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39
680화 추격 (4)
하루 지나 담주 북쪽의 원시 밀림 내 어느 거대한 나무 뒤.
검은 옷을 입은 범한이 이끼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크게 숨을 헐떡이며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수시로 닦아 냈다.
그런 후 품에 있는 상자의 표면에 생긴 작은 점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한데 오싹했다. 범한은 어려서부터 이 상자가 얼마나 견고한지 잘 알고 있었다.
비개 스승님이 준 검은색 비수로는 실금조차 낼 수 없었다. 한데 연소을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와 이 상자에 표식을 남기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로써 범한은 연소을의 화살이 얼마나 강력한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한데 자신이 그 화살을 직접 막아낼 줄은 그들도 분명 몰랐을 거란 생각이 들자 범한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상자를 곁에 두고도 방탄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범한도 알다시피, 상자는 날카로운 화살을 막아주기는 했어도 그것의 강한 위력이 만들어낸 진동까지는 막아줄 수 없었다.
그래서 범한의 내부 장기는 다친 데 또 다치고 말았고, 정기도 혼란스러워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범한은 담주 북쪽의 밀림으로 들어온 거였고, 연소을의 추격대 때문에 반경 10리도 안 되는 구역 안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범한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는 은근슬쩍 흥분하고 있었다. 범한이 살짝 헐떡이려는 호흡을 몸에 힘을 주어 억지로 억눌렀다. 그리고 검은색의 긴 상자를 양손 손가락으로 가볍게 들어 올려 열었다.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은 화려하다기보다는 소박했다. 심지어는 그냥 단순하게 생긴 금속의 관처럼 보였다. 연소을의 금사를 감은 장궁처럼 화려하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이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란 범한은 걸 잘 알고 있었다.
범한이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청했다. 그런 후 양손으로 상자 속 물건을 가지고 재빨리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착착착, 하는 단순하지만 미묘한 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애당초 이 세계 것이 아닌 무기가 어느새 범한의 손에 차분하게 들려 있었다.
이 무기가 지난번에 세상에 나왔을 때 경국의 두 친왕이 기이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성왕야가 등극함으로써 현 경국의 폐하가 용좌에 앉을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 보면 과거 북위의 멸망, 천하대세의 변화, 경국의 강대화 등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범한의 손에 들린 이 저격총 때문이었다.
M82A1이라는 간단한 코드, 그리고 검은색 상자. 이것이 바로 전설 속 신의 무기였다.
조립을 끝낸 범한이 상자를 닫고 총을 품에 안은 채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제대로 된 명상에 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산림에서 연소을이 미친 호랑이처럼 그를 죽이기 위해 찾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가슴 속에서 전해지는 금속의 질감 때문에 그의 정신이 살짝 분산되기도 했다.
범한은 지금 경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가 아닌 이미 여러 해 전에 작별한 옛 세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윈난 지역의 숲에서 흉악한 용병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중인 것만 같았다.
이런 터무니없는 기분 때문에 범한은 정신 상태가 살짝 왜곡되는 지경까지 되었다. 하지만 강렬한 피로감과 잠시 후 있게 될 흥분 되는 기대감 때문에 범한은 손에 든 총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해변에서 이곳까지 도망 오는 동안 범한에게는 반격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골수 깊이 박혀 있는 신중함이란 나쁜 버릇이 재발해 상자를 등에 멘 채 시종일관 밀림으로 파고들기만 한 것일 수도 있다.
범한은 담주를 지날 때 성 백성들과 할머니께 의외의 화가 돌아갈까 두려웠다. 하지만 어디든 가서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먼 곳에서부터 호선을 그리며 연소을 일행을 절벽 뒤쪽 숲으로 유인했다.
앞서 범한이 총을 조립한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요 몇 년 동안 꾸준히 훈련을 해왔다. 특히 창산 신혼여행 기간 때 밤마다 눈밭에 엎드려 저격 연습을 했던 걸 아직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는 자신만만한 상태였다.
만약 연소을이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장거리 무기의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강자라면 범한은 오랫동안 열심히 연습해 놓고 처음으로 원거리 저격을 해보는 초보자였다.
이는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기와 화약을 사용하는 문명 간의 첫 대결이었다.
그러니 이런 대결은 아예 시작부터 불공평한 것이었다.
* * *
‘청!’, 하는 소리가 한 차례 울렸다.
화살 한 발이 범한이 기대고 있는 커다란 나무에 사납게 박혔다.
그런데도 범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떤 방어 동작도 하지 않았다. 범한은 연소을이 데리고 있는 이들이 추격에도 탁월한 궁술 고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화살 소리를 들어보니 연소을은 지금 맞은편 산허리에서 이쪽 동정을 뚫어져라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니 범한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거였다.
그렇다면 가벼운 탐색전이었을 뿐이므로 범한은 바보처럼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무렵 범한이 두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복잡하고 험난한 산림 내 저격전을 치르는 중이라 범한은 충분히 쉴 수 없어 원기를 회복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범한이 검은 상자를 다시 몸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비수로 넝쿨 가지와 잎을 잘라 위장을 했다. 그런 후 다시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고는 나무 앞뒤로 직접 설치해 둔 소형 장치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른손에 무거운 저격총을 들고 큰 나무를 엄폐물 삼아 조심스레 산 위로 올라갔다.
범한은 계속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여가며 산을 올랐다. 그리고 올라가는 동안 지난밤에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지 않았다면 범한은 절대 이 검은 상자까지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 폐하를 따라 천제를 올리러 갈 때는 그분이 짜 놓은 장난에 당했다는 생각에 애당초 상자를 배에 놓고 간 것이었다.
상자는 줄곧 13만 냥 은전과 함께 배에 있었다. 소주 화원에서는 대청을 오가는 사람들이 쉬이 볼 수 있는 곳에 놓여 있었다. 황제와 진평평은 이 상자의 행방 때문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런데 범한이 똘똘하게도 그런 곳에 놔뒀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 했다. 이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상자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였다.
범한은 지금 산 위로 올라가려는 중이었다. 그는 대등하지 못한 이번 저격전에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제일 큰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어떤 무기를 지녔는지 연소을이 모른다는 점이었고, 또한 연소을이 화약을 쓰는 무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다는 거였다.
범한은 거리가 500미터는 떨어져야 연소을과 대적할 수 있었다.
일단 연소을이 갑자기 300미터 이내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의 화살이 지닌 속력과 위력 때문에 조준은 고사하고 화살을 피하느라 고개조차 들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러니 범한은 반드시 연소을과의 거리를 벌리고 그가 자신의 시야 안으로 들어올 때를 기다려야 했다.
범한이 배 위에서 상자를 가져오자마자 곧바로 반격에 나서지 않은 건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우선 연소을은 활을 쏠 때 조준할 필요조차 없었다. 더욱이 그는 1초에 무려 13발의 화살을 쏠 수 있었다. 반면 범한은 시간을 들여 조준해야······ 겨우 한 발을 쏠 수 있었다. 그러니 해안에서 마구잡이로 총을 쏴댔다면 자신은 역사에서 가장 멍청하게 죽은 시공 초월자가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저격총으로 하는 저격은 쉬운 게 아니었다. 이는 오죽 아저씨가 예전에 총 쏘는 법을 가르쳐줄 때 잊지 않고 일러준 풍속, 기온 등을 통해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이른바 1밀리미터의 차이가 천 리의 오차를 만든다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범한은 조준에 실패해 총알이 연소을 옆으로 비켜가 50미터 덜어진 나무나 뚫어버리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연소을과 같은 강자가 탄환의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는 곧바로 범한에게 가공할만한 원거리 무기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분명 자신의 주변으로 파고들어와 저격총의 위력을 크게 감소시킬 방법을 찾아낼 것이었다.
그래서 범한은 허투루 총을 쏘지 않았다.
범한이 이렇게나 조심하고, 연소을을 높게 평가하는 건 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비개에게 교육을 받아 16살 이전에 이미 감찰원의 추적과 은닉, 암살에 관한 모든 수법을 익힌 상태였다. 그리고 이 점은 예전에 바닷가에서 소은을 추격할 때에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범한은 담주 북쪽 산림으로 들어온 후 길을 따라 장치를 설치하고 흔적을 지웠다. 울창한 산림과 가파른 지형, 빽빽한 나뭇잎의 도움을 받아 연소을의 추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연소을 일행은 시종일관 범한과 백 장 정도 거리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범한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연소을은 옛날에 대산에서 사냥꾼을 한 터라 그에게는 사냥감을 예민하게 감지해 내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현 상황에서 범한은 연소을의 사냥감이었으니, 추격을 피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함정을 만들고 장치를 달아 놓기는 했어도 연소을 눈에는 별 것 아닐 수 있었다.
범한이 높은 산에서 남몰래 연소을에게 감탄하고 있을 때, 아까 범한이 잠시 쉬었던 아래쪽의 큰 나무에서 비명이 몇 차례 들려왔다.
* * *
연소을이 나무못에 찔려 죽은 친위대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이니 번뇌니 하는 건 없었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들불만 있었다.
담주 북쪽에서 말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온 후 친위대 부하 다섯 중 이미 셋이 범한이 설치해 놓은 장치에 목숨을 잃은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네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이쯤 되자 대종사의 경지를 넘보고 있는 9등급의 절세 강자 연소을은 범한과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상대방에게 살짝 감탄한 것이다.
연소을은 절벽을 향해 쏜 자신의 화살과 섭류운의 검이 범한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범한의 무공이 9등급 중상 중하를 오갔다면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밤새 도망 다닌 지금은 기껏해야 8등급의 숙련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연소을은 직접 나서서 다친 범한을 추격하면 힘들이지 않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중상을 입은 사람이 산속에 이리 많은 함정과 장치까지 설치해 놓고, 심지어 연소을 자신에게 발각되지도 않으면서 그의 부하들까지 죽게 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담주 북쪽에 위치한 이 천리에 달하는 원시림에는 부패한 냄새로 가득했고,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
숲 근처에는 연못과 바위산이 있었고, 맹수가 돌아다녔으며 덩굴이 우거져 있었다.
인근 해변에서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성한 식물군을 향해 습한 바람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식물군이 우거져 있는 곳에는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숲에 깔린 부패한 냄새가 동물 사체에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래된 낙엽 더미가 작열하는 태양을 맞아 뿜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코를 팍팍 찌르는 역겨운 악취인 것만은 분명했다.
연소을이 코를 씰룩거리며 천천히 체내 정기를 운행시켰다. 그리고 썩은 내에 가려져 있던 냄새를 아주 힘겹게 찾아냈다.
함정 안에 설치된 장치에서 모두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것은 연소을의 부하 넷이 사망한 원인이기도 했다. 정신을 집중해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마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연소을은 범한이 비개 선생의 제자임을, 그리고 이 세계에서 독을 가장 흉악하게 잘 쓰는 인물에 속한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니 숲 어딘가에는 범한이 발라 놓은 독이 놓여 있을 터였다.
연소을이 위쪽을 바라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범한이 대체 어디에서 그리 많은 정신력과 용기를 얻었기에 이리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의 입가에서 오히려 자신감에 찬 미소가 흘러나왔다. 더 강해진 원수라니. 죽일 때 더 기분 좋게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