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64
805화 선우(單于) (1)
“결국에는 이민족들의 근거지 아닙니까. 이번 물건을 다 팔아 버린 후 위 형도 중원으로 함께 돌아갑시다.”
범한이 진심어린 말투로 청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 상단과 함께 갑시다. 그러면 갈 때 더 안전하니 말입니다.”
위무성은 순간 당황해 멍하니 있느라 범한의 말에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젊은 상인의 진심어린 표정 때문에 양식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젊은 상인이 왜 이렇게 자신과 오래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대화는 무척 편안했고,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대화 상대라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위무성의 이와 같은 추론이 밖으로 퍼져나간다면, 천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고 웃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국의 범한이 신뢰할 만한 상대라고?’라는 반응과 함께 말이다.
“그러지요. 부족 내 어르신께 물어보리다.”
위무성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범한은 위무성의 상태를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그는 그걸 콕 집어 지적할 사람은 아니었다. 이에 풀숲에서 일어나 궁둥이나 털며 말했다.
“위 형, 저녁때 봅시다.”
저녁에는 서호 왕장에서 중원 상인들을 맞아주는 연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위무성이 정말로 상인이라면 그 연회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위무성이 한참을 주저하다가 해명하듯 말했다.
“저녁 연회는 당신들을 접대하기 위한 거예요. 그러니 나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군요.”
* * *
“위무성은 사투리나 특이한 억양이 없었어. 그러니 분명 상인이 아닐 거네.”
범한이 양젖으로 만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조금 괴로운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 후 옆에 있는 목풍아에게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이 들판에서 적어도 1년은 살았을 거야. 그와 함께 수시로 왕장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십여 명일 테고.”
목풍아가 대인을 잠시 바라보고는 소리를 죽여 물었다.
“우리가 찾고 있던 사람이 아닐까요?”
“거의 그런 것 같아.”
범한이 자신의 운이 이 정도로 좋은 줄 몰랐다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한데 위무성이란 자는 전문적인 간첩이 아닐세. 그렇지 않다면 그리 큰 실수를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내가 지금 궁금한 건 중원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서호 영역 안에서 머물고 있냐는 거지!”
범한이 사발을 내려놓고 목풍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송지선령이란 자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걸세. 그건 위무성 일행과 상관없이 서호를 도울 수 있다는 뜻이지. 하나 서호 왕장 쪽에서 저 사람들을 저리도 신임하는 건 분명 송지선령 때문일 게야.”
“대인의 생각에 따라 제가 탐문을 좀 해보고 오겠습니다. 하나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으니 직접적으로 이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목풍아가 보고를 했다.
“한데 요 2년여 동안 서호의 선우(單于: 군장)는 첩이나 비를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여 정실 말고는 다른 여자가 없다고 합니다.”
범한이 잠시 멈칫했다. 처음에 그는 송지선령이 여자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목풍아도 그걸 주안점으로 조사를 벌였던 거였다. 한데 막상 목풍아의 보고를 듣고 나자 범한은 저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로 그녀라면, 어찌 선우의 애첩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목풍아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제 느낌으로는 위무성이란 자의 등장이 너무 공교롭습니다. 너무 공교로워서 해석이 안 될 지경입니다. 하여 저는 그 자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함정이고, 혹시라도 우리를 교란시킨 거면 어쩝니까?”
“우리 목표는 왕장 안에 있는 중원 사람이 아니네.”
범한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위무성의 등장이 자네 보기에는 공교로울지 몰라도 내 보기에는 조금도 그렇지 않아.”
범한이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 초원과 중원은 완전히 다른 세계야. 자네는 이곳에서 1년, 아니 반년도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들이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전혀 이해되지 않겠지······. 한데 위무성은 아직 젊은 사람이야. 하여 고향 생각을 억누를 수 없었던 거고, 중원에서 온 우리 상인들을 보니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걸세. 중원에서 대체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었던 거란 말일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정말로 그렇게나 견디기 힘든 건가?’
목풍아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본인의 처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1처에서 계년조로 이동한 후 외지 파견을 자주 나갔지만 자신은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목풍아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범한이 말했다.
“외지 파견은 하루 정도면 끝나지 않나. 왕장을 드나드는 중원 사람들은······ 어쩌면 북제 사람일 수도 있겠군. 아무튼 그들은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어.”
말을 마친 범한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위무성의 마음을 이리 정확히 알고 있는 건 그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이국 타향에 머물고 있는 기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범한은 위무성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범한은 약 냄새로 가득 찬 세계를 떠나왔지만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곳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건 있었다.
“설령······ 위무성이 고향이 너무 그리워서 중원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거라고 해도, 왕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말실수 할 걸 걱정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는 상인의 신분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왕장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서호 귀족들의 의사 결정과정을 볼 수도 없으니, 그건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목풍아는 아직도 위무성이 제사 대인과 우연히 만난 걸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그가 이맛살을 강하게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이상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냥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거였다면, 웅씨 가문의 상인이나 저를 찾아올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 대인이었을까요?”
범한이 한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돌연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나와 위무성이 만난 게 우연히 그리 된 게 아니니 그렇지······ 그가 왕장에서 나올 때 나는 이미 풀숲에 서 있었어. 그리고 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
방금 범한이 말한 상황은 목풍아도 똑똑히 보아 알고 있었다. 그때 목풍아는 월아해 옆에 있는 천막 입구에 서 있었다. 그리고 풀숲에 서서 초원과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제사 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좀 잘생기지 않았는가. 변장을 좀 하긴 했어도, 그래도 잘생긴 편이라······.”
범한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막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은가. 내가 풀숲에 서 있는데 월아해 근처에 있는 호족 여인들이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더군. 그건 보지 못했는가?”
목풍아의 낯빛이 변했다. 이런 유의 자화자찬은 받아주기 너무 힘들어서였다. 하지만 제사 대인의 말이 사실이란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제사 대인이 평범한 상인처럼 변장을 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상인들 중에서는 가장 눈이 가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풀숲에 서 있는데, 왕장에서 걸어 나오던 젊은이가 있더군. 하여 그의 시선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지.”
범한이 말을 이었다.
“그자가 나를 쳐다보게 하려 했는데, 글쎄······ 내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내가 위무성과 대화하기 위해 유인한 거라 말한다면, 뭐 그 말도 맞는 편이지.”
목풍아가 자기가 졌다는 듯 두 손을 펼쳐들며 대꾸했다.
“이제 보니, 미인계를 쓰신 거로군요.”
두 사람은 천막 안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월아해를 비스듬히 비출 때 왕장에서 열릴 대연회를 기다리는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역으로 보이는 서호 사람 하나가 다가와 공손히 그들을 초대했다.
그러자 각각 천막에 있던 상인들이 속속 밖으로 나왔다. 팔 물건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가슴팍을 보니 다들 선우에게 바칠 귀한 선물을 품에 넣어둔 상태였다.
목풍아도 몸에 물건 몇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범한은 알지 못했다. 범한은 그저 맨 뒤편에서 누구의 주의도 끌지 않으며 왕장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산 아래에 있는 제일 큰 천막에는 안에 있는 자의 존귀한 신분과 강력한 힘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 왕의 깃발이 높이 달려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범한은 이상한 느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게 서호의 왕장이고, 이 안에 초원의 주인이 있다니. 경국군은 여러 해에 걸쳐 셀 수도 없이 초원의 주인과 싸우고 그를 추격했지만, 단 한 번도 왕의 깃발을 찾아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서호 왕장은 언제든 옮길 수 있었고, 이로써 신비함을 유지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경국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 서쪽 정벌을 나섰을 때도, 그리고 훗날 1 황자와 섭씨 가문이 연이은 공격을 펼쳤을 때도 서호 왕장을 찾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범한은 느릿느릿 걸었다. 그리고 수만의 정예 기마병이 접근도 못한 왕장이 뜻밖에 자기 앞에 있자 범한은 자신이 너무나도 큰 유혹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범한은 이내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았다. 그리고 서호의 왕장이 뜻밖에도 이렇게 세인들 앞에 나타난 건 상대방이 기도(企圖)하는 것, 그리고 왕장 안에 있는 중원 사람들이 가져온 변화를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왕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은 단순한 천막이 아닌 독특한 양식으로 이루어진 궁전 같았다. 높이 솟은 천막 천장에는 기이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구름 속에서 기이한 빛이 나타나는 모습으로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기이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에 범한은 잠시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듯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괴이한 느낌을 받았다.
현재 범한의 신분은 사주(沙州) 제1 행상의 2주사라 다른 대상인들과 비교하면 지위가 많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풍아를 따라 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앉았다.
한편 초원의 주인인 서호의 군왕은 가장 안쪽에 있는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장막 안이 어두컴컴해 선우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범한은 가느다랗게 뜨고 가급적 주의를 끌지 않는 선에서 그를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우는 대략 삼십대 정도 되는 중년 남자였다.
그런데 이내 범한은 자신이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호 군왕 옆에 예닐곱 명의 호족 고수들이 차가운 눈으로 연회석상을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그들 중 진짜 고수는 서너 명 정도로, 호가의 실력을 뛰어 넘는 자들이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자신이 정교한 공격을 펼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네 명 정도. 더군다나 어둠 속에서 얼굴을 감추고 있는 초원의 왕은 야수처럼 차분하게 앉아만 있어 실력을 가늠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고 해서 호랑이 왕을 잡으려는 건 용감한 행동이 아니라 멍청한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범한은 이곳에 올 때 경국의 정예 기마병 결사대가 될 각오로 온 게 아니었다. 이에 범한은 고개를 숙이고 양 다리나 들고 뜯으며 잠자코 듣기만 했다.