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46
787화 푸른 산도 막을 수 없는 (2)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고하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북제 황제가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범한은 경제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겁니다. 그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경국 사람이니 저희 북제 편에 서지도 않을 겁니다.”
“그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고하 대사가 고요한 눈으로 북제 황제를 바라보았다.
“범한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제의 사생아입니다. 게다가······ 경제는 그를 누구보다도 신임하고 있습니다.”
북제 황제가 침착하게 반대 의견을 말했다.
“경제는 짐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그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가 북제로 투항한다고 하더라도 천하대세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겁니다.”
“폐하께서는 범한이 섭가 아가씨의 아들이란 사실을 잊으셨나 보군요.”
고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는 항상 범한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범한이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그가 시선이거나 경국 황제의 아들이거나 권신이라서가 아닙니다. 그가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가지고 있는 배경 때문이지요. 섭가 아가씨의 아들인 그는 이미 중요한 것들을 많이 물려받았고 장악하고 있습니다.”
순간 마음이 서늘해진 북제 황제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하 대사를 바라보았다.
북제 황제의 마음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그는 비로소 작은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했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범한의 손을 통해서 강남 황실 금고의 이익을 공유해본 북제 황제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할아버지의 말은······ 도무지······ 범한이 황실 금고 전체를 북제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
“대종사는 나라를 어지럽힐 수는 있어도 나라를 구하거나 건국할 수는 없습니다.”
고하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천하를 쥘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력, 국력이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합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 기댈 건 국력밖에 없으니까요.”
“경제가 상경성에 쳐들어온다면 만인의 적이 될 겁니다······.”
고하가 흥미 높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역사에 영광스럽게 기록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찌 사고검처럼 미친 짓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북제 황제가 입술을 마르는 걸 느끼며 고하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는 범한이 뭣 때문에 짐에게 투항한다는 말인가? 설마 해당 사고와 한 협상 때문인가? 하지만 말로만 한 협상으로 범한에게 그처럼 큰 대가를 지불하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고하와 북제 황제의 대화를 들었다. 고하가 황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범한에게 희망을 걸기에는 최근 2년 동안 폐하께서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짐이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범사철에게 손을 대도록 하지요.”
고하가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폐하는 과연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넌지시 꺼낸 애기에도 그는 뭘 해야 하는지 곧장 이해했고, 경국 황제처럼 의심하지도 않았다.
“먼저 말했듯이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고하가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목봉은 당장 산을 내려가 경국으로 가거라.”
모두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하가 어째서 지금 둘째 제자인 목봉에게 임무를 내리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천일도 제자들은 많지 않았고, 특히 네 명의 제자 중에서 목봉은 가장 실력이 낮고 약했다. 의술 외에는 잘하는 게 없었다.
“너는 그동안 산 위에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밖에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지.”
고하가 가볍게 기침을 했지만, 손으로 입을 막아 피가 보이지는 않았다. 옆에 있는 둘째 제자 목봉을 바라보며 그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경국으로 가서 진평평의 병을 치료해 주었으면 한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마라.”
진평평의 병을 치료하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쩍 벌렸다.
진평평이 어떤 인물이던가? 그는 경제가 가장 신뢰하는 충신으로 30년 동안 온갖 일을 주도해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경도와 대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북제와 동이성 사람들은 북제 황제의 늙은 개인 진평평의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몇 년밖에는 살지 못한다는 소문에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하 대사는 의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에게 경국으로 가서 진평평의 병을 치료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하가 단호한 눈빛으로 목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절대 진평평이 병이나 노환으로 자연스럽게 죽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스승의 단호한 말투에 목봉은 이유를 모르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유를 듣고 싶은 표정으로 고하를 바라봤지만, 고하 대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고하가 죽기 전에 내린 마지막 수였다.
북제의 조정이 안정된 뒤 그의 시선은 남쪽으로 향했다. 두 수는 이미 이전에 버렸지만, 진평평과 관련해서는 아직 희망을 걸어볼 만했다.
고하 대사는 경국 황제가 아니었기에 수십 년을 내다보며 경천동지할 만한 계획을 세울 능력은 없었다.
다만 그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꼬마 선녀를 알게 되었고, 수십 년의 생애 동안 인간의 본성을 탐색해 왔으며, 대동산 사건에서 몇몇 이탈하는 존재들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아주 예민한 감각으로 일말의 빛을 포착해내었다.
그는 경국 내부가 지금은 안정돼 보이지만,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가르는 오래된 병폐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고하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해 만약 진평평이 병으로 자연사한다면 그의 죽음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진평평이 계속 살아야 했다. 장래 어느 날 누군가가 진평평이 살아 있는 걸 눈엣가시로 여길 때까지 말이다.
모든 일에 대한 계획이 끝나자 고하 대사는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이 남지 않은 듯 두 눈을 감았다. 잠을 자려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황태후가 마음속 슬픔과 두려움을 억지로 숨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일도는 종파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합니까?”
천일도는 나라 조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행자들이 천하에 두루 흩어져 활동하고 있어, 경국 경묘에도 약간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처럼 큰 힘을 가진 천일도 종파를 고하가 죽은 뒤 누가 이끌어 나갈지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다만 방 안에 있는 고하의 세 제자는 신분의 제약 때문에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다.
고하 대사가 눈을 감은 채 약간은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일도는 해당타타가 이끌어갈 겁니다.”
모두들 허리를 굽혀 알겠다고 대답했다. 랑도를 포함한 세 명의 제자는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와 황태후도 고하 대사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결정을 내려 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이전부터 모두들 해당타타를 천일도의 다음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당타타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산에 있었던 해당타타가 지금은 종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고하 대사가 세상을 떠나려 하는 이때 정작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천일도의 계승자가 곁에 없다니.
“해당타타는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고하 대사가 두 눈을 감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 3년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 천일도 일은 랑도가 대신 맡도록 하고, 여기 푸른 산은······ 너희들의 막내 사매에게 맡기도록 하마.”
이 말은 고하 대사가 랑도를 비롯한 세 명의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었다.
비록 천일도 외부 일을 랑도에게 맡긴다고 하지만 천일도의 근간인 푸른 산을······ 막내 사매에게 맡긴다니?
랑도를 비롯한 세 명의 제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막내 사매라 함은······ 설마 범씨 집안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건가?’
북제 황제의 눈동자가 수축하였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북제 황제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 일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명기를 압박하겠지만, 반대로 범약약의 명성은 푸른 산에서 드높아져야 했다.
고하 국사의 방법대로 해서 경국 황제가 갈수록 북제가 일부러 도발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면, 반대로 범한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니 북제가 생존은 더 안전해질 터였다.
다만 북제 황제는 아직도 범한이 어느 날 융숭한 선물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로 올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속세의 일에 대한 당부를 마친 고하가 입을 닫고는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몸 안에서 생명이 빠르게 사라지는 걸 느끼며 멍하니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더니 수십 년 전 장면에서 멈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눈 덮인 대지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삶은 마지막 순간에 고하 대사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시체를 파먹는 독수리와 쓰러져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밤 동안 움막 안에서 그와 소은은 시체를 먹으며 버텼다.
산을 끼고 서 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검청색의 신묘.
신묘 안에서 가까스로 나온 장님.
신묘 안에서 뛰어나온 꼬마 소녀.
인육은 먹을 만한 게 아니었다.
오래 살며 신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았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대종사 고하는 추억 속에서 빠져 복잡 미묘한 미소를 지은 채 세상을 떠났다.
* * *
북제 북쪽의 빙원 위에서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여자가 부족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붉게 상기된 여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눈에는 옅은 슬픔과 실의가 드리워져 있었다.
수년 동안 연거푸 폭설이 내려 북만은 이 황야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명장 상삼호가 몇 년 동안 정벌하지 못했던 부족은 높은 산맥을 돌고 험한 길을 뚫으며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했다.
많은 부족 사람이 경국 서북쪽에 있는 초원으로 이동했고, 여러 목숨을 잃은 뒤에야 겨우 먼 친척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부족인과 나이가 많거나 어린 부족인은 눈과 얼음뿐인 북쪽 황야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부족민들이 많이 준 덕분에 사냥감이 많지 않아도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길을 잃은 카르나 부족 여자가 이곳에 왔고, 부족들을 따라 사냥을 하고 양을 방목하는 일을 도왔다.
사람들은 모두 이 여자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부지런하고 능력도 좋아서 사나운 말들도 그녀 손만 닿으면 온순해졌고, 흉악한 맹수들도 그녀가 다치는 게 무서운 듯 멀리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소탈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인 북만 부족 사람들은 다만 카르나 낭자가 가려고 하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환경이 너무나도 안 좋아서 그렇게 거드름 피우는 걸음걸이로 갔다가는 금방 체력이 바닥이 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송지선령(松芝仙令)이라는 그녀의 이름이 마치 어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는 의미 같아서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