀였다는 사실을 모르셨지만 나는 알고 있네······. 그러니 굳이 나에게 뭘 일깨워 주려 할 필요는 없어. 나와 마마는 한배를 탄 사이이고, 나는 그 배에서 내릴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는 갑자기 이 여자에게 화풀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신은 이미 황궁에 보냈네. 장 공주마마께서는 분명 범한의 움직임을 늦출 방법 가지고 계시겠지.”
장 공주마마에게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그가 바란 대로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감찰원의 움직임을 늦췄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녀가 강남 일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다는 데 있었다.
* * *
명원의 화려한 응접실에서 초상전장의 대행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마시라고 둔 찻물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않는 그의 모습을 단호해 보였고, 오른손에는 어젯밤 살인 사건에서 다친 것인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전과 현재의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그저께는 초상전장이 명씨 집안을 찾아와 계약하자고 요청했지만, 오늘은 몰래 꾸민 짓이 실패로 돌아간 명씨 집안이 자발적으로 만남을 요청해 왔다. 이에 대행수의 태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명청달은 뒤에서 몰래 대행수의 안색을 살펴보고 있었다. 화가 났음이 분명한데도 오늘 이곳에 온 걸 보면 초상전장 막후에 있는 사장은 어젯밤 일어난 일로 인해 양측의 거래가 무산되는 걸 원치 않은 게 분명했다.
그가 발을 걷고 나가려 하는 데 갑자기 누군가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 명란석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명란석이 창백한 아들의 얼굴을 살피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시간이 없으니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거라.”
명란석이 응접실을 힐끔 쳐다보고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가 아버지의 옷소매를 꽉 움켜쥐고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잡아끌고는 울먹이며 무릎을 꿇었다.
“소자가 불효를 저질렀으니······ 아버지께서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명란석이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초상전장의 은전과 집안의 지분을 교환해서는 안 됩니다.”
명청달이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차분히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게냐?”
명란석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자······ 아버지 몰래 가진 무상주 반할을 담보로 해서 초상전장에 돈을 빌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명청달은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놀란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그가 아들을 향해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돈을 상환할 수 있느냐? 도대체 무슨 계약을 맺은 것이야? 태평전장에서 대신 빚을 상환해 줄 수 있는 금액이냐?”
이 질문들은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명씨 집안이 소유한 무상주가 연관된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란석은 자기 아들을 호되게 꾸짖는 것보다 초상전장이 가진 반할의 지분을 되찾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고정불변의 계약이라······.”
명란석이 울상이 되어서는 설명했다.
“3개월 뒤면······ 상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원금조차도 전부 상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태평전장도 이 일을 알고 있으나 자신들은 나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명씨 집안은 1년 동안 감찰원의 압박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다 겪은 데다가 범한이 황실 금고 생산품을 쥐고 숨통을 조이는 바람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이에 명씨 집안 도련님은 그날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던 것처럼 명씨 집안의 사업 노선을 대대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이상 범한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명청달은 아들의 의견이 동의하지 않았고, 이에 명란석은 몰래 자기 생각을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그는 자신이 가진 명씨 집안 지분 반할을 담보로 잡고 초상전장에서 현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거금을 벌어들이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아들의 말을 들은 명청달은 머릿속에서 ‘웅’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하마터면 졸도할 뻔했다. 그가 한참 동안 숨을 헐떡이다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한 거야? 왜 원금도 다 상환할 수 없다는 것이냐?”
명란석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버지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소금 밀매를 했습니다.”
놀란 명청달이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업은 딱 세 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기생 장사였고 다른 하나는 황실 금고의 황상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소금 밀매였다.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명청달이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아들의 두 눈을 노려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네가 침착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소금 밀매가 위험하기는 하지만 네 성격이라면 원금을 보전할 방법을 생각해 두었을 텐데······ 어째서 원금도 상환할 수 없다는 게냐?”
“그게······.”
명란석은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에 염다(鹽茶) 관아에서 갑자기 수사를 나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 밀수 선박 12척이 전부 압류당해서······ 제가 사람을 보내 돌려받으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안색이 점차 검푸르게 변하는 건 알지 못한 채 있는 힘껏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희 집안이 세관 관아들을 항상 부족하지 않게 대해 주었기에 그들이 갑자기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양계미가 그 노선은 자신이 줄곧 이용해 왔던 거라 말하면서······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장담을 해서······.”
‘짝!’하는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명청달에게 따귀를 맞은 명란석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명란석은 얼얼한 뺨을 감싸 쥔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입가에서 피가 나는 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분노한 병든 사자 같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관아라고? 관아! 너도 그 관아가 어떤지 알고 있지 않으냐! 염다 관아라면 감히 우리 명씨 집안은 건들 수 없겠지만······ 감찰원이라면 관아를 압박해 조사하게 만들 수 있어!”
명청달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지만, 눈빛에는 분노와 상심이 가득했다.
“양계미! 네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냐? 소금 팔아 먹고사는 그놈은 설청의 개란 말이다! 범한이 소주에 머물렀을 때 거처를 제공해준 사람이 누군 줄 아느냐? 바로 양계미다! 양계미!”
명청달이 아들 옆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면서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내가 어쩌다가 집안을 말아먹을 멍청한 놈을 길렀을까!”
가까스로 화를 삭인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증거나 약점을 남기지는 않았느냐? 감찰원은 분명 네 목을 벨 증거를 찾고 있을 거다.”
“아버지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명란석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사업에 사용한 은전들은 모두 초상전장에서 나왔고, 제가 참여한 걸 양계미가 알고 있기는 하나 관아에서 증거를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초상전장에서 너와 그들이 맺은 계약서를 법정에 가지고 나온다면······ 관아에 증거가 생기는 셈이구나.”
명청달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순간 위기감을 느낀 명란석이 급히 물었다.
“설마 초상전장이······ 범한의 것입니까?”
명철달이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범한의 것일 리 없다. 장 공주가 경도에서 호부를 조사하고, 우리도 그를 계속 주시했는데, 아무래도 그는 강남에 그렇게 많은 은전을 가져오지는 않은 모양이야.”
이 간단한 말을 내뱉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지불해야 했다. 명씨 집안은 초상전장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 초상전장이 범한과 관계가 없다는 걸 확인해야 했다. 명청달은 이처럼 초상전장이 범한과 관련이 없는 걸 확인한 데는 성공했지만······ 그 배후의 사장이 북제 황제라는 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모든 건 신중하게 출발해야 한다.”
명청달이 고개를 치켜들고 애써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패배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지분 3할을 내놓는 것은······ 조상들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경도에서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명씨 집안이 계속해서 세력을 잃고 결국에는 쓰러질 위기까지 몰린 이유는······ 사실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