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78
719화 황성 안팎에서 울리는 살육의 소리 (2)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천자의 가족 구성원 세 사람은 범한의 눈언저리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이 되어 있었다.
형과와 다른 조가 보고한 소식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동궁과 광신궁에 아무도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 공주와 태자는 이미 소식을 들은 거였다. 그래서 범한이 부하들을 이끌고 궁궐을 급습했을 때 그들은 어둠을 틈타 북쪽 냉궁 방향으로 간 후 황궁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에 형과가 백여 명의 자객을 이끌고 갔지만 그들을 잡지는 못한 거였다.
이처럼 사납고 정신없이 급습을 펼쳐놓고 제일 중요한 사람들을 놓치다니!
범한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무서웠다. 하지만 낯빛만큼은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이번 황궁 급습에 전력을 쏟아 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황태후와 숙 귀비는 잡지 않았던가.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일이란 없고 말이다. 범한은 자신에게 겨우 2백 명을 데리고 역사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운이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범한 옆에 앉아 있는 황태후가 갑자기 노쇠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생각 중인지 나는 다 알고 있다. 하나 내가 내린 명령은 일찌감치 전달된 상태다.”
형과가 범한에게 귓속말로 전한 말이 이 대담한 황태후 귀에까지 들어간 게 분명했다. 그녀가 잠시 눈으로 비웃고는 범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승건이가 내 명을 가지고 황궁을 나갔다. 그러니 내일 대군이 경도로 들어올 게다. 겁먹은 게냐?”
“저란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담력이 커지고 있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마의 따귀를 올려붙이지도 못했을 테지요.”
범한이 미소를 지으며 황태후를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한데 절로 몸을 부르르 떨게 할 만큼 싸늘한 말투라 황태후의 동공이 수축이 되었다.
“황태후께서는 여러 명령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범한이 황태후를 온화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예를 들어, 13성문사는 계속 마마의 통제 하에 있었습니다. 마마께서 경도의 모든 성문을 닫으라 명령하실 텐데, 어찌 진씨 가문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마마께서도 아시리라 사료되옵니다만, 장 공주가 성문사에 심어 둔 측근들은 어젯밤에 제가 보낸 사람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저는 마마께서 성문 9개를 견고하게 통제하실 수 있도록 도운 겁니다.”
“물론, 제 목적은 마마를 통제하는 거지만요.”
모두 범한의 얇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유난히 부드럽게 한 말이었지만 또 유난히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었다. 이에 화가 너무 많이 난 황태후는 범한을 노려본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미 일흔 여든은 되셨을 텐데. 아직도 죽는 게 두려우신 거군요.”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황태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물건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 그 조령(詔令: 황태후나 황후가 내리는 명령)은 어찌되었든 마마께서 내리셔야겠네요.”
황태후가 두어 번 기침을 하고는 뒤에 있는 영 재인을 잠시 바라본 후, 이내 다시 범한을 노려보았다.
“동이족 종자자 너를 돕고 있기는 하다만, 네놈들은 기껏해야 황궁만 통제할 수 있을 뿐. 황궁 밖은 어찌 할 생각인 게냐?”
범한이 황태후의 눈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저는 고작 2백 명만 데리고 입궁했습니다. 한데 그건 제가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 게 아니랍니다. 궁 밖에 1700명을 남겨뒀거든요!”
* * *
바로 이때 함광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후궁과 앞쪽 궁궐 구역이 만나는 곳에서 느닷없이 죽이라는 고함 소리와 궁궐 문이 거칠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한은 차분히 듣기만 했다. 1 황자가 이끄는 금군이 드디어 호위병들을 제거하러 나선 거였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 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형과에게 명령을 내렸다.
“함광전을 그대에게 맡기겠습니다.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누구든 막론하고 죽여요.”
형과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명령을 받아들이는데 그가 쓰고 있는 은색의 가면이 오싹한 빛을 반짝였다. 함광전 내 사람들이 형과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범한이 내린 대역무도한 명령을 이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일반 감찰원 관원이라면 두려움 정도는 느껴야 하는 명령이었다.
이들은 흑기 부통령이 과거 군영에서 진씨 가문 장자를 죽여 사형수 감옥에서 갇혔고, 또 오랫동안 모진 수모를 겪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니 형과는 원래가 대역무도한 사람이었고, 이에 범한도 그에게 선뜻 대역무도한 짓을 시킨 거였다.
이때, 영 재인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말을 건넸다.
“내게 그 비수 좀 잠시 빌려다오.”
범한은 그녀를 바라보고 웃기 시작했다. 정말로 혼란이 일면 형과가 황태후에게 감히 손을 쓰지 못한다는 걸 영 재인은 알고 있던 거였다. 그녀는······ 과거 동이성 출신이자 여성 포로였던 그녀는 아이를 가졌을 때 하마터면 황태후의 계략으로 죽을 뻔했었다. 이에 독이 올라 있었던 영 재인은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한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함광전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광신궁과 동궁을 조사해볼 생각이었다. 이번 일에서 매우 이상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범한이 피로 얼룩진 검을 등에 있는 칼집에 집어넣으며 함광전 돌계단을 내려가자 그와 함께 입궁한 측근들이 뒤에서 3보 떨어진 위치에서 따랐다.
함광전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은 범한을 바라보며, 이 중요한 때에 그가 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궁금해 했다.
범한은 몇몇 부하들을 데리고 차분하게 함광전 밖으로 나갔다. 호위병들이 큰일을 치를 것처럼 손에 병기를 들고 그를 보고 있는데도 그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았다.
호위병들은 감히 공격을 펼칠 수 없었다. 이에 함광전 밖으로 사라지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만 할뿐이었다. 비록 황태후전이라 어찌 하지 못한 거였지만, 그래도 범한이 너무나도 차분하고 용감하게 걸어 나가자 적지 않은 이들은 심장이 쿵쾅, 하고 뛰었다.
* * *
범한은 황태후의 위세를 억지로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한 말도 절대 허투루 한 게 아니었다. 그는 경도부 손빈아 낭자 규방에서 언빙운과 계획을 세울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을 끌어올 수 있는지 계산을 해본 터였다.
감찰원이 경도에서 이동시킬 수 있는 밀정들은 각부에 숨겨둔 첩자였다. 범한은 1처를 장악하고 있었으니, 궁정과 군 측에 감시당하고 있는 그 네모반듯한 건물을 빼고 계산해봐도 거의 천 4백 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도 밖에 은신하고 있던 흑기 5백이 변장을 하고 경도부를 통해 들어왔으니, 이제 범한이 이용할 수 있는 인원수는 천 9백 명에 달했다. 더군다나 이 천 9백 명은 아무도 모르게 임무를 수행하는 데 능통했다. 무력만 놓고 보면 군대와 적수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일으키는 데에는 제대로 된 이기(利器)였다.
범한은 오늘 밤 황궁을 습격하는 데 2백 명만 데리고 왔다. 자신이 잘난 줄 알아 그런 게 아니라 속도전과 급습전을 펼치는 데 사람 수는 중요 조건이 아니어서였다. 더군다나 황궁 밖에 어떻게든 대부분의 역량들을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남은 천 7백 명은 지금 언빙운의 계획 아래 이런 저런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경도는 너무 넓어서 범한이 살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이에 범한은 황궁 밖은 자신이 처리하고 있었으니, 황궁 안은 1 황자가 이끄는 금군이 국면을 통제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후궁에서 ‘죽여라!’라는 함성이 들려오자 1 황자가 이미 금군을 통제했음을 범한은 알 수 있었다.
* * *
금군이 행동에 나선 건 1 황자가 측근 교관에게 말한 대로였다. 금군이 언제 움직이는 가는 범한의 황궁 내 급습이 어떻게 흘러가는 가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범한의 용감한 부하가 호위병들의 포위 속에서도 자리를 잡고 밤하늘의 달을 향해 령전을 쏘아 올렸을 때, 그때 금군이 행동에 나섰다.
연화령이라 부르는 령전이 순식간에 황성의 절반을 밝혔다. 이 같은 정보 전달 방법은 경도 수비군과 감찰원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호만큼은 확실히 전달한 거였다.
수성용 쇠뇌 옆에 서 있던 1 황자가 밤하늘을 가르며 피어오르는 연화령 령전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그런 후 마치 칼을 든 것처럼 손을 절도 있게 아래로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이 황성 각루에 불어오는 밤바람을 내리쳤다.
* * *
칼을 내려치자 제멋대로 덤빈 병사 둘의 목이 바로 잘려나갔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담벼락으로 분출되고 이상한 피비린내와 함께 두 송이의 피 꽃이 피어올랐다.
칼을 들고 야간 습격을 개시한 금군 고위 장수들이 장도를 거둬들이며 소리쳤다.
“죽여라!”
한밤중에 대체 몇 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황성 앞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거리며 골목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런 후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커다란 곁채로 들어가 피비린내 나는 도살에 들어갔다.
총 6백 명의 병사가 교대 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꿈나라에 들어 있던 중이라 대체 얼마나 많은 이가 자다가 죽었는지 모른다. 일부는 놀라 깨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반격도 못하고 인정사정없이 날아드는 창과 칼을 그냥 맞아야만 했다.
그렇다. 서로 같은 편끼리 죽이고 죽은 거였다. 시간과 공간을 바꿔 생각해본다면, 이들은 어쩌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호인(胡人)들과 전투를 벌였을 것이고, 술을 나눠 마시고는 용감하게 적진으로 뛰어들어 눈처럼 새하얗게 간 칼날로 적에게서 날아오는 화살과 칼을 서로 막아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밤에는 그러지 않았다. 한쪽의 일방적인 살육이었고, 평소와 다른 무정한 도살이었다.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도 없었다. 1 황자에게 충성하는 금군 2천 명이 황성 앞쪽에 있는 넓은 구역을 삽시간에 쓸어버리고, 이곳에 무수히 많은 시신, 낭자한 선혈, 하늘을 찌르는 피 비린내만 남게 했다.
금군들은 불편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서정군으로 활동한 이들에게 이번은 처음으로······ 자기네 사람을 죽이는 거였다. 하지만 1 황자가 이끄는 금군은 저들은 절대 자기네 편이 아니며, 오늘 밤에 자신들이 한 일 때문에 조금도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대원수를 통해 옥새와 황제 폐하의 유조를 보았다. 그렇기에 피가 들끓었고,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믿음을 가졌다.
정의로운 쪽은 우리라고 말이다.
더군다나 저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 * *
화살 한 대가 구름을 뚫었고, 천군만마가 이것을 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연화령의 불꽃이 적막한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비록 찰나였지만 수없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성공적으로 모든 역량을 장악했다. 다시 말해, 경도에 남아 있는 약 3천 명에 달하는 금군이 이로써 황성을 지키는 군사력으로 탈바꿈 한 것이었다.
연화령 불꽃이 터지자 어둠속에 잠복해 있던 감찰원 부하들도 밖으로 나와 각자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형부 관아는 평소에도 음산했지만, 이런 밤이 되면 특히나 더 그러했다. 고요한 가운데 형부 외부에서 갑자기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경 중인 관원들이 깜짝 놀라 바깥 동정을 살펴보니, 관아 밖에서 검은색 관복을 입은 거대 무리가 형부 쪽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관원들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바로 징을 울렸다. 형부 어르신들 및 형부 뒤쪽에 있는 감옥 간수들에게 경계하라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 후 그들은 바로 형부 관아 대청 안쪽으로 물러났다. 검은 관복을 입은 이들은 감찰원 관원이니, 자신들은 절대 그들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였다.
경계를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리자 형부 소속인 사람들은 모두 서둘러 뒤쪽으로 갔다. 형부 감옥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였다. 태자는 자신의 등극을 반대한 문관들을 감히 감찰원 감옥에 넣지 못해 모두 이곳에 가둬둔 터였다. 그런데 이들 문관은 형부 관아에서는 감옥에 갇힌 죄수였지만, 조정에서는 말 한마디로 황태후도 은근히 떨게 만드는 대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