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57
698화 양총 골목에서의 밀회 (1)
호 대학사가 안행서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
“소신은 경국의 신하이자 폐하의 신하입니다. 또 문하중서의 수령 학사로 폐하의 명령을 받아 국사를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폐하께서 정말 유훈을 남기셨다면 소신이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찌 말 못 할 비밀이 있다 의심하시는 겁니까?”
이때 용상 아래 서 있는 세 황자들은 각자 마음이 복잡했다. 2 황자는 속으로 위에 있는 할머니와 황태자를 비웃으며 공명정대한 방법으로 용상에 오를 수 없다면 골치가 아픈 상황이 터지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어두운 얼굴을 한 1 황자는 속으로 두 대학사가 말한 유훈이 진짜일지 가짜일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3 황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랫다리가 굳어지고 심장이 떨리는 걸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만일 밖을 지키고 있는 시위들이 안으로 쳐들어온다면·······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지? 황태자 형님께서 대신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는 거잖아!’
호 대학사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황태자의 마음은 다른 황자들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가 속으로 고모의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경국은 군대와 문신이라는 두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그리고 문신들은 항상 자신들만의 신념과 지조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가 그들에게 가지라 허락한 신념과 지조가 지금 황태자가 즉위하는 데 엄청난 장애물이 된 것이다.
“두 대학사를 데라고 나가라······.”
황태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하로서 폐하의 유훈이 있다고 거짓말을 서 대학사와 함께 호 대학사도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두어라.”
황태자의 말에 태감과 시위들이 호 태학사를 끌고 갔다. 순간 태극전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했다. 문하중서의 두 대학사가 황태자가 즉위하는 걸 반대해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대신들은 과거 경국 역사에 이와 같은 상황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지금 끌려가는 두 대학사는 문관들의 수장이며, 만일 황태자가 이처럼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을 굴복시키려 한다면 앞으로 엄청난 문제가 터지리라는 거였다.
대신들의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던 마음은 서 대학사와 호 대학사가 태극전에서 끌려 나가려 하는 순간에 터졌다. 호 태학사와 서 대학사가 태극전 문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순간 태극전 안에 서 있던 문관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황태후 마마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태자 저하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태극전 절반을 메우고 있던 문관들이 일제히 엎드려 소리쳤다. 이것은 두 대학사를 구하기 위한 호소이자 용상에 있는 황실 자손을 향한 시위였다. 바로 이씨 집안사람들에게 경국 조정에는 두 대학사 말고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관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장 공주 쪽 문관들과 줄곧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고위 장군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린 문관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범한이 죄를 씻어주고 싶어 저러는 것인가? 아니면 황태자가 용상에 오르는 걸 막고 싶어서 저러는 것인가? 나불대는 입과 명성 말고는 아무런 힘도 없는 문신들이 뭘 믿고 저러는 것이지?’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본 황태후는 현기증이 나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황태자의 평온했던 얼굴도 점점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체가 드러나지도 않은 유훈 때문에 오늘 즉위식이 이렇게 엉망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문신들은 어째서 지금 죽음도 불사하며 당당하게 지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황태자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문신들이 자신이 황위에 오르는 걸 반대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상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중도 계파의 관리들이 왜 지금 무릎을 꿇고 호소를 하는 것이지······. 설마 범한의 술수에 넘어간 것인가?’
모두 죽여야 할까?
죽이지 않고 방법이 있을까?
미간을 찌푸린 황태자는 울적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생각했다.
‘범한아, 범한아. 내가 경도에서 네 능력을 너무 낮게 생각했나 보구나.’
황태자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의자에 돌아와 앉은 황태후는 분노에 사무친 이름을 낮게 읊었다. 황태자가 그 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오늘 대신들이 엎드려 간언하도록 한 사람은 범한이 아니었다.
황태자의 머릿속에 마침내 고모인 장 공주를 포함해서 모두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바로 고모와 십여 년 동안 갈등 관계에 있다가 결국 경도에서 쫓겨났으며 이후 오주에서 수년간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 과거 조정과 민간, 문생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경국의 전임 재상 임약보였다.
* * *
유훈이 적힌 친필 서안이 있다는 소식이 조정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왔다. 대신들은 마치 직접 두 눈으로 유훈이 적힌 친필 서안을 본 것 마냥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모두들 서 대학사의 말을 들었으니 황태자를 곤란하게 만들 만한 내용이 담긴 친필 서안이 담박공 범한의 손에 있다는 것쯤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작은 범 대인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당장이라 피바람이 불 것 같은 태극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막후에서 모든 일을 조정하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황태자 즉위를 돕는 세력들도 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실 황궁 혼란을 불러온 근원인 장 공주는 경도의 냄새를 민감하게 맡으며 범한이 은신한 장소를 찾으려 했다.
범한을 찾아내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친필 서안을 불태워 버려야만 조정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범한을 죽여야만 의지할 곳을 잃은 서 대학사와 호 대학사도 더는 문신들을 이끌고 황권에 대항하지 못할 것이었다.
태극전은 오늘 정식적으로 범한을 황제를 암살한 주범이자 역모를 저지른 죄인으로 선포했다. 궁 밖의 세력은 범한을 붙잡아 죽이기 위해 며칠 동안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경도는 너무 넓고 사람이 많았다. 장 공주가 가진 자원으로 은밀하게 경도를 통제하고 있음에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범한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장 공주는 황태자 즉위식 전날 밤 범한이 몰래 서무를 만나고 여러 일을 벌이는 것도 막지 못했다.
범한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이 외진 골목은 경도 황권의 중심이나 화려한 귀족 저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과는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이 골목에서는 거리에 자욱하게 깔린 경국 백성들의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초가을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나무들 몇 그루 말고는 볼 게 없는 볼품없는 골목이었다.
이 골목을 사람들은 양총 골목이라 불렸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이름이었다.
골목 끝에는 2년 전에 누군가가 사들인 작은 저택이 있었는데, 반년 전부터는 한 여자가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 신분을 알 수 없는 여자가 들어와 산 뒤 반년 동안 아무도 이 저택을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 황궁에서 죽음을 불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이 일의 당사자는 저택 정원 나무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범한은 준수한 외모에 착실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살짝 데워진 잔을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매가 아름답고 눈빛이 깊은 미인을 향해 말했다.
“친왕 말고 이 저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미인이 호기심이 가득 담긴 큰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황제를 죽인 반역자라 불리고 있는 범한을 보고도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사실 이 작은 저택은 과거 범한이 암암리에 사들인 뒤 1 황자가 비밀리에 밀월을 즐길 장소로 사용하도록 준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범한 옆에서 경국의 단정한 여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미인은 바로 정서군이 경도로 돌아오면서 데리고 온 서호 어느 부족의 공주로, 1년 넘게 강남에서 범한의 골치를 썩였던 마색색 낭자였다.
중개한 등자월을 제외하고 이 저택을 범한이 샀다는 건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 저택을 범한에게 받은 1 황자의 부끄러움 많은 성격상 사방에 사실을 알리고 다녔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어젯밤 범한이 차례로 관리들을 방문한 뒤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작은 저택을 선택한 것은 장 공주가 이곳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범씨 집안과 감찰원은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었고, 언씨 집안과 왕계년의 집도 궁정 고수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을 피해야 하는 범한의 입장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핵심 인물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로는 양총 골목에 위치한 이 저택밖에 없었다.
마색색의 호기심 시선을 바라보던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골목 왼쪽과 맞닿아 있는 후문을 바라봤다.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정원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온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1 황자는 아닌 게 분명했다.
금속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이름 없는 작은 저택의 나무문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광경에 놀란 마색색이 입을 틀어막고 생각했다.
‘집안 종중에서 범씨 집안 대인을 밀고하는 놈이 나온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저택에 사람이 올 리가 없잖아.’
그녀가 고개를 돌려 범한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어서 도망치세요!”
하지만 범한은 도망가지 않았다. 후문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여인의 미소와 그 미소 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을 읽은 범한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왕비 마마께 인사드립니다.”
저택을 방문한 사람은 화친왕이 아니라 화친왕비인 북제 큰 공주였다.
큰 공주가 웃음기 띤 눈으로 범한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소공야를 뵙니다.”
범한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공수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첫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큰 공주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건 자신의 비밀의 밀월 장소까지 큰 공주에게 밝힐 정도로 1 황자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색색은 먼저 들어가 있게.”
왕비가 서호 사람인 마색색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범한이 손짓으로 잠시 피해 있으라는 표시를 했다.
왕비는 신경을 써서 자신을 위장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찾아 온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 계획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차분히 왕비의 두 눈을 바라보던 범한이 손을 뻗어 앉으라는 표시를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황궁의 눈이 화친 왕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혼자 저를 보러 오시다니, 왕비께서는 정말 담이 크십니다.”
어젯밤에 문관들과 연락을 한 뒤 범한은 금군을 손에 쥐고 있는 1 황자가 가장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 재인은 이미 함광전 안에 갇혀 있었고, 황친 왕부 밖은 궁정과 경도 수비가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범한은 직접 연락하지 않고 1 황자가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묘수를 찾아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묘수에 걸려든 사람은 1 황자가 아니라 왕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