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90
731화 정양문 앞에서의 매복 공격 (1)
1 황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 그곳에 기병대를 남겨두었지.”
그를 바라보는 범한의 눈빛에 잠시 이채가 스쳤다. 적과 아군은 실력 차가 너무 컸다. 그러니 적을 성문 밖에서 막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범한과 1 황자는 반군이 경도성으로 들어오는 순간 반드시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타격을 가해야 했다. 그래야 반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투입된 부대가 밀려드는 대군에게 먹혀버려 어쩌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
범한이 무슨 생각 중인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1 황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국의 병졸이니 목숨을 거는 건 당연한 일이네.”
범한은 살짝 떨떠름했다.
‘단순히 천자 가문의 권력 쟁탈전이거늘. 저 평범한 병졸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한다니.’
바로 이때,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황성 위아래로 일고 있는 살기가 바람을 타고 함께 넘어왔다.
금군 내 교관들이 전투를 치르기 전 마지막으로 부하들을 이동시키는 소리였다. 바로 이 순간, 황성 안팎은 공기마저 잔뜩 긴장해 소슬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도망갈 건가?”
1 황자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동쪽에 있는 그 성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범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
“대군이 황궁을 포위하면 포위를 뚫고 싶어도 불가능하네.”
이 문제는 1 황자와 범한이 여러 차례 상의한 것이었다. 1 황자는 금군을 데리고 반군을 경도로 유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르기를 바랐다.
한편 범한은 감찰원의 1천여 명에 달하는 밀정의 도움을 받아 황궁에 있는 그들을 데리고 활로를 찾고, 성문을 뚫고 나가 신속히 위주로 남하하려 했다.
범한은 요전에 상의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위를 뚫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는 차치하고, 설령 포위를 뚫을 수 있더라도 그는 1 황자 혼자 장 공주 대군에게 산산조각으로 망가지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크게 바라던 게 있던 터라 성벽 위에 자신의 두 발로 굳건히 서 있으려 했다.
범한은 1 황자의 눈빛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다가 아침 해를 맞으며 갈수록 장엄해지고 있는 정양문을 말없이 응시했다.
온 경도가 아침 해와 함께 깨어난 건 아니었다.
수십만 백성은 두려움에 집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의 동정이나 살폈다. 이에 민가 사이의 거리와 골목, 천하대에서 각 관아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없어 조용했다.
이제 막 대낮이 되었지만 이러한 고요함과 한산함 때문에 경도는 여전히 끝도 없는 밤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에 경도는 외로움의 성, 죽음의 성이 되어 있었다.
바로 이때 새벽바람과 함께 불길한 소리가 불어왔다. 육중한 성문이 열린 것이다.
말발굽 소리도, 말이 길게 우는 소리도, 갑옷과 투구, 장검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군기가 펄럭이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리 먼 거리에서는 분명 성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도가 죽은 듯 고요하다 보니, 성문 안에 있는 이들은 성문 밖에서 일어나는 어떤 이상한 움직임에도 신경이 거슬렸다.
범한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서쪽과 남쪽의 몇몇 곳을 살폈다. 그리고 감찰원 밀정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피워 올린 정보 전달용 푸른 연기에 그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한참 후, 범한과 1 황자가 서로 바라보는 가운데, 범한이 입을 열었다.
“우리 둘 다 틀렸습니다.”
1 황자가 무척이나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호각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황성 높은 곳에서 보니 각기 다른 방향의 경도 외부 성벽에서 수십 다발에 달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가 성문 쪽에서 황궁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라 진격해 오고 있었다.
범한과 1 황자는 반군이 정양문을 통해 경도로 들어올 거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반군은 광명정대하게, 위협적인 기세를 뽐내며······ 9개 성문에서 동시에 입성했다!
황성 위에 있는 두 황자가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장 공주 수하로 있는 반군이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병사를 나누어 9개 성문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정정당당한 기세로 무섭게 경도성을 압박하면서 말이야.’
이어 경도 사방에서는 갑자기 봉화가 피어올랐다.
* * *
경도 정양문 밖. 빠르게 내달리는 말발굽에 누런 흙이 짓이겨졌다. 짓이겨진 흙은 이내 누런 흙먼지가 되고 이 먼지는 점점 높이 치솟아 누런 연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지평선 위로 떠오른 아침 해가 비추는 햇빛을 가려 성문 안팎을 어두컴컴하게 만들어 버렸다.
5천에 달하는 기마병 대군이 5열 종대로 속도를 유지하며 활짝 열린 정양문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게 조용하고 재빨리 이루어졌고, 말발굽이 일으키는 먼지도 말을 따라 함께 성문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마치 몸통만 있는 황룡이 불쌍한 백성을 삼켜버리기 위해 쉼 없이 경도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 가득 인 황토 먼지 속에서는 바람을 맞아 활짝 펴진 거대 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검은색 깃발에는 진씨 가문임을 나타내는 진(秦)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힘차게 써 내려간 글자는 병사들에게 강한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하늘 가득 날리는 흙먼지 속에서도 여전히 살기등등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전임 추밀원 부사는 현재 경도수비사 통령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진씨 가문에서 2대째 군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깃발 아래에서 자신의 군대를 차분히 지켜보고 있던 진항이 그 누구도 막아 내기 힘든 기세로 경도로 들어왔다.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기만 할 뿐 누런 흙먼지를 피하기 위해 입과 코를 막지는 않았다. 차분하게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그에게 이상하리만치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경도수비사 통령인 그에게 정양문은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성문이 굳게 닫혀 있고, 자신에게 기마병이 3천만 있다면, 경도는 3년이 걸려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란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경국의 도읍은 역사적으로 외부 적에게 포위된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적에게 뚫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경도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대한 방어력만큼은 유감없이 보여준 곳이었다.
그러다 오늘, 경도 성문도 드디어 함락되고 말았다.
장묵한 대가가 책에서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가 함락되는 이유는 주로 내부에 있는 적에 의해서 함락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경국에 인 반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국 군인으로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진항은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쉽사리 13성문사를 통제해버린 장 공주마마에게 감탄하면서도 그런 그녀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현 국면에서 그는 너무 많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오늘 대군은 9개 성문을 통해 경도로 들어왔는데 그가 이끄는 기마병 대대는 정양문 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든 그 누구보다 황궁 앞으로 먼저 가야 했다.
이번 대군은 진씨와 섭씨 두 가문, 그리고 경도수비사에서 모여 그 수가 모두 3만여 명에 달했다. 반면 황궁 쪽 방어력은 모두 합치면 6천 명이 조금 안 되었다.
대군은 정정당당하고 압도적인 기세로 경도로 들어가야 했고, 반드시 황궁에 있는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투항하도록 해야 했다.
진항 입장에서는 6대 1의 병력으로 전투를 치르는 것이니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황궁 쪽에 있는 잘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강력한 군대에 맞설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빠르게 내달리며 지나가고 있는 준마와 장병들을 보고 있던 진항에게······ 이름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항 입장에서는 황궁 쪽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섭중이 자기보다 앞서 황궁 앞에 도착하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섭중이란 이름이 떠오르자 진항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기간 경도수비사에 있었던 그분은 황태후의 명을 받고도 정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보니, 섭씨 가문이 물러나지 않은 건 역시나 장 공주마마의 계획이었고, 오늘 경도 전투에서는 큰 의의를 지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씨 가문 입장에서는 섭씨 가문의 군사력이 계속 남아 있는 건 건 조금 다른 의미였다.
섭중은 2 황자의 장인이다. 그리고 진씨 가문이 태자를 지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진 영감님이 어떻게든 완수해야 하는 명령을 내린 건 장래 태자의 황위를 굳건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진씨 가문의 대군은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자신들이 충분히 강하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고, 이런 이유로 섭씨 가문보다 먼저 도착해야만 했다.
진항이 말을 몰아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경도로 들어가는 대열에 합류해 황룡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늘이 되었다.
* * *
반군이 9개 성문을 통해 경도로 들어갔다. 그중 진씨 가문은 6로를, 섭씨 가문은 3로를 점거해 이용했다.
반군은 자신들의 세가 크고 경도의 방위가 비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던 터라 군을 9개로 쪼갠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반군의 세가 너무 커서 황궁 쪽에서는 포위를 뚫을 용기조차 잃을 수 있었다.
13성문사의 관병 수천은 반군 대오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에 일반 병졸들은 놀라 입을 떡 벌린 상태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기만 했다.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부 똑똑한 교관들은 그 황자가 반역을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위 장수들이 찍어 누르는 바람에 감히 반항도 하지 못했다. 13성문사가 반군 대오에 합류하지 않은 건 장덕청이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하나가 더 끼어든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공로로 인정받지도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은 지키고 있던 성문사나 꽉 끌어안고 있자는 선택을 했다. 이는 총명한 선택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정양문 앞으로 쭉 뻗은 대도 위에서 우레와 같이 울렸다. 경도로 들어온 진씨 가문의 기마병은 무기를 들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도는 전혀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광풍처럼 내달렸다.
현 천하는 검은색을 숭배했다. 이에 진씨 가문의 기마병은 짙은 색의 얇은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감찰원 흑기와 대단히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가장 짙은 검정색도 아닐뿐더러 이들의 갑옷은 가슴팍 부분 일부가 반짝여서 그런지 흑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십여 필의 말이 갑자기 대대 안에서 빠져나와 속도를 높여 앞으로 내달렸다. 이들은 조용한 거리를 전광석화로 파고든 후 민가 곳곳을 내달렸다. 대군의 앞길을 트기 위해 정찰과 보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십여 명의 기마병은 거리로 빠르게 달려 들어간 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화살표 모양으로 대열을 가다듬은 후 종심을 향해 달렸다.
이 모든 일은 지극히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이는 경국 군대의 훈련 수준과 진씨 가문 군대의 강력함을 충분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기마병 대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서 십여 명의 기마병이 지나간 방향을 따라 계속 전진했다.
진항은 말 위에서 자신의 군대 이끌며 백여 장(丈) 전방을 주시했다.
범한과 1 황자가 가만히 앉아서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니, 이 조용한 거리에서도 분명 급습이나 성가신 전투가 일어날 수 있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범한과 1 황자에게 얼마만큼의 군사력이 있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행군의 속도와 사나운 기세였다. 그러니 방해물이 나타나면 반드시 이 대군을 가지고 무참하게 짓밟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