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82
723화 다정한 태감과 무정한 화살 (2)
1 황자가 몸을 홱 돌려 범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황궁이 수비하기 쉽지 않은 곳이란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 한데 우리가 왜 성이 아닌 황궁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성 말입니까? 13성문사가 우리 손에 떨어지기는 했으나, 9개의 성문 중 어느 곳이 장 공주에게 문을 열어줄지 모를 일이기에······ 우리가 후궁 문을 두드린 후 들어온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속이지 말게.”
1 황자가 말을 이어 갔다.
“성문사를 그냥 방치하지는 않았던데. 자네 사람들이 이미 성문사로 가 장 공주가 심어 둔 첩자들을 어젯밤에 모두 죽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네.”
그러자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감찰원은 신선이 아닙니다. 하여 장 공주의 첩자 모두를 색출해 낼 수는 없지요. 더군다나 우리는 가장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황태후마마의 명이 성문사의 장 통령을 복종시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대군에 포위되어 황궁에 고립될 준비까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지금 제가 알고 싶은 건 진씨 가문의 군대가 며칠 이내에 경도로 들어올 수 있는가 입니다. 그리고 섭중이 명을 받들어 정주로 돌아갔다지만, 그가 가는 도중에 쉬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대체 며칠 후에 경도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경도수비사만 본다면 하루면 족합니다.”
범한이 계속해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진씨 가문의 대군은 대략 나흘 후에야 도착할 수 있고요. 섭중이 경도로 돌아오는 시간도 대략 비슷할 것입니다.”
1 황자는 범한이 진씨 가문 군대의 상황을 어찌하여 이리 상세히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감찰원이 그곳에 첩자를 심어두었으리라 믿고 있어서였다. 금군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앞서 제거 작업을 할 때 범한이 사전에 대상을 명확히 짚어주지 않았다면 그는 일을 쉬이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문사를 통제할 수 있는가?”
1 황자가 범한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통제할 수 없다면, 자네가 감히 움직이지 않았겠지. 그러니 내가 보기에는 이상한 게야. 지금 나와 이런 말을 하는 건 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러는 건가하고 말이야.”
범한은 입을 꾹 닫았다.
“앞서 형과는 자네가 내린 감찰원 명을 받들어 나에게 기마병 2백을 보내주었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황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나.”
1 황자가 냉랭하게 범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나에게 자네가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
범한이 느닷없이 웃기 시작했다.
“사실은, 하려던 말이 있었습니다······ 함께 도망가시지요!”
* * *
‘팍!’ 하는 소리가 울렸다. 분노가 극에 달한 1 황자가 손바닥으로 성문 벽을 내리친 것이었다. 그가 소리를 죽여 크게 분노했다.
“도망가자고? 미쳤는가!”
범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확실히 미친 거 같긴 하온데······ 도망간다 한들 또 어디로 도망을 갈 수 있겠습니까? 그냥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하여 너무 성내지 마시지요.”
“지금이 농담이나 할 때인가?”
“모두 긴장하고 있어서 농담으로 분위기 전환 좀 해보려 했는데, 왜 그러십니까?”
범한의 말은 절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정세가 역전될 때 어쩌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찌감치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대화에서도 명확히 말했듯이 태자와 장 공주가 경도를 빠져나갔다면, 지금이 아무리 최상의 국면으로 보일지라도 단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어서였다.
1 황자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후 범한의 어깨를 무겁게 토닥였다.
“군을 이끌어보지 않아서 그렇군. 진짜 전쟁터가 어떤지 보지 않아서 그래. 하여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어 1 황자가 범한에게 믿음을 주려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사람들이 돕고 있고, 성문사가 통제되고 있으니, 4천이 온다 해도 경도에서 열흘 은 버틸 수 있어.”
황성 아래쪽에서 감찰원 관원들이 일렬로 서서 황궁 문으로 다가오는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1 황자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로 태자에게 형부로 끌러가 참담하게 고문을 당한 대신들이 탄 마차였다.
“저들 대신들이 있는데, 자네와 내가 어찌 도망갈 수 있겠는가? 어찌 냉정하게 도망갈 수 있느냔 말이네!”
범한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마마 말씀대로 오늘 대조회를 열어 유조를 선독하고 태자를 폐위시켜야 합니다.”
1 황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방에 격문을 돌리고, 4로 대군에게 신속히 원조를 하러 들어오라 이르게.”
“3로 대군은 저 먼 변방에 있으니 열흘 이내로는 경도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마와 제가 연경의 대병영을 향해 회군하라는 격문을 보낸다면······.”
범한은 심장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 어쩌면 마마와 저는 경국의 죄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범한이 걱정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북제의 심계가 깊은 젊은 황제였다. 또한 현 세상은 정보 전달이 느려 자신이 정북영의 대도독을 살해하기는 했어도 대동산으로 간 연소을의 병사 5천이 그곳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황성에서 대란을 일으킨 자신이 감국(監國: 중국 고대의 정치 제도 중 하나로, 황제가 외지로 나갔을 때 주요 인물이 궁궐에 남아 국사를 처리하는 것이다. )으로서 연경의 대군을 회군시킨다면, 이는 북제 젊은 황제의 계략이 말려드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러면 연경 대병영이 경도로 돌아오기 전에 진씨와 섭씨 가문을 진압한다 해도, 어쩌면 북쪽에 있던 용맹한 병사들을 남하 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범한은 북제의 젊은 황제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 공주와 몰래 내통했으니 그는 대동산과 관련한 일에도 참여했을 것이다. 그 좋은 기회를 북제 황제가 절대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경 대병영은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1 황자의 낯빛이 무거워졌다. 그도 범한의 걱정이 대단히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열흘이라······ 우리는 기껏해야 버틸 수 있는 게 열흘. 만약 원조군이 와주지 않는다면······.”
1 황자가 범한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웃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자네 생각도 일리가 있군. 하여 오늘 밤 도망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
1 황자의 말에 범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유 없이 큰 소리로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이에 황궁 문 밖에 있다가 깜짝 놀란 서무와 호 대학사가 고개를 들어 웃음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1 황자와 범한이란 걸 알게 되자 두 대학사는 절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두 분께서 지금 이 시점에 즐겁게 웃고 계신 걸 보니, 대세가 정해졌나보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들은 범한과 1 황자의 웃음소리에 얼마나 많은 무기력감과 씁쓸함이 숨어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황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에 대해서는 묵계처럼 다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다. 시기와 기세를 보고 움직이는 것이니, 이 두 사람은 황성에 자리를 잡은 이상 더는 도망갈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대통(大統)을 이어 받을 분을 정했으니 유조를 경도 곳곳에 발표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각주에도 확실한 명을 내리시지요.”
웃음소리가 그친 후 범한이 1황자를 향해 한 말이었다. 범한이 미소 지은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황태후마마의 명으로 성문사를 안정시키고 다시 통제를 시작해야겠지요. 마마께서 대군을 열흘 동안 버텨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제가 마마께 열흘을 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열흘은 버틸 것이네.”
1 황자는 굳건한 표정으로 허리에 찬 검을 단단히 움켜쥐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의문을 품고 있었다.
‘황궁이 포위된 지 열흘이 지나고 나면 뚫릴 터인데. 한데 범한 너는 왜 이리도 시간을 중시하는 것이냐?’
“어떻게든 열흘을 버텨주셔야 합니다.”
범한이 가볍게 두어 번 기침을 했다. 그런 후 품에서 코를 찌르는 환약 한 알을 꺼내 먹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제가 군을 수중에 넣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군에서 제일 위력적인 건 각급 장수들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여 이런 생각을 해봤지요. 만약 대장군에서 비장, 편장까지, 또 다시 교관까지······ 몽땅 죽는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반군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흩어진 모래알이 되어 공격하지 않아도 절로 무너지겠지.”
1 황자가 아주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 채로 범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반군 장수들이 열흘 안에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다면 경도는 자연스레 지킬 수 있을 거야. 하나······ 감찰원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암살을 진행하고, 또 네가 아무리 독을 풀어도, 천군만마를 상태로 그리 대역무도한 짓을 할 방법은 없겠지.’
범한은 1 황자가 품은 의혹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고 그저 평온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었다.
“만약 태자와 장 공주가 갑자기 죽는다면요? 마마께서는 저들 반군이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1 황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범한이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범한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도망가지 않고 마마와 함께 이 외로운 성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건 제게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은 적 없어서입니다. 이번 일을 하고난 후 어쩌면 제게는 좋은 날은 다 지나가고 없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1 황자는 범한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 범한이 왜 저런 말을 한 건지 알 수도 없었다. 한데 범한이 정말로 저격총을 꺼내든다면,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바로 이때 궁문 아래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기마병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잡아온 것 같아 1 황자가 그곳을 바라보았다. 붙잡혀 온 이는 부녀자였다. 한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탓에 그게 누구인지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평범한 궁녀 복장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범한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잠시 바라보고는 작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계속 운이 좋군요. 저기 보십시오. 황후께서 이미 잡혀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태자와 장 공주가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요?”
말을 마친 범한은 곧장 몸을 돌려 황성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고생한 늙은 대신들을 맞이하고, 내일 대조회를 열 준비를 하기 위해 그는 널따란 돌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내려가는 동안 태자와 장 공주에게 어떤 죄명을 붙일지, 아울러 저 가련하고 아둔하고 운이 정말 나쁜 황후마마를 어찌 위로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황후와 홍죽을 함께 가둬야 할까?”
불쑥 이상한 생각이 들자 범한은 자신도 사실은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범한은 갈수록 더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아까 먹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환약이 아무런 효험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범한이 돌계단 옆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 후 품에서 환약을 한 알 꺼내 입안으로 밀어 넣고는 힘껏 씹어 삼켰다.
코를 찌르는 냄새는 마황 잎 때문이었다. 이 환약은 범한이 3처 사형들과 함께 연구해 만든 것으로 누군가가 복용하는 건 세상에서 두 번째였다. 이 환약은 약효가 너무 강하고 거칠었다. 마황 잎이 흥분제와 유사한 역할을 해 쉽게 황홀한 기분에 빠지도록 했고, 정기도 쉽게 문란해지도록 만들었다.
이 약을 맨 처음 먹은 이도 역시 범한이었다. 몇 년 전 북제 서산 절벽 근처에서 랑도와 하도인의 연합 공세에 대응하기 직전이었다.
범한이 있는 힘껏 숨을 내쉬고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대동산 절벽을 타는 동안 그는 섭류운의 검에 스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연소을에게 수 백리를 쫓기다가 결국에는 심장 근처에 화살을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런데도 범한의 몸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가 되었다.
비록 손 낭자의 규방에서 수일을 쉬기는 했어도 현재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일 때의 8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황궁 급습을 위해 범한은 어쩔 수 없이 몸에 해로운 약을 다시 복용해야만 했다. 그래야 강력한 능력을 지속시킬 수 있었고, 자신의 능력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서였다.
처음 이 환약을 먹은 건 소은 때문이었다. 노인의 입에서 신묘에 관한 비밀을 듣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로 환약을 먹은 건 황궁을 급습하기 위해서였고, 경국이라는 이 훌륭한 강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데 세상에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어디 있을까. 낯빛이 창백해진 범한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며 이와 같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