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83
724화 악독한 수단 (1)
경도에서 일대 대란이 인 후 범한은 형부, 경도부와는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 한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장 공주 거처 공격은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범한과 1 황자가 성 꼭대기에서 본 여러 개의 불빛은 바로 감찰원이 강공을 퍼붓다가 어쩔 수 없이 동원하게 된 독(毒) 공격이었다.
다행히 장 공주는 자신의 거처에 없었다. 본래 수비를 책임져야 했던 신양 쪽 수석 책사 원굉도도 공격을 받아 담이 작아져 버린 것만 같았다. 이에 십여 명의 감찰원 관원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후 장 공주 거처에 있던 고수와 궁녀들은 결국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고, 독약에 당해 산송장이 되어 버렸다.
감찰원 관원이 공격을 퍼부을 때 대장이었던 1처 주부 목풍아는 왼팔에 깊은 상처가 생겨 피를 많이 흘렸다. 하지만 그는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단도로 원굉도의 목을 잔인하게 그으려 했다.
목풍아는 목철의 조카이자 1처 소속으로 범한의 직계 부하였다. 그러니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싸움에서 그는 조금도 마음을 약하게 먹을 수 없었다.
한데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버렸다. 장 공주의 거처에서 자신이 제압해 둔 모사가 겁에 질려 있기는커녕 다급한 모양새를 보여서였다.
원굉도가 목풍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말했다.
“담박공께 보고할 일이 있네!”
목풍아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자기 앞에 있는 이 서생처럼 생긴 놈이 왜 감히 황당한 요구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붙잡힌 역적이 뜬금없이 우리 제사 대인을 만나고 싶어 하다니. 왜 감히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는 건지. 아무리 신양의 수석 책사일지라도 이런 긴장감 넘치는 밤에는 감옥에나 들어가 있는 게 별 볼 일 없는 목숨을 잠시 부지하는 방법이거늘.
목풍아 입장에서는 사지에 몰린 원굉도가 자신의 세 치 혀만 믿고 범한을 만나 설득해 살 길을 강구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목풍아라는 감찰원 관원은 청담이나 논하며 모략이나 일삼는 모사꾼들을 혐오했다. 아울러 그가 받은 명령 중에는 현 상황과 관련한 내용도 없기에 그는 원굉도와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원굉도가 황급하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걸 보고는 목풍아는 자신의 판단이 맞는다고 확신했다. 이제 보니, 이 늙다리 놈이 정말 죽기 싫어 환장했다고 말이다.
목풍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원굉도에게 더는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단검을 거둬들이고는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은 원굉도의 태양혈을 가격했고, 원굉도는 멍이 든 채 혼절해 버렸다.
원굉도는 순간 눈앞이 번쩍하고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는가 싶더니 바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으로 넘어지는 찰나 그의 마음에 분노와 무기력감이 가득 차올랐다. 자신은 감찰원의 일대 첩자중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찰원 임무의 요구 사항이 얼마나 가혹한지 잘 알고 있던 터라, 지금 이 관원도 자신의 신분을 모르니 이런 거칠고 단순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신양의 수석 책사가 감찰원 사람임을 아는 건 오직 세 사람 뿐이었다. 바로 언약해와 진씨 가문 군대에게 쫓기고 있는 늙은 진 원장이었다. 일찍이 원굉도와 만난 적 있는 궁녀는 이미 의외의 사고로 죽음을 맞은 터였다.
그러니 원굉도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목풍아도 감찰원의 엄격한 조례 규칙에 따라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자고이래로, 또한 그 어떤 세계에서든 이중첩자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공통의 비애일 것이다. 이에 이중첩자들은 직접 신분을 폭로해 적의 손에 살해당하는 것보다 자기 동료의 손에 죽을 가능성이 더 컸다.
이에 원굉도에게는 후회가 살짝 섞인 강렬한 걱정뿐이었다.
목풍아는 직접 기절시킨 이가 자신의 선배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쉽게 날린 일격이 며칠 후 경도에 막대한 위험을 가져다주리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부하들에게 장 공주의 처소를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간단히 분부만 내려놓고는 남은 몇몇 포로들을 호송해 그들을 감찰원의 깊고 어두운 감옥에 가둬버렸다.
* * *
범한은 마황환을 연달아 두 개를 먹은 거였다. 이에 강력한 약효 때문에 그의 눈동자는 불길한 옅은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한밤중이다 보니 그러한 변화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황성 아래로 내려온 범한이 태자에게 잡혀 형부 감옥에 갇혀 있던 대신들을 공손히 맞았다. 그런 후 양손으로 서무 대학사와 호 대학사를 부축했다. 그의 입술은 살짝 벌려져 있었지만 감격에 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정을 거짓으로 꾸밀 필요도 없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경국의 문신들이 뜻밖에도 자기편에 서주어 정말로 감동한 거였으니까. 비록 자기 손에 선황 폐하의 유조가 있고, 오주에 계신 장인어른께서 제일 긴박한 때가 되어서야 조정에 가장 은밀히 숨겨 두었던 옛 문하생들을 나서게 한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극전에서 태자의 등극을 반대하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지 범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승건이 자기나 둘째처럼 냉혈한이었다면, 어쩌면 이들 수십에 이르는 대신들은 진즉에 황궁 안에서 영혼이 되었을 것이다.
서무와 호 대학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범한을 향해 예를 차려 한 차례 인사만 했다. 서무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황제의 유조를 본 사람이었고, 호 대학사 역시 그 안에 든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범한이 원래는 감국으로 임명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감국이 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황제 폐하는 황위 계승자를 정할 권한을 모두 작은 범 대인에게 위임해둔 상태였다. 이 정도로 신임하고 맡긴다는 건 그야말로 자고로 거의 보기 힘든 일이었다.
“한시가 급합니다.”
범한은 지금은 칭찬이나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가 아니기에 바로 대신들을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대신 여러분, 번거롭겠지만 잠시 이곳에서 쉬시지요. 잠시 후 어의가 와서 진맥을 하고 치료를 해드릴 것입니다.”
“공작님은 볼일 보시지요.”
호 대학사가 온화하게 말을 이어 갔다.
“이런 때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깃발은 이미 흔들었고, 함성도 이미 내질렀습니다. 그러니 저들 난신과 도적들을 포기시키지 않는다면, 담박공께서 직접 천자의 검을 들고 저들을 하나씩 주살해야 할 것입니다.”
담담한 어투였지만 범한을 향한 지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범한이 말했다.
“대인 여러분의 지지가 필요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황태후마마께서는 태자와 장 공주의 악행에 대해 아신 후 너무 가슴이 아프신 나머지 몸져누우셨답니다. 하여 조정 일은 모두 두 노(老)대인께 맡기겠습니다. 부디 두 대인께서는 잠시 몸이 불편한 걸 잊고 경국을 위해 애를 써주십시오.”
“어찌 싫다 말하겠습니까.”
서무가 갈라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뒤에 있는 수십 명의 대신들이 속속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어 범한에게 인사를 했다. 이들 문신들은 현재 경도 정세가 여전히 복잡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통을 이어 받을 분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태후의 와병 소식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걸러버렸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바보는 없었다. 특히나 이들 문신들은 범한이 황태후를 끼고 여러 관아에 명령을 내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범한이 선왕의 유조, 황태후와 여러 대신들의 지지까지 확보하고 있어 온 경도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이라고 보았다.
대신들은 태극전 옆에 위치한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비록 형부 감옥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공기가 싸늘하고 바닥이 차가워 뼛골로 냉기가 스미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모두 다 알다시피, 대조회를 열기 전이니 벌써부터 좋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서무와 호 대학사는 범한을 따라 어서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경국 황제가 날마다 조정의 정무를 주관하고, 상주문을 심사하고 허가해 주는 장소여서 등불만큼은 예전처럼 무척이나 밝았다. 범한은 대학사들 앞에서 무언가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이에 차분했던 그의 얼굴에 자연스레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두 대학사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범한이 이미 모든 국면을 통제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태자와 장 공주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라니. 이건 그들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든 건 조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침묵하고 있던 호 대학사가 갑자기 입을 열고 말하더니 차분히 말을 이어 갔다.
“저들 악인 난신의 무리가 어떤 황당한 짓을 해도 우리는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현 혼란 국면을 지금 당장 끝낼 수는 없겠지요. 하나 오늘의 대조회는 반드시 열려야 하고, 태자와 장 공주의 죄도 천하에 명명백백히 알려야 합니다.”
서무가 신중하게 나왔다.
“천하에 명명백백하게 알린다라······ 그건······ 그리하면 조정이 어찌 천하 만민을 대할 면이 서겠습니까?”
호 대학사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정통, 대의. 이것이 바로 명분입니다. 만약 계속 남들 몰래 일처리를 한다면, 그 뜻을 정확히 전달하는 건 차치하고 오히려 타당치 않게 될 것입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어지러운 시기에 호 대학사가 바로 대조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자신의 생각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태자와 장 공주가 경도를 벗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황궁에 있는 이들은 바로 태자를 폐위시키고, 경국 황실의 대통이 순조롭게 이어지도록 하며, 그런 후 천지에 조서를 내려······.
의사가 정해지자 두 대학사는 친히 서한을 작성했다. 그들은 경도에서 발생한 일을 간략하게 정리한 후 범한에게 황제 폐하의 옥새를 찍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런 후 함광전에서 훔쳐온 황태후의 직인을 찍은 후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 서명을 했다.
몇 십 통의 서한이 작성되자 범한이 그것을 자신의 측근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감찰원 비밀 우편 통로로 경국 7대로의 총독부와 변경에 주둔 중인 5로 대군에게 보냈다.
한데 범한도 잘 알다시피, 창주 정북 대병영으로 보내는 서한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수 있었다.
범한이 황태후의 직인을 찍을 때였다. 두 대학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작은 범 대인이 자신들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저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로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서한을 전달할 말 십여 마리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황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영원히 날이 밝지 않을 것만 같은 경도 거리로 뛰어 들어갔다. 사방에서 살육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치솟는 불길을 뚫고 십여 통의 서한을 전달할 이들이 성문 쪽으로 말을 내달렸다.
그들은 중요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었다.
“성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호 대학사가 갑자기 차분한 시선으로 범한을 주시했다. 13성문사가 지금 누구의 통제를 받고 있는지 범한의 입을 통해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분명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제 사람들이 처음부터 가 있었거든요.”
호 대학사는 범한이 허언을 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사람을 보내놨다고 한다면, 13성문사처럼 중요 위치에는 분명 최고의 능력자를 보내놓았을 거라 여겼다.
범한이 어서방에서 나가 손을 흔들어 방밖을 지키고 있던 대 태감을 불렀다. 그런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물었다.
“황후께 무슨 문제는 없는가?”
이제 황궁의 정세는 변해 있었다. 늙은 홍 태감과 요 태감은 황제 폐하를 따라 천제를 지내러 갔으니 일찌감치 대동산에서 죽었을 수 있었다. 후 태감은 이상하리만치 싸늘하고 무정하게 범한이 쇠뇌로 쏘아 죽여 버리고 없었다. 또한 2년 동안 위풍당당했던 홍죽은 동궁의 내관과 궁녀들과 함께 냉궁에 갇혀 버린 후였다. 반면 대 태감은 오늘 후궁 문을 열어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범한의 신임까지 받고 있었다. 이에 그는 자연스레 수령 태감의 지위를 주워오게 되었다.
이에 금군이 후궁을 지키는 가운데 내부 일은 몽땅 대 태감이 책임지고 처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